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뜨는 곳
영암

"남쪽 고을의 한 그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 뜨지 않고 산간에 오르더라" 김시습은 이렇게 월출산을 노래했다. 월출산의 바위 봉우리들 사이로 떠오르는 달, 날카로운 능선 위에 둥근 달, 그 사무치는 아름다움을 한번 본 사람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곳이 월출산이 있는 곳 영암이다.
 삼국시대 이전에 마한의 땅이던 영암은 백제 때 월나(月奈)군이라 불렸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영암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고려 성종 14년(995)에 낭주로 개칭되었다가 고려 현종 9년(1018)부터 다시 영암으로 불렸다. 서호면과 금정면을 비롯한 이 지역 전체에는 830여 기에 이르는 고인돌들이 퍼져 있고 서호면 장천리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마을터가 발견되었다.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치는 동안 영암은 줄곧 중국과 일본을 잇는 국제 항구 구실을 했다. 백제 사람으로서 일본으로 건너가 활약한 왕인 박사도 영암 출신으로 역시 이곳의 상대포에서 일본으로 떠났다고 전해진다.
 영암은 전라남도 서남부에 있다. 나주 땅을 가로질러 온 영산강은 영암 땅의 서쪽 경계를 이루며 흘러 서해로 몸을 푼다. 강 주변인 영암 서쪽에는 나주 땅을 이어서 들판이 펼쳐졌고 동쪽은 산지로서 장흥군과 닿아있다. 영산강 하구 건너편에는 무안군과 목포시가 있고 남서쪽을 깊이 파고 들어온 해남만 너머에는 해남군이 있다. 동남쪽에 자리잡은 월출산과 그 남쪽으로는 강진 땅이다.
 드넓은 나주벌과 지평선에 겹쳐진 나긋한 산줄기에서 '남도'를 보았다면 영암 땅에 들어서자 눈앞에 들어오는 월출산은 또 다른 남도를 경험하게 된다. 월출산은 사람이 다가갈수록 더 높이 높이 날아올라 영암 땅 어디에서 보든 풍경의 주인이 되고, 저 남쪽 바다로 갈라져 들어간 강진과 해남 땅이 빚는 화창함과 더불어 남도를 인상 짓는 또 하나의 선명한 그림을 이룬다. 월출산 북서쪽 자락에는 신라 말 도선 스님의 탄생설화가 간직한 구림리가 있고 그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도갑사가 있다.

월출산, 도선 그리고
도갑사

너무 어리지도 않고 아직은 거목도 아닌 벚나무들 사이로 이리저리 휘어드는 길은 왼쪽으로 저수지와 서너 기의 고인돌을 스쳐 보내며 도갑사 앞까지 이어진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도갑사 자리에는 먼저 문수사라는 절이 있었고, 어린 시절을 문수사에서 보낸 도선 국사가 나중에 그 터에 절을 다시 지은 후 도갑사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고려 때 크게 번창하여 전성기를 누렸다고 하며, 조선 세조 3년(1457) 수미(守眉)대사와 신미(信眉)대사가 중건했다. 성종 4년(1473)에 중수한 적이 있고, 임진왜란 때 불탔으며 영조 52년(1776) 다시 중수했다. 근래에도 한국전쟁과 실화 등으로 여러 차례 화재를 입었다. 현재의 대웅전은 1980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지금은 해남 대둔사의 말사이며 경내에 해탈문을 비롯하여 대웅전, 명부전, 미륵전과 요사채 등 건물이 있고, 수미왕사비와 도선수미비, 석조여래좌상, 오층석탑과 석조 등이 있다.
 

▲도갑사 해탈문

새로 지은 일주문을 지나 숲 사이 너른 길을 따라 들어가면 왼쪽에 길에서 직각으로 틀고 앉은 해탈문이 있다. 도갑사 안에서 가장 오래 된 건물인데 신라 시대의 승려인 통고(通高)가 처음 지었다고 전해진다. 기본적으로 주심포 집이지만 다포 집의 양식이 가미된 특이한 건물로 국보 제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해탈문은 원래 사천왕문이었겠지만 지금은 좌우 앞쪽 칸에 금강역사사가 모셔져 있다. 기단과 계단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며, 기단이 두 부분으로 되어 있어서 후대에 넓혀진 것으로 추정된다. 계단 난간머리에 새겨진 태극무늬가 눈길을 끄는데 이는 만다라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석가여래좌상
절 마당을 벗어나 대웅전 왼편 뒤로 들어가면 월출산으로 올라가는 산길이다. 산길을 조금 따르는 듯하다가 곧 계곡 물을 건너 맞은 편 비탈길로 오르면 미륵전이 있다. 건물 이름은 미륵전이지만 안에는 돌로 된 석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불상의 높이는 2.2m이고 광배까지 합하면 3m가 되며 대좌와 불신과 광배가 모두 한 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불상의 얼굴은 둥그스름한데 눈두덩은 두툼하고 코는 넓적하며 입이 작다. 이마가 좁은 편이고 육계는 큼지막하다. 왼편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은 가슴께에 두세 줄의 주름을 만들고는 무릎을 감쌌고, 다리는 결가부좌하고 손은 항마촉지인을 짓고 있다. 얼굴에서나 몸에서나 별다른 표정이라든가 생동감은 느낄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의젓함을 지닌 불상이다. 조각수법은 둔한 편이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졌으며 보물 제89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