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지진

img18.gif99 김상현

위  치: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624

문화재: 사적 제 255호

 효종 7년(1656) 안산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국방을 튼튼히 하는 차원에서 강화에 천험한 요새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강화도 해변에 8개의 진을 설치한 것도 이러한 정책의 일부분이었다. 초지진에는 초지돈, 장자평돈, 섬암돈이 소속되어 있는데 이 돈대들은 숙종 5년(1679) 함경도, 강원도, 황해도의 승군 8천 명과 어영군 4천 3백 명을 동원하여 40일 동안에 걸쳐 49개의 돈대룰 축성할 때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이때 9개의 포대도 축조되었는데 초지진 남쪽 진남포대에는 대포 12문이 설치되었고, 초지진 앞의 대황산 황산포대에도 대포 6문이 설치되었다. 신미양요는 그 전에 대동강에 불법으로 들어왔다가 선원이 전멸하고 불타버린 셔먼호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1871년에 미국이 일으킨 침략 행위였다. 초지진은 신미양요 때 최대 격전지 가운데 하나였는데 덕진진과 광성보가 함락당하고 어재연 장군 이하 전수비군이 전사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 뒤 일본은 1875년 고의로 운양호 사건을 일으켜 결국 1876년 굴욕적인 '강화도 조약'을 체결했다. 초지진은 그러한 수난을 통해 모두 허물어졌다. 1976년 간신히 남아있던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 위에 초지진의 초지돈을 복원하고 대포 1 문을 포각 속에 전시했다. 이 돈대에는 3개소의 포좌가 있고 100여 개의 총좌가 있다.  

높이가 4미터 정도에 긴축이 100미터쯤 되는 타원형 돈대이다. 성과 돈대 옆의 소나무에는 당시의 전투를 말해 주는 포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