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석루


 경남 진주시 본성동의 남강 강에 예부터 「영남제일」이라고 일컬어지는 촉석루가 있고, 이 누각 밑에 의암(義岩)이라 새겨진 3,7m×3.3m 크기의 바위가 있다.
 
촉석루는 진주를 상징하는 문화재이자 역사의 증거이며, 진주를 노래한 시의 전당으로서, 본래는 옛 진양성의 남장대 였었다.  
 이 누대는 고려 말기에 건립되어 8차례의 중수를 거쳤고, 6·25사변으로 불타기 전에는 국보로 지정되었던 문화재였고, 촉석루라는 이름은 시인 묵객들이 「강중유석촉촉(江中有石矗矗)」이라 한 것과 같이 강에 바위가 솟아 있는 모양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혹은 촉석산(矗石山)에서 돌을 캐다가 누각을 지었으므로 촉석루라 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을 함락시킨 왜군은 이곳에서 전승의 축하연을 벌였다. 당시 진주성에서 전사한 경상우병사 최경회(崔慶會) 장군의 후실이었던 주논개(朱論介)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감추고 기생으로 가장하여 왜군의 연회석에 나가 적장 모곡촌육조(毛谷村六助)를 강가의 바위까지 유인해낸 뒤, 왜장을 껴안고 강물에 뛰어들어 순절하였다. 이때 논개는 열 손가락마다 반지를 끼어서 왜장을 껴안을 때 손이 풀리지 않도록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후부터 이 바위를 「의로운 바위」라 하여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근래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에서도 논개의 의로운 충절을 기려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