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지역개관

20030416 최 미 진

20081141 이 슬 비

우리나라의 동남부지방의 道로서 북쪽은 강원도와 충청북도, 서쪽은 충청북도와 전라북도에 접해있으며, 동쪽은 동해에 면해 있다. 동쪽은 태백산맥, 북서쪽은 소백산맥이 자연적인 경계를 이루어, 전체적으로 하나의 큰 분지 모양을 이룬다. 전반적으로 농업인구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김천-구미-대구-영천-포항을 잇는 지역은 도시화ㆍ공업화가 진전되어 인구가 집중분포하며, 특히 포항은 철강을 비롯한 한국 중공업의 핵심지이다. 남북간의 거리가 약175㎞ 동서간의 거리가 약162㎞이다. 총면적은 1만9,447㎢로 남한의 도중에서 가장 넓다.

경상북도가 삼한시대에는 진한의 땅이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757년 (경덕왕16)에 나눈 9주중에서 상주(尙州)와 양주(良州)가 경상북도에 속했다. 그 후 고려 태조 때에 동남도로 되었다가 995년 (성종14)에 영남도ㆍ영등도ㆍ산남도로 나뉘었으며, 1106년(예종1)에 다시 경상진주도로 합쳐진 후 몇 차례 개칭을 거쳐 1314년(충숙왕1)에 경주와 상주의 지명을 합친 '경상도'라는 명칭이 확정되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1407년(태종7)에 군사상의 이유로 낙동강을 경계로 좌도와 우도로 나눔에 따라 좌도의 대부분과 우도의 일부를 포함하게 되었고, 1594년(선조26)에 이를 다시 합쳐 성주 팔거현(八 縣:칠곡)에 감영을 두었다. 가명은 그 후 달성(達成:대구)과 안동으로 옮겨졌다가 1601년(선조34)에 오늘날의 대구에 자리 잡게 되었다. 1895년(고종32)에 전국을 23부로 개편할 당시 경상도에서는 대구ㆍ안동ㆍ진주ㆍ동래의 4관철부를 두었는데, 오늘날의 경상북도는 대구부와 안동부 이외의 동래부의 일부를 포함하였고, 1896년(고종33)에 전국을 13도로 개편함에 따라 경상북도를 떼어 대구에 관찰사를 두고 41개 군을 관할하게 하였다. 그리고 1914년 군면 폐합시에 대구는 1부와 22군으로 개편되었고, 1931년에 읍면제가 실시됨에 따라 같은 해에 김천ㆍ포항ㆍ경주ㆍ상주ㆍ안동, 1937년에는 영천ㆍ예천ㆍ감포, 1940년에는 대구 이외에 포항ㆍ김천이 시로, 안강ㆍ왜관ㆍ청도가 읍으로 승격되는 동시에 포항군이 영일군으로, 김천군이 금릉군으로 독립하였다. 1955년에는 경주가 시로 승격되는 동시에 경주군이 월성군으로 개칭되었고, 1963년에는 강원도 울진군이 편입되는 한편 안동이 시로 승격되었다. 1978년에는 구미시가 신설되고, 1980년에는 영주가 시로 승격되는 동시에 영주군이 영풍군으로 개칭되었다.

경상북도에 문화재는 국보 44점, 보물 232점, 사적 86개소, 천연기념물 42종, 중요무형문화재 7점, 중요민속자료 57점등의 국가지정문화재와 유형문화재 232점, 무형문화재 15점, 기념물 71점, 민속자료 87점등의 도지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229점이 있다. 문화재 총수는 전국의 1/4을 차지하고 있는데, 신라문화의 중심지인 경주지방은 국보ㆍ보물ㆍ사적이 유교문화의 중심지로서 역사와 전통이 오랜 안동지방은 유형문화재와 민속자료가, 울릉도는 천연기념물이 많다.

1. 안동시

▪ 행정구분 - 1읍 13면 10동

▪ 면적 - 1520 ㎢

▪ 인구 수 - 169,239명

▪ 가구 수 - 64,409명

▪ 상징물

시화 - 매화

매화는 잎이 피기 전 꽃이 먼저 피므로 아름답고 사군자중 하나로 고결함이 군자와 같아 안동시의 얼과 통한다.

시목 -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심근생 장수목으로 잘 자라고 공유수과에 속하는 품위 있는 나무로 장수하므로 시민의 번영과 전승, 협동, 총화를 상징

ㆍ 시조 - 까치

까치는 조용한 주택가에 접한 야산에 살면서 집 주변을 날아다니며 반갑고 귀한 손이 올 때 대문이나 지붕 위, 담장 등에서 울어준다는 길조이다.

안동의 역사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우리 안동은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이미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안동은 삼한시대에는 진한에 속하였으며 삼국사(三國史)에 의하면 B.C 57년 염상도사(念尙道士)가 길지(吉地)를 찾아 이곳에 와 처음으로 창녕국(昌寧國)이라는 부족국가를 세웠다고 전한다.

신라 때는 고타야군(古陀耶郡)으로 되었다가 고구려에 인접한 관계로 한때는 고구려에 속하여 굴화현(屈火縣)으로 불리었으며 진흥왕때 부터는 계속 신라에 속하게 되었다.

경덕왕(757년)때 군현제도(郡縣制度)의 개혁으로 고창군(古昌郡)으로 개칭되었다가 그 후 일계군(一界郡), 지평군(地平郡), 화산군(花山郡), 고령군(古寧郡), 고장군(古藏郡), 석릉군(石陵郡) 등으로 그 명칭이 변경되기도 했다.

고려 건국 초 태조 왕건(王建)과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군내(郡內) 병산(甁山)에서 싸울 때 고을 성주인 김선평(金宣平) 장길(張吉) 권행(權幸)이 고을민을 이끌고 태조를 도와 그 공이 컸으므로 부(府)로 승격하고 안동으로 고쳤다(태조 13년:930년). 그 후 영가군(永嘉郡)으로 고쳤다가 성종 14년(995년)에 길주(吉州)로 하였다가 현종 3년(1012년) 안무사를 두었다가 동 21년(1030년)에 다시 안동부(安東府)로 하였다. 명종 27년(1197년)에 남적(南賊) 김삼(金三) 효심(孝心) 등이 주군(州郡)을 겁탈 노략하니 차사(差使)를 보내어 평정하였는데 부(府)가 공이 있다하여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고, 신종 7년(1204년) 동경(東京:경주)의 야별초 (夜別抄) 패좌(悖佐) 등의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자 이번에도 이를 진압 하는데 공이 있었음으로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하였다. 충렬왕 34년(1308년) 다시 복주목(福州牧)으로 고쳤다가 공민왕 10년(1361년)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여 왕이 남쪽으로 행차하여 이 고장에 머무를 때 고을백성이 충성을 다해 왕을 봉공하였으므로 다시 대도호부로 승격하고 인근 17개 군현(郡縣)을 관할하게 했다. 우왕 9년(1383년)에는 안동도(安東道)로 개칭하고 원수(元帥)겸 부사(府使)를 두었다가 동 14년(1388년)부사제(府使制)로 환원하였다. 914년 예안군(禮安郡)을 병합 19개면으로 편성하고, 1931년에는 안동면을 안동읍으로 승격과 동시 일부 면을 통·폐합함으로써 1읍 15면 218동으로 개편되었다.

1962년에 안동읍을 그대로 시(市)로 승격하여 명칭을 신안동시(新安東市)라고 하였으나 시명(市名)에 대한 시민들의 의사에 따라 개칭하여 1963년 1월 1일을 기하여 안동시(安東市)가 되었다. 1973년에 풍산면(豊山面)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74년에 안동댐으로 월곡면(月谷面)이 폐지되었다. 1995년에 안동시(安東市)와 안동군(安東郡)이 통합하여 통합안동시(統合安東市)가 되어 1읍 13면 18동으로 되었고,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1997. 7. 1에 5개 동이 폐지되어 1읍 13면 13동으로 되었고 1998. 12. 1에 2차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3개 동이 폐지되어 1읍 13면 10동으로 되어 현재에 이른다.

2. 의성군

▪ 행정구분 - 1읍 17면

▪ 면적 - 1176.6 ㎢

▪ 세대 및 인구수 - 26,813명

▪ 연혁

신라 벌휴왕 2년 신라에 병합이전 조문국

신라 경덕왕 16년 문소군

고려초에 의성부로 승격

조선 고종 32년 의성군

1940년 11월 1일 의성면이 읍으로 승격, 1읍 16면

1990년 4월 1일 안사출장소가 안사 면 승격, 1읍 17면

▪ 위치

의성군은 영남지방으로서 경상북도의 중앙에 위치하며, 조선시대 경상도가 좌·우로 갈라졌을 때는 경상좌도에 속했다. 북쪽은 안동시와 예천군에 접하고, 동쪽은 청송군, 남쪽은 군위군과 구미시, 서쪽은 상주시와 인접하고 있다. 군청소재지는 동쪽지역에 치우쳐 있다.

의성군의 경·위도상의 위치는 동극(東極)이 춘산면 금오리, 서극(西極)이 단밀면 낙정리, 남극(南極)이 가음면 현리리며, 북의 극지점은 다인면 용곡리이다. 의성군과 위도상 비슷한 위치에 있는 지역은 동쪽으로 청송군과 영덕군이며, 서쪽으로는 상주시와 충북 보은, 옥천군, 대전광역시, 충남의 청양, 부여, 보령이다.

조선시대의 역도(驛道)로는 안기도(安奇道) 소속으로 철파역, 청로역이 있었고, 유곡도(幽谷道) 소속으로 낙동역, 안계역, 쌍계역이 있었는데 낙동역에는 참(站)이 설치되어 교통의 최대 요충지였다. 이 밖에 많은 원(院)이 있는 것을 보면 그토록 교통이 발달된 것을 알수 있다. 또한 낙동강에서 도리원까지는 위천을 거슬러 수운(水運)까지 이용되었다.

의성군이 도의 중앙에 위치하여 도내 시군과는 직선거리가 울진군을 제외하면 모두가 80km 이내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육로상의 거리도 도로망의 발달로 점차 단축되고 있다. 중앙선 철도가 금성면, 의성읍, 단촌면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중앙고속도로는 봉양면, 안평면을 통과하면서 봉양면 도원리에 의성 IC가 설치되어 있다. 대구-안동간 5번국도가 4차선으로 확장되고 의성-영천간, 봉양-다인간의 국도 등 총연장이 85km 이며 지방도가 211km, 군도가 140km에 달한다.

의성지방에는 예부터 비안현, 단밀현, 다인현이 있어서 이 현들이 조선후기까지도 상주, 예천에 영속되기도 하고 의성에 영속되기도 하여 그곳 문화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신평면의 북부지역은 지리적인 관계로 안동 생활권에 근접해 있고, 과거에는 안동시의 길안면 일부와 청송군 현서면의 일부가 의성생활권에 근접했으나 교통의 발달로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3. 영주시

▪ 행정구분 - 1읍 9면 9동

▪ 면적 - 668.94 ㎢

▪ 인구 - 116,062 명

▪ 인구밀도 - 174 명/㎢

▪ 가구수 - 44,447 세대

▪ 지형적 특징

동경 128°25′∼128°44′, 북위 36°04′∼36°52′. 남북이 길고 동서로는 협소하며, 소백산맥이 서남쪽으로 뻗어 주봉인 비로봉(1,439m), 국망봉(1,421m), 연화봉(1,394m)과 죽령을 경계로 하여 도솔봉(1,315m)으로 이어진 소백산 산록 고원부지에 형성되어있으며 동쪽으로는 봉화군,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단양군, 남쪽으로는 안동시와 예천군, 북쪽으로는 강원도 영월군과 접경을 이루고 있으며, 소·태백권 교통의 중심도시이다.

시의 북쪽에서 서쪽 경계선을 따라 뻗은 소백산맥과 여기서 갈라진 지맥들이 동·남으로 이어지면서 분지상의 지형을 이룬다. 소백산맥에는 선달산(1236m)·어래산·형제봉·국망봉·소백산(1439m)·제1연화봉(1394m)·제2연화봉·도솔봉 등의 험준한 산봉들이 솟아 있고, 그 고개인 죽령을 통하여 기호지방과 교통이 이루어진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쪽과 남쪽에는 비교적 낮은 산지가 분포한다.

하천은 소백산맥에서 발원한 남원천·금계천·죽계천·단산천이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의 지류인 서천으로 모인다. 또 낙화암천·오울천을 받아들인 내성천이 서천과 나란히 남류하는데 토질은 대부분이 사질양토로 각종 농산물이 잘 자라며, 특히 북부 산악지대는 사양토이기 때문에 배수가 잘되어 인삼, 사과 등의 생육에 적절한 곳이다. 이 두 하천과 각 지류 유역에는 비교적 비옥한 침식분지가 발달해 있다.

경상북도 북부 산악지대에 위치하여 대륙성기후의 특징인 한서의 기온차가 심한 편이다. 계절적으로 봄과 가을이 짧으며 1월 평균기온은 -3.2℃ 안팎이며 8월의 평균기온은 24.2℃를 나타낸다(평년값 기준). 연강수량은 약 1,237.0mm이다. 겨울(12월∼2월)의 강수량은 108.3mm로서 7.1%의 비율을 차지하고 여름(6월∼8월)의 강수량은 744mm로서 49%를 차지하는 다우지역이다. 여름에는 한 달에 10일 꼴로 비가 오나 겨울에는 한 달에 4일 내외이다.

▪ 역사

삼 국

고구려의 내기군 및 급벌산군

신라의 파사왕이 점령

신라로 복속(AD100 무렵)

통 일 신 라

내기군을 내령군으로 개칭

풍기지역에 기목진 설치

고 려

기목진을 기주로, 급산군을 흥주로 개칭(995)

내령군을 강주로 개칭하였다가 다시 순안으로 개칭(1143)

급벌산군은 흥주로 하였다가 다시 순정으로 개칭

순흥을 부로 승격(1348)

조 선

순안을 영천으로 개칭하고 군수를 두었으며, 기주는기천현으로 개칭

문종의 안태지로 은풍, 기천 두 고을의 이름을 따 풍기로 개칭

순흥을 도호부로 승격(1413)

순흥도호부는 폐부, 영천군, 풍기군, 봉화현에 분리 편입(1457)

순흥도호부 부활(1683)

칙령28호로 안동부 관할(고종32년, 1895)

일제강점기

부령 제111호로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을 합쳐 영주군(1914)

부령 제221호로 영주면이 영주읍으로 승격(1940)

광 복 이 후

풍기면이 풍기읍으로 승격(1973)

영주읍이 영주시로 승격되고 풍기읍과 9개면은 영풍군으로 분리(1980)

영주시, 영풍군이 통합(1995)

4. 군위군

▪ 지형

군위군은 경상북도의 중앙에 위치하여 남북이 짧고 동서가 길며, 지세는 곳곳에 산악의 기복이 심하여 평탄치 못하다. 남쪽에는 팔공산이 옹립하여 대구광역시와 접경하면서 산맥이 동서로 긴 성벽과 같이 이루어져있고 그 산맥이 동으로 뻗어 청송군 및 영천시와 군계를 지어 분수령을 형성하고 있다. 군의 중앙을 꿰뚫어 흐르는 위천은 우리군의 극동인 고로면 학암리에서 발원하여 북단인 소보면 사리리를 지나 의성군 비안면에서 쌍계천과 합류하여 낙동강 본류로 흐르고, 위천 지류인 남천은 팔공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부계·효령 양면을 거쳐 효령면 병수리에서 위천에 합류되며, 하천유역의 양안에 농경지가 형성되어 군위·소보·효령·의흥 등의 평야지대는 관개가 용이하고 토질은 사양토로 비옥하여 농경에 적합하다.

▪ 기후

기후는 비교적 온화하나 평균기온이 여름에는 23.9℃이고, 겨울에는 영하 1.2℃정도로서 한서의 차가 심하며, 산악에는 수목이 적어서 기후의 난화조절이 잘 되지 아니하고 하기에는 한발과 수해가 자주 있다.

삼 한

삼한시대는 진한의 여담국, 소등붕국 등 부족국가를 형성함

삼 국

신라초기에는 노동면혁(여두멱이라고도 함)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6년(서기757) 전국에 9주를 설치하고, 군·현의 명칭을 고칠 때 군위현, 효령현, 부림현으로 하여 고선군(현:선산)의 영현이 됨

고 려

현종9종(서기 1018)에 군위현, 효령현, 부림현(부계현으로 개명)이 상주목에 속했으며, 의흥군은 안동부에 속함

인종21년(서기 1143)에 다시 군위현, 효령현, 부계현이 상주목에서 일선군으로 환속되 었으며 공양왕2년(서기1390)에 효령현이 군위현으로 이속되었으며, 부계현은 의흥군으로 각각 통합하여 감무를 둠

조 선

태종13년(서기 1413)에는 의흥군을 의흥현으로 격하됨

고종32년(서기1896)에는 다시 군위현과 의흥현이 군으로 승격

고종33년(서기 1896) 8월 4일 훈령 제 35호로 13도제 실시에 따라 경상북도의 군위군과 의흥군으로 됨

일제강점기

1914년 3월 1일 부령 제 111호로 부·군·면의 통폐합에 따라 의흥군을 군위군에 8개면을 관할할 때 의성군 소야면 (현:인곡,양지,낙전,가암,석산,학암) 일부가 군위군 고로면에 편입되었으며 1915년 1월 1일 부령 제 173호로 의성군 소문면(현:용대)이 군위군 군위면에 편입됨

광 복 이 후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의성군 금성면 광현1,2,3 동이 군위면에, 선산군 산동면 도산 1,2동이 소보면에 편입되어 8개면 177개동을 관할

1979년 5월 1일 군위면이 군위읍으로 승격(1읍 7면)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계면 고곡동,매곡동이 효령면에 산성면 원산동, 금양동이 의흥면에 편입됨

1988년 1월 1일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산성면 화전동이 화전 1,2동으로 불동되었 으며, 동년 5월 1일자로 동이 리로 명칭 변경됨

1989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보면 대흥 1,2리가 군위읍으로 편입됨.

1991년 1월 1일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부계면 대율 리가 대율1,2리로 분리되어 1읍7면 179리를 관할

1996년 3월 13일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군위읍 서부1리가 서부1,3리로 효령면 고곡1리가 1,3리로 부계면 남산리가 남산1,2리로 각각 분리되어 1읍 7면 182리를 관할

▪ 연혁

 

충청북도 지역개관

답ㆍ준ㆍ위

한반도 중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닿지 않는 유일한 내륙도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주변을 경기도ㆍ강원도ㆍ충청남도ㆍ경상북도ㆍ전라북도가 에워싸고 있다.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진천군 백곡면으로, 충청남도 아산만으로 부터 직선거리로 약 47km 떨어져 있다. 동부는 험준한 소백산맥이 강원도 및 경상북도와 자연적 경계를 이루고 있지만, 서부에는 뚜렷한 지형적 장애가 적고 금강은 교통로 구실을 해왔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강원도나 경상북도보다는 충청남도와 경기도와 교류가 많았고 중부문화권에 결속되어 왔다. 남한의 중앙에 위치해 왔기 때문에 고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각축장 이었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서울에서 영남을 잇는 길목에 해당 되었으며 근래에는 철도와 고속도로 등으로 서울과의 접근성이 향상되면서 산업이나 주민생활에서 서울의 영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충청북도 북부의 중원문화권과 중부 및 이남의 서원문화권으로 나누어진다. 남한강 상류 유역의 중원 문화권은 한강을 통해 서 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왔다 중원 문화권의 중심지인 충주는 본래 고구려의 국원성이었으며 신라 영토가 된 이후에도 중원경이 되어 요충지의 역할을 계속했고,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줄곧 남한강 상류 일대를 통괄하는 행정중심지로 기능해왔다. 서 원문화권은 금강을 통하여 서부와 교류가 잦았다. 이곳의 중심지인 청주는 백제의 상다현이었으며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천안에서 영동에 이르는 지역을 관장했다.

국가지정문화재(국보 8, 보물 33, 사적 및 명승 1, 사적 10, 천연기념물 21, 중요 민속자료 21)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149, 기념물 64, 민속자료 7), 문화재자료 11점이 있다. 속리산 법주사는 불교미술로 알려진 곳으로 법주사팔상전(국보 제 55호)·법주사쌍사자석등(국보 제 5호)·법주사 석연지(국보 제 64호) 등온 공예품과 불전 건축비가 뛰어나며 속리산 어귀에는 조선 세조대에 벼슬을 받았다는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 103호)이 있다. 청주시 동편 청원군과 의 경계에 위치한 백제시대에 쌓았다는 상당산성(사적 제 212호), 신라 자비왕 때 쌓았다는 상당산성(사적 제 212호), 신라 자비 왕 때 쌓은 보은군 보은읍의 삼년산성(사적 제 235호), 고구려 장수 온달이 용맹을 떨쳤다는 단양군 영춘면의 온달산성(사적 제 264호)은 충청북도의 대표적 산성이며, 단양면의 신라적성비(국보 제 198호), 청주시의 용두사지철당간(국보 제 41호)도 널리 알려진 역사적 유물이다.

보은은 1983년 동학교도들이 교조 최제우의 신원운동을 크게 펼쳤던 곳이며, 제천군 봉양면의 배론 마을은 조선말 천주교가 박해를 받던 시절에 천주교도들이 숨어살고 신학교가 세워졌던 곳으로 한국 천주교사에 길이 남을 만한 상징이었다. 영동군 심천면 은 조선시대에 아악을 크게 발전시킨 난계 박연이 태어난 곳이다. 주요 문화예술행사로는 청주시의 충북예술제와 충북미술대전, 영동군의 난계예술제, 충주시의 우륵문화재 옥천군의 중봉 충렬제, 진천군의 상산축전, 단양군의 소백산철쭉제와 죽령산신제 등이 있다.

1. 청주시

청주는 서울 동남방 128㎞지점에 위치한 중부권의 내륙도시로 반경 40㎞내에 대전, 천안, 괴산, 보은 등이 인접해 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기점 119.6㎞에서 청주IC로 접어들면 마치 환영이라도 하듯 도열해 있는 5㎞의 시원한 플라타너스 가로수터널을 지나 시내에 들어서면 시가지를 아늑하게 감싸듯 솟아있는 우암산과 도심을 관통하여 휘감아 흐르는 무심천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유서 깊은 교육문화의 도시, 청주를 만나게 된다.

청주는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로서 행정뿐만 아니라 정치·경제·교육·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삼한시대에 마한의 땅으로 백제 시대에 이르러 상당현(낭비성 또는 낭자곡)이라 칭하고 군사적 요충지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 지리적 중요성으로 인해 5소경중의 하나인 서원경으로 승격, 지방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청주로 지명을 개칭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 수운이 발달한 충주가 교통의 요지로 부상함에 따라 청주는 상대적으로 발전이 정체되었으나 1905년 경부선철도 개통과 함께 발전의 전기를 맞게 되었으며, 1908년에는 관찰사가 충주에서 청주로 이전되었다. 1920년 충북선 개통은 지역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으며 1946년에 청주부와 청원군이 분리되었고 1949년에 청주시로 승격되었다. 그후 행정동 분동, 청원군 편입 등에 거쳐 1989년 7월에 2개의 출장소(동부·서부)가 설치되었고 1995년 1월에 출장소가 구(동부 -상당, 서부-흥덕)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충주시

삼국시대에 고구려·백제·신라의 접경지역으로 문화재가 많이 분포한다. 국가지정 문화재로 소태면 오량리의 청룡사 보각국사정혜원융탑(국보 197)을 비롯한 국보 3점, 보물 8점, 사적 3점, 중요민속자료 1점, 무형문화재 1점이 있고, 도지정문화재로는 유형문화재 20점, 기념물 9점, 민속자료 1점, 문화재자료 1점, 무형문화재 2점이 있다.

선사시대부터 높은 문화수준을 이루었는데, BC 4∼BC 3세기에는 마한에 속하였다. 그뒤 마한이 백제에 병합되었으나, 다시 고구려에 속해 475년(장수왕 63) 국원성(國原城)이라 하였다. 신라 때인 557년(진흥왕 18) 국원소경(國原小京)이라 하였고, 757년(경덕왕 16) 중원소경(中原小京)이라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에는 940년(태조 23) 충주라 개칭하였고, 983년(성종 2) 충주목(忠州牧)이라고 하였다. 995년(성종 14) 중원도에 예속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1395년(태조 4) 충청도 관찰사를 두었으며, 1896년(고종 33) 충청북도의 수부(감영)로서 관찰사를 두었다. 1908년(순종 2) 경부선에서 벗어나 있어 교통이 불편하다 하여 도청을 청주로 이전시키고 군수를 두었다. 1917년 충주군 읍내면이 충주면으로 개칭되었고, 1956년 7월 충주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나머지 지역은 중원군으로 분리되었다. 1963년 괴산군 상모면이 중원군에 편입되었다. 1989년 중원군 살미면 목벌리(木伐里)와 이류면 만정리(萬井里) 일부를 충주시에 편입하였다. 1995년 도·농 통합정책으로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하여 충주시가 되었다.

충주시는 우리나라의 중앙부와 동북부에 위치하며 동북으로 제천시, 서쪽으로 음성군, 남쪽으로 괴산군과 경상북도, 북쪽으로 경기도/강원도와 경계를 이루며, 동남쪽으로 소백산맥의 여맥인 계명산, 남산, 대림산, 월악산과 서쪽으로 둘러싸인 산간분지로 형성되고 남한강과 달천강 및 요도천이 충주시를 관통하여 옛부터 수운이 편리하고 수자원이 풍부한 내륙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위도상으로 볼 때 대개 북위 37도 16분 ~ 36도 18분을 차지한 중위도 지역으로 온대 계절풍 지대를 형성하여 사계의 구별이 뚜렷하며 한서의 차가 심한 기후로 계절에 대한 감각과 한대, 열대 등 이질적인 풍토에도 순응할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켰다. 동경 127도 45분 ~ 128도 1분을 차지하여 우리나라 동서간의 중간 지대에 위치한다.

3. 보은군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국경 분쟁지였다가 신라가 70년(자비왕 13)에 삼년산성(三年山城)을 축조하여 백제와 국경을 이루었다. 502년(지증왕 3) 삼년산군(三年山郡)이라 하였다가 742년(경덕왕 1) 삼년군(三年郡)이라 개칭하였다.

927년(고려 태조 10) 보령(保齡)으로 고쳤다가 얼마 후에 보령(保令)으로 다시 고쳤으며 1018년(현종 9)에 경상도 상주(尙州)에 속하게 하였고, 1172년(명종 2)에는 감무(監務)를 두었다.

1406년(조선 태종 6) 보령(保令)이 충청남도의 보령(保寧)과 발음이 같다 하여 보은(報恩)으로 고치고 현감을 두었으며, 1413년(태종 13)에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옮겼다. 1790년(정조 11) 순조의 태실(胎室)을 속리산에 봉안하여 그 봉우리를 태봉(胎峰)이라 하고, 1895년(고종 32) 현에서 군으로 승격시켰다. 1914년 3월 군폐합으로 회인군(懷仁郡)을 병합하여 회남면(懷南面)·회북면(懷北面)으로 하고, 충청남도 대덕군 오동령리를 편입하였다.

회인은 본래 백제의 미곡현(米谷縣)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에 매곡현(昧谷縣)으로 고치고 연산군(燕山郡)에 예속시켰다. 그 뒤 고려 초에 회인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 청주에 속하게 하였으며, 1383년(우왕 9) 감무를 두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 현감(縣監)을 두고, 1895년(고종 32) 승격시켜 군수를 두었다가 1914년 3월 일부는 청주로 이속시키고 나머지 대부분은 보은군에 예속시켰다.

1947년 2월 속리면을 내속리면(內俗離面)·외속리면(外俗離面)으로 분할하고, 1973년 7월에 보은면이 읍으로 승격하였고, 1991년 보은군 내북면 염둔리를 없애고 행정구역을 조정하였다. 2003년 현재 보은읍과 내속리·외속리·마로(馬老)·탄부(炭釜)·삼승(三升)·수한(水汗)·회남(懷南)·회북(懷北)·내북(內北)·산외(山外)면의 1읍 10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4. 단양군

구석기시대(약 70만년전)부터 인류가 살아온 선사문명의 발상지로 지금의 단양군은 옛 단양군에 영춘현이 병합된 곳이다. 단양읍·매포읍·대강면·적성면은 옛 단양군 지역에, 영춘면·가곡면·어상천면 일대는 옛 영춘현 지역에 해당한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했으며, 삼국시대에는 본래 고구려 적산현(赤山縣), 혹은 적성현(赤城縣)이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내제군(奈堤郡:현재의 제천시)의 영현이 되었다. 551년(진흥왕 12)에 백제와 신라의 공동작전으로 신라의 영토가 되어 진흥왕이 순시할 때 세운 적성비가 남아 있다.

940년에는 단산현(丹山縣)으로 고치고, 1018년(고려 현종 9) 원주에 속했다가 뒤에 충주로 이속되었고, 고종 때 고을 사람들이 합단(哈丹)의 침입을 물리친 공으로 감무(監務)를 두었으며, 1318년(충숙왕 5) 단양으로 이름을 바꾸고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되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 단양군(郡)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충주부(忠州府)가 관할하다가, 1914년 군면폐합에 따라 영춘군(永春郡)을 병합하여 단양군이 되었다. 영춘군은 고구려의 을아단현(乙阿但縣)으로 신라 경덕왕 때 자춘(子春)이라 개칭하여 내성군(奈城郡:현재의 제천시)의 영현이었고, 고려 때 영춘으로 고쳐서 원주(原州)에 속하였으며, 1399년(조선 정종 1) 충청도에 이관하여 감무(監務)를 두었고, 1413년(태종 13)에 현감(縣監)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영춘군이 되어 충주부 관할이 되었다가 1896년 충청북도에 속했다. 영춘군 지역은 영춘ㆍ가곡ㆍ어상천ㆍ차의곡의 4개 면으로 구분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단양군에 통합되었다. 단양군 성립 이후 면의 개칭 및 폐합이 있었고, 1976년 영춘면 서부지역 5개 리에 별방(別芳) 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79년 단양면, 1980년 매포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하였고, 1992년 1월 구(舊)단양출장소가 단성면으로 승격하였다.

2003년 현재 단양읍ㆍ매포읍과 단성면ㆍ대강면ㆍ가곡면ㆍ영춘면ㆍ어상천면ㆍ적성면 등 2읍 6면으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