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역개관

 

20132978 강민지

20133012 이나원

20133028 하현진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jeonnam.gif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89pixel, 세로 315pixel

 

1. 전라남도개관

전라도는 지금의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합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전라는 전주와 나주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지명으로, 고려 현종 때의 전라주도에서 비롯된다. 전라도는 동쪽으로 경상도, 북쪽으로 충청도와 경계가 맞닿았는데, 본래의 마한의 땅으로 백제의 영역이었다. 의자왕 20(660)에 백제가 망한 뒤 당나라가 이곳에 웅진(지금의 공주), 마한(익산), 동명(부여), 덕안(은진), 금련(금구)5개 도독부를 설치하였다. 당나라 군사가 철수한 뒤 신라의 경덕왕은 전주와 무주에 도독부를 설치하여 군현을 관찰하였고, 진성왕 때부터 후백제의 견훤이 이곳을 차지하였다.

전라남도는 북으로는 노령산맥을 경계로 전라북도와 접하며 동으로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끼고 경상남도와 접해 있다. 서쪽과 남쪽은 바다를 끼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리아스식 해안을 이룬다. 도의 신안군 홍도에서 여수시 돌산면에 이르는 지역 일대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도의 담양군 용면 용추봉(560m)에서 발원한 영산강이 광주광역시와 나주시, 영암군 등지를 흐르면서 황룡강, 지석천 들을 합류하며 황해로 흘러든다. 하류에는 하굿둑이 축조되어 있으며, 이 일대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평야지대 중의 하나이다.

조선 시대에 왜구의 침입이 잦아 주민 쇄환 정책을 실시하던 해안 도서지역에서는 19세기부터 군을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1896년 칙령 제13호에 의해 전주부, 나주부, 남원부에 속해 있던 여러 섬을 3개 구역으로 나누어 완도군, 돌산군, 지도군을 설치하였다. 1897년에는 제주군이 신설되었고, 전라북도 구례군이 편입되었다.

전라남도 지명은 1896(고종 33) 전국이 13도로 개편되면서 이전의 전라도를 노령을 기준으로 하여 남북으로 분리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다. 당시는 현재의 광주광역시와 제주도가 전라남도 관할에 속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133군현은 122군으로 바뀌고, 이 과정에서 해안에 설치되었던 돌산군은 여수군에, 지도군은 신안군에 폐합되었다. 광복 이후 1949년에는 제주군이 도로 승격하였고, 1986년에는 광주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었다. 1986년에는 금성시를 나주시로 변경하였다. 1995년에는 순천시 주암면의 풍교리문길리로 바꾸는 등 일본식 지명의 정비가 있기도 하였다. 1998년에는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을 여수시로 통합하는 등 행정구역의 변경을 통해 오늘에 이른다. 현재 5개 시 17개 군을 관할한다.

 

 

1) 장성군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ㄷㅅ.PN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89pixel, 세로 412pixel

도의 가장 북단에 위치한 군이다. 동쪽은 순창군과 담양군, 서쪽은 고창군과 영광군, 남쪽은 광주광역시, 북쪽은 전라북도 정읍시와 고창군에 접하고 있다. 군 전체가 대부분 산지를 이룬다. 영산강 최상류인 황룡강과 장성호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산줄기가 뻗어 내려온다. 그 한줄기인 북서쪽의 산줄기는 고창군과 영광군과의 경계를 이루며, 장성 갈재에서 태청산으로 이어지는 북동-남서 산줄기이다. 또 하나는 순창군과 담양군의 경계를 이루며, 노령에서 도장봉으로 내려오는 산줄기이다. 이는 남서 방향으로 이어져 병풍산, 불태산 등을 이룬다.

지명은 산세가 깊고 성곽처럼 둘러싸여 있다고 해서 유래되었으며 고려시대부터 지명이 사용되었다. 백제시대에는 고시이현, 구사진혜현, 소비혜현으로 이루어진 군이다. 757(신라 경덕왕 16)에 고시이현이 갑성군으로, 구사진혜현은 진원현으로, 소비혜현은 삼계현으로 개칭되어 무진주 관할이 되었다. 940(고려 태조 23)에 갑성군을 장성군으로 고쳐 처음 장성이 되었다. 1018(고려 현종9)에 장성군과 삼계현은 영광군의 속현이 되고 진원현은 나주목에 속했다. 1413(태종 3)에 장성은 나주목의 관할이 되고, 진원은 장흥도호부의 관할이 되었다. 1895(고종 32)에 군제 실시로 장성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장성군은 13개 면 123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75년에 장성댐의 편입지역인 북상면이 폐지되어 오늘에 이른다.

 

2) 담양군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ㄱㅈ.PN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07pixel, 세로 555pixel

도의 북부에 위치하며 광주광역시의 북동쪽에 있는 군이다. 영산강 본류가 발원한다. 동쪽은 곡성군, 서쪽은 장성군, 남쪽은 화순군, 북동쪽은 전라북도 순창군과 접해 있다. 호남정맥과 노령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추월산이 진산이다. 대나무로 유명하여 죽향이라고 불린다. 군청소재지인 담양을 비록하여 111면을 관할한다.

조선시대 담양과 창평 읍치가 있었던 곳이다. 고려사지리지담양군은 원래 백제의 추자혜군인데신라 경덕왕은 추성군 으로 고쳤다. 성종 14(995)에 담주도단련사로 하였다가 후에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본 목에 소속시켰다.”라는 기록으로 볼 때 1018(고려 현종 9)에 생겨난 지명임을 보여준다. 조선 개국 후 1399년 담양부로 승격되고, 1413년 담양도호부로 고쳤다. 창평 지명은 고려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물갓골이 담주로 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양은 고을을 뜻한다. 1895년 전국 23부제 개편 때 남원부 관할 담양·창평군이 되었으며 1896년 광주부 관찰부 관할이 되었다. 1914년 창평군 일원과 장성군 및 광주군 일부를 통합하여 담양군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3) 광주광역시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담양.PN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07pixel, 세로 495pixel

대한민국의 서남부에 있는 광역시로 전라남도의 중심 도시이다. 시의 남동쪽에 진산인 무등산과 북서쪽에 조산인 어등산을 비롯하여, 동쪽 삼각산, 남쪽 건지산, 북서쪽 용진산, 서쪽 망산이 병풍을 이루는 분지 지형이다. 시가지와 극락평, 일명으로는 북동쪽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영산강의 본류인 극락강이 흐르고, 시청 바로 남서편 일대에서 무등산으로부터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흐르는 광주천과 합류한다.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는 황룡강이 장성에서 발원하여 송정 남쪽에서 극락강과 만나 남서쪽으로 흐른다. 화순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흐르는 지석강과 시역의 남쪽에서 합류하여 나주시로 흘러 들어간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후백제 견훤 때부터 광주라 불렀으며, 현의 남쪽 2리에 있는 석서정 기에 이색이 광지주라 언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980년대부터 별칭으로 사용되는 빛고을은 기록에서부터 유래되었다.

1895년 전국이 23부로 개편됨에 따라 나주부 관할 광주군이 되었다가 이듬해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전라남도 관찰부가 설치되었다. 1910년 관찰부를 도청으로 개명하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광주군은 목포부·여수군·순천군·나주군을 포함하는 23개부·군의 중심지가 되었다. 광주군은 읍성을 중심으로 광주면을 포함하여 15개 면 152개 리를 관할하였고, 갈전면 일부와 대치면을 담양군으로 넘겼다. 1931년 광주읍으로 승격되고, 1949년 광역시가 되었다. 현재 동구·서구·남구·북구·광산구의 5개구와 91개 행정동, 201개 법정동을 관할하고 있다.

 

4) 화순군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화순.PN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62pixel, 세로 444pixel

도의 중앙부에 위치한 군이다. 내장산, 추월산, 설산으로부터 이어져 온 호남정맥이 무등산에서 안양산, 주봉산, 국사봉으로 연결된다. 하천은 지석천과 동복천이 군의 유역을 나누고 있다. 화순읍·능주면·동복면 등 1개 읍 12개 면을 관할하고 있다.

현재 화순 지역은 조선시대 화순현·능주목·동복현 지역이었다. 삼국사기지리지능성군은 본래 백제의 이릉부리군으로 경덕왕이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으니, 영현이 셋이다. 부리현은 본래 백제의 파부리군으로 경덕왕이 개명하였는데 지금은 복성현이다. 여미현은 본래 백제의 잉리아현으로, 경덕왕이 개명하였는데 지금의 화순군이다.” 라고 기록되어 현재의 지명을 유추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1405(조선 태종 5)에 동복현을 폐하고 화순현에 합속하여 1407년에 복순이라 개칭하였다. 1416년에 동복을 나누고 화순현을 능성현에 합속하여 순성현이라 하였다. 1418년에 다시 둘을 나누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화순·능주·동복은 통합과 분리가 반복된 군현이었다.

1908년에 화순군이 폐지되고 능주군에 편입되었다. 1913년에 능주군이 화순군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에 동복군 전체와 남평군 저포면 일부, 광주군 지한면 일부, 창평군 대면 일부를 병합하여 화순군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5) 영암군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영암.PN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07pixel, 세로 360pixel

도의 남서부에 있는 군이다. 동쪽은 도의 장흥군, 남쪽은 해남군·강진군, 북쪽은 나주시와 접한다. 남동쪽 군계를 중심으로 월출산이 있고 원출산의 줄기에 밤재, 감재, 도갑재 등이 있어 장흥·강진·해남으로 연결된다. 군의 북서부에 영산강 하구가 있고, 삼호강, 영암천, 도갑천, 송계천 등의 하천들이 영산강으로 흘러들어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해안선은 복잡하고 나불도, 외도 등 섬들이 있으나 영산강 하구둑 공사로 현재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군소재지인 영암읍 등 29121리를 관할하고 있다. 지명은 월출산에 있는 바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이곳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동석3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 바위가 바로 영암인데, 이 동석 때문에 큰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하여 고을 이름도 영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고대 국가 성립기에는 마한54국 중 최후 중심권이라 할 수 있는 월지국에 속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백제에 복속되었으며 당시에는 월나군이라 불렀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처음 영암군이라 불렀으나, 997(고려 성종 16)에 낭주로 개칭되었다가 1018(고려 현종 9)에 다시 영암으로 불리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완도의 장좌도(청해진), 보길도, 추자도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관할하였으며, 1409년 진도가 진도군으로 분할되고 삼산면·옥천면·화원면 일대가 해남으로 편입되었다.

 

 

6) 해남군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해남.PN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10pixel, 세로 490pixel

도의 남서쪽에 위치한 군으로 대부분 지역이 반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서 해남반도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여기서 서북쪽으로 화원반도와 산이반도가 돌출하여 있다. 남쪽은 남해를 사이에 두고 완도와 마주하고 있고, 서쪽은 울돌목을 사이에 두고 진도와 마주하고 있으며, 북서쪽은 해남만을 사이에 두고 목포와 마주하고 있다. 군의 금강산에서 분기한 산줄기가 해남반도, 화원반도, 산이반도 해안까지 뻗어 있다. 해남만은 리아스식 해안이었으나 영산강 유역 개발계획으로 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산이면 일대에 내해와 외해가 생겨났다. 이로 인해 금호도, 민가도, 속금달도 등이 연육되고 방조제 안쪽의 내만은 영암호와 금호호로 개명되었다. 현재 113면을 관할하고 있다.

1018(고려 현종 9)에 해남이라는 지명이 처음 사용되었고, 동시에 1437(세종 19)에 독립된 현으로 존재하기 시작하였다. 백제 때 기록에서 나타나는 새금은 지리적으로 두 구미 사이의 바닷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사이구미가 변화된 이름이라고 한다. 이에 비하여 해남은 지리적으로 남쪽의 바닷가 마을이라는 포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조선 전기에는16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러한 행정구역의 편제는 큰 변화 없이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행정구역의 편제는 큰 변화 없이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질 때 13면으로 재편되었다. 지금은 면 지명에서 현산면·송지면·북평면·옥천면·산이면은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지명이고, 나머지는 1914년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생겨난 합성지명이다.

 

7) 강진군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ㄱㅈ.PN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07pixel, 세로 555pixel

전라남도 남부에 위치한 군이다. 동으로 수인산을 경계로 장흥군, 서로 서기산을 사이에 두고 해남군, 북으로 월출산과 월각산을 사이로 영암군에 접한다. 남으로 도암만이 북쪽으로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다. 군의 중앙을 금강천이 흐르며 탐진강과 합류하여 남해로 유입한다. 군 전체가 남쪽으로 열린 지세를 취하고 있다. 강진읍을 비롯하여 110면을 관할하고 있다.

지명은 조선시대 이후 생겨났다. 신증동국여지승람도상현은 본래 백제의 도무군이었는데 신라 때에 양무로 고쳤고, 고려 때에 도강현으로 고쳐 영암군에 속하였으며 명종 2년에 감무를 두었다. 탐진현은 본래 백제의 동음현이었는데 신라 때에 탐진으로 고치고 양무군에 속하였으며, 고려 때에는 영암군에 속하였다가 뒤에 장흥부에 속하였다. 본조 태종 17(1417)에 병마도절제사의 영을 도강 옛 치소에 옮겨 두 현을 합쳐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탐진을 치소로 하였다. 세종 11년에 도강의 송계로 옮겼다가 성종 6년에 참진의 옛 치소로돌아왔다.”라는 기사가 있다. 이 기록에서 두 개 현은 도강과 탐진을 말한다. 따라서 지금의 군명은 1417(태종 7)에 도강과 탐진에서 각각 한 글자씩 취하여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8) 순천시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ㅅㅊ.PN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00pixel, 세로 493pixel

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시이다. 전라남도 동부의 중심도시이다. 동쪽은 광양시와 구례군, 서쪽은 화순군과 보성군, 남쪽은 여수시, 북쪽은 곡성군에 접하고 있다. 남쪽의 순천만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소백산맥의 지맥이 뻗어서 형성된 산줄기로 산지가 많다. 이들 산줄기가 북류하는 보성강과 섬진강 수계, 남류하는 동천과 이사천의 분수령을 이룬다. 시가지는 이사천과 동천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주암 다목적댐과 상사 조절지댐 건설로 주암면·송광면·상사면과 승주읍 일부가 수몰되었다.11013동을 관할한다.

삼국사기승평군은 본디 백제의 감평군이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은 이름을 그대로 쓴다. 분령군은 본디 백제 분차군이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의 낙안국이다.” 라고 수록되어 있다. 고려사지리지고려 성종 14년에 승주 연해군 절도사로 삼았고, 고려 정종2년에 다시 승평군으로 삼았다가 고려 충선왕 1년에 승주목으로 승격했고 2년에 순천부로 강등하였는데 속한 현이 넷이었다.”는 기록에서 승주순천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난다.

1896년 돌산군이 신설됨에 따라 순천군에 있던 섬들이 이관되었고, 1897년 순천군 소속의 율촌면·소라면·삼일면·여수면을 나누어 여수군을 신설하였다. 1908년 낙안군이 폐지되어 순천군에 편입되었다. 1931년에 순천면이 순천읍으로, 1949년 순천시로 승격되었다. 이때 도사면과 해룡면 일부가 시에 통합되었고 나머지 11면은 승주군 소속이 되었다. 1995년 순천시와 승주군이 다시 통합하여 오늘에 이른다.

 

9) 구례군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구례.PN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01pixel, 세로 386pixel

도의 북동부에 위치한 군이다. 군의 동쪽은 경남 하동군, 서쪽은 곡성군, 남쪽은 순천시와 광양시, 북쪽은 전북 남원시와 접하고 있다. 동북쪽으로는 지리산이 있고, 섬진강이 남원시에 흘러 들어와 군의 중아을 서쪽으로, 군청 소재지인 구례읍을 비롯하여 17면을 관할한다.

삼국사기지리지구례현은 본시 백제의 구차례현으로, 경덕왕이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어 경덕왕 때부터 지명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고려 초에 남원부에 속하였다가 1143년에 감무를 두었고, 1413년에 현으로 승격되었다. 1499(연산 5)에 현에서 부곡으로 강등되었다가 1507년에 다시 현으로 복귀되었.

189523부제 실시로 구례군이 되었다가 1896년 전라남도에 속하였다. 1906년 전라북도 남원에 속한 산동·중방·소의·고달면 등 4개면이 병합하였다. 구한국행정구역일람에 의하면, 1912년에 구례군은 현내면·계사면·문척면등의 13개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8개면으로 되었고, 고달면은 곡성군으로 귀속되었다. 1962년 구례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오늘에 이르다.

 

10) 남원시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남원.PN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02pixel, 세로 325pixel

도의 동남부에 위치한 시이다. 지리산을 경계로 동쪽은 함양군, 동남쪽은 하동군, 서쪽은 순창군, 남쪽은 구례군과 곡성군, 북쪽은 임실군과 장수군에 접한다. 시의 동남쪽에 지리산이 크게 솟아 있고, 시를 관통하여 흐르는 요천은 섬진강에 합류하여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휘돌아 흐른다. 1157동을 관할한다.

백제의 고룡군이었고, 대방군에 이어 남대방군이 되었다. 신라 경덕왕 때 남원소경으로 되면서 남원지명이 처음 사용되었다. 고려시대 들어 940(고려 태조 23)에 남원부로 고쳤고, 1310년에 다시 대방군으로 하였다가 뒤에 남원군으로 고쳤고, 1360년에 남원부로 승격하였다.

조선시대 들어 이곳에 도호부가 설치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413년에 도호부로 고쳤다고 하였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이곳이 47개 방리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1912년 당시에 남원군은 44개면, 344개 동리로 이루어져 있었고, 1914년 운봉군을 통합하여 남원군이 되면서 20개면, 186개 리로 개편되었다. 1981년 남원읍이 시로 승격·분리되었고, 1994년 남원군을 통합하여 남원시를 설치하여 오늘에 이른.

 

2. 전라남도 유적지

1) 필암서원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1282099841265.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800pixel, 세로 533pixel

사진 찍은 날짜: 2006년 09월 22일, 오후 3:40

황룡면 필암리에 있는 서원으로, 호남 지방의 유종으로 추앙받는 하서 김인후와 그의 제자이자 사위인 고암 양자징을 배향하고 있다. 김인후 선생이 죽은 후 30년이 지난 선조 23년에 장성읍 가산리에 사우를 지었고 정유재란 때 소실되자 인조 2년에 황룡면 증산동에 다시 사우를 지었다. 현종 3년에 이 사우는 필암이라는 액호를 하사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수해를 입을 우려가 있던 위치에서 현재 위치로 옮겨지어졌고, 1786년 양자징도 함께 모셔졌다. 필암서원은 선현에 대한 제사 공간과 교육 및 학문 수련 공간, 그밖에 장서나 지원 시설 등의 조선 시대 서원의 기본 구조를 모두 갖춘 전형적인 서원이다. 필암서원에는 많은 서책과 고문서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1975년에 일괄하여 보물 제587호로 지정되었다.

 

2) 소쇄원

소쇄원은 중종 때 사람인 양산보의 별서정원이다. 별서란 살림집에서 ᄄᅠᆯ어져 산수가 좋은 곳에 마련된 주거공간을 말한다. 양산보는 30대부터 소쇄원을 짓기 시작하여 40대에 완성했다 전해지며 소쇄라는 말의 유래는 공덕장의 북산이문에서 나온 말로 깨끗하고 시원함을 의미한다. 양산보는 그 뜻을 따서 정원 이름을 붙이고 그 주인이라는 뜻에서 자기의 호를 소쇄옹이라 했다. 장원봉과 까치봉을 잇는 산줄기를 뒤에 업은 남쪽의 산비탈에 자리잡은 소쇄원은 대봉대, 광풍각, 제월당, 애양단 등으로 구성되어 자연 경관의 일부로 녹아있다. 또한 소쇄원은 1983넌에 사적 제304호로 지정되었다.

 

3) 운주사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DSC01351.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000pixel, 세로 667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2년 12월 06일, 오후 9:16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창건에 관한 이야기는 도선이 세웠다는 설과 운주가 세웠다는 설, 마고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이 전해지나, 도선이 창건하였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법당과 석불, 석탑이 많이 훼손되어 폐사로 남아 있다가 1918년에 박윤동·김여수를 비롯한 16명의 시주로 중건하였다. 건물은 대웅전과 요사채, 종각 등이 있다. 1942년까지는 석불 213좌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탑 12기와 석불 70기만 남아 있다. 크기는 10m 이상의 거구에서부터 수십cm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매우 투박하고 사실적이며 친숙한 모습이 특징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 좌우의 산등성이에 1,000개의 석불과 석탑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9806월에는 절 주변이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4) 도갑사

도갑사는 본래 문수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에 도선국사가 절을 재건한 후 도갑사라고 명명한 절이다. 고려 때 크게 번창하여 전성기를 누렸다고 하며, 조선 세조 3년 수미대사와 신미대사가 중건했다. 성종 4년에 중수한 적이 있고 임진왜란 때 불탔으며 영조 52년에 다시 중수했다. 근래에도 한국전쟁과 실화 등으로 여러 차례 화대를 입었다. 현재의 대웅전은 1980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지금은 해남 대둔사의 말사이며 경내에 해탈문을 비롯하여 대웅전, 명부전, 미륵전과 요사채 등 건물이 있고 수미왕사비와 도선수미비, 석조여래좌상, 오층석탑과 석조 등이 있다.

 

5) 대흥사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s20130808_담양소쇄원0484.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50pixel, 세로 501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3년 09월 05일, 오후 11:05

대흥사는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은 절로서 대둔사라고도 불린다. 그 창건 시기는 여러 설이 있지만 대둔사지의 기록에 따라 그 연대를 신라 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절 안에는 응진전 앞 삼층석탑(보물 제302)과 북미륵암 마애불(보물 제48),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301) 등의 보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6) 해남윤씨 녹우당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녹우당항공_1.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940pixel, 세로 705pixel

사진 찍은 날짜: 2008년 05월 25일, 오후 2:28

녹우당은 해남읍 연동마을의 해남윤씨 종가를 일컫는다. 해남윤씨는 연안이씨, 여흥민씨와 함께 해남의 큰 성씨로서 꼽힌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시조 작가인 고산 윤선도와 그의 증손이며 선비화가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가 이 집안에서 난 사람이며 녹우당은 그들의 자취가 밴 옛집이다. 녹우당은 전남에 남아있는 민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되었으며 그 구조는 자형으로 안뜰을 네모나게 둘러싼 형태를 하고 있다. 또한 집 앞쪽 너른 터에는 이 집안에 전해오는 유물들을 전시한 전시관과 유물 관리소가 있는데 대부분의 유물들은 윤선도와 윤두서와 관련된 것들이다. 전시품들은 일괄하여 보물 제482호로 지정되어 있다.

 

7) 다산초당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1154291763.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350pixel, 세로 1013pixel

다산 초당은 도암면 만덕리 귤동마을의 만덕산 기슭에 있는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이자 다산학의 산실이다. 정약용은 1818년에 이 초당으로 유배지를 옮긴 뒤 목민심서등을 저술하고 실학을 집대성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1958년 지역민으로 구성된 다산유적보존회가 무너진 초당을 복건하여 이 해 사적 제107호로 지정받았다. 건물은 도리단층기와집으로 문화재관리국에서 관리하고 있다. 1970, 1971, 1975년에 보수공사를 하였으며, ‘茶山艸堂이라는 현판은 김정희의 글씨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정석·약천·연지석가산·다조 등 다산의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