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
광주

전라도의 중심인 광주는 영산강의 지류인 극락강이 시의 북서부를 관류하여 서남으로 흐르며 동쪽에는 무등산, 북쪽에는 병풍산, 삼각산, 남쪽에는 금당산, 서쪽에는 어등산, 용전산이 둘러싸고 있다. 따라서 광주는 터진 일종의 분지를 이루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대촌천, 오례천, 지석천,등 영산강의 지류들이 있어 주변에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다. 넓은 분지와 풍부한 물 그리고 많은 일조량, 이러한 이유에 광주를 빛고을이라 하지 않았을까?
 또한 이와 같은 지리적 여건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극락강이 흐르는 서남쪽 일대의 평야지대가 일찍부터 인간의 생활장소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또 현존하는 선사시대의 유물유적이 영산강 지류인 대촌천, 지석천, 인접지역에 산재하여 있는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지역에서의 사회조직체들은 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점차 통합되어 조그마한 국가단위로 이행되어 갔으리라 생각되며, 마한시대에 광주지역에 대부족이 집단으로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백제시대 때의 광주지역은 무진군에 속하고, 현재 광산구 본량·임곡 일대에 수천현이 있었고, 현 광산구 평동, 삼도, 나주 노안면 일대에 북룡현이 있었다. 무진군은 뒤에 무진주로 승격되었으며 일명 노지라고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인 677년에 무진도독이라하여 도독으로 천훈이 파견되었으며, 757년에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주도독부라 하고 도독부 직할영현은 현웅현인 현 남평, 기양현인 현 창평, 용산현인 현 평동, 본량, 삼도등 3개현이었으며, 당시 무주에 속한 군현은 1주 15군 43현으로 전라남도 전역에 해당된다.
 892년에 견훤이 무주를 기반으로 후백제를 건국하고, 8년후인 900년에 무주에서 전주로 도읍을 옮김에 따라 후백제의 지역에 속하였다.
 936년에 후백제가 망하고, 왕건이 고려를 세운 후 940년에 무주를 광주로 고쳤다.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현종 연간에 해양현이 되었다가 1259년에 위사공신인 김인준의 외향이라 하여 주로 승격, 익주라 하였으며 뒤에 다시 광주목으로 되었으나 연대는 알 수 없다.
 1310년에 광주목에서 화평부로 강등되었다가 1373년에 다시 광주목으로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강등과 승격이라는 여러 번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광주목이 유지되었다. 1895년 전국이 23부제로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나주부 관할 광주군이 되어 41개면을 관할하였고 1896년 13도제가 실시됨에 따라 전라남도 관찰부를 광주에 두게 되었다.
 1910년 일제식민지 시대가 시작되면서 행정구영 통폐합에 따라 광주면이 광주읍으로 광주읍은 다시 부로 승격되었다. 8·15광복이후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1949년 광주시라 개칭되었으며 1986년 11월 1일 직할시로 승격되었다.
 1991년 지방자치제 실시로 주민자치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1995년에 광주직할시가 광주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남도의 역사
광주민속박물관
소재지: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1004번지

광주 비엔날레 전시관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상들의 의식주 생활, 생업, 풍습을 알 수 있는 전시물이 있는 전시관이 있다.

▲수장점수 총 9,069점
 -실물자료  7,872점
 -복제자료  1,153점
 -기타자료  44점
                -전시점수  3,069점
(1997. 7. 30일 자료)
 
▲박물관 야외전시

박물관에서는 22,000평의 야외부지를 전통문화의 향기가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가꾸기 위해 설립 당시부터 물레방앗간 등 야외전시시설을 마련하였다. 이후 연자방앗간, 모정 등을 지속적으로 설치하였고 1993년부터는 석물전시장을 꾸며 야외 전시기능을 더욱 강화하였다. 석물 전시장에는 맷돌, 확독, 연자방아 등 생활도구와 벅수, 입석, 장승, 조탑 등 신앙의 대상물을 비롯하여 동자석, 샘돌 등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또 박물관 오른편 놀이 동산에는 그네, 널뛰기 등 민속놀이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