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학년도 춘계 답사여행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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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고인쇄 박물관

소재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866
인류 문화사상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우리 선조들의 슬기로운 위업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금속활자를 발명한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세계 만방에 자랑하며, 인쇄술의 발달사를 익히는 과학교육장으로 세워진 청주고인쇄박물관은 1992년 3월 17일 개관되 었다. 박물관 지붕은 접시를 엎어놓은 모양이고 기념비는 쇠북이 땅에서 솟아 나오는 모습이며, 정문은 큰돌로 치미처럼 만들어 졌다. 전시실은 인쇄문화실과 흥덕사 유물실로 크게 나뉘어지며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의 인쇄발달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신 라, 고려, 조선시대의 옛 책과 그림, 사진등과 흥덕사지 발굴할 때 나온 고려시대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으며 대형 멀티비젼과 VT R실이 있다.

☞충북대학교 박물관

충북대 박물관은 1970년 박물관이 부설 개관되었다.
선인들의 유물을 수집 보전하여 후손에게 계승시켜며, 그들의 생활형태와 정신을 연구하여 내일의 바탕으로 삼자는 것이 박물관 설치가 던져주는 교육적인 의의라고 하겠다.
종합대학을 만들려면 필수적인 구비요건이 되는 박물관을 조건상 학장은 박물관위원회를 만들고 그 위원들을 중심으로 유물모 집에 많은 노력이 기울였다. 다행히 유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던 뜻있는 교수들과 지방인사들이 많이 기증을 하여 주었기에 상당 히 값진 유물을 단시일에 모집할 수 있었다.
수집, 진열된 유품은 시대적으로 살피면 삼국시대의 것으로부터 이조 초기에 이르는 각 시대의 것들이다.
특히 농업박물관을 두어 오랜 옛날부터 농촌에서 농민들이 쓰던 농업기구가 200여점 진열되어 학문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음 은 기꺼운 일이다.
종류별로 보면 석탑 1점, 석기류 14점, 철기류 20점, 토기류 43점, 자기류 63점, 회페류 63점, 목재류 9점, 탁본물, 12점, 서 첩 2점, 8도분도 8점, 사진류 31점, 기타 12점, 약 280점이 있다.


☞중원고구려비

국보 : 제 205호
소재지 : 충청북도 중원군 가금면 용전리

오랜 세월의 풍화로 비문이 심하게 마멸되어 분명하게 확인할 수는 없으나 장수왕때에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 하고 개척한 후 세운 기념비로서 5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면비로서 전면 23자씩 10행으로 된 230자의 명문이며 향 좌측면에도 155자가 세겨졌는데 뒷면과 우측면은 9행과 6행의 명문 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판독된 비문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신라, 백제 삼국의 관계를 밝혀 주는 귀중한 금석문이다. 처음 입비 당시부터 대석과 개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의 모양이 만주 즙안현에 있는 광계토대왕비의 축소된 형상이다.
이 석비는 1979년 4월 8일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의 의하여 발견 조사된 국내 유일의 고구려 비인데 1981년에 이 비의 보호각 을 만들어 세웠다.

☞중원 미륵사지


소재지 : 충청북도 중원군 상모면 미륵리
이곳 미륵리의 미륵사지로 추정되는 곳에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석탑과 석불입상이 남아 전한다. 석불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석굴의 방형의 주실은 9.8m x 10.75m의 넓이이며, 높이 6m의 석축을 큰 무사석으로 짜 올렸고, 그 가운대 감을 만들어 봉안 하도록 되었다.
이 석축 위에 목조 건물이 있었던 듯하나 소실되었다.
이곳에서 평와에 미륵당초라고 새긴 명문와가 출토되었으며, 건립연대는 대략 통일신라말기부터 고려 초기로 추정되고 있다. 지형적인 원인이라 생각되지만 우리나라 유일의 북향사원지이다. 부근에는 남북교통의 요충인 게립령, 조령이 있어 이와 관련된 유적인 듯하다.

☞문경관문

사적 제 147호
소재지 : 경상북도 문경군 문경읍 상초리

문경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제 1,2,3관문 및 부속성벽이다.
문경에서 주흘산을 넘어 중원의 연풍으로 빠져나가는 산골짜기 천험의 요지에 3개의 관문이 설치되어 있고 관문을 따라 성벽이 축조되었다. 1708년(숙종 34)에 세운 제 1관문에는 주흘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정면 3칸, 측면에 협문 2개가 있는 누각은 팔작지붕으로, 높이 3.6m, 너비 3.4m, 길이 5.4m의 홍예문(虹霓門)과 좌우의 성벽이 옛 모습대로 남아 있으며, 성벽에는 총안이 있는 성가퀴(성 위에 낮게 쌓은 담)가 설비되었고, 오른쪽에 커다란 수구문이 설치되었다. 제1관문에서 3km 떨어진 곳에 제2관문 인 조곡관(鳥谷關)과 중성이 있다. 중성은 1594년(선조27)에 축성된 것이며, 제2관문은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좌우 현문 이 3개 있으며 팔작지붕이다. 또 숙종때 북적을 막기위하여 소백산맥을 넘는 험로 중의 하나인 조령에 산성을 쌓았는데 이것이 지금의 제3관문, 즉 조령관이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좌우 현문 2개가 있으며, 팔작지붕이다. 제1관문이외에 제2,3관 문 허물어져 축대만 남아있던 것을 1975년에 제2관문을, 1977년에 제3관문을 각각 보건하였다. 임진왜란때 신립은 적의 진로를 차단함에 있어 험준한 조령을 막지않고 충주 탄금대에서 왜병을 맞아 싸우다가 패하고 말았다. 그 뒤 조정에서는 이 실책을 크게 후회하여 조령에 관문을 설치할 것을 꾸준히 논의해 오다가 숙종때 비로서 3개의 관문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3관문의 성 안에 는 군사들의 진지(鎭址), 군창지 등이 지금도 남아있으며, 경상감사가 교대할 때 교인(交印)하였다는 교구정지(交龜亭址)도 남아 있다.

☞단양적성비

국보 : 제 198호
소재지 :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하방리

이 석비는 삼국시대에 신라가 죽령을 넘어 단양 일대의 고구려 영토를 차지하여 국경을 넓히고 이 곳의 백성들을 선무한 표적 으로 세운 비이다.
당시 진흥왕이 명하여 신라척경을 돕고 충성을 바친 적성인 야이차의 공훈을 표창함과 동시에 장차 이와 같이 신라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포상을 내리겠다는 국가정책의 포고 내용이 담겨 있다. 국왕의 교사를 받은 고관 10명의 이름이 나오 고 있는데 이사부, 무력 등 진흥왕 때 혁혁한 공훈을 세운 인물이 주목된다. 이러한 인물과 그들의 관위 등 당시의 관게로 보아 이 석비의 건립연대는 신라 진흥왕 6∼11년(545∼550)경으로 추정된다. 1978년 1우러 6일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에 의하여 발견, 조사되었다.


☞소수서원

사적 제55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1

이 서원은 풍기 군수였던 신재 주세붕 선생이 고려말의 유현인 안향 선생의 연고지에다 조선 중종 37년(1542) 사묘를 세우고 안 향 선생을 주향하였으며 다음 해에는 안향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학사를 이건하여 백운동서원을 창건한데서 비롯되었다.
중종 39년(1544)에는 안축 선생과 안보 선생을 배향하였고 인조 11년(1633)에는 주세봉 선생을 추향하였다. 그 후 안향 선생의 11대손이며 경상감사였던 안현에 의하여 보강되었고 명종 5년(1550) 퇴계 이황 선생이 풍기 군수로 재임시 소수서원이란 사액을 받게 되어 최초의 사액 서원이자 공인된 사학기관이 되었다.
회헌 안향(1243∼1306)선생은 고려 원종 원년(1260) 진사과에 급제한 후 우사의 등을 거치면서 문교진흥에 진력한 우리나라 최 초의 주자학자이면 안출(1287∼1348), 안보(1302∼1357) 형제도 대학자이며 문신이었다.
신재 주세봉(1495∼1554)선생은 많은 저서를 남겼고 황해도 관찰사, 동지중수부사 등을 역임하면서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경내에는 강당, 동·서재, 학구재, 지락재, 서고, 문성공묘 등이 있고 회헌 영정(국보 제111호), 대성지성 문선왕 전좌도(보물 제485호) 등 중요유물과 각종 전적이 소장되어 있다.

☞부석사


소재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경북 영풍군 봉황산 중턱에 위치하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도장이다.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조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 하고, 화엄의 대교를 펴던 곳으로 1016년(고려 헌종7)에 원웅국사가 무량수전을 중창하고 1376년(우왕2)에 원웅국사가 다시 중수 , 그 이듬해 조사당을 재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수를 거쳐 1916년에 무량수전을 해체수리하였다. 경내에는 무량수 전, 조사당, 소조여래좌상, 조사당벽화, 무량수전 앞 석등 등의 국보와 삼층석탑, 석조여래좌상, 당간지주 등의 보물 및 원웅국 사비, 불사리탑 등의 지방문화재를 비롯하여 삼성각, 취현암, 범종문, 안양2문, 웅향각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또 신라 때부터 쌓은 것으로 믿어지는 대석단 등이 있다.
의상조사는 제자가 3,000명이나 있었다고 하며 그 중에서 10대덕으로 불리우는 오진, 지통, 표훈, 진정, 진장, 도웅, 양원, 상 원, 능인, 의적 등은 모두 화엄을 현양시킨 아성들이다. 이 밖에도 『송고고전』에 그 이름이 보이는 법체나 도신 및 신림 등도 의상의 훌륭한 제자였으며 의상 이후의 부석사와 관계된 고승으로는 혜철국사, 무염국사, 증효대사, 원융국사, 원웅국사 등이 그 법통을 지켰다.

☞부석사 원융국사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이 비는 고려시대 원융국사의 비이다. 원용국사의 복흥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고려 성종 10년(991) 승과에 급제한 후 대덕 승 통왕사를 거쳐 문종때 국사가 되어 부석사에 있다가 문종 7년(1053)에 입적하니 시호를 원읍이라 하였다.
2비신은 높이 1.73m 폭1.1m이며 재료는 수성암질 청석을로 양변과 중아부에 균열과 결손이 있어 비문의 첫머리와 끝부분이 분 명치 않으나 대체로 온전한 편으로 문종때에 세운 원비임에 틀림이 없으며, 비문의 내용은 <조선금석총람>에 수록되어 있 다. 귀부는 비신과 맞지 않아 원래의 것은 아니지만 각법이 훌륭하다. 귀부 지대석은 전후면에 각 3구, 측면에 각 4구씩의 안장 을 장식하였는데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머리는 용두화하였으나 마치 석사자처럼 보인다. 귀갑은 6각형으로 선명하게 새겨졌고 음각된 왕자가 보인다.


☞부석사 삼층석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130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풍군 부석면 북지리

이 탑은 통일신라 하대에 조성한 것으로 동탑의 높이는 3.6m, 서탑의 높이는 3.77m 이다. 양탑 모두 원위치가 아니고 부석사 동쪽 200m지점에 있는 이름모를 사지에서 1966년 현위치에 옮겨 세운 것이다.
불사리탑 이건비에 의하면 서탑에는 익산 왕궁리 5층탑으로부터 석존사리 5과를 분안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방형 지대석 위에 얹혀 있는 하층 기단면적에는 우주와 일주식의 탱주를 나타내었고 하층기단 감석 위에는 4분원 몰딩의 괴임이 있다.
삼층기단 면석에도 우주와 일주씩의 탱주를 모각하였고, 상층기단 갑석 밑에는 부연이 있으며, 위에는 옥신을 받는 괴임을 마련 하였다. 상륜부는 없어졌는데 지금 놓여져 있는 것은 뒤에 보충한 것이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국보 : 제 17호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팔각을 기본형으로 삼고 방형 지복석위에 역시 방형의 지대석을 얹었고 측면에는 1면 2구씩의 안상을 두었다.
간석은 가늘고 높은 편이고, 그 위에 앙연석을 얹었다. 화사석은 높은 편으로 뚫린 화창 주위에는 소공이 나 있고 남은 4면에는 연대위에 직립한 보살상이 양각되었다. 개석도 8각이고 전각은 반전되었으며 낙수면에는 우주가 표시되었다.
주연에는 연화가 양각되어 보주를 얹었다. 비례의 조화가 극히 아름답고 화려한 조형은 경쾌하면서 섬약에 흐르지 않고 조식은 아륜하다. 신라 일반형 석등으로 그 유래가 없는 결작이며 제작연대는 신라 중기 이후로 추정된다.


☞도산서원

사적: 제 170호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산61

1574년 퇴계 이황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림이 중심이 되어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토계리에 창건한 서원이다. 동서재 정 면 3간, 측면 2간의 홀처마 맞배집이며 전교당은 정면 4간, 측면 2간의 홑처마 굴도리집이고 상덕사는 정면 3간, 측면 2간의 단 층 기와집으로 되어 있다. 원래는 퇴계 이황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가르치며 학덕을 쌓은 곳으로 1575년에 석봉의 글씨로 사 액을 받음으로써 영남유학의 연총이 되었다. 이 서원의 건축은 모두 무사석계층이며 방주의 사용이나 초공을 끼운 대들보의 간략 한 가구등 전체적으로 간소하다. 서원 안에는 약 400종에 달하는 4000권이 넘는 장서와 장판 및 퇴계의 유물이 남아 있다. 대원 군의 서원 철폐 때에 또 소수서원, 숭양서원 등과 더불어 정리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 1969년 문화공보부와 경상도 지부에서 해 체 복원하여 면목이 일신되었다.

☞봉정사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이 사찰은 신라 문무왕12년(672)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날린 종이봉이 이곳에 내려앉아 여기에 절 을 창건하였다고 전하여진다. 극락전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대덕(能人大德)이 창건한 후 조선시대 까지 여러 차례 중수하여 왔다고 한다. 사찰 내에는 1972년 해체보수시 발견된 상량문에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로 확인된 극락전(국보 제15호)과 조선시대에 건립된 대웅전(보물 제 55호), 화엄강당( 보물 제448호), 고금당(보물 제449호) 등이 있는데, 고려시대의 건물과 조선시대의 목조건물들이 나란히 있어 우리나라 건축 연 구에 큰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밖에도 극락전 앞에는 고려시대에 건립한 삼층석탑이 있고 덕휘루, 요사 등의 건물이 있으며 영선암, 지조암 등의 부속암자 가 있다.

☞봉정사 극락전

국보: 제 15호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이 건물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축중 최고의 건물로 유명하다. 정면 3칸, 측면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 건물로 고려시대의 건 물이지만, 전대의 통일신라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어 더욱 주목되고 있다. 1972년에 실시한 보수공사 때에 밝혀진 내용에 의하면 건립후 첫 수리는 고려 공민왕 12년(1363)이며 그 뒤 조선 인조 3년(1625)차에 걸친 수리가 있었다. 원래는 대장전이라 불렸었으나 뒤에 극락전이라 개칭한 것같다. 기둥의 배흘림, 공포의 단조로운 짜임새, 내부가구의 고격함이 이 건물의 특징이며, 부재 하나한가 모두 국보적 기법을 갖추고 있어 한층 더 지보적 존재라 할 수있다.

☞봉정사 대웅전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보물 제 55호
봉정사의 정전으로 조선 초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주칸의 창문이나 벽체 등 일부가 초창 후 변경되었으나 골격은 전형적인 다포 양식을 잘 갖추고 있다. 특히 공포의 힘있고 가식없는 수법은 초기의 다포양식 특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건물 내부에서 가구형식이나 세부기법에서도 외부와 같이 단조로우면서 견실한 공법이 초기의 다포양식 특징들을 보이고 있다.
단청은 창건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고려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 건물과 함께한 회화자료로 주목되고 있다.


☞연미사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이천동 영남산
경상북도 안동시 이천동 영남산(領南山) 연미원(燕尾院 : 제비원)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 雲寺)의 말사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되었다고 하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폐사로 오랫동안 내려오던 것을 지금부터 약 30년 전에 옛 절을 승계하여 새로 절을 지었고, 현재는 비구니 한 사람이 이곳에 머무르면서 보물 제115호로 지정된 마애석불을 지키고 있다.
이 마애불은 높이 12m의 암벽에 몸체부분을 선각(線刻)하고 그 위에 머리부분을 따로 조각하여 얹은 거대한 불상으로, 경기도 고양군의 쌍석불보다 약간 작으나 조각미는 우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불상의 조성연대는 신라시대의 창건과 동시에 이루 어진 것이라 전하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 불상의 위에는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 되어 있는 3층석탑 1기가 있다.


☞안동 민속 박물관

소재지:경북 안동시 성곡동 784-1
안동댐 민속경관지 안에 있다. 박물관내 전시실에는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사람이 나서 일생을 살다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통과의례를 주맥으로 관, 혼, 상, 제인 사례에 중점을 두었으며, 각종 민속놀이도 재현, 전시하여 안동문화 의 전통과 얼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 민속자료 3,7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와 함께 야외박물관 전시물로는 석빙 고, 월영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2호), 선성현객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9호), 초가도토마리집 (경상북도 민속잘료 6호), 초 가토담집 (경상북도 민속자료 14호), 이필구 ㅁ자와가집, 이원섭 ㅁ자와가집, 박분섭 까치구멍집, 이춘백 초가집, 안동 다례원, 물레방아, 연자방아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다양한 전시물들은 관광객은 물론, 학생들의 교육장으로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특히 박분섭 까치구멍집과 박운숙 초가겹방집은 헛제사밥이 유명하며, 이춘백 초가집은 건건진국수가 별밍이다. 안동다례원에는 차를 이용한 밥, 떡, 죽, 국수, 가루차, 잎차우림 등이 준비되어 있어 기호에 맞게 맛볼 수 있다.

☞신세동전탑

국보: 제 16호
소재지: 경북 안동시 신세동

이 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이다. 이 일대의 지명을 법흥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에 창 건되었다는 법흥사에 세워져 있던 전탑으로 추정된다.
탑의 높이는 16.4m, 기단 폭은 7.75m이며 단층기단에 7층의 탑신을 차츰 크기를 줄여가며 쌓아올려 놓았다. 기단은 네모꼴로 8 부중상과 사천왕상을 양각한 판석을 세워 축조했으며, 탑신부는 진회색의 무늬없는 전도를 어긋나게 쌓아 만들었다. 전의 크기는 길이가 약 28cm, 폭14cm, 두께 6 cm이다.
각 층 지붕 윗면에는 기와를 이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는 목탑이 전탑보다 앞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자 료로 평가된다. 원래 탑의 맨 꼭대기에는 금강제 상륜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없어졌다.


☞안동 하회마을

중요민속자료: 제 122호
소재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이 마을은 풍산 유씨가 대대로 살아오던 전형적인 동성부락으로서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사대부 집으로부터 가랍집(하층민 의 집)에 이르기까지 130여호의 대소 고가가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특히 이곳은 조선시대의 대유학자인 문경공유운룡(1539∼1601)선생과 이 분의 동생이며 임진왜란 때 대명상인 문충공 서애 유성 룡(1542∼1607)선생이 태어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회의 지형은 자고로 태극형이니 연화정수형이니 다리미형이니 하고 일러왔다 . 낙동강 물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S자형을 이루면서 여기서 이 마을을 사고 돌고 있어서 지명도 하회가 되었다. 동쪽으로 태백 산이 지백인 화산이 있고 그 줄기의 끝이 강에 쌓인 동네까지 뻗어서 아주 낮은 구릉을 이루고 있다. 집들은 이 구릉을 중심으로 낮은 곳을 향하여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집의 좌향이 일정하지 않고 동서남북을 향한 각방향의 집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을 중심부에는 유씨들의 집인 큰 기와집이 자리잡고 있으며 가랍집은 그 주위를 둘러싸고 배치되어 있다. 마을에는 하회 별신굿놀이 , 줄불놀이, 뱃놀이 등이 동네 행사로 전래되어 왔으나 지금은 중단되었다. 이때 사용되었던 하회탈 11개, 병산탈 2개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유씨대종가 양진당과 서애 종가인 충효당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중요민속자료 8점이 보존되고 있다.


☞의성 탑리 오층석탑

국보: 제 77호
소재지: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 1383-1

이 탑은 통일신라 초기의 석탑으로 목구탑과 전탑의 구조를 결합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한국 석탑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낮은 1단의 기단을 가졌으며, 제1층의 탑신은 목탑을 본떠서 네모진 기둥을 네 모퉁이에 세우고 남면에 감실을 마련하였다. 탑 신의 옥개석은 분황사의 전탑구조를 본떠서 상·하·양면이 모두 층단형으로 단을 지어 조성되었다.
그리고 각 층과 기단의 撑柱나 隅柱 모두 목조건물의 기둥처럼 엔타시스를 표현하고 있다. 이 탑은 신라의 영역에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에 다음가는 오랜 석탑으로 높이가 9.6m에 이르며 장중한 미가 있다.

☞군위 삼존석불

국보: 제 109호
소재지: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산16
동남향인 거대한 암벽에 조영된 석굴로 천정은 활등모양을 이루었는데, 안쪽벽에 붙여서 둥글게 새긴 삼존을 모셨다. 본존불은 다른 돌로 만든 좌단위에 안치하였으나 그 뒷부분이 암벽에 마련된 턱에 걸쳤다.
이 불상은 대좡 결가부좌로 앉았고 큼직한 육계가 있으며 어깨에 걸쳐입은 법의는 얇게 나타내었다. 본존을 중심으로하여 안쪽 의 벽면에 광배를 조각하였는데, 두광과 신광을 구별하여 광염문으로 나타내었다.
양쪽의 협시 보살 중 왼쪽 보살은 따로 만든 광배가 있으나 오른쪽 보살은 없어진 것으로 짐작되며, 좌보살은 좌수에 보병을 들 고 있다. 좌보살의 두광은 중심에 연화와 그 주위의 당초문 그리고 주연에 화염문을 조각 보주형을 이루었다. 양 협사보살의 허 리를 조금 돌려 본존족으로 향학세하여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한 점은 엿보이나 오직 본존과 더불어 당당하고 거구일 뿐 사실적 인 면에서는 부족하다. 석굴의 전체적인 규모는 크다고 할 수 없으나 중국의 석굴양식이 우리나라로 전해져서 경주의 석굴에 이 르는 과정을 보아 이 석굴의 조영연대는 700년 전후로 추정된다.


☞직지사


소재지: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서기 418년 신라 눌지왕 2년 아도화상이 황악산 아래 절터를 잡아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직지사는 우리나라 의 대표적인 큰절인 해인사나 통도사, 송광사보다도 훨씬 먼저 세워진 것이 되며,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도 전에 그 터전을 닦 은 절이 된다.
신라 선덕여왕 14년(645) 자장율사에 의해서, 그리고 경순왕4년(930)에는 천묵대상에 의해서 한차례씩 중창을 거친 직지사는 이 곳에 머물렀던 능여대사가 고려 태조에게 도움을 준 보답으로 태조 19년(936) 그 사세를 크게 키우게 된다. 고려시대에 줄곧 큰 사세를 유지하던 직지사는 조선시대 임진왜란때 왜병들에 의해 일주문, 사천왕문, 비로전만이 남은 폐허로 변했다. 이 절은 조선 의 국운과 더불어 쇠락의 길을 걸었다.


☞직지사 대웅전 앞 삼층석탑, 비로전 앞 삼층석탑

보물: 제 606호, 보물: 제 607호
화강석재로 1974년 문경군 삼북면 옛 사지로 추정되는 곳에 방치된 것을 이곳으로 이전하여 2기는 대웅전, 1기는 비로전 앞에 안치한 것이다. 이중기단 위에 삼층을 올린 것으로 기단부와 탑신부는 완전하나 상륜부는 없어져 보완한 것이다. 8석의 지대석위 에 역시 8석으로 구성된 하층 기단 갑석을 얹었는데 상면에는 몰딩이 있다. 옥개 받침은 1·2층은 6단이고 삼층은 5단이며 옥개 석 괴임은 1단이다. 옥신에는 우주가 두개씩 모각되어 있다.

☞직지사 대웅전 삼존불 탱화, 삼폭

보물: 제 670호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이 탱화들은 1774년(영조 50) 증명화원의 세관 등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영산회 상탱화는 보살상을 배열함 에 있어 십대 보살을 배열하고 비구상과 보살상 사이에 대범제석 2위를 도설하고 있다. 아미타 희상탱화는 비구제자상 20여위나 배열하고 있는데 이는 극락정통에 있어 성이무수한 경설을 대표한 것이다. 약사희 상탱화는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십대보살과 많 은 신장상을 배열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직지사 석조 약사여래좌상

보물: 제 319호
광배와 동일석으로 조성된 약사여래불상이며 대좌의, 유무는 알 수 없다. 장발의 머리에는 육계가 큼직하며 얼굴은 마멸이 심하 여 세부적 수법은 잘 알 수 없지만 둥글고 풍만하다. 형식적인 삼도가 있으며 결가부좌한 하체의 처리라든지 약병을 잡은 팔과 손등은 부조가 잘된 편이지만, 역시 퇴화된 수법이다. 법의는 유려한 편이 못되고 광배는 단형거신광인데 폭이 너무 넓어 맵시 있는 처리는 아니며 두 신광을 2수선으로 만들어 그 안에 당초문을 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