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불상과 미술

 

20100174 김지선

 

 

목 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백제불교의 특징

2. 백제의 불상

1) 상징체계

2) 형식

(1) 존상의 형식

(2) 배치구조

(3) 재료에 따른 형식

3) 서산마애삼존불

(1) 본존불

(2) 좌협시 보상사유반가상

(3) 우협시 보살입상

3. 백제의 미술

1) 고분미술

2) 공예

3) 건축과 탑

Ⅲ. 결 론

※ 참고문헌 ※

 

 

Ⅰ. 서 론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마한의 한강 유역 토착 세력과 고구려 계통의 유이민의 결합으로 건국되었다. 여러 민족을 아우르는 백제에서 우수한 철기문화를 보유한 유이민 집단이 지배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후 마한의 여러 속국들을 정복하고 한강 유역으로 그 지배를 넓혀 나갔다.

 4세기 근초고왕 때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강력한 고대국가로 성장하였다. 침류왕때 동진으로부터 승려 마라난타에 의해 전래된 불교를 공인함으로써 왕의 권위를 더욱 향상시키고, 다양한 지배 세력의 사상을 통합하였다. 이렇게 윤회성을 통해 계급질서의 정당성이 성립되자 불교는 왕실이나 귀족의 보호를 받으면서 발전하였다.

 앞으로 전개되어질 백제의 불상과 미술은 먼저 백제의 불교에 대하여 간단하게 살펴보면서 백제의 불교로 인해 불상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백제의 불상을 통해 상징체계, 형식에 대하여 자세하게 살펴보고, 백제의 불상중에서도 대표적으로‘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을 설명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고분미술, 공예, 건축과 탑을 통해 백제의 미술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Ⅱ. 본 론

 

1. 백제불교의 특징

 백제는 세 번에 걸쳐서 수도를 이전하였다. 늘 강을 끼고 있는 넓은 평야 지대를 근간으로 나라가 번영했다. 한강 유역의 광대한 배후지를 가진 한성시대는 한반도의 중심지대로서 풍부한 물산이 산출되어 부강한 나라로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부를 바탕으로 국력이 신장되어 많은 나라들을 정복하면서 근초고왕 당시 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웅진시대 초기에는 간신히 나라를 지탱하는 데 전력했지만 동성왕과 무령왕, 성왕의 전반기까지 백제는 중흥기에 접어들게 된다. 따라서 침류왕때 공인된 불교가 침체기에 있다가 웅진시대에 다시 재건되었다.

 성왕때에 웅진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기게 되면서 부강국으로 급격히 성장하여 문화대국으로 발전하게 된다. 당시의 불교는 남조와 북조, 그리고 수·당의 영향을 받아 삼론·천태·화엄·열반 등의 사상이 주류를 형성하였다.

 이처럼 백제는 시대에 따라 변천, 발전되었다. 백제 고유의 전통을 잘 가꾸어 당대 최고의 매력적인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불교의 힘이 절대적으로 작용하였고 불교의 전모는 분명히 밝힐 수 없지만 단편적인 사료를 종합·분석하면 백제 불교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먼저, 율학사상이 정립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미륵불광사사적기(彌勒佛光寺事蹟記)』에서 전해지고 있다. 둘째, 열반의 사상도 백제 불교의 중요 근간이 되었다. 이는 『삼국사기』에서 살펴보면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열반사상을 들여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를 보았을 때 수준 높은 중국 남조의 열반 사상을 수용한 백제 불교는 불성에 대해 상당한 이해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율학사상과 열반사상 이외에도 법화사상도 백제 불교의 대종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백제 불교의 특징은 이보다도 다양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그 이상의 사상이 주조를 이루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백제 불교의 성격은 당시 백제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2. 백제의 불상

 백제 불상은 시기나 양식에 따라 그 특징이 달라지고 있다. 600년을 전후한 시기의 상당수의 발상들은 백제 특유의 특징 즉, ‘백제의 미’를 창조하였다. 신라나 고구려 불상의 아름다움과는 다르며, 인도나 중국의 불상의 미와도 다른 백제 고유의 미양식을 정립하였다. 이른바 ‘백제의 미’를 완성시킨 것은 백제인의 미적 창조성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1) 상징체계

 백제의 불상들은 구도 배치에서 독특한 형식을 나타내고 있다. 태안마애삼존불에는 2불 1보살이라는 독특한 삼존형식이 있는 반면 서산 마애삼존불의 경우는 본존불과 오른쪽 협시보살은 서있는 입불이지만, 왼쪽 협시보살은 반가사유상을 취한 삼존 형식이다. 또한 정읍 석불입상은 이불병립상이며, 납석제 병립상은 1불 1보살이라는 독특한 불상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예산 사방불 또한 남방 좌불상에 삼면 입상이라는 특유의 사방불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백제 특유의 불상 배치 형식은 6세기 중엽 중국 불상, 특히 북제·주형식의 자유분방한 구도와 연관되지만 세계 유일한 예들이어서 백제 나름대로의 독특한 상징체계라고 말 할 수 있다.

 백제의 불상은 웅진시기 말 사비시기 초기와 6세기 후반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웅진시기 말부터 전체적으로 고졸하고 온화한 경향의 불상이 출현하게 된다. 이는 사비시기에 완성되는 특징으로 ‘백제의 미’가 성공적으로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웅진시기 말부터 6세기 후반부까지의 불상은 형태미를 통해 가장 성공적으로 창조된 형태미를 갖추고 있었으며 양감을 통해 ‘백제의 미’를 돋보이게 하였다. 또한 선의 흐름을 잘 묘사하여 그 미를 더욱 부각시켰다.

 

2) 형식

 백제의 불상 조각으로 금동·소조·석조·마애 등 다양한 소재의 불상이 남아 있을뿐더러 불·보상 역시 돈존식·이불병존식·삼존식·사발불식·군상식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특이한 구도 형식을 보이고 있어 백제의 독자적인 특성을 확립하고 있다.

 

(1) 존상의 형식

 백제의 불상 조각은 불상·보살상·나한상·신장상·기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 불상과 보살상 및 나한상은 확인되었다. 그러나 신장상 등은 아직 백제의 존상의 형식에서 발견되고 있지 않다.

 

① 불상

 아직까지 백제의 불상양식의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많은 불상을 비교하기에는 매우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명문 있는 불상이 거의 발견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불상의 종류를 정확히 밝힌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이 시대의 불상 명칭을 알 수 있는 것은 수인이 주로 공통인으로 이루어진 불상뿐이다.

 

② 보살상

 현재 보살상은 삼존상의 협시나 단독상으로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알 수 있는 경우는 희귀하다. 그러나 관음보살이나 미륵보살의 경우는 매우 독특한 형식 때문에 어느 정도 판단 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에 대한 예로는 6·7세기에 나타나고 있는 관음보살상과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있다.

 

(2) 배치구조

 백제의 불상은 배치 형식에 따라서 독존식, 이불병존식, 삼존식, 사방불식, 군상식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 김제 판불 이외에는 군상 형식은 잘 보이지 않는다.

 

① 독존식

 독존형식의 불상은 불상만 단독으로 봉안되는 형식이다. 이러한 경우 익산 연동리 석불상의 경우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불상의 경우를 살펴보면 불상 자체의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확연히 알 수는 없다.

 

② 이불병존식

 이불병좌상은 중국의 운강석굴에서 보이는 『법화경』「견보탑품」을 도상화한 석가·다고 병좌상이 보편적이다. 백제의 불상에서는 발견된 예가 없지만 두 불상이 나란히 서있는 정읍 불병립상만 발견되었다. 이 경우에는 1불이 없어졌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이불병립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③ 삼존식

 고대 불상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형식이다. 삼존식의 불상의 경우 본존 불상과 좌우 협시보살이 배치되는 삼존식이 일반식이다. 3불을 배치하는 삼불 형식도 있고 불상 좌우에 보살과 나한 또는 나한 2구가 배치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태안 마애불의 경우를 살펴보면, 2불 1보살이 배치되는 특이한 경우도 있다.

 

④ 사방불식

 돌 기둥이나 4각형 물체의 각 면에 불상을 새겨 방위불(方位佛)을 상징하는 불상형식을 말한다. 백제의 사방불은 근래에 발견된 예산 석주사방불의 예가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예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우리나라의 사방불의 시원이 되는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

 

⑤ 군상식

 삼존 형식에 나한·신장·재가신자 등 다양한 협시들을 파노라마식으로 배치하는 형식이다. 백제에는 이런 군상식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는데 김제에서 출토된 금동판불은 불·보살·나한 들이 군도식으로 배치되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군상 형식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부여 정림사에서 출토된 소불상은 불·보살·제자상·공양자상으로 되어 있는데 일종의 군상식으로 배치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3) 재료에 따른 형식

 백제의 불상은 그 제작과정에서 재료에 따른 형식으로 구분지어 설명할 수 있다. 이는 마애불상, 석불상, 금동불상, 소불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① 마애불상

 마애불은 바위 면에다 돋을새김이나 선새김 등의 기법으로 손쉽게 조성할 수 있어서 구석기시대나 신석기시대부터 발달된 것이다. 불교에서는 석굴 등에 마애 기법을 썼기 때문에 특히 발달하였는데 아잔타 설굴이나 간다라의 바미얀 대불 그리고 중국의 유명한 돈황·운강·용문 석굴에 마애불이 조성되어 화려를 극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태안과 서산, 예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마애불상은 중국과 인도의 불교문화와 교류관계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예로써 많이 알려지고 있으며, 중요시되고 있다.

 

② 석불상

 마애불상보다 기법적으로 더 발달했다고 생각되는 입체적인 조각이 바로 석불상이다. 환조로서 입체적으로 조형했기 때문에 보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종교적인 예배 대상으로서는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더욱 애용하였다. 또한 석불상의 경우 변하지 않기 때문에 석질에 따라 갖가지 묘미를 더할 수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불상의 재료로 각광 받아왔다.

 인도에서는 아름다운 백대리석과 사암으로 이루어진 불상이 발견되었고, 중국의 경우 견고한 석질과 아름다운 색깔로 이루어진 화강암제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화강암으로 만든 석불을 볼 수 있으며, 특히 백제의 석불은 납석제와 화강암제가 두루 있는 편으로 모두 백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③ 금동불상

 동에다 도금한 불상을 금동불상이라 하는데 옛 불상에서는 금상이라 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순금상일 경우도 있지만, 금빛이 나서 금상이라하는 경우도 있고 금속상을 통틀어 금상이라 하는 경우도 있다.

 동은 청동기시대부터 애용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종교 예술품에까지 동을 사용한 것은 불교가 들어온 372년 이후라 할 수 있다. 백제에도 이 금동불상은 많이 조성되었는데 작은 소상은 상당수 금동상으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발견된 백제불상은 금동불이 압도적으로 그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④ 소불상

 흙을 빚어 만든 불상을 소불상이라 한다. 주로 진흙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진흙 이외에도 석회가 많이 나는 지역에는 석회를 사용하기도 한다. 흙이나 석회에 짚이나 실 또는 천을 넣어 썩힌 후 돌·나무·철 등의 심 즉, 골조위를 덧바르는 건조식 기법과 흙으로 빚은 후 불을 가하는 소성식인 테라코타 기법 등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백제에서도 일찍부터 소불상을 조성했을 것이지만 현재 완전한 것은 정림사지 소조 작품들과 부소산 출토 소불상 밖에 남아 있지 않아서 그 전모를 파악하는 부분에서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그러나 국립부여박물관에 남아있는 당시의 단편들을 통해서 백제 소조 조각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3) 서산마애삼존불

  <그림> 서산마애삼존불

 충청남도 서산 가야산의 산속 골짜기 암벽에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세 불상이 새겨져 있다. 백제 때 만든 삼존불인데,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불상이지만 실제 알려진 것은 1958년이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도장바위라 부르는 암벽에 부조된 이 불상을 할아버지 얼굴 혹은 산신령으로 알고 믿어 왔다고 한다. 그 후 1962년 국보 제 84호로 지정되면서 ‘백제의 미소’라는 별명이 붙었다.

 

(1) 본존불

 주불은 이목구비가 분명하게 표현하여 통 크고, 명랑 쾌활하며 넉넉한 인품을 가진 대장부의 기상을 드러내게 하였다. 그러나 귓불은 오히려 축소되어 사실감을 더해주고 있다. 크게 뜬 눈, 넓은 눈두덩과 수려한 눈썹, 들창코에 가깝게 드러낸 콧구멍과 넓은 콧방울, 한껏 긴장시킨 아래 위 입술과 양볼 근육, 이런 표현들이 정말 반가워 미소 짓는 애정 어린 얼굴 표정이 드러나 있다. 이것을 우리는 백네의 천진한 미소라고 부르고 있으며, 줄여서‘백제의 미소’라고 한다.

 포복의 옷 주름 표현도 가능한 한 억제하여 다만 대여섯 줄이 물결무늬를 음각 처리하였다. 또한 신대의 매듭도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어깨가 매우 넓어 당당한 체구를 보여주고 있으며, 시무외 여원인을 한 양 손도 높이를 오른쪽이 높고 왼쪽이 낮도록 차이를 두는 동시에 여원인을 한 왼쪽 손만 끝의 두 손가락을 구부리게 하는 변화를 주어 자세가 천연스러워 보인다.

 둥글고 부드러운 백제 특유의 연꽃잎을 가진 복년의 연화대좌위에 맨발로 가지런히 서 있는 모습으로 발가락들이 너무 분명하여 큰 발을 연상케 한다. 광배는 촛불꽃 모양으로 겉테 안에는 불꽃의 표현이 있고 그 속에 3구의 화불 표시도 있다. 안테의 속은 둥근 체 안에 활짝 핀 연꽃이 머리를 싸고도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2) 좌협시 보상사유반가상

<그림> 좌협시

 좌협시 미륵보살사유반가좌상은 의자에 앉아서 왼발로 땅을 짚고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는 반가좌세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의 구분린 무릎을 약간 들어 올리는 듯 하면서 오른쪽 팔굽을 그 위에 기대 세워 오른쪽 턱을 받쳐 생각에 잠기는 듯 한 자세를 짓고 있다.

 상반신은 천의 한 조각 걸치지 않은 알몸인데 목에는 불꽃 모양의 큼직하고 단순한 목걸이가 걸려 있고 허리에 치마 허리가 매어져 있어 치마폭이 그 아래로 흘러 내려와 무릎 아래로 덮어 내려갔다.

 마치 접시꽃 같이 만개한 듯한 둥근 꽃장식을, 산 모양으로 휘어 놓은 모자테의 아래 위로 장식하여, 복잡한 듯 단순하게 만든 화관을 쓰고 있다. 그 뒤로는 두원광이 표현되고, 그 둘레에는 둥근 불꽃무늬가 표현되며 촛불 모양의 불꽃이 새겨져 촉염광 현태의 두광을 보여주고 있다. 화관의 끈이 좌우로 늘어져서 어때 아래 가슴 부위까지 내려와 있다.

<그림> 우협시

(3) 우협시 보살입상

 우협시 보상입상은 좌협시의 미륵보살사반가좌상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두 손으로 보주를 정면에서 가슴 근처까지 높이 받쳐 들고 있으며 구슬을 받쳐든 두 손의 양 팔뚝 위로 천의가 걸쳐져 내려온 것이 다를 뿐이다. 화관도 정면 중앙에 꽃술 형태가 높이 양각되고 그 주변으로 꽃잎이 덩굴 형태로 변형되어 둘러싸며 양쪽 아래로 활짝 핀 접시꽃 두 송이가 장식된 형태라서 미륵보살의 화관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세 불상은 각기 우리를 마주 보면서 서로 다른 웃음을 띠고 있다. 가운데 본존불은 부드러우면서도 통통한 뺨에 동그랗게 뜬 눈으로 얼굴 가득 웃음 짓고 있다. 두 보살상은 또 온화하고도 해맑은 미소를 띠고 있다. 이 웃음들은 시간대에 따라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아침에는 온화함으로, 대낮에는 호탕함으로, 저녁에는 근엄함으로 마치 마술을 보는 듯 변화 있게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다.

 

 

 

3. 백제의 미술

 

 백제의 미술은 약 7세기에 가까운 역사를 이어오면서 그 어느 나라보다 뛰어난 미술문화를 이룩하였다. 이웃나라 일본에도 전해져 일본의 미술문화 형성에 그 어느 분야보다 영향을 미쳐 일본 고대 미술문화형성과 발전에 기여하였다.

 고대 삼국미술의 대표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백제미술은 고구려의 문화와 중국의 전통문화를 적극 받아들이고, 그것을 백제적으로 다시 탄생시켜 매우 세련되고 우아한 미술문화를 꽃피우게 되어 보다 폭 넓은 문화발전을 꾀하였다.

 백제의 미술문화는 고구려의 계통을 이어 나타낸 문화이지만 고구려와 현저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미술품에서 살펴보면 비옥한 국토와 좋은 자연환경에 걸맞게 고구려에 비해 속도가 느려지고, 완만해 졌으며 부드럽고 인간미가 넘친다고 말할 수 있다.

 

1) 고분미술

<그림> 백제 능산리 고분벽화

 백제의 특징적인 미술의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고분미술을 꼽을 수 있다. 부여 능산리 벽화고분 천장에 그려진 비운문과 연화문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과 연꽃을 그렸는데 움직임의 동세가 백제의 특유의 성격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비교적 완만하고 느긋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동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능산리 벽화고분의 비운·연화문이 보여주는 백제적 특징이 백제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로 간취된다. 비운·연화문을 벽면이 아닌 천장에 그려 넣은 것도 고구려나 중국과는 다른 백제적 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백제의 고분벽화는 공주 송산리 벽화고분, 부여 능산리 벽화고분, 부여 규암면 출토의 산수문전 등의 예를 통해 잘 살펴볼 수 있다. 고구려 후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고분의 내부에 사신도 등의 벽화를 그렸다. 중국 남조에서처럼 산수화를 비롯한 감상화를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공예

<그림>  금동대향로

 백제의 공예는 건축의 발달에 수반하여 발전한 와당과 전, 토기 등의 도토공예가 있다. 또한년에 부여 능산리에서 발견된 세계적인 금동향로로 대표되는 금속공예 등은 백제 공예의 우수성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백제의 공예에서 볼 수 있는 뛰어난 조형성, 우아하고 세련된 문양, 기술적인 완벽성 등은 백제 공예의 수수성과 창의성만이 아니라 과학기술과의 철저한 결합을 함께 동반하고 있다.

 한편으로 고구려, 신라, 가야, 왜와도 적극적인 문화교류를 하였다. 고구려의 벽화무덤을 받아들이고, 신라의 황룡사 건설에 기술자를 파견하였으며 가야와는 도기의 형태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특히, 일본에 불교를 전하고 와박사, 경학박사를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공예품도 많이 전해주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칠지도와 상아바둑알이다.

 

3) 건축과 탑

 백제는 삼국 중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문화를 발전시켰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기와를 씌운 궁궐과 사찰의 목조건축이 발달하였고, 화강석을 이용한 탑 등의 석조건축물이 활발하게 조영되었다. 그러나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과 부여의 정림사지 5층석탑 정도만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무왕때 지어진 익산의 미륵사는 발굴 결과 중금당, 동금당, 서금당의 세 금당과 각 금당의 앞에 세워진 세 개의 탑과 더불어 3금당 3탑의 가람배치법을 이루었다. 미륵사에 남아 있는 석탑은 우리나라 최고의 석탑으로 본래 7층이나 9층이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여러 가지 면에서 보았을 때 목조 건축 양식이 보여지고 있다. 그러나 돌로 만들어진 것으로 미륵사는 목탑으로부터 석탑으로의 변화를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림> 상자모양벽돌

 건축의 발달로 건축부재도 발달하였다. 상자모양벽돌이 건축부재의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벽돌에 나타나 있는 사각형 구멍들을 보면 어디에 끼웠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표면에는 둥근 연화문과 인동문이 나란히 찍혀 있는데 지극히 아름답고 백제적임을 알 수 있다. 백제의 건축부재는 벽돌 이외에도 와당도 많이 있다. 백제의 와당들은 한결같이 연판의 잎이 두툼하고 부드러워서 특징적인데 신라와 일본에 많은 영향을 가져다주었다.

 

 

Ⅲ. 결 론

 

 백제의 불상과 미술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먼저, 백제의 불교에 대해 살펴보았다. 백제의 불교는 침류왕때에 들어와 성왕때 공인되면서 백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부문에서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불교가 공인되면서 불상은 자연스럽게 유입되었으며, 고구려의 형식이나 중국의 남조의 형식이 전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백제는 자신들의 독자적인 형식을 꾀하였고, 고구려나 중국 보다 더 섬세하고 우아하게 표현되었다.

 백제의 상징체계를 살펴보면서 도읍을 움직이면서 나타난 변화에 대하여 살펴보았으며 또한 ‘백제의 미’의 창조된 경위를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형식을 통해 백제만의 독특한 형식이 무엇이고, 백제에서 추구하려고 했던 점이 무엇인지 살펴 볼 수 있었다. 그 부분에서는 존상의 형식, 배치구조, 마지막으로 재료에 따른 형식을 통해서 볼 수 있었던 부분이다.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며, 백제의 불상 중에서 빼놓을 수 없고 가장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에 대해서 고찰하면서 삼존불이 어떠한 것이고, 이 불상이 왜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는가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우협시, 좌협시의 생김새와 모습을 통해서 그 시대의 보살상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불상과 더불어 백제의 미술을 보면 삼국중에서 가장 발달한 미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백제의 미술문화는 고분미술, 공예미술, 그리고 건축과 탑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백제적인 요소를 살펴볼 수 있으며 이러한 미술양식과 기법 그리고 미술품들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백제의 우수성을 살펴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백제는 불상과 더불어 미술에 있어서 고구려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백제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승부를 걸었으며, 독자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또한 독특함과 독자적인 문화를 일본에 전파하면서 백제의 우수성을 각인 시켰다. 백제의 불상과 미술은 동아시아에 걸쳐서 매우 커다란 영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 참고문헌 ※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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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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