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불상의 역사

20060379 이해원

20081098 문인환

20100174 김지선

Ⅰ. 서론

Ⅱ. 불상의 기원과 전례

Ⅲ. 한국 불상의 시기별 특징

1. 고구려의 불상

2. 백제의 불상

3. 신라의 불상

4. 통일신라의 불상

5. 고려의 불상

6. 조선의 불상

Ⅳ. 불·보살의 형식

Ⅴ. 수인의 형태

Ⅵ. 결론

* 참고문헌

Ⅰ. 서론

우선 불상에 대해서 정리해 볼 가치가 있는데, 불상은 불타(佛陀 : Buddha)의 가르침을 기초로 한 불교교리에 의한 예배의 대상을 시각적 조형 매체를 통하여 표현한 조각상이다. 엄격한 뜻에서는 부처[如來(여래)]의 존상만을 의미하지만, 넓은 뜻에서는 부처의 상은 물론 보살상(菩薩像)·천왕상(天王像)·명왕상(明王像)·나한상(羅漢像) 등을 모두 포함한다. 불타란 출가하여 수행을 거듭한 뒤 자기 스스로의 진리, 즉 보리를 얻은 각자라는 의미로서 역사상 실제로 존재하였던 부처는 인도의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로 석가모니(釋迦牟尼), 즉 석존(釋尊)이다. 불교에서는 석존 이전의 과거에도 부처가 있어 연등불(練燈佛)·다보불(多寶佛) 및 석가를 포함한 과거칠불(過去七佛)이 있다고 한다. 또한 여러 정토세계(淨土世界)에도 많은 부처가 있으며 사방에 걸쳐 많은 부처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예배의 대상으로서 한국에서 널리 숭상된 불상으로는 석가불·아미타불(阿彌陀佛)·약사불(藥師佛)·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 등이 있다.

이 논고에서는 불상의 기원 및 전래를 밝힘으로써 한국 불상의 유래를 생각해보고, 한국 불상을 시기별로 정리하면서 구체적으로 한국 불상의 역사 및 특징에 대해서 이해해보려고 한다. 또한 불상과 보살의 형식과 수인의 형태를 살펴봄으로써 개괄적인 불상의 형식에 대해서도 알아보겠다.

 

Ⅱ. 불상의 기원과 전래

인도에서는 석존의 입멸 이후 약 500여 년 동안 불상이 조성되지 않았다. 전설에 의하면 석존이 도리천에 올라가서 어머니 마야부인(摩耶夫人)에게 설법을 하였는데 이때 열렬한 신자였던 스라바스티성의 프라스트나지왕과 코삼비성의 우다야나왕은 각각 금과 향목으로 5척의 불상을 만들어서 세상에 석존이 없는 허전함을 달래었다고 한다.

실제 유물상으로 불상이 처음 조성된 시기는 1세기 무렵 쿠샨왕조시대로 불상의 표현이 인체의 형상을 빌려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인도 북서부 간다라지방에서는 헬레니즘문화의 영향으로 불상이라는 신격(神格)이 인체의 형상을 빌려서 표현되는 그리스의 신상표현의 전통이 작용하여 소조상이나 편마암 조상이 많고 서구적 불안(佛眼)에 사실적 표현이 강조되었다. 중북부의 마투라 지방은 인도 고유의 전통을 이어 받아 약간 늦게 불상표현이 등장한 것으로 짐작된다.

인도의 불상은 그 뒤, 굽타시대에 가장 이상적 형태의 불상표현이 이루어졌으며 건강한 체구에 균형잡힌 신체비례와 몸에 꼭 달라붙는 법의를 입은 팽팽하고 긴장감이 도는 불신의 표현이 마투라지방과 사르나스지방을 중심으로 활발하였다. 12세기 이후에는 힌두교의 융성 등의 영향으로 남으로는 해로로 실론과 동남아시아지역으로 북으로는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불교문화가 동전되면서 발전하였다.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1세기 무렵 후한시대로 생각된다. 그러나 유물상으로는 강소성에서 발견된 후한 말기의 마애불상군(磨崖佛像群) 외에는 대부분 3~4세기 무렵 청동거울 뒷면의 부조나 소형의 도제불(徒弟佛), 고식의 청동불 등에 불과하다. 그 뒤 5호 16국 시대에는 북방 호족들의 적극적 불교 수용으로 불상제작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특히 후조의 건무 4년경의 금동불좌상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명문이 있는 불상이다. 5세기 후반까지는 북위시대의 불상에는 서역이나 간다라의 영향이 강하였으며, 6세기 이후 중국화 된 불상조각이 발달하였다. 또한 돈황의 천불동을 비롯하여 남북조시대에서 당대까지 많은 사원과 불교벽화 및 불상이 조성되었다. 현존하는 남조계의 불상은 소규모이며 부드럽고 환미감이 강조되어 온화한 느낌을 주며, 북조의 불상은 강직하고 예리한 조각수법에 엄숙하고 위압하는 듯 한 조형감이 있어 대조를 이룬다. 그 뒤 수나라의 중국통일로 다양한 요소가 혼합되고, 당대에는 중국 불상조각의 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용문 봉선사의 비로자나본존과 주변의 보살·나한·신장상은 7세기 후반의 긴장감이 있으면서 단정한 조각양식을 대표하며, 8세기 초의 보경사의 부조상은 고전적 균형과 조화를 이룬 완숙기의 당대 불상 양식을 보여준다.

 

Ⅲ. 한국 불상의 시기별 특징

1. 고구려의 불상

현존하는 고구려 시대의 불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예는 ‘연가 7년 기미년의 고(구)려국...’이란 기록이 있는 금동불입상이다. 현재 국보 제11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남 의령에서 출토되었지만, 불상에 새겨진 명문을 봤을 때, ‘연가’라는 연호는 고구려의 연호로 추정된다. 또한, ‘기미년’이라는 간지와 불상의 모습을 통해 대체로 539년 기미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연도를 추정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불상이다. 불상의 모습을 살펴보면, 가늘고 긴 얼굴형이나 법의의 주름이 양옆으로 뻗쳐 약간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모습 등이 북위시대 6세기 초 불상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2. 백제의 불상

백제불상은 그 표정이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세련된 조형성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고구려의 활발하고 역동적인 감각이나, 신라의 경직되고 둔중한 조형 감각과는 다른 뚜렷한 특징이다.

삼국시대 석조 불상은 대부분 암벽에 부조로 표현된 것이 많은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백제의 미소’라고도 불리는 국보 제84호의 ‘서산 마애삼존불’이다. 특히 불상의 왼편에는 반가사유상을, 오른쪽에는 보주를 두 손에 마주 잡고 있는 보살입상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 두보살상은 삼국시대에 유행했던 보살상이며, 양쪽에 두 보살을 대동한 배치는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보기 힘든 형태이다. 오른쪽에 보주를 든 보살입상은 중국 남조 지역의 불상과 유사한 형태로 백제와 중국 남조의 문화교류가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3. 신라의 불상

삼국시대 말기인 7세기 중엽에 가까워지면, 불상의 입체감이 강조되고 법의의 표현도 자연스러워지며, 불상의 전면뿐만 아니라 측면이나 뒷면의 묘사에도 관심을 두는 등 그야말로 입체 조각으로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국보 제78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은 삼국시대 가장 대표적인 반가사유상으로 7세기 신라의 금동불상이 예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많이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신체의 비례가 균형이 잡히고 세부 묘사가 구체적이며 늘어진 천이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으로 보아 불상이 점차 조형적이고 균형 잡힌 형태로 변모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삼국시대 말기의 표현양식은 중국의 수나라에서 당나라 초기의 불상 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4. 통일신라의 불상

삼국시대부터 숭상되던 불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정신적인 기반이 되었다.

따라서 통일신라는 사원건축이나 불상 조성에 국가가 앞장섰던 불교문화의 전성기였다.

통일신라의 불상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토착적 불교문화를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교류가 활발하던 당과 서역, 인도의 외래 양식을 수용함으로써 독특한 통일신라의 불상양식으로 발전디어 나갔다.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을 보면, 먼저 입상에는 여원인(與願印)과 시무외인(施無畏印)의 수인을 보여주는 불상이 많고 약이 들어있는 함을 든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국보 제 24호인 석굴암의 본존불을 들 수 있다.

이 불상은 악마를 물리친다는 항마촉진인의 수인을 하고 있지만, 존명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석가모니 부처라는 설, 아미타불이라는 설, 비로자나불 이라는 설, 아촉불 이라는 설 등 다양하다.

석굴암은 이 본존불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둥근 원형 천장과 좌우 대칭적인 불상 배치는 전체적인 구조를 안정되게 하고 있다.

토함산 동쪽 비탈면을 파고 인공으로 굴을 만든 석굴암은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지었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진다. 또한, 석굴암의 본존불은 동해의 문무대왕 수중릉을 향하고 있는데, 이것은 부처의 힘으로 신라를 지키겠다는 호국 불교적 성격을 보여준다. 결국 석굴암은 신라인의 불교에 대한 신앙적 믿음과 호국정신, 그리고 조형적인 예술성을 갖춘 석조 미술품으로 볼 수 있다.

 

5. 고려의 불상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불교문화는 지방의 유력자인 호족들의 후원을 얻어 경주를 벗어나 고려 전역에 확대되게 된다. 따라서 불상도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특히 고려의 불상은 신라에 비해 표현의 세련미나 신비감이 떨어지는데, 고려시대 들어 선종이 전파되면서 경전이나 불상 등의 조형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거대한 석불이 조성되었는데, 이러한 석불은 대중들에게 예배의 대상으로 불교의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또한, 인간적인 모습의 불상이 만들어짐으로써 불교는 대중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었다.

관촉사의 석조 보살입상을 보면 이러한 고려 불상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보물 제 218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높이가 18.12m로 우리나라 최대의 석조 불상이다. 특히 기둥같이 큰 몸체에 관을 쓴 이러한 형태는 충청남도나 전라북도의 석조불, 보살상에서 많이 나타나는 토착적인 불상 형태로 민간 신앙적인 면과도 밀착된 것으로 보인다.

 

6. 조선의 불상

조선시대 불교는 승유억불(承儒抑拂)정책에 따라 전반적으로 침체된다. 그러나 불교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불교는 여전히 개인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 초기 불상은 고려 불상의 전통을 계승하였으나, 점차 토착적인 성격이 강해지면서 국가적 차원이 아닌 개인의 행복이나 내세를 위해 소규모의 불상 제작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당시 불교가 사회적으로 공인되지 못함으로써 불상 역시 예배의 대상이라기보다 형식적 대상이 되고 말았다.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불상은 비례나 조각 등이 답습적이고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결국 조선의 불상은 이전 시기에 비해 예술적인 면에서나 기술적인 면에서 모두 퇴보하였다.

 

Ⅳ. 우리나라 불·보상의 형식

우리나라에는 여러 가지 불·보상이 존재하는데 보통 불상을 알아보는 방법은 불상의 수인이나 혹은 금당의 이름에 따라서 모시는 불상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불보상의 형식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석가모니불

(釋迦牟尼佛)

초기에는 입상의 경우 시무외, 여원인 수인을 한다.

좌상의 경우 선정인 수인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며, 통일신라시대 이후 특히 조선시대에는 항마촉지인을 하는 것이 통례이다.

비로자나불

(毘盧舍那佛)

비로자나의 듯은 부처님의 광명이 어디에나 두루 비친다는 뜻. 즉, 비로자나 부처는 진리의 몸이 온 누리에 두루 비치는 큰 빛을 내어 모든 이들을 이끌어 주시는 부처님이란 뜻이다.

 

비로자나불은 지권인을 짓고 있는데, 신라시대에는 주먹을 가슴에서 아래위로 포개고 밑의 엄지 검지를 오른손 주먹이 감싼 모양이 그리고 고려 후기부터는 주먹 쥔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싼 모양이 주가 되었다.

아미타불

(阿彌陀佛)

아미타불은 영원한 수명과 무한한 광명을 보장해 주는 즉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영원한 부처님이란 뜻으로 서방극락세계를 주재하면서 못 중생들에게 안락과 빛, 수명을 보장해주는 대자대비의 부처님이시다. 아미타불의 수인은 아미타정인과 9품인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약사불

(藥師佛)

약사불은 사람들의 온갖 아픔을 고쳐주시고 사람들이 오래 살도록 보살펴 주시며 재난과 근심을 없애주시고, 옷과 음식을 많이 주시어 잘 살 수 있도록 해주시며, 부처님의 진리를 잘 실천하여 깨달음을 얻게 하시는 부처이다.

노사나불

(盧舍那佛)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수행하신 공덕으로 나타나신 부처님으로 복과 덕이 가득하게 이 세상의 불쌍한 모든 사람을 구제하시는 부처이다. 삼신불의 하나이신 보신불이라고도 한다.

미룩불

(彌勒佛)

석가모니불께서 열반하신 후, 5억 천만년이 지나서 이 세상에 강림한 미륵은 현재는 도솔천 내원궁에서 보살로서 존재해 있으나 그는 이미 수기를 받은 부처님으로 도솔천에 주하며 설법을 하고 계산다고 한다.

미륵불은 석가모니부처께서 미처 제도하지 못한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기 위해서 화림원 용화수 아래에서 성도하여 3회의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신다고 한다.

관세음보살

(觀世音菩薩)

중생의 모든 괴로운 소리를 듣고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손에는 삼로수의 정병을 지니고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정병 대신 연꽃을 잡고 있는 경우도 있다.

대세지보살

(大勢至菩薩)

지혜의 밝은 빛이 모든 중생에게 둘 비추어 위 없는 힘을 얻게 해주는 보살이다. 대세지보살은 아미타불의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머리의 보관 내에 보배병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며 손에는 연꽃을 들거나 합장을 하기도 한다.

문수보살

(文殊菩薩)

석가모니부처를 보좌하는 보살로 석가모니부처의 지혜를 상징한다.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쥐거나 왼손으로는 푸른 연꽃을 지니기도 한다. 좌대는 연화대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청사자를 이용하여 이를 타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보현보살

(普賢菩薩)

보현보살은 대행을 의미한다. 형상은 연화대 위에서 합장한 모습을 나타내며 손에는 연꽃을 쥐고 있는 형상이다. 문수보살이 사자를 타는데 반해 보현보살은 코끼리를 탄다.

지장보살

(地藏菩薩)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사람, 하늘의 육도 중생을 구제해 주시고 지옥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중생을 인도하여 극락세계로 이끌어 주시는 보살님이다. 형상은 머리를 깎은 민머리 아니면 머리에 특수한 가운형 두건을 쓰고 있다. 가사를 입고 연꽃을 들고 있으며 바른 손에는 보배 구슬을 들고 있기도 한다. 혹은 석장을 들고 있으며 동자를 안고 있기도 한다.

 

Ⅴ. 우리나라 불·보상의 수인

위 주제에서 말했듯이 불보상을 살펴볼 때 우리가 반드시 봐야할 것이 바로 불상의 수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주제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불상의 수인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선정인(禪定印)

석가모니가 보리수아래 금강좌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취한 수인이다. 손바닥을 편 채로 왼손은 배꼽 아래에 두고, 그 위에 오른손을 포개서 두 엄지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전법륜인(轉法輪印)

부처가 깨달은 후 바라나시의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비구와 중생들에게 최초로 설법할 때의 수인이다. 양손을 가슴 앞에 올린 채 왼쪽 손바닥은 안으로, 오른쪽 손바닥은 밖으로 향하게 하고 각각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맞붙여 마치 불교의 법륜(法輪)을 상징하는 것 같은 모양이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 앉아 성도(成道)할 때 악귀의 유혹을 물리친 증인으로 지신(地神)을 불러 자신의 깨달음을 증명하였다는 내용에서 유래되었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결가부좌한 다리 가운데에 놓고 오른손은 무릎 밑으로 늘어뜨리면서 다섯 손가락을 편 모양이다.

●시무외인(施無畏印) 여원인(與願印)

시무외인은 부처가 중생의 모든 두려움을 없애주고 위안을 주는 수인이다. 인도의 초기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오른손 또는 왼손을 어깨 높이까지 올리고 다섯 손가락을 세운 채로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한 형태이다.

●지권인(智拳印)

이 수인은 주로 밀교계의 대일여래가 취하는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화엄종의 주존불인 비로자나불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합장인(合掌印)

보통 예배를 드리거나 제자와 문답(問答)할 때 취하는 수인으로, 귀명인(歸命印) 또는 일 체절왕인(一切切王印)이라고도 한다. 두 손을 가슴 앞에 올리고 손바닥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양으로 인도의 바르후트 대탑이나 산치 대탑 등의 부조상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아미타정인(阿彌陀定印)과 구품인(九品印)

선정인에서 약간 변형된 것으로 아미타불의 수인이다. 묘관찰지정인(妙觀察智定印)이라고도 한다. 손바닥을 위로 한 왼손에 오른손을 포개서 배꼽 부근에 놓고 각각 둘째손가락을 구 부려서 그 끝이 엄지손가락에 닿게 한 모양이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의하면 중생들은 성품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 중, 하 3등급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세분화하여 9등급으로 나누어서 각 사람에게 알맞게 설법해야만 구제할 수 있다고 한다.

이 9품에 따라 아미타불의 수인도 각각 다르다.

구품인은 상품상생인, 상품중생인, 상품하생인, 중품상생인, 중품중생인, 중품하생인, 하품상생인, 하품중생인, 하품하생인을 말한다.

 

Ⅵ. 결론

위에서 알아본 것처럼 우리나라의 불상의 대한 역사와 더불어서 불상의 종류, 그리고 불상의 전례, 불상의 수인까지 알아보았다.

불상은 전체적으로 1세기를 전후하여 등장하여, 기원전에는 무불상 시대에는 탑이 그 의미를 더 크게 가졌지만 기원후에는 불상이 만들어지면서 그 의미가 매우 커졌다 할 수 있다.

신앙의 중심이 불상으로 이동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소망을 불상, 즉 부처가 이뤄주길 고대하면서 기도를 드리고 깨우침을 얻고자 했다.

우리가 앞으로는 불상을 보면서 단순히 불상이라는 것만 보기보다는 그 불상의 어떤 부처를 상징하는지와 더불어 어떤 수인을 하고 있는지 또한 수인을 통해서 그 부처를 알 수 있는 안목을 키워서 단순히 불상을 보기보다 그 의미를 보면서 우리가 보는 사원에서는 어떤 부처를 모시고 있으며, 당시 시대의 사람들이 불상을 보면서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아가면서 본다면 더욱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 참고문헌

1) 문명대, 『한국불교미술사』, 한언, 1997년

2) 문명대, 『한국불교미술형식』, 한언, 1999년

3) 박도화, 『보살상』, 대원사, 2004년

4) 진흥섭, 『불상』, 대원사, 200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