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농민전쟁의 마지막
장흥

장흥은 전라남도 남쪽 바닷가에 있다. 백제 때 이 지역은 오차현이라 불렸고 신라 경덕왕 때는 오아현이 되어 이웃 보성군에 속했으며, 고려 초에는 정안현으로 이름을 고쳐 북쪽의 영암군에 속했었다. 오늘날과 같이 장흥이라는 이름을 갖고 부로 승격된 것은 고려 인종 때, 인종의 왕비인 공예태후 임씨 고향이 이곳 관산면 방촌리였던 덕분있었다. 이후 고려 원종 6년(1265)에는 회주목으로 승격되었다가 충선왕 2년(1895)에 군이 된 이래 지금에 이른다. 장흥에서 산을 꼽으라면 천관산이요, 강을 꼽으라면 탐진강이다. 탐진강 상류인 가지산 남쪽에는 신라 구산선문 가운데 가지산파의 중심 도량이던 보림사가 있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뺀 절 건물이 모두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졌고 지금은 너른 절터에 대적광전과 대웅전 등이 복원되어 있는데, 국보로 지정된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삼층석탑 석등, 보물로 지정된 보조선사 체징의 부도와 부도비, 동부도와 서부도 등이 예전의 기상과 위엄을 묵묵히 전해온다. 탐진강을 말하면서 갑오농민전쟁의 마지막 싸움이었던 장흥싸움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공주 우금치를 둘러싼 공방이 안타까운 패배로 끝난 뒤 전라북도 원평과 태인 전투를 거치며 주력 농민군은 해산했으나 보은과 이곳 장흥에서는 국지적인 싸움이 벌어졌다. 관산 대장 또는 남도장군으로 불리던 이 지역 출신 지도자 이방언의 지휘 아래 장흥읍 남외리의 석대 들에서 벌어졌던 농민군 최후의 싸움이 패배했던 그때 탐진강에는 농민군의 핏물이 흘렀다고 한다.

 
'선종대가람'
보림사

보림사는 통일신라 구산선문 가운데 가지산문의 종찰이다.
보조선사 체징(普照禪師 體澄, 804∼880)이 헌언왕 4년(860)에 이곳으로 옮겨온 이래, 보림사는 초조 도의선사와 2조 염거화상에 이어 보조선사를 제 3조로 삼는 가지산문의 중심도량이 되었고, 수행자가 구름처럼 모여들어 큰 절이 되었다. 보림사 가지산문의 선맥은 고려 말까지 이어져서,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도 가지산문에 속했다. 이곳에 처음 절을 지은 것은 보조선사보다 100년 전쯤 사람인 원표대덕(元表大德)이었다. 그때의 절 이름은 가지산사였는데, 보조선사가 입적한 후 헌강왕이 보림사라는 절 이름을 내려 주었다.
중국 남종선의 초조(初潮)인 육조대사 혜능이 주석하던 소주(紹州)조계산 보림사의 이름을 이 절에 내려 준 것은 이곳이 우리 나라 선종의 본산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보림사라는 절은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에도 있는데 우리 나라 보림사와 함께 삼보림이라 일컬어졌다고 한다. 화엄종 사찰로 출발한 가지산사는 보조선사가 와서 주석한 이래 선종 사찰 보림사로 바뀐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보림사 사지는 대부분 조선 후기인 숙종 영조 정조 때에 간행된 것들이지만 미국 하버드 대학 연경도서관에서 발견된『신라국 무주 가지산 보림사 사적기』는 조선 초기인 세조 3년(1457)에서 10년(1464)사이에 발간된 것으로 보림사와 관련된 가장 오래 된 기록이다. 여기에는 보림사의 창건설화가 이렇게 적혀 있다. 신라의 명승 원표대덕이 인도에 있는 보림사를 거쳐 중국 보림사에서 참선하던 중에 한반도에 서기가 어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신라로 돌아와 전국의 산세를 두루 살피며 절 지을 곳을 찾았다. 어느 날 유치면 가지산에서 참선하고 있는데 선아(仙娥, 선녀)가 나타나더니 자기가 살고 있는 못에 용 아홉 마리가 판을 치고 있으므로 살기가 힘들다고 호소해 왔다. 그래서 원표대덕이 부적을 못에 던졌더니 다른 용은 다 나가는데 유독 백룡만이 끈질기게 버텼다. 원표대덕이 더욱 열심히 주문을 외었더니 마침내 백룡도 못에서 나와 남쪽으로 가다가 꼬리를 쳐서 산기슭을 잘라 놓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때 용 꼬리에 맞아 파인자리가 용소(용문소)가 되었으며 원래의 못 자리를 메워 절을 지었다.
 보림사는 통일신라 때 화순 쌍봉사, 곡성 태안사와 더불어 손꼽히는 큰 절이었다. 그러나 그후 여러 차례 중창과 중수를 거치며 어느 절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웅장한 규모를 지녔던 보림사가 지금처럼 한산해진 것은 한국전쟁 이후부터이다.
 천년 대가람이 재로 변한 후, 한 동안 보림사는 폐사될 지경에 처하기도 했다. 그후 조금씩 복구되어 지금은 건물로는 일주문과 사천왕문, 1968년에 다시 지어진 대적광전 그리고 근래에 복원된 대웅전, 새로 지은 종루와 요사채 등이 절터를 채우고 있으며 담장도 말끔히 둘렀다. 보림사를 살피는 길,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일주문의 인상이 만만치 않다. 포작이 여러 겹 중첩되어 화려하고 장중한 일주문 정면에는 '가지산 보림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그 안쪽에 걸린 '선종대가람'이라 적힌 현판은 보림사의 역사적 위상을 한마디로 대변해 준다.
 이 절 천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이며,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종34년(1539)에 처음 조성된 뒤로 현종9년(1668)과 정조1년(1777)에 중수되었는데 좌우 칸에 대단히 큰 사천왕상 4구와 금강역사상2구가 모셔져 있고, 가운데 칸은 출입구로 쓰인다.
 사천왕상은 중종34년(1539)에 처음 조성되었고 정조4년(1780)에 중수된 것으로, 우리 나라 목각 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이다. 사천왕상은 보통 마귀를 발로 짓밟고 있는 형상으로 조성되지만, 여기서는 눈이 동그란 마귀가 동방지국천왕의 발을 들어 받들고 있다. 그려 넣은 것이 아니고 갈색 유리로 만들어 붙인 사천왕상의 눈동자가 특이하다.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면 오른편에 최근 지어진 종루가 있고 정면에 동서 쌍탑과 석등을 앞세운 대적광전이 있다. 쌍탑과 석등, 대적광전 안에 앉아 계신 철조비로자나불상이 모두 신라 때의 것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일주문에서 사천왕문을 지나 대적광전으로 이어지는 남북 중심축과 직각을 이룬 동쪽에는 대웅전이 있다.
 보림사의 주공간을 대적광전 앞마당이라 할 때 대웅전 쪽은 후대의 필요에 따라 증축되었을 것이라 한다. 한국전쟁 때 불타 버린 원래의 대웅전은 조선초기에 지어진 2층 법당으로서 국보 제204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지금의 대웅전은 옛 주춧돌 위에 예전의 모습을 복원한 것인데 정면 5층 측면 4칸의 팔작지붕집이며 겉보기에는 2층이지만 내부는 모두 틔어 있고 중앙에 석가여래상과 그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다.
▲삼층석탑과 석등
대적광전 앞에 석탑 두 기가 동서로 마주서 있고 그 사이에 석등이 한 기, 그리고 석탑 앞에는 배례석이 하나씩 놓여 있다. 이 두 탑과 석등은 상륜부를 포함한 부재를 거의 다 갖추고 있는데, 현존하는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나 석등 가운데 이처럼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매우 드물다. 석탑과 석등이 모두 국보 제44호로 지정되어 있다.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대적광전 안에 앉아 있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선문 종찰 보림사의 주불이다. 보조선사가 주석하던 당시부터 있던 그 불사이며, 높이가 2.7m나 되는데 한국전쟁 때 이전의 대적광전은 불타 없어졌으나 이 불상은 무사했다. 좌대와 광배는 없어지고 불신만이 남아 있지만 신라 하대에 많이 조성된 철조불상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히고, 명문을 통해서 조성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어서 9세기이래 지방의 선종 사찰에서 조성된 비로자나불상들의 계보를 확인하는데 기준이 된다.

▲보조선사 부도
가지산문을 개창한 보조선사 체징의 부도이다. 보조선사가 입적한 후, 옆에 있는 부도비와 함께 헌강왕 10년(884)에 세워졌다. 높이 4.1m의 팔각원당형 부도이며 보물 제157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조선사 부도비
보조선사가 입적한 지 4년 후인 헌강왕 10년(884)에 세워진 부도비이다. 전체 높이는 3.46m이고 돌거북과 비신, 비석머리(이수)가 다 온전히 남아 있는데 9세기 말 석비 양식의 전형을 보이는 뛰어난 유물로서 보물 제158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부도

보림사 밑에 있는 마을 뒤 숲에 부도 6기가 있는데 그 중 맨 위쪽에 있는 것이 보림사 동부도로 불리며 보물 제155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는 3.6m이며 팔각원당형 양식의 기본을 따랐고 상륜부를 포함한 모든 부분이 온전하게 남은 고려 시대 부도이다.
 

▲서부도
 
절 아래로 난 길을 따 서북쪽으로 들어가면 유치초등학교 보림분교가 있고 거기서 또 조금 더 들어가면 민가 몇 채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이 있다. 보림사 서부도는 이 마을의 한 집을 사이에 두고 앞뒤로 있는 부도 두 기를 말하며, 합쳐서 보물 제156호호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