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사
 
 천등산(天燈山)남쪽 기슭에 자리한 이 사찰은 신라 문무왕12년(672)의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날린 종이봉이 이곳에 내려앉아 여기에 절을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극락전에서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에 의하면 의상대사의제자인 능인대덕(能仁大德)이 창건한 후 조선시대까지 여러 차례 중수하여 왔다고 한다. 사찰 내에는 1972년 해체 보수시 발견된 상량문에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우리 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로 확인 된 극락전(국보 제15호)과 조선시대에 건립된 대웅전 (보물 제 55호)화엄강당(보물 제 448호), 고금당(보물 제 449호)등이 있는데 고려시대의 건물과 조선시대의 목조건물들이 나란히 있어 우리 나라 건축연구에 큰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밖에도 극락전 앞에는 고려시대에 건립한 삼층석탑이 있고 덕휘루, 요사 등의 건물이 있으며 영선암, 지조암등의 부속암자가 있다. 
봉정사 대웅전
 봉정사의 정전으로 조선 초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주칸의 창문이나 벽체등 일부가 초창 후 변경되었으나 골격은 전형적인 다포양식을 잘 갖추고 있다. 특히 공포의 힘있고 가식 없는 수법은 초기의 다포양식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건물 내부에서 가구 형식이나 세부기법에서도 외부와 같이 단조로우면서 견실한 공법이 초기의 다포양식 특징들을 보이고 잇다. 단청은 창건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고려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 건물과 함께 중요한 회화자료로 주목되고 있다.
봉정사 극락전
 국보 제 15호 이 건물은 현존하는 우리 나라 목조건축 중 최고의 건물로 유명하다. 정면 3칸 맞배지붕 주심포 건물로 고려시대의 건물이지만, 전대인 통일신라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어 더욱 주목되고 있다. 1972년에 실시한 보수공사 때에 밝혀진 내용에 의하면 건립 후 첫 수리는 고려 공민왕 12년(1363)이며 그 뒤 조선 인조3년(1625)2차에 걸친 수리가 있었다. 원래는 대장전이라 불렀었으나 뒤에 극락전이라 개칭한 것 같다. 기둥의 배흘림, 동포의 단조로운 짜임새, 내부가구의 고격(古格)함이 이 건물의 특징이며, 부재 하나 하나가 모두 국보적 기법을 갖추고 있어 한층 더 진보적 존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