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14년(553) 의신조사가 창건한 이래 혜공왕 12년(776) 진표율사가 중수하고 조선조에 들어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인조2년(1624)에 벽암대사가 재건 현재에 이르렀다. 경내에는 쌍사자 석등(국보 제5호). 팔상전(국보 제 55호),석련지(국보 제 64호, 사천왕석등 보물 제15호),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과 같은 지정문화재가 도처에 산재하여 있어 법주사 일원은 속리산을 포함하여 사적 및 명승 제 4호로 지정되었다.

법주사 팔상전
  신라 진흥왕14년(553)에 초창되어, 조선 인조 4년(1626)에 벽암선사가 재건하였고, 최근(1968)에 완전해체 복원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팔상전은 법주사의 오층목조탑파 건축으로, 1984년 4월 30일 쌍봉사의 대웅전으로 쓰이고 있던 삼층목조탑이 소실됨으로써 한국 목조탑의 유일한 실례가 되고 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1층과 2층은 정면 5칸, 3·4층은 정면과 측면 3칸,5층은 정면과 측면 모두 2칸의 정방형으로 되어있고 지붕은 사모지붕으로 상부에 상륜부가 온전하게 갖추어 있다. 공포의 양식은 1층부터 4층까지는 기둥위에만 공포를 짠 주심포식이나, 5층은 주간에도 공포를 짜 올린 다포식으로 되어있음이 주목된다. 내부 중앙에는 찰주의심초석이 있어 이 위에 심주(찰주)를 세웠고 네 귀에 우고주를 세웠다. 1층의 면주와 우고주를 연결한 퇴보 위에 는 2층의 변주를 세웠다. 이러한 기구법은 목조탑의 전형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체 높이는 상륜까지 약65m로 현존하는 한국의 탑파 중 가장 높은 것이다.

 법주사 대웅보전
 한국 3대 불전가운데 하나인 이 중층 전각은 신라 진흥왕14년(553)에 창건되어, 혜공왕12년(776)진표율사가 중창하였고, 다시 조선 인조2년(1624) 벽암선사가 삼창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전각의 양식은 내·외2출목으로 공포를 짜, 기둥 위는 물론 기둥사이의 평방 위에도 공포를 놓은 다포식으로 되어있다. 살미천차의끝은 직선에 가까운 앙서로 되어 강직한 맛을 주고 있으나, 끝에 가서는 가늘어져, 조선 중기 이후의 쇠서의 맛을 주고 있다. 내부에는 고주를 세우고 이 고주와 1층의 평주사이에 퇴보를 놓고, 이 퇴보 위에 2층의 평주(변주)를 놓아 금산사의 2층전각인 미륵전과 같은 수법으로 되어있다. 전각안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이는 법신·보신·화신의 삼신불이다. 본래 이 삼신불의 사상은 대승불교가 흥기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삼신불이란 석가모니가 과거의 오랜 수행에 의하여 과보로 나타난 몸-보신과 진실로 영원한 것을 밝힌 석가모니의 진여의 몸 - 법신, 그리고 중생제도를 위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몸 - 화신을 가리킨다.

법주사 쌍사자석등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그 조성연대는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다. 등은 불타의 가피로 명랑한 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의 재앙 (불교에서의 8난)을 예방하기 위하여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석조유물에 사자를 이용한 것은 삼국시대 이래 많은 예를 볼 수 있으나 현존하는 석탑·석등에 설치된 사자중 법주사 석등의 사자조각은 가장 뛰어난 수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석등의 간주석을 석사자로 대치한 이 석등은 전형 양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8각의 지대석 위의 하대연화석과 쌍사자, 연화상대석을 모두 하나의 돌로 조각한 것이다. 다른 석등에 비해 화사석과 옥개석이 큰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