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 유적지


  - 전남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동구림리(東鳩林里)에 있는 백제 때의 학자 왕인의 탄생지.

   

   지정번호 : 지방기념물 제20호

   소재지 : 전남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동구림리(東鳩林里)

    시대 : 삼국시대

     크기 : 185만 2400㎡

              1987년 9월에 복원, 준공되었다


 

 

 

왕인묘(사당) ․ 내삼문(內三門) ․ 외삼문 ․ 문산재(文山齋) ․ 양사재(養士齋) ․ 전시관 ․ 왕인상 ․ 책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왕인묘(약 82.5㎡)에는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문산재와 양사재는 왕인이 공부하고 후진을 양성하였다는 곳으로, 월출산(月出山) 서쪽 산 중턱에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하였다. 책굴은 왕인이 학문을 수련할 때 쓰던 석굴이다. 전시관에는 탄생도 ․수학도(修學圖) ․도일도(渡日圖) ․학문전수도 등이 걸려 있다.

 백제시대의 유명한 학자인 왕인박사는 일본 천황의 초빙으로 논어, 천자문 등을 가지고 건너가 전해 주었으며, 기술, 공예 등 백제문화를 전수하고 일본을 계몽하여 일본 황실의 스승, 아스카문화의 원조로 추앙받는 인물이 되었다. 유적으로는 박사의 탄생지인 성기동과 박사가 마셨다고 전해지는 샘이 있으며 옆에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왕인박사의 탄생지인 성기동과 박사가 마셨다고 전해오고 있는 성천(聖泉)이 있으며 탄생지 옆에는 유허비(遺墟碑)가 세워져 있다. 또 월출산 중턱에는 박사가 공부를 했다고 전해오는 책굴(冊窟)과 문산재(文山齋), 양사재(養士齋)가 있다. 문산재와 양사재는 박사가 일본으로 떠난 후 그의 고향 후학들이 인재를 길러낸 곳으로 매년 3월 3일에는 왕인박사의 추모제를 거행하였다고 한다. 책굴 앞의 왕인박사 석인상은 박사의 후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성기동 서쪽에 있는 돌정고개는 박사가 일본으로 떠날 때 동료, 문하생들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면서 정든 고향을 뒤돌아보았다 하여 돌정고개가 되었다 한다. 상대포(上臺浦)는 박사가 일본으로 떠날 때 배를 탔던 곳으로 당시의 국제무역항이었다.

 왕인박사는 백제인으로 일본 응신천왕(應神天皇)의 초빙으로 논어 10권,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 해박한 경서(經書)의 지식으로 응신천황의 신임을 받아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의 문화를 깨우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 그의 후손은 대대로 학문에 관한 일을 맡고 일본 조정에 봉사하여 일본문화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게 되었다.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에는 화이길사(和邇吉師), 일본서기에는 왕인이라고 그의 이름이 나타나 있다. 왕인박사는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것은 물론 기술공예의 전수, 일본 가요의 창시 등에 공헌함으로써 일본 황실의 스승이며 정치고문이 되어 백제문화의 전수를 통하여 일본 사람들을 계몽한 일본문화사상의 성인으로 일본 비조문화(飛鳥文化)의 원조가 되었다. 아 유적지는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사당을 비롯한 유적지정화사업을 하였다.


 1.왕인박사

 왕인박사는 백제 제14대 근구수왕(서기 375∼384년) 때에 전라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성기동에서 출생하였다. 8세 때 월출산 주지봉 기슭에 있는 문산재에 입문하여 유학과 경전을 수학하고 문장이 뛰어나 18세에 오경박사에 등용되었다. 백제 17대 아신왕 때에 일본 응신천왕의 초청을 받아 영암의 상대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간 것으로 구전되고 있다. 당시 왕인은 32세였으며, 상대포는 국제 무역항으로 신라의 학자 최치원이 당나라로 유학을 갈때에도 이곳에서 배를 타고 떠났다고 전해오고 있다. 왕인은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도공, 야공, 와공 등 많은 기술자들과 함께 도일하여 일본인들에게 글을 가르쳐 학문과 인륜의 기초를 세웠으며, 일본가요를 창시하고 기술 공예를 전수하여 일본인들이 큰 자랑으로 여기는 아스카(飛鳥)문화와 나라(奈良)문화의 원조가 되어 일본사회의 정치 경제와 문화예술을 꽃피웠다. 왕인박사의 묘지는 일본 오사카(大阪府) 히라카타시에 있으며, 1938년 5월 오사카부 사적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왕인박사의 탄생지인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성기동에는 왕인박사 유적지를 정화하여 위패와 영정을 봉안하고 매년 양력 4월초 왕인문화축제 첫째 날에 왕인박사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

 

2. 왕인박사 유적

  --<지방유형문화재 제20호>

 영암읍에서 구림으로 그리고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왕인박사 유적지인 성기동에 이른다. 이 일대가 왕인 박사가 태어나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활동하였다는 전설과 유물이 남아 있다. 왕인 박사는 백제 고이왕 52년(285)에 일본으로 '논어', '천자문'을 가지고 가서 백제의 선진 문화를 일본에 전파시켜 일본 고대 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한 학자이다.

 왕인의 주거지인 성기동에서 북서쪽으로 1.5km 지점인 죽순봉 아래 바위산에는 왕인박사의 공부방이었다는 책굴이 있다. 또한 책굴 앞에는 석인상이 있다. 이는 그의 제자들이 스승을 그리워하며 '왕인박사상'이다. 그리고 그 밑으로 평평한 산허리에는 왕인과 그의 제자들이 수학한 문산재와 양사재의 집터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왕인 박사의 탄생지인 성기동에는 왕인 박사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3. 일본 문화의 스승 왕인박사

 전라남도 영암군 구림리 성기동은 일본 아스카문화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왕인박사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왕인은 백제시대의 학자이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등 우리나라의 고서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고, 생몰연대도 확실치 않다. 하지만 일본의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그의 흔적이 전한다. 왕인박사는 백제 아신왕 때 일본 '응신천황'의 초청으로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학문을 비롯하여 기술과 공예 등 백제의 선진문화를 전파시켜 일본의 고대문화 형성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다.

  왕인박사의 탄생지인 성기동 근처에는 그가 마셨다는 성스러운 샘물인 '성천'이 있고, 주변계곡에는 여러 가지 역사적인 흔적들이 남아 있다. 성천의 구유바위에서는 해마다 삼월 삼짇날 아낙네들이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는 풍속이 전한다. 그렇게 하면 왕인과 같은 '성인'을 낳는다는 믿음에서이다. 그만큼 그의 존재가 대단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밖에 월출산의 죽순봉 일대에는 왕인박사와 그의 제자들이 공부한 문산재와 양산재 그리고, 책을 보관했다는 동굴 책굴이 있다. 성기동 집터의 마당바위에는 '고 최씨원 금 조씨정' 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예전에는 최씨의 정원이었고 지금은 조씨의 정원이라는 뜻이다.

  그 외에도 왕부자터, 왕인석상, 상대포, 돌정고개 등에 얽힌 설화가 지금까지 전한다. 지금 현재의 왕인기념관 앞은 논과 밭인데 지형적으로 보아 예전에는 취락지였을 가능성이 높아 본격적인 발굴을 통해 옛 모습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한창 진행중이다. 왕인박사와 관련하여 열리는 큰 행사로는 춘계대제와 월출산 천왕제, 군서 벚꽃 축제 등이 있고, 1996년부터는 "왕인문화축제"라는 이름으로 체계적인 행사가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