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쇄문화

 

 

 

 

1. 신라시대의 인쇄술
⑴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일찍이 당나라에서 신라로 전래되어 이미 성덕왕 5년(706)에 경주 황복사 석탑에 봉안된 바 있다. 현재 전하는 다라니경은 1966년 불국사 석가탑 2층에서 발견된 것으로 발견당시 중간 부분까지 많이 부식 되어 있었다. 폭 6.6∼6.7cm, 전체길이 620cm 의 목판으로 찍은 두루마리인 이불경은 김대성이 경덕왕 10년(751)에 불국사 석가탑을 세우고 이때에 탑 속에 넣은 것으로 인쇄시기는 750년 경이다. 이 다라니경이 발견되기 전에는 서기 700년경에 인쇄한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이 세계최고로 알려졌으나 이제는 우리나라의 「무구정광대 다라니경」이 일본보다 양 20년 앞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인쇄물로 밝혀 졌으며 중국 최고의 목판인쇄물은 서기 868년에 인쇄한 「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2. 고려시대의 인쇄술
⑴ 세계최초로 금속활자 발명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은 고려(1372) 백운화상이 지은 책으로 「직지심체」라고도 하며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찍은 책이라고 1972년 유네스코에서 공인을 받게 되었다. 이책은 조선말 서울에 근무했던 프랑스 대리공사 골랭드 뿔랑시가 귀국할 때 가지고가 현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972년 '세계도서의 해' 기념행사인 책의 역사 전시회에 출품되어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책 마지막장에는 인쇄시기(1377), 인쇄장소(청주목 흥덕사), 인쇄방법(금속활자인쇄)이 기록되어있다. 따라서 이 책은 서양에서 독일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찍었다는 「세계의 심판」보다도 무려 70여년이나 빠른 것으로 우리 선조들이 인류문화 사상 제일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한 우수한 민족이라는 사실이 세계적으로 인정되었다.

⑵ 고려시대의 목판인쇄
  고려시대에는 사찰에서는 많은 불경을 간행하였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1007년 총지사에서 찍어낸 「보협인다라니경」으로 불탑에 봉안하였던 두루마리이다. 그후 현종 2년(1022)거란이 침입하자 불력으로 막고자 송악 내흥왕사에서 1087년 까지 대장경판을 새겨 대구 부인사에 보관하였는데 이 경판이 「초조대장경」이며 의천이 교정도감을 설치하고 새긴 대장경이 「속장경」이다. 두 경판은 1232년 몽고란 때 불타고 없어졌지만 불타기 전에 찍어낸 책은 일부 전한다. 강화도 천도이후에는 강화도에 대장도감, 남해도에 분사도감을 설치하고 1236년부터 16년 동안 다시 새긴 대장경이 「재조대장경」이며 현존하는 해인사 팔만대장경이다. 오랜기간 원형이 잘 보존되고 그 많은 경판에 오자가 없고 글씨와 새김이 명필명공의 한사람 솜씨같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큰 자랑으로 여기는 세계적인 문화재이다.

 


3. 조선시대의 인쇄술
⑴ 조선시대의 목판인쇄
  중앙관서에서는 서적원등에서 유교, 경전등의 책을 찍어 냈고, 지방 감영에서는 병에 의하여 책판을 새겨 중앙으로 보냈고 고려본, 중국본, 중앙관서에서 간행한 책을 복각본으로 발간하기도 하였다. 세조때는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한문불경과 한글로 번역한 불경을 발간하였는데 이 책이 간경도감본이다. 국왕 및 왕실판은 국시에 위배됨을 알면서도 공덕을 쌓고 수복기원과 죽은 이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간행한 불서로 정성껏 새겨 제일 우아하고 정교하다. 서원판은 크게 활기를 띠지 못하였고 사가판은 고려때와는 달리 불서가 거의 없고 문집족보 등을 찍어냈는데 자비로 값싸게 새겼기 때문에 인쇄가 거칠다. 방각본은 언제부터 찍어 팔았는지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16세기 임진란 이전에 서울에서 시작되어 전쟁 뒤 각 지방으로 확산되어 책이 간행되었다고 추정된다.

⑵ 조선시대의 금속활자인쇄
  고려시대의 금속활자는 조선시대에 계승되어 개국 초기에는 발전을 보지 못하고 왕권이 안정된 태종 3년(1430)에 주자소를 설치하고 금속활자를 만들기 시작하여 이후 500여년동안 다양한 활자를 만들게 되었다. 동활자는 1403년에 만든 계미자를 시작으로 하여 조선말까지 동활자가 제일 많이 만들어 졌다. 연활자는 1436년 만든 것으로 1692년 원종자가 처음이고 조선말까지 만들어졌는데 임진란 후에는 개인에 의하여 철활자가 많이 만들어졌다.

⑶ 조선시대의 목활자인쇄
  조선 태조는 고려 때의 서적원을 그대로 운영하여 1395년에 목활자로 「대명율직해」100부를 찍었다는데 이것이 최초의 목활자로 복각본만 전한다. 1397년에는 「개국원종공신녹권」을 찍어 냈다. 세종 때에는 한글과 한문 큰자를 목활자로 만들어 금속활자와 병행사용 하였다. 그후 목활자는 관서가 아닌 서원, 사가에서 개인용으로 만들어 소유하고 있다가 필요에 따라 주로 시문집 등을 찍어냈다.
  임진란 이후에는 교서관등에서 목활자를 만들어 없어진 금속활자를 보충하였고 응급조치로서 훈련도감에서 목활자로 서책복구에 협력하였는데 훈련도감자는 임진란 전에 찍어낸 여러 가지의 글씨체로 활자를 만들어 글자 모양이 다양하다. 조선말기에는 학부 편집국에서 목활자로 교과서를 찍어냈다.

⑷ 조선시대의 한글활자
  세종대왕께서는 훈민정음을 창제하시고 세종 28년(1466)에 국민들이 배워서 사용하라고 명령 하였다. 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한문을 한글로 풀이한 책으로 언해본이라 한다. 한글로 처음 지은 책은「용비어천가」이고, 언해본으로는 「석보상절」이 처음이며 한글활자를 사용하여 처음으로 인쇄한 책도「석보상절」과 「월인청강지곡」이 있다. 세종때 처음으로 만든 한글활자를 시작으로 조선말기까지 20여종의 한글활자를 만들었는데 크기가 일정치 않으며 한문과 병용하여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인서체였는데 1795년에 만든 「초주정리자병용한글자」부터는 완전히 필서체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