1. 근현대의 정치 변동

 

* 흥선대원군

  -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 흥선대원군 사진


 

* 비변사    < 참고 내용 >

 

 

* 대전회통   < 사진.1 >   < 사진.2 >

 

 

* 병인양요(1866)

  - 프랑스군진입과정(지도)

  - 유적지(사진)


 

* 신미양요(1871)

  - 미군진입과정(지도)

  - 미군과의 격전지(사진) : 덕포진 광성보 강화전적지


 

* 강화도조약

  - 강화도조약 내용.


 

* 별기군   < 사진.1 >


 

* 임오군란    < 참고 자료 >

  민씨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생긴 구식군대.

 

 

* 군국기무처

  - 군국기무처의 회의모습(사진)

  - 군국기무처의 의안(사진)



* 갑오개혁(甲午改革)

   - 개화당일파(사진)


 

* 을미사변(乙未事變)

  - 을미개혁(乙未事變)

  - 을시사변 당시 상황(사진)

  - 상소문(사진)

  - 을미사변 사건 당시 문서(사진)

  - 조선의 시위대(사진)

  - 명성황우 사해장소(사진)

 

 

*  아관 파천   < 참고 자료 >


 

 

* 헌의 6조(憲議六條)

 - 헌의6조 내용


 

* 중추원

 - 중추원 조사자료

 - 중추원 회의(사진)


 

 

*  을사조약(乙巳條約)

  - 을사조약 체결 장면(사진)

  - 을사조약 외교 문서(사진)

  - 을사조약 항거 의병들(사진)


 

 

* 독립협회

  - 독립협회 집회(사진)

  - 독립협회(사진)


* 관민 공동회  < 사진 자료 >


 

 

* 보안회


 

 

* 대한자강회

  - 대한자강회 월보(사진)

  - 대한자강회 월보중 제 10호(사진)

  - 대한자강회 보충 자료

 

 

* 애국계몽운동

  - 애국계몽운동 당시 학당의 모습(사진)

  - 애국계몽운동 보충 자료


 

 

* 일제의 문화 통치

 1919년에 3.1 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일단 헌병경찰 대신 보통경찰과 고등경찰이 치안을 유지하고, 10년대는 금했던 민족지를 창간하도록 허용합니다. 그래서 나온 신문이 동아, 조선일보 입니다

또,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을 어느 정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10년대는 국외에 있었던 독립운동 기지들이 20년대는 국내로 들어오게 됩니다. 문화통치 시기에는 한국인에 대한 교육의 기회도 확대했고, 문관 총독을 임명해주기로 약속도 했습니다.

그러나 보통경찰 시대가 되어 사회 분위가 부드러워졌으나, 오히려 경찰수는 10년대보다 늘었고, 민족지 창간을 허용해주기는 했으나, 검열과 삭제가 있었으며, 독립운동을 국내에서 허용한 것은 독립운동에 관한 정보를 쉽게 얻고자 한 측면 때문이었으며, 한국인에 대한 교육의 기회도 저급 기술교육에만 치중되었습니다.

또 일본의 정책적으로 친일파를 양성한 것도 문화통치 때문이었으며, 문화통치의 본질은 비열한 민족 이간이었으며, 민족 기만으로 볼 수 있습니다.

10년대의 일제의 식민지 통치 방식은 무단통치 20년대는 문화통치, 30대부터는 민족 말살 통치라고 합니다. 3.1운동 이후 문화통치, 1931년 만주 사변 이후 민족 말살 통치가 실시됩니다.


 

 

* 일제의 무단통치

 1910년 부터 1919.3.1일까지의 통치를 말합니다. 이때는 무단통치를 다른 말로도 헌병경찰통치라고도 불립니다. 말 그대로 무력으로 다스리는 통치라서 교원, 즉 선생님들이 칼을 착용하고 수업을 하였습니다. 또 토지조사사업을 벌여서 우리나라 국토를 일제의 권한으로 돌려 취득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생산물들은 본국으로 가지고 가기 위한 방법 이였습니다.

그리고 회사령은 우리 민족 기업의 육성을 못하게 하였습니다.


 

 

* 일제의 민족 말살 통치

 1930년대에 들어 만주 사변을 일으킨 일제는 우리나라를 대륙 침략의 병참 기지로 만들어 나갔고 1937년 중?일 전쟁을 도발하면서는 국가 총동원령을 내리는 한편 민족 말살 통치를 강행하였다. 그리하여 징용을 강행하였고, 1940년대에 들어서는 징병과 학도병을 강요하였다. 더욱이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정신대라는 세계사상 전무후무한 만행을 저질렀다.

  - 민족문화수호운동

 

 

* 태평양 전쟁

  - 태평양전쟁시 일본 진출도(지도) 1. 2. 3. 4. 5.

 

 

* 내선일체(內鮮一體)

  - 내선일체 비석(사진)


 

* 일선 동조론


 

*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

   -  황국시민서사 관람실

 

 

* 독립 의군부

  - 독립 의군부 상소문과 설명


 

* 대한 광복회

  - 대한광복회 재판 판결문(사진)


 

* 조선 국권 회복단

  -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사진)


 

* 3ㆍ1운동

  - 순국기념관


 

* 대한민국 임시정부

  -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표

  - 대한민국 임시정부 약사

  -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행한 대한독립선언서(사진)

  -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명


 

* 민족 자결주의(民族 自決主義)


 

* 2ㆍ8 독립선언(二八獨立宣言文)

  - 독립선언기념비(사진)


 

* 연통제(聯通制)


 

* 구월산대

 1910년 이후 만주와 연해주에서 무장 독립군 부대들이 조직되어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던 것과 같이 국내에서도 몇 개의 무장 독립군 부대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부대는 평북 의주군에 소재한 천마산 속에 근거를 둔 천마산대와, 역시 동암산에 보합단, 황해도 구월산에 구월산대로서 인근 지역에까지 그 활동을 벌여 게릴라식 항일 전투를 전개하였다. 특히, 천마산대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진 바가 있다. 천마산대는 1919년 최시홍이 조직하여 1922년까지 삭주, 의주, 구성, 창성 등 평안 북도 일대를 활동 무대로 하여 게릴라전을 전개하였다. 천마산대는 일본 군경과 자주 교전을 하였으며, 헌병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불을 지르기도 하였다. 천마산대는 후에 만주로 이동하여 대한 민국 임시 정부 신하의 군단인 광복군 총영의 별동 부대로 활약하였다.


* 홍범도  < 참고 자료 >


 

*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 조선건국 준비 위원회 건물(사진)

 

 

*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 신탁통치 반대운동

 - 신탁통치 반대운동(사진)


 

 

* 제주도 4ㆍ3사건

  - 4.3사건 해결 청원서

  -

 

 

* 여수ㆍ순천 10ㆍ19사건

  - 사건당시 발견 문서(사진)


 

* 북조선인민위원회    사진.1

  북한에서의 정권수립 과정은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소련군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에 거주하고 있던 일단의 한인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북한에 진주하는데, 이들 한인부대는 김일성이 지도하고 있었다. 이들은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듦으로써 실질적으로 정권형태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에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공식화하는 절차로 ‘북조선 도·시·군 인민위원회 선거’를 실시하였는데, 이것은 이른바 흑백선거에 의한 것이었다. 이 선거에서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정식으로 구성되는데, 인민정권의 수립이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1948년 8월 15일 남한의 대한민국 수립이 선포된 지 25일 만인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다.

  -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사진)


 

* 5ㆍ16 군사정변

  - 5.16 군사정변 재판모습(사진)

  - 5.16 군사정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