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사 시대의 전개


1-1. 선사 시대의 세계




* 오스트탈로피테쿠스            < 참고 자료 >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남방의 원숭이라는 뜻으로서 원인(ape-men), 혹은 인원(men-ape), 또는 근인(near-men) 심지어 원시인과 같은 여러 가지로 불리는 집단의 총칭이다. 이들 집단은 인류진화성 최초의 완전한 단계를 이루고 있는 집단으로 보고 있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라마피테쿠스로 부터 300만년 보다 훨씬 이전에 진화되었다고 본다.

1925년 다트 R.A. Dart에 의해 남아프리카 케이프주에 있는 타웅 마을에서 발견된 작은 원시인류 표본을 설명할 때 만들어 졌다. 그의 타웅어린아이 두개골 분석에 의하면 대후두공의 복부 부분과 서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작은 송곳니는 인간의 특성을 지녔고, 작은 뇌와 상대적으로 큰 코는 원숭이와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등 몇개의 구별되는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호모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볼수는 없으나 대형 유인원과 다른 속의 특징을 가졌다는 것 때문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원시인류의 조상으로 인정하고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비슷한 등급의 중간쯤의 위치에 놓고자 하였다.

1936년 브룸R.Broom은 스테르크폰테인Sterkfontein 지역에서 선신세 화석을 발견하고, 형태학상으로 타웅의 두개골과 유사하다고 인정했다. 브룸과 그의 동료들은 人科 내에서 이러한 화석들을 다시 亞科로 분류하고 오스트랄로피테시네(Australopithecinae)라 명명했다. 그리고 이 오스트랄로피테시테 내에는 그 아분류단위로서 각기 별개의 속들이 있다. 크롬드라이Kromdraai와 스와르트크란스 지역에서도 브룸에 의해 초기 원시인류 표본이 계속 발견되었다.

1959년 리키 L.S.B Leakey는 커다란 이빨과 육중한 새깃 장식을 한, 잘 알려지지 않은 유인원 진잔트로푸스 보이세이 Zinjanthropus boisei라는 원시인류 두개골을 올두바이 고지Olduvai Gorged의 Bed I에서 발견하였다. 로빈손 J.T.Robinson은 크롬드라이와 스테르크폰테인지역으로부터 남아프리카 형태와 아주 유사점이 있음을 지적하고 진잔트로프스가 파란트로프스의 하위 동의 개념임을 주장하였다. 브룸이 그러했듯이 로빈손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파란트로프스는 진화선상의 상이한 계통발생을 나타내고, 그들의 유전학적인 분류는 아주 명확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타웅, 스테르크폰테인, 마가판스가트지역의 원시인류의 표본은 진화의 분류된 가지로 비교되었듯이 로빈슨에 의해 그 화석은 파란트로프스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조직진화 단계로 비유하는 초기 원시인류 형태인 이런 견해들도 토비아스P.V Tobias, 브레이스C.Loring Brace 그리고 월포프 M. wolpoff에 의해 계속적으로 연구되고 있으며, 그 연구들은 비교적 작은 뇌의 크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현재 대부분의 학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A.afarensis,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A.africanus,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보스투스 A.robustus,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 A.boisei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에티오피쿠스 A.etniopicus등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류를 다섯가지로 인정하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란 용어는 사실상 분류학의 australopithecine에 올라있는 亞科의 직접적인 대표이고, 그것은 호모의 亞科에서 분리해 주는 함축적인 표시로 사용되었다.


 

 

* 호모하빌리스              < 사진 자료 >

 

◈ '손재주 있는 사람'이라는 뜻.

◈ 180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출현했다.

◈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에렉투스의 중간 단계라고 생각된다.

루이스 리키는 원시적인 도구와 함께 발굴된 원인(猿人)의 화석을 호모 하빌리스라고 이름짓고 도구를 만들 능력이 없는 진잔트로푸스와 구별하였다.

현재 호모 하빌리스라는 개념의 유효성에 대해서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도 한다.


 

 

* 호모에렉투스            < 참고 자료 >

]

◈ '선 사람'이라는 뜻.

◈ 1백 60만년 전부터 25만 년 전까지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였다.

호모 사피엔스의 직계 조상이라고 생각되지만 그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이델베르크 인, 베이징 원인, 자바 원인, 피테칸트로푸스 등 발견 당시 각각 구별되는 이름으로 불렸던 화석들이 현재는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되고 있다.


* 호모사피엔스     < 참고 자료 >

 

 플라이스토세 중기의 말엽이 되면, 세계각지에서는 아직 호모 에렉투스와 유사한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지만 몇몇 형질적 특징에서 현대인에 보다 가까이 접근한 집단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화석은 우리 현대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속한 모종인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종은 인도네시아, 중국, 아프리카, 유럽 등 구대륙 각지의 여러 곳에서 비숫한 시기에 등장하였다. 이들이 등장한 최초의 시기는 40-25만년전 사이이다. 즉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는 후기의 호모 에렉투스와 상당한 시간 동안 공존하였다. 이들 양 집단 사이에는 실상 화석의 형태나 문화내용에 있어서 그리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플라이스토세 중기의 호모 속을 위의 두 종으로 구분하는 것은 매우 자의적이며 결과론적인 분류라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 에렉투스의 진화경향을 계승하며 일정한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종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다고 보고 있다.

플라이스토세 중기 말에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에렉투스와 비교하여 두개골의 용량과 형태에 현저한 차이가 나타나는데, 안면부의 형태에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치아의 구조는 에렉투스와 유사하다. 아울러 사피엔스의 화석은 두개골 상단의 융기부(sagital keel)의 크기와 두개골의 두께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미궁골의 융기정도는 에렉투스에 비해 그리 줄어들지 않은 편이다.

초기 사피엔스의 두개골과 치아의 특징은 두뇌 각부 크기의 차별적 증가, 앞니 부위의 집중적 사용의 계속 및 어금니와 작은 어금니 부위의 중요성의 계속적 감소라는 세요인의 복합적 작용의 결과이다.

사냥도구의 발달과 이 도구를 만들기 위한 기술적 발달 및 그 기술을 활용하여 도구를 만드는 과정을 위하여 인체의 특정부위의 집중적, 반복적 사용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미궁골과 비강부의 발달은 석기제작에 요구되는 근육운동을 지지하기 위한 필연적 결과라고 해석된다.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석기문화는 매우 세련되게 발전하며 다양해 진다. 하지만 한가지 공통된 특징으로 묶자면 아슈리안문화의 최후 단계의 양상을 보여준다. 이와같이 도구는 점차 고정화된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여 종류가 다양해지기는 하지만 보다 정제화되어지고 기술형태학적으로 밝힐 수 있는 지표석기들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들은 발달된 사냥도구를 활용하여 그들이 처한 적절한 생태적 적소를 선택하여 발달된 사냥기술을 활용하였다. 예를들어 영국 클락톤유적에서 발견된 것 처럼 과거의 사냥도구에 비하여 효율성이 높은 새로운 무기인 창을 만들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대표적인 석기제작방법은 아슈리안석기문화에 기원을 둔 르발로아 기법(Levallois technique)이다 (르발로아기법 참고 &#9606;). 중요한 것은 이 인류가 석재를 선택하여 복잡한 박리과정을 체계적으로 밟아가며 목적한 르발루아 격지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은 곧 이들 집단 간의 기술적 전통을 밝혀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를 제시해 주는 것이다. 동일한 전통을 전승한다고 하는 것은 이들의 사고능력의 발달, 즉 인식체계의 조직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며 문화진화가 가능하게 한 기초를 제공한다. 이것은 형질적 진화가 이루어 지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된다. 또한 주먹도끼로 대표되는 아슈리안 석기문화는 초기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석기문화의 하나이다.

호모사피엔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적들은 아프리카와 유럽에 널리 확산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프랑스 니스의 테라 아마타(Tera Amata)유적이다. 이 유적은 11개의 생활층이 정연하게 퇴적되어 있다. 이 곳에서는 각 문화층에 걸쳐 다수의 타원형 평면의 집자리가 발견되었다. 이 유적에는 집의 골조를 세웠던 기둥구멍과 화덕자리가 있었으며 유물의 분포양상은 도구를 제작하던 작업공간도 있었다. 도구는 주로 아슈리안석기문화의 것들이며 창으로 쓰였을 첨두기 등도 발견되었다. 그밖에 페트랄로나(Petralona), 빌징스레벤(Bilzingsleben), 슈타인하임(Steinheim) 및 스완스콤(Swanscomb)의 호모 사피엔스의 유적이 있다.

또 중요한 초기 사피엔스의 유적들 가운데 케냐의 올로게세일리(Ologesailie)와 탄자니아의 이시밀라(Isimila)유적은 인간행위의 전문화되고 분화되는 양상을 잘보여준 증거들을 제시해 준다. 우선 서식처의 환경조건에 따라 뚜렷히 다른 석기군이 발견되는 점과 동일 생활면에서도 구석기시대인들의 작업양식에 따라 상이한 종류의 도구가 각각 무리져 발견된다는 점이 그러하다. 이같이 작업목적에 따라 도구를 선택적으로 사용한다던지 그에 적당한 석기를 제작 사용한다던지 하는 능력은 이미 이시기에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는 이전 화석 단계보다 훨씬 발전한 모습의 생계양식을 유지하였다. 이들은 자신의 서식처에서 얻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자원을 체계적으로 이용하는 적응양식을 지닌 집단이었다. 약 30만년전 플라이스토세 중기말에 형성된 유적인 스페인의 토랄바유적에서 볼수 있듯이 인간집단이 불을 사용하여 맘모스와 같은 큰 동물을 늪지에 몰아 사냥을 하고 그곳에서 사체를 해체해서 생활 근거지로 되돌아오는 일련의 조직적인 행위방식을 추적할 수 있다.

초기 호모사피엔스는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예술행위나 상징행위도 했음을 알 수 있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테라 아마타에서 발견된 안료덩어리는 아마도 신체를 장식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이며, 페슈데라쥬(Pech de L'aze)유적에서 발견된 석판조각 역시 이들의 예술행위를 엿볼 수 있으며, 프랑스 라제레(Lazeret)동굴유적에서 그 얼굴쪽이 동굴입구를 향하도록 늑대의 머리뼈를 한 점씩 주거지의 출입구 부분에 배치한 행위는 상징행위의 단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본격적인 언어의 구사와 예술행위가 시작되었을 높은 가능성, 구조물의 건축 및 고고학 자료에서 유추되는 고도로 조직화된 적응양식의 존재에서, 초기 사피엔스는 집단 내적으로 또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고도로 구조화, 조직화된 양식의 사회적 행위를 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들의 물질문화가 지닌 많은 특징은 그들이 사회조직이 아마도 많은 점에서 현대의 원시집단에 가까운 형태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들 사회는 적어도 연령 혹은 개인적 능력에 따른 사회적 상하질서의 관계가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 참고 자료 >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현생인류를 말하며 해부학적 관점에서 현대인과 같은 신체적 특징을 지닌 최초의 집단이다. 옛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의 진화는 형질인류학에서 흔이 대 전이라고 불리는 과정적 사건이다. 이 대 전이는 대략 4만년에서 3만년전 사이에 걸쳐 일어났다. 여러지역에서 나오는 화석자료는 단편적인데, 구체적인 전이과정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중동지방과 중동부 유럽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전환기적 특징이 잘 나타나는 유적은 프랑스의 로투스(l'Hotus), 유고의 빈디자(Vindija) 및 레바논의 스쿨(Skhul)유적 등이다. 이러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화석은 아시아 지역에도 많이 나타나는데 중국에서는 상정동인, 한국에서는 용곡인, 승리산인, 만달인 등이 대표적이다. 각지에서의 대 전이의 과정은 그 지역 토착집단의 진화의 과정인 동시에 이미 현생인류로의 진화를 마친 집단으로 부터의 이입이라는 두 과정의 복합적 결과이다. 이들의 전이는 서서히 진행되었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가속화되었다. 이들이 현생인류로 변화해 간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도구의 전문화와 이에 따른 신체 각부위의 도구적 기능감소에서 찾을 수 있다. 계속적인 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행동양식의 변화를 가속화하였고, 그 결과 형질진화의 속도 역시 더욱 빨라지게 되었는데, 그러한 과정이 진행되던 중 어느 시점 이후 인류 전체의 유전자급원에서 현대인적 형질과 관계된 유전자가 그렇지 못한 유전자를 앞도적으로 대체하게 되었을 때 대 전이가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지역집단의 고유한 특징은 문화적 특징과 더불어 이러한 과정에서 후대의 집단에게 유전되었을 것이다.

대 전이의 구체적인 과정은 지역에 따라 일정한 것은 아니며 모든 지역에서 대 전이의 시기에 위치하는 화석은 현생인류와 옛 사피엔스의 특징이 문화적으로나 체질적으로 전환기를 맞게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환기의 갈등은 새로운 질서체계 속으로 편입되게 되는데 즉, 옛 사피엔스의 특징은 서서히 사라지고 점차 현생인류로 변화해 가는 것이다. 체질적인 변화는 특히 앞니 크기의 현격한 감소, 안면 하부의 앞으로 튀어나온 정도의 감소, 미궁골의 감소와 궁극적 소멸이라는 점에서 가장 뚜렷히 나타난다. 또한 안면근육운동의 감소에 따라 두개골의 근육부착부위가 약화되며, 두개골 윗부분의 크기도 감소하여 두개골은 위에서 볼 때 보다 좁은 형태로 변화한다. 그러나 두 개골의 용량에는 큰 변화가 없었는데, 이것은 두개골의 폭이 줄어든 대신 길이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근육운동의 감소로 사지뼈의 두께와 편평도도 줄어든다. 그런데 이러한 진화의 특징은 모든 자료를 놓고 평가할 때 나타나는 평균적인 변화이며, 개개 화석은 진화정도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다. 3만년 경이 되면 이러한 변화과정이 일단락되면서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형질적 진화과정을 마치게 된다.

이러한 진화과정은 범세계적으로 일어난 것이지만 각 지역마다 그곳의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형성된 그들의 형질적, 문화적 차이에 의해 약간씩 달리 나타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대 전이의 시기 동안 서유럽에서는 신체의 크기가 증가하는 반면, 아프리카 남부에서는 감소하는 경향이 발견된다. 즉 아프리카에서 신장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은 작은키는 덥고 건조한 기후에 대한 보다 효율적인 적응의 방편인 동시에 사냥에 있어서 독이 널리 사용되며 신체각부의 강고함이 그리 많이 요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된다. 한편 유럽에서 신장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주로 순록과 같은 이주성 군집동물을 사냥하던 집단에게는 큰키가 보다 유리한 활동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신체특징의 지역적 차이는 플라이스토세의 최말기에 더 확연히 드러난다. 일련의 독특한 피부색을 지닌 집단은 옛 호모 사피엔스의 활동기에 이미 등장하였을 가능성이 있지만, 각 지역집단 내에서도 나름대로의 형질적 특징을 공유하는 국지적 형질집단는 비교적 늦게 화석자료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시아대륙거주민과 멜라네시아인의 차이나 부시맨과 니그로 흑인 사이의 차이는 1-2만년전에야 화석기록에서 읽을 수 있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 태평양의 여러섬 및 아메리카대륙이라는 새로운 서식처로 진출한 시기도 이시기에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등장은 고고학상으로 후기구석기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후기구석기시대의 석기문화에서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돌날떼기 기법의 등장이다. 이 기법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독자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기법으로서 르발로아 기법을 모태로 하여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르발로아 기법을 통하여 얻어지는 무스테리안 뾰족개 한점을 만들기 위하여 버려지는 여러 격지 가운데 많은 돌날이 생성되었다. 이러한 돌날이 주는 생활상의 유용성이 부각되면서 이 시기에 가장 중심이 되는 석기제작 방법으로 정착했던 것이다. 이 석기제작 기법은 세계 전지역에 확산되었으나 일부 후기구석기시대 초기에는 지역에 따라 격지를 중심으로 하는 석기문화가 존재한 곳도 많다. 특히 아시아 일대에서는 돌날떼기기법은 다른 지역보다 늦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석기제작 기술의 발달은 그에 따른 도구의 다양성을 불러오게 되었는데 현생인류가 사용했던 석기의 종류는 잔손질이라는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가능한 모든 석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돌날떼기 기법의 발생으로 선사인들이 원하는 정교한 석기를 만들기 위한 사고체계가 몸돌로 부터 돌날을 떼는 1차적인 작업에도 그 목적성이 뚜렷히 적용되게 되었다. 그 목적을 위하여 기존에 직접 혹은 간접떼기 뿐 아니라 눌러떼기라는 기술도 함께 사용하였던 것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지역에서 돌날떼기 기법을 중심으로 하는 석기문화가 계속되던 2만년을 전후로 하는 후기구석기 후기에 동아시아에,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시베리아와 극동을 중심으로 시작된 세형돌날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시기와 지역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좀돌날 몸돌문화 참고 ). 이 문화는 보다 정교한 손동작을 통해서만 가능한 기술적인 특성를 가지고 있어서 현생인류의 체질적인 발달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것이며 후기구석기시대의 기술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다. (후기구석기문화 참고 ) 이들의 주거 양식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동굴유적, 바위그늘유적, 야외유적 등이다.

특히 이들은 예술을 인식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새겨놓은 많은 조각상 및 동굴에 그려놓은 암벽화는 그들의 예술적인 수준과 다양한 경제활동, 신앙 등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신석기 시대 석기류와 토기류

< 사진 자료 >


* 빙하기        < 참고 자료 >

지질 시대 제 4기인 약 100만년 전에 빙하기가 시작되었으며, 최후의 빙하기는 약 1만 8000년전으로 추정된다. 만주와 한반도에서도 빙하기가 습래한 흔적이 남아 있다. 주요 빙하기는 네 차례 진행되었는데,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를 간빙기라 하며, 이 때 기온이 상승하면서 해수면이 올라갔다. 인류나 동식물은 빙하기가 되면 거의 전멸 상태에 들어가게 되고, 간빙기에 다시 나타나는 현상을 보였다.

 전기 구석기는 제 1간빙기와 제 4빙하기 초까지를 말하는 데, 이때 유럽과 아프리카는 몇 개의 호수를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었으며 인류는 화식(음식을 익혀서 먹는 것)을 하지 않았다. 제3간빙기와 제4빙하기 사이에 네안데를탈 인이 출현하여 불을 사용하고 매장법을 알게 되었다. 제 4빙하기 이후는 후기 구석기 시대에 해당하며, 크로마뇽 인 등 현생인류가 출현하였다.


 

 

* 신석기혁명   < 참고 자료 >

 

1) 홍수범람, 대삼림 조성, 凍土性과 草原性 동물의 북쪽 이동--> 새로운 환경조성-->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생활의 창조-->신석기 문화와 원시적인 농경문화(농업혁명)

2) 석기제조방법

(1) 鼓製法(pecking method)

(2) 磨製法(rubbing method)

(3) 토기의 제조 : 회색--> 彩陶는 지식과 기술의 발달을 나타냄.

(4) 신석기혁명의 문화권

① 彩陶文化圈---동북아시아, 서남아시아, 중국, 온화계절풍, 가우량多, 농업중심, 채도와 마제

 석기가 특징.

② 櫛目文土器文化圈---Baltic海∼Siberia 삼림지대, 수렵과 어로, 골각기, 즐목문토기

 골각기---동물의 뿔, 뼈, 이, 무기, 작살, 낚시. 일용기구, 장신구

③ 細石器文化圈---몽고, 터어키, 이란, 아라비아, 건조한 초원이나 사막, 細石器(가즉, 뼈, 살을 자르는데 사용)


* 문명의 발생

< 참고 자료 >


 

* 선사시대와 역사시대

  < 참고 자료 >

석기시대는 청동기시대·철기시대 이전 주로 석기가 사용되고 금속기를 알지 못한 시대로서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로 구분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상한(上限)을 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신석기시대의 하한(下限)도 지역에 따라 달라 설정하기 어려우나 대개 BC 2000년까지 신석기시대가 잔존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석기시대와 선사시대의 차이점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선사시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선사시대 [先史時代]는, 첫째, 석기시대·청동기시대 내지 초기철기시대가 포함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존하고 해독이 가능한 문헌사료가 나타나는 시대는 지역에 따라 다르고 또 그 시대의 문화·사회·경제의 발전단계도 각양각색이니만큼, 이 용어의 개념은 상당히 막연하다는 것이다.

둘째, 원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말한다. 원삼국시대란 삼한시대 또는 부족국가시대로 불르고, 고고학계에서는 초기철기시대 등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들 용어들은 이후 삼국의 체제정비와 일원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게 됨에 따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의 하나로서 고고학자들에 의해 원삼국시대 개념이 제기되었다. 철제도구가 널리 보급되어, 이전에 청동기와 철기가 함께 사용되던 시기와는 뚜렷이 구분된다. 그러나 아직은 돌도끼·돌화살촉·반달모양의 돌칼 등 석기를 사용한 흔적도 남아 있고, 때로는 짐승의 뼈로 만든 골기(骨器)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석기시대와 선사시대의 차이는 명확하다. 즉, (1) 석기시대는 앞에서 지적했듯이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그리고 초기철기시대를 포함하는 선사시대의 일부라는 점이고 대략 BC 2000년까지이다.

(2) 선사시대는 석기시대·청동기시대 내지 초기철기시대가 포함되고 대략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를 말한다. [선사시대 = 석기시대 + 청동기시대 + 초기철기시대, AC 원년전후까지 ]


 

 

* 청동기시대    < 참고 자료 >

 

B.C. 1000년경 전후에는 동 · 서양에서 북방민족의 남하가 주측이 되는 민족의 이동이 일어나 B.C. 700년경이 되면 서양에서는 스키타이족이 흑해북안에 진출하고 그리이스인들이 남쪽으로 퍼지고 동양에서는 예니세이지방에서 몽고지방 일대의 종족들이 화북지방에 압박을 가해 주(周)가 흔들리고 동주(東周),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제1천년기 전반기의 민족이동이 우리나라에 새로운 주민을 몰고 온 것이며 이 새 주민들이 청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만몽지대(滿蒙地帶)에 살고 있던 퉁구스족이었으며 그들은 남시베리아의 선주민들이 오랜 시간동안에 지역화한 것이었다.

 


1-2. 우리나라의 선사시대





* 요령성      

  

* 길림성

 

* 알타이 어족

 

고대 바이칼호 부근에 살던 북방계 몽골리안(남방계는 인도차이나 반도 등지의 사람들)의 뿌리를 공유하는 어족. 아래의 세 어군으로 세분됨.


- 투르크어군(서부): 터키, 중앙아시아

- 몽골어군(중부): 몽골, 내몽고 자치구

- 퉁구스어군(동부): 동부 시베리아, 만주, 사할린(여진어, 만주어 등)

[최근에는 한국어를 추가해 4개어군으로 하자는 주장도 있음 - 그만큼 한국어는 퉁구스어군과 멀게만 동계임]


 

* 구석기 시대

 인류의 발달과정을 도구제작 기술에 의해 구분할 때 가장 이른 시기. 19세기 초반 덴마크의 C.J.톰센이 인류의 과거를 석기,청동기,철기시대로 나눈 삼시대법을 창안한 뒤, 영국의 J.러벅이 석기시대를 구석기와 신석기시대로 세분하여 구석기시대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는 인류가 최초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 때부터 토기 등장과 농경 시작으로 특징지워진 신석기시대 이전의 시기를 일컫는 말이며, 지질학적 시대로는 신생대 제4기 홍적세와 충적세의 경계, 즉 약 1만 년 전을 그 종료시점으로 설정하였다. 이 시대의 문화전통이 홍적세가 끝난 뒤 충적세의 초창기까지 지속된 시기를 중석기시대(Mesolithic Age)로 표현하기도 하나, 모든 지역에서 중석기시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며, 그 문화 내용 역시 구석기시대와 구분하기 어려운 곳이 많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이 시기를 구석기시대에 포함시키거나 후(後)구석기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이 시대의 대표적 유물은 타제석기[打製石器]인데, 석기제작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전기,중기,후기의 세 시기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다. 각 시기의 경계에 대한 정의는 지역에 따라 일정하지 않은데, 세 시기의 구분중 가장 알려진 기준은 유럽 서남부에서 정의된 것으로서, 여기에서도 이를 따르도록 한다. [전기구석기시대] 아주 이른 시기의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는 그것이 자연적 타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인간의 의도에 따라 제작된 것인지의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석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약 240만 년 전의 것으로, 이를 비롯하여 인류가 처음 사용한 석기군을 일반적으로 ‘올두바이석기공작(Oldowan Industry)’이라고 한다. 이에 속하는 석기는 그때그때 임시적으로 만든 것으로 여겨지며, 형태적 정형성을 찾기 어렵다. 올두바이공작은 보다 정제된 석기로 구성된 ‘발달한 올두바이공작(Developed Oldowan Industry)’으로 이어지며, 이것은 다시 매우 정제된 형태의 석기로 구성된 ‘아리안공작’으로 계속된다. 아리안공작은 아프리카와 유럽 및 인도에 걸쳐 분포하지만, 모든 곳에서 이러한 공작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아리안공작의 대표적 석기는 주먹도끼를 비롯한 각종 양면가공석기(biface)로서, 이러한 석기는 이후 약 150만 년 가까이 호모 에렉투스와 초기 호모 사피엔스 집단의 대표적인 도구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리안공작의 석기제작에는 돌보다 강도가 약한 나무˙사슴뿔을 망치로 사용하여 원석을 때리는 방법과 소위 간접타법이 응용되었는데, 이로부터 보다 정제된 형태의 석기가 만들어졌다. [중기구석기시대] 중기구석기시대는 보통 ‘무스테리안공작’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한다고 알려졌다. 이 공작은 르발루아기법이라 불리는 고도의 정제된 박편가공기술을 응용하여 석기를 제작한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그러나 무스테리안공작은 전기 아리안공작과 같이 모든 곳에서 발견된 것은 아니며, 아시아에서는 아주 제한된 지역에서만 그 존재가 알려졌다. 이 시대의 담당자는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여러 호모 사피엔스 집단이라고 생각된다. 이들의 석기공작이 기본적으로 전시대의 것을 계승,발전한 것이지만, 전반적으로 훨씬 더 정교하고 세련된 석기가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는 사체의 매장풍습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등장하며, 또한 원시적인 형태의 종교와 예술 행위의 증거도 발견되었다. [후기구석기시대] 후기구석기시대는 해부학적 견지에서의 현대인, 즉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과 더불어 약 4만 년 전부터 시작한다. 이 시대의 문화상은 고도의 지역적 다양성을 보여주지만, 세계 어느 지역에서의 석기제작에서도 소위 ‘눌러떼기(pressure flaking)’라 불리는 기법이 응용된 점이 중요한 특징이다. 고도로 정제화되고 소형화된 매우 전문적인 목적의 석기가 다량 제작되는데, 이러한 기술적 발전은 자연 자원 이용의 효율을 크게 증대시켰다. 특히, 후기구석기의 중기 이후에는 세석인(細石刃:microblade) 제작이 유행하며 각종 복합도구가 만들어져, 그러한 효율성이 더욱 증대되었다. 이 시기부터 장거리에 걸친 교역 혹은 교환경제행위와 관계된 증거가 본격적으로 나오며, 알타미라와 라스코의 동굴벽화, 뷜렌도르프의 비너스상을 위시한 본격적인 예술작품이 등장한다. 이들 예술품은 상징과 주술 행위에 관계된 것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사회적 정보의 전달 및 갈등 해소의 기능적 역할을 위해 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1935년 함북 동관진(현 온성군 강안리)에서 구석기 유적이 처음 발견된 이래 1960년대의 공주 석장리와 웅기 굴포리유적 발견에 이어, 지금까지 유적 약 50곳이 발견되었다고 보고되었다. 그러나 구석기시대의 연구는 연구 인력의 제한과 제4기 지질학을 비롯한 인접 학문의 미발달로 아직 걸음마 단계로서, 유적˙유물의 정확한 나이의 판단도 그리 쉽지 않은 문제이다. 남한의 대표적 유적인 공주 석장리유적은 전기에서 후기에 걸친 11개의 구석기 문화층이 발견되었다고 보고되었으나, 최근의 연구 결과는 이 유적은 후기구석기시대 말기의 것이라고 생각된다. 연천 전곡리유적을 비롯해 임진강과 한탄강 연안의 많은 유적에서는 아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되어 국제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들의 나이에 대해서는 2,30만 년 전이라는 주장과 4,5만 년 전이라는 주장이 대립한다. 또 남북한에서는 각각 70만 년 전의 유적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등장하나,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 격지

 


* 쐐기

 

통나무와 바위를 쪼개는 데 사용했다. 바위를 쪼갤 때는 나무 쐐기를 바위 틈에 박고 물을 부어 쐐기를 팽창시켜 쪼갠다.

 


* 구석기시대의 유적

 


* 구석기 시대의 유적지

 


* 뗀석기

 


* 주먹도끼

 


* 찍개

 

* 슴베찌르개

박편의 양쪽을 다듬어서 끝부분을 뾰족하게 만들었다. 박편으로 만들어져 주먹도끼 보다 훨씬 작다. 자루를 달아서 창이나 그 외의 찌르는 무기로 사용되었다.


 

* 덧무늬 토기와 잔석기

< 참고 자료 >

< 참고 자료 >


* 중석기 시대

우리 나라의 석기 시대는 일반적으로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크게 구분하고

있으나, 세분하여 구석기, 중석기, 신석기 시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구석기 시대는 인류의 출현 시기로부터 약 1만년 까지를 말한다. 구석기 시대를 다

시 전기(10만년전), 중기(10만~4만년 전), 후기(4만~1만년 전)로 구분한다.

중석기 시대란,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약 2000년간(1만

~8000년 전)으로 잔석기(잔石器) 시대로 불린다. 최근 통영의 상노대도 조개더미와

거창 임불리 유적에서 이음도구로 사용한 듯한 잔석기가 발견되어 한반도에서의 중석

기 시대 설정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신석기 시대는 다시 전기(8000~5500년 전), 중기(5500~4000년 전), 후기(4000~3000년 전) ; B.C.2000~B.C.1000년 전)로 구분하는데, 우리 나라 신석기 시대는 B.C.6000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 덧무늬 토기  < 참고 자료 >  < 사진 자료 >

 

신석기시대에 사용한 토기의 하나. 융기문토기(隆起紋土器)라고도 한다. 토기를 만든 다음 그 위에 또다시 흙띠를 덧붙여 돋아 오르게 한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토기 가운데 하나이며, 부산 동삼동유적 발굴시에 무늬없는 토기들과 함께 출토되었다. 이 밖에도 남해안 전지역과 경상남도 내륙지방, 제주도 고산리 등지에서도 출토되었다


* 빗살무늬토기   < 사진 자료 >

 

* 눌러찍기무늬 토기 < 참고 자료 >

 


* 신석기 시대의 유적지   < 참고 자료 >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는 기원전 80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돌을 갈아서 여러 가지의 형태와 용도를 가진 간석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또, 진흙으로 그릇을 빚어 불에 구워서 만든 토기를 사용하여 음식물을 조리하거나 저장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생활이 더욱 나아졌다.

그러나 부족 사회도 구석기 시대의 무리 사회와 같이 아직 지배, 피지배의 관계가 발생하지 않았고, 연장자나 경험이 많은 자가 자기 부족을 이끌어 나가는 평등 사회였다.

대표적인 유적은 서울 암사동, 평양 남경, 김해 수가리 등으로 대부분 바닷가나 강가에 자리 잡고 있다.


* 농경 굴지구  < 참고 자료 >

 

농경 굴지구는 땅을 파고 일구는 도구이다. 신석기 시대 농경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유물이다


 

* 가락바퀴  < 참고 자료 >

 

* 움집   < 참고 자료 >

 

* 화덕    < 참고 자료 >

 


* 애니미즘   < 참고 자료 >

 

 무생물계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세계관. 물신숭배(物神崇拜)·영혼신앙(靈魂信仰) 또는 만유정령설(萬有 精靈說)이라고도 번역되는 애니미즘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아니마(영혼)에서 나온 말이다.

 영국의 인류학 자 E.B.타일러가 《원시문화》(1871)에서 이 말을 처음 사용하였는데, 애니미즘적 사고방식은 ‘야만인의 철학’으로써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는 동시에, 나아가서는 종교의 근본원리가 되었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 된다.

 타일러에 의하면 애니미즘적 사고방식은 꿈과 죽음의 경험에서 추리되어 성립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가령 잠자고 있는 동안 몸은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도 멀리 떠나 있는 꿈을 꾼다거나, 또는 죽음 직후에는 외관상 아무 변화는 없으나 살아 있을 때의 상태와는 다른 것을 느낀다. 그래서 육체와 유리 되어 활동하는 원리, 즉 영혼을 상정(想定)하게 되었다. 수면과 가사(假死)는 영혼의 일시적 부재(不在)상 태이며, 죽음은 그 영원한 부재상태이다.

 그러나 사람이 죽고 난 뒤에도 영혼은 독립하여 활동하기 때문에 그것을 숭배하는 데서 종교가 비롯되었으며, 동물이나 나아가서는 자연물에까지 영혼을 인정함으로써 신의 관념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같은 타일러의 학설은 주지주의적(主知主義的) 종교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고, 또한 원시인에게서 꿈이 그처럼 중대한 경험인가 아닌가의 문제를 두고 논란도 있었으나, 이원론(二元論)의 사고양식을 설명하는 양식으로서 아직도 그 가치를 잃지 않고 있다.

 보통 사람이 넋을 잃으면 질병에 걸리거나 죽는다고 믿는데, 무당이 행하는 병치료법은 그같이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내어 환자의 육체에 되돌려주는 일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인디오 사회에서는, 인간과 특정의 동물이 넋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 신앙을 흔히 보게 되는데, 그 상대 동물이 죽으면 사람도 죽는다고 믿고 있 다.


* 샤머니즘      < 참고 자료 >

 

shaman은 원시적 종교의 한 형태 또는 단계로 엑스터시(忘我, 脫我, 恍惚)와 같은 이상심리 상태에서 초자연적 존재와 직접 교섭하여 이 과정 중에 점복(占卜), 예언, 치병(治病), 체의(祭儀), 사령(死靈)의 인도 등을 행하는 주술, 종교적 직능자인 샤먼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 현상을 말한다.


 

* 토테미즘   < 참고 자료 >    < 참고 자료 >

 

토템 신앙에 의해 형성되는 사회체제 및 종교 형태. 토템이라는 말은 북아메리카 인디언인 오지브와족 (族)이 어떤 종류의 동물이나 식물을 신성시하여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과 특수한 관계가 있다고 믿고 그 동·식물류(독수리·수달·곰·메기·떡갈나무 등)를 토템이라 하여 집단의 상징으로 삼은 데서 유래 한다. 이와 같이 인간집단과 동·식물 또는 자연물이 특수한 관계를 유지하고 집단의 명칭을 그 동·식물 이나 자연물에서 따붙인 예는 미개민족 사이에서 널리 발견되고 있다.
오늘날 토템이라는 말은 이런 유의 사회현상에 있어서 집단의 상징이나 징표로서의 동·식물이나 자연물을 가리키는 데 널리 쓰이며, 토테미 즘이란 토템과 인간집단과의 여러 가지 관계를 둘러싼 신념·의례·풍습 등의 제도화된 체계를 가리킨다.
토템은 어느 특정 개인에 관계된 수호신이나 초자연력의 원천으로서의 동물, 또는 샤먼(무당)의 동물신 등과 동일시되는 일이 있어, 이런 입장에서 보는 토테미즘설도 있으나 현재에 와서 이것들은 엄밀한 의미 에서의 토템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토템은 본래 집단적 상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어느 집단과 어느 동·식물, 자연물과의 결합이 토테미즘이라는 설도 그대로 긍정할 수만은 없다. 서아프리카 의 표인(豹人:leopard men)의 비밀결사에서는 표범을 집단의 상징으로 삼고, 이것과 관계 있는 의식을 행 하지만 이것을 토테미즘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어떤 현상이 토테미즘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에 합 치되어야 한다. 그 조건 또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집단은 그 집단의 토템의 이름으로 불린다. ② 집단 과 토템과의 관계는 신화·전설에 의하여 뒷받침되어 있다. ③ 토템으로 하고 있는 동·식물을 죽이거나 잡아먹는 일은 금기(禁忌)로 하고 있다. ④ 동일 토템 집단 내에서의 결혼은 금지되어 있다. ⑤ 토템에 대 해서 집단적 의식을 행한다. 토테미즘은 현재도 북아메리카·오스트레일리아·멜라네시아·인도 등 넓은 범위에 존재하고 있으며, 전에는 남아메리카·폴리네시아·아프리카·북극 에스키모에도 존재했다고 한다.

 토테미즘은 J.F.맥레넌의 조직적인 연구에 의해 1870년경부터 학계와 일반에게 알려지게 되었는데, E. 뒤르켐의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 정밀한 연구에 의해서 종교기원론·본질론으로서 전 개되었으며, 그 후의 조사연구로 여러 가지 측면이나 형태가 밝혀지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토테미즘을 제 도적인 주술(呪術), 종교적 현상으로 보는 점에서는 여러 학문 사이에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으나 그 실체는 아직 충분히 해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 조개껍데기 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