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우당 (綠雨當)

  

  - 해남윤씨 녹우당(海南尹氏 綠雨壇)


 지정번호 : 사적 제167호      지정일시 : 1968. 12. 29

 소 재 지 :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윤씨종가

 시 대 : 조선시대   크 기 : 14,268㎡

 종 류 : 건물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윤선도(尹善道)의 고택(古宅)이다. 본 가옥은 조선중기에 건립된 호남지방의 대표적인 상류주택으로 그 규모도 크며 구조 및 양식의 구성요소도 풍부하여 한국 상류주택연구에 중요한 대상이 되고 있는 가옥이다. 특히 이 집의 사랑채는 해마다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이 소낙비처럼 우수수 떨어진다고 하여 녹우당으로 불린다. 처음 이 집을 지었을 적에는 틀림없이 안채에 딸려 있었을 절구간을 비롯한 몇몇 집채가 없어지긴 했으나, 디딜방앗간이나 미역 창고, 뒷대문, 연자방앗간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해남 윤씨 집안에는 '윤씨 가전 고화첩'과 '고산 수적 관계 문서'와 '노비문권'들의 국보가 전해지고 있고, 녹우당 뒤쪽에는 덕음산 중턱에는 나이가 삼백살이 넘은 천연기념물 214호인 비자나무가 오백 그루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이 가옥은 고산 윤선도의 4대 조부이자 해남윤씨의 득관조인 어초은 윤효정(尹孝貞)이 백연동(현 연동)에 자리를 잡으면서 지은 것으로 전하여 지고 있으나 당시의 문헌이나 문기가 없어 그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어촌은이 해남에 들어온 시기로 보아 대략 15세기경에 시창(始創)된 건축물로 여겨진다.

  배치는 갑좌경향(甲坐庚向)으로 서향집이며 동사택(東四宅)에 속한다. 집터 뒤에는 덕음산을 두고, 앞에 안산(案山)으로 벼루봉과 그 바른편에 필봉이 자리 잡고 있는 명당이다. 현재의 건물로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헛간, 그리고 안사당, 어초은 사당, 고산사당 등이 있으며, 본 가옥의 좌측면에는 추원당이란 강당도 있다. 안채는 1472년(성종 3)에 지어진 것으로 전하여 지며 사랑채는 효종이 사부(師傳)였던 고산에게 하사하여 수원에 건립했던 것을 고산이 82세 되던 1669년에 현 위치로 이건한 것이라고 하며 "녹우당(綠雨堂)"이라 현액(縣額)하고 있다. 남동향으로 낸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마당이 되는데, 전면에는 사랑채가 자리 잡고 있고 서남쪽 담모퉁이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 사랑채는 침방, 사랑방, 대청이 ㅡ 자로 늘어서고 전면에 차양을 달았다. 사랑채의 침방 옆에는 작은 마루를 두고 그 뒤쪽에 곳간을 두어 안채의 부엌칸과 연속시키고 있다. 사랑채 뒤 동쪽으로 난 중문을 들어서면 안마당이 되고, 안채가 ㄷ자형 평면을 이루면서 자리 잡고 있다. 사랑채의 상량문에 「함풍팔년무오사월병오초팔일계축시무오중수 상량(咸豊八年戊午四月丙午初八日癸丑時戊午重修 上樑)」이란 기록이 있어 철종 9년(1858)에 대대적인 수리를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서쪽으로 부엌, 안방, 작은 대청을 일렬로 늘어놓고, ㄱ자로 꺾이면서 방, 함실아궁이 부엌, 방, 곳간을 두어 중문까지 연결시켰다. 부엌문을 나서면 안방 동북쪽으로 장독대, 닭장, 광들이 있다. 사당은 안채 뒤 동쪽에 쌓은 담장 속에 한채가 있고 또, 담장 밖에 따로 고산사당과 어초은사당을 세웠다. 외측은 사랑마당 연못의 서쪽에, 내측은 외측으로부터 북쪽에 따로 떨어져 있다. 안채 뒤로는 대나무숲이 우거진 후원이 있다. 솟을대문 앞쪽에는 노비집이 부엌과 방으로 ㄱ자형 평면을 이루면서 건축되어 있다. 이 주택의 구조는 민도리집으로, 안채는 화강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방주(方柱)를 세웠다. 가구(架構)는 4량으로 대들보를 두 개의 고주에 걸고 이 대들보위에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도 앞면의 평주와 고주 사이에는 툇보를 걸었다. 도리는 납도리이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ㄷ자형평면의 양측에 합각을 만든 맞배지붕형이다. 특히, 건넌방 사이에 있는 함실아궁이부엌 위에는 한층 지붕을 높인 작은 덧지붕(솟을지붕)이 있다. 사랑채의 구조도 안채와 비슷하여 화강석으로 마무리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웠으나 전면 퇴주에는 두리기둥을 세웠다. 가구는 4량으로 안채의 가구와 같다. 다만, 사랑채 앞에는 차양이 건축된 바 이는 지붕을 만들기 위하여 사랑채 앞에 따로 기둥을 세우고 이 기둥과 사랑채 기둥 사이에 보를 걸고, 그 위에 작은 기둥을 세워 차양구조의 대들보를 얹고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