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개관>

 

20120196 이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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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73pixel, 세로 254pixel

전라남도는 대한민국의 서남부에 있는 도이다. 서쪽 지방은 황해, 남쪽 지방은 남해에 면하고 있다. 광주광역시를 둘러싸고 있고, 북쪽으로는 전라북도, 동쪽으로는 소백산과 섬진강을 경계로 경상남도와 접한다. 종래의 전라도는 189523부제의 시행으로 잠시 전주부, 남원부, 나주부, 제주부로 나위었다가 다시 1896년에 이 4개의 부를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로 나뉘었고 전라남도의 수부는 광주에 두었다. 일제도 도청 소재지를 광주에 두었다. 1896년부터 1945년까지 49년 동안 전라남도에 속했던 제주도가 194681일 도 체제가 생김에 따라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었고, 제주도가 떨어져 나간 지 41년 만에 광주광역시가 분리되었다. 도청 소재지는 옮기지 않고 19년 동안 더 위치 하다가 2005년에 목포시 경계에 바로 붙어있는 동일 시가지,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는 무안군 삼향읍 남악리로 옮겼다.

 

 

1. 장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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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88pixel, 세로 408pixel

전라남도 북부와 전라북도 남부 사이에 위치한 내륙지역으로 동쪽으로는 담양군, 서쪽으로는 영광군, 남쪽으로는 광주광역시와 함평군이 위치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전라북도 정읍시, 고창군, 순창군과 인접해 있다. 특히 대도시인 광주광역시 북부와 전라북도 남부에 붙어있어 광주광역시와 전라북도 사이의 중간지점 역할을 하고 있다. 장성군의 역사는 마한 54국 가운데 구사오단국이 지금의 진원 지방에, 고랍국이 장성 지방에 비정되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백제의 영역에 들어간 뒤로는 백제의 5방 가운데 남방의 치소인 구지하성이 이곳에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고려의 건국 후 갑성군은 장성군으로 개칭되었는데 그 시기는 936년이나 992년일 것으로 짐작된다. 1018년에 장성군과 삼계현은 영광군의 속현이 되었고, 진원현은 나주목의 속현이 되었다. 1895년 관제개혁에 의해 전주부 장성군으로 되었고, 1896년전라남도 장성군으로 고쳐졌다.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필암서원이 있고 조선시대부터 뛰어난 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장원놀이가 성행되었다.

 

 

 

2. 광주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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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85pixel, 세로 239pixel광주광역시(光州廣域市)는 대한민국의 서남부에 있는 광역시이다. 전라남도 나주시, 장성군, 담양군, 화순군, 함평군에 둘러싸여 있고, 2005년까지 전라남도청 소재지였다. 지명의 유래는 무진(武珍)은 한자어가 아니라 한자의 음과 새김을 빌려 우리말을 적은 것으로 의 옛 한자 새김이 들,돌인 것에서 武珍의 원래 발음은 무들, 물들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하며, 이는 물+(물이 많은 들판)일 것으로 보고 있다. 삼한시대 마한에 속했고 백제 시대에는 노지(奴只)라는 이름이 보이며, 백제 신문왕 6년에 무진주라고 하였다가, 신라의 백제 병합이후 경덕왕이 무진주에서 자를 취하여 무주로 개칭하였다. 현재 쓰이고 있는 광주(光州)란 이름은 고려 태조 시기에 등장한다. 1986년에는 광주직할시로 승격되었으나, 1988년에 인근의 광산군과 송정시를 광주직할시에 편입하여 광산구로 개칭되어 4개구(,,,광산구)체제의 직할시가 되었다. 1995년에는 서구의 일부가 남구로 편성되어 5개구가 되었다. 광주학생항일운동과 5·18 광주 사태 등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도시이고 광주(光州)를 풀어쓴 빛고을 혹은 빛의 도시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3. 담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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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85pixel, 세로 383pixel

동쪽은 전라남도 곡성군, 서쪽은 장성군, 남쪽은 화순군과 광주광역시, 북쪽은 전라북도 순창군과 접한다. 111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군청소재지는 담양읍 객사리이다. 담양(潭陽)이란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담양도호부조(潭陽都護府條)에 이르면, 본래 백제(百濟) 추자혜군(秋子兮郡)이었는데 신라때 추성군(秋成郡)이라 바꾸었고, 고려 성종 14(995)에 담주도단련사(潭洲都團鍊使)를 두었다가 후일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어 나주에 복속하게 되었다.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 본 담양군은 담양읍과 고서(古西)금성(金城)()대덕(大德)무정(武貞)대전(大田)봉산(鳳山)수북(水北)월산(月山)()창평(昌平)11개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같은 현재의 담양군의 행정구역을 이루는 중요한 골격의 형성은 1914년 일제에 의해 단행된 행정구역 개편조처일 것이다.

 

 

 

 

 

4. 화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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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31pixel, 세로 564pixel전라남도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서쪽의 하천 유역을 제외하면 해발 고도 400900의 산지로 되어 있다. 동쪽은 곡성군·순천시, 서쪽은 나주시, 남쪽은 보성군·장흥군, 북쪽은 광주광역시·담양군·곡성군과 접하고 있다. 마한시대에는 여래비리국(능주·화순), 벽비리국(동북)이었다. 백제 때 화순·능주(綾州동복(同福)3군을 합친 것으로 화순은 백제의 잉리 아현(仍利阿縣)이었다. 신라에 와서 여미(汝湄)로 고쳤으며 능성군(陵城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 때에 화순으로 고쳐 나주에 속하였다. 후에 능성현에 속하고 감무를 두었다. 공양왕 2(1390)에는 남평현(南平縣)을 겸했다. 조선 태조 3(1394)에는 동복감무로써 이를 겸하게 하였다. 능주는 고려 인종 21(1143)에 현령을 두었고 조선 태종 16(1416)에 화순에 합쳤다가 갈라졌으나 1914년 다시 화순군으로 병합되었다. 동복도 우여곡절 끝에 조선 태종 5(1405) 화순에 합하였다가 분리하여 현이 되었다. 그 후 군이 되었으나 1914년 다시 화순군에 병합되었다.

 

 

 

5. 영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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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64pixel, 세로 341pixel전라남도의 남서부에 있는 군이다. 동쪽은 도의 장흥군, 남쪽은 해남군 · 강진군, 북쪽은 나주시와 접한다. 남동쪽 군계를 중심으로 월출산(月出山)이 있고 월출산의 줄기에 밤재, 감재, 도갑재 등이 있어 장흥 · 강진 · 해남으로 연결된다. 지명은 월출산에 있는 바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이곳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동석 3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 바위가 바로 영암인데, 이 동석 때문에 큰 인물인 많이 난다고 하여 고을 이름도 '영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고대 국가 성립기에는 마한 54국 중 최후 중심권이라 할 수 있는 월지국에 속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백제에 복속되었으며 당시에는 월나군(月奈郡)이라 불렀다.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영암군이라 불렀으나, 997(고려 성종 16)에 낭주(朗州)로 개칭되었다가 1018(고려 현종 9)에 다시 영암으로 불리게 되었다.

 

 

6. 진도군

전라남도의 서남부에 위치한 군이다. 본 섬인 진도를 중심으로 조도 등 45개의 유인도와 185개의 무인도가 있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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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55pixel, 세로 415pixel. 이들은 대부분 조도면에 속해 있다. 진도를 중심으로 서쪽은 황해이고 동쪽으로는 남해로 구분된다. 진돗개(천연기념물 제53)가 있고, 서예, 진도아리랑, 남도 들노래 등이 전해오는 민속의 고장이다. 백제시대에는 인진도군(因珍島郡)이라 칭하여 관부는 현 고군면 고성에 있었으며 영현(領縣)으로 현 고군면 일대와 군내면 방면에 도산현(일명 抽山․ 猿山)과 현 임회면 방면에 매구리현(買仇里縣)이 있었다. 의자왕 20(서기 660) 7월에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항복하게 되어 원산현은 당나라가 현 나주에 설치했던 대방주의 도산현(徒山縣)에 속했다. 신라시대에는 경덕왕 16(757)에 인진도군은 진도현으로 바꾸고 도산현을 뇌산군(牢山郡)으로 승격 독립하여 매구리현을 첨탐현(瞻耽縣)으로 바꾸어 뇌산군(牢山郡)에 따르게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태종 9(1409)에 해남현과 합하여 해진군으로 칭하여 오다가 세종19(1437) 해남현과 분리하여 다시 진도군으로 되었으며 수차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본군에 예속된 육지부의 삼촌면(현 해남군 삼산면), 명산면(현 영암군 시종면)과 본도 내 군내면(도산현), 고군면(외이현), 의신면(의신향), 임회면(임회현), 읍내면(읍 성내외리), 목장면이라 하였다.

 

 

7.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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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10pixel, 세로 448pixel

전라남도의 남서쪽에 위치한 군으로 대부분 지역이 반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서 해남반도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여기서 서북쪽으로 화원반도와 산이반도가 돌출하여 있다. 신석기시대 후기에 즐문토기인이 현산면 백포만 연안의 두모리에 등장 마한 54국의 하나인 소위건국 또는 침미다례라는 설이 있음.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6년 새금현이 침명현, 고서이현이 고안현으로 황술현이 황원현으로 바뀌어 양무군 관할에 속함. 조선 태종 9년 진도와 해남을 합하여 해진현으로 하고 관부로서 중심 치소를 현 삼산면 나범 구 녹산역터로 옮김. 조선 세종 19년 진도와 해남을 나누어 해남현을 복칭하고 현감을 두어 치읍을 현재의 해남읍으로 옮김. 조선 세종 30년 옥천현과 황원군이 영암에서 해남으로 편입 조선 고종 32년 전국 행정개편되어 해남현이 나주부 해남군으로 승격됨. 조선 고종 33년 다시 전라남도 해남군으로 개편하고 부근도서를 완도군으로 이속. 광무 10년 진도, 영암의 6개면을 합하여 23면이 됨.

 

 

 

8. 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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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30pixel, 세로 630pixel 전라남도의 서남단에 위치한 군이다. 북쪽은 해남군과 강진군, 장흥군과 접하고 있으며, 주도인 완도는 연육되어 있다. 남서쪽에는 제주특별자치도에 속한 추자도가 있다. 장보고의 청해진 관련 기록은 완도 일대의 취락 형성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조선 시대까지 이곳은 독립된 행정구역을 이루지 못하고, 강진 · 장흥 · 해남 · 영암의 관할에 있었다. 조선 후기 영조 때 연안 도서 지역에 군을 설치하자는 설읍(設邑) 논의가 있었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완도에 군이 설치된 계기는 고금군도에서 8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던 이도재의 요청에 의해서였다. 1896년 지방 관제가 변함에 따라 완도도 독립된 군이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곳의 사찰인 법화암(法華菴)을 설명하면서 고려 시대 혜일(慧日) 스님과 얽힌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완도 지명의 유래는 매우 오래되었음을 보여 준다. '완도' 지명은 풀과 나무가 무성해 왕골 풀과 같다고 하여 유래되었다는 설, 봉산(禁山)있던 곳을 국원(國苑)으로 지정하면서 원도(苑島)가 완도로 와전되었다는 설, 851년 벽골제로 끌려간 청해진 유민들이 고향 생각만 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하여 빙그레 웃는 의미를 포함한 '()'자를 이용해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으나 모두 확실하지 않다.

 

 

9. 강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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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30pixel, 세로 449pixel전라남도 남부에 위치한 군이다. 동으로 수인산을 경계로 장흥군, 서로 서기산을 사이에 두고 해남군, 북으로 월출산과 월각산을 사이로 영암군에 접한다. 남으로 도암만이 북쪽으로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다. 지명은 조선 시대 이후 생겨났다. 신증동국여지승람"도강현(道康縣)은 본래 백제의 도무군(道武郡)이었는데 신라 때에 양무(陽武)로 고쳤고, 고려 때에 도강현으로 고쳐 영암군에 속하였으며 명종 2년에 감무를 두었다. 본조 태종 17(1417)에 병마도절제사의 영()을 도강 옛 치소에 옮겨 두 현을 합쳐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탐진을 치소로 하였다. 세종 11년에 도강의 송계(松溪)로 옮겼다가 성종 6년에 탐진의 옛 치소로 돌아왔다."라는 기사가 있다. 이 기록에서 두 개 현은 도강(道康)과 탐진(耽津)을 말한다. 따라서 지금의 군명은 1417(태종 17)에 도강과 탐진에서 각각 한 글자씩 취하여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10. 장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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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21pixel, 세로 478pixel

전라남도의 남부에 위치한 군이다. 백제 시대에 오차현(烏次縣)이라 하다가, 신라 경덕왕 때에 오아현(烏兒縣)으로 개칭하였으며, 고려초에 정안현(定安縣)으로 고쳤고, 인종 때에 지장흥부사(知長興府事)로 승격하였는데, 이 때에 장흥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고려사지리지에 따르면 고려 인종(仁宗) 때에 공예 태후(恭睿太后) 임씨(任氏)의 고향이므로 지장흥부사(知長興府事)로 승격하였다고 한다. 1413(태종 13)에 예에 따라 장흥도호부(長興都護府)가 되었으며 위계의 승강(昇降)이 이루어졌다. 해동지도(장흥)에는 읍치 주위에 향교, 예양사우(汭陽祠宇), 연곡서원(淵谷書院), 벽사역(碧沙驛) 등과 함께 아사, 객사, , 고읍면, 부서면, 부동면, 용계면, 부산면, 유치면(有恥面), 웅치면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읍치 남동쪽에 보이는 예탕사우(汭湯祠宇)는 예양사우(汭陽祠宇)의 오기로 보인다. 1895년 장흥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보성군 일부를 병합하였다.

 

 

 

 

11. 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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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47pixel, 세로 432pixel 동쪽은 맹산군과 성천군, 서쪽은 평원군과 안주군, 남쪽은 강동군과 대동군, 북쪽은 개천군과 덕천군에 접했다. 원래 순천·자산·은산의 3군을 합한 군으로, 그 중 순천은 고려시대 때 정융군이라 하였는데 983년에 순주방어사를 두었다. 그 후 1257년에 덕주(德州)에 통합되었다가 후에 분리하여 지군사(知郡事)로 하였으며, 1413년에 순천으로 고쳤다. 또 자산은 본래 고려시대 때 문성군(文成郡)으로서 939년에 태안주(太安州)로 고치고 983년에 자주방어사를 두었으며 후에 지군사로 고쳤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413년에 자산군으로 고치고, 1505년에 본군을 폐하였다가 1506년에 다시 복구하였으며, 1914년에 순천에 통합되었다. 한편, 은산은 본래 고려시대 때 흥덕군(興德郡) 또는 동창군(同昌郡)으로 불렀던 것을 983년에 은주(殷州)로 고치고 은주방어사를 두었으며, 1231년에 몽골군의 침입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몽골 병란 후 성주(成州)의 속현이 되었다. 1391년에 감무(監務)를 두고, 1414년 자산군에 속하였다가 이듬해 분리하여 현감(縣監)을 두고 은산이라 고쳤으며, 1895년 군으로 승격했으나 1914년 자산군과 함께 순천군으로 통합되었다. 195212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순천군은 은산면과 북창면의 일부 지역을 신설된 은산군에게 넘겨주고, 나머지 지역을 합쳐서 순천군을 만들었다. 19745월 은산군이 폐지됨에 따라 은산군의 대부분 지역을 편입하였다.

 

 

12. 구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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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15pixel, 세로 615pixel 전라남도의 북동부에 위치한 군이다. 구례군의 동쪽은 경상남도 하동군, 서쪽은 곡성군, 남쪽은 순천시와 광양시, 북쪽은 전라북도 남원시와 접하고 있다. 삼국사기지리지"구례현은 본시 백제의 구차례현으로, 경덕왕이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어 경덕왕 때부터 지명이 사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189523부제 실시로 구례군이 되었다가 1896년 전라남도에 속하였다. 1906년 전라북도 남원에 속한 산동 · 중방 · 소의 · 고달면 등 4개면이 병합하였다. 구한국행정구역일람에 의하면, 1912년에 구례군은 현내면(縣內面) · 계사면(桂肆面) · 문척면(文尺面) 등의 13개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8개면으로 되었고, 고달면은 곡성군으로 귀속되었다. 1962년 구례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오늘에 이르다.

 

 

 

 

 

참고문헌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제주편, 국토지리정보원,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