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성보

답준위

위  치: 인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33

문화재: 사적   2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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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는 강화 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흙과 돌을 섞어 쌓은 축성이다.

조선 광해군 때 다시 보충하여 효종9년(1658)에 광성보를 설치하였으며, 숙종(1679)때 완전한 돌성으로 만들었다.

광성보는 정문인 안해루가 있고, 신미양요때 순국한 어재연, 어재순 장군의 쌍충비각, 신미순국 무명용사비, 신미순의총이 있다. 광성보에는 광성돈대, 손돌목돈대, 용두돈대가 있으며 오두돈대와 화도돈대는 파손되어 현재 복원중에 있다.

광성돈대에 있는 홍이포는 포구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포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화포로 사정거리는 700m이며 조선 영조때부터 주조하여 사용하던 것이다. 화약의 폭발하는 힘으로 포탄은 날아가지만 포탄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은 약한 편이다.

중단 크기인 소포는 포구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포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화포로 사정거리는 300m이며 우리나라 재래식 화포중 가장 발달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불랑기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널리 사용된 화승포로 포 1문에 다섯 개에서 아홉 개의 자포를 결합하여 역속사격할 수 있는 발달된 화기이다.

손돌목 돈대는 광성보에서 가장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강화 일대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다.

손돌목 돈대에는 전설이 하나 있다. 고려 고종이 몽고의 침입을 피해 강화로 피신하던 중 광성보를 지나자 갑자기 뱃길이 막혔다. 피신길에 있던 왕은 뱃사공인 손돌의 계략이라 여겨 그를 죽이라 명령했다. 손돌은 이곳의 지형으로 인한 것이라 말했지만 왕은 손돌의 말을 믿지 않았다. 손돌은 뱃길 앞에 바가지를 띄우고는 그 바가지가 떠가는 대로만 가면 뱃길이 트일 것이라 일러주고는 처형을 당하였다. 결국 왕은 손돌이 가르쳐 준대로 바가지를 띄워 무사히 강화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어왔다. 왕은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크게 뉘우쳐 말머리를 베어 손돌의 넋을 제사 지내니 그제야 풍랑이 그쳤다고 한다. 그 후로 사람들은 덕진진 앞 좁은 둑길을 손돌목이라 불렀다. 그 앞산에는 손돌의 무덤이 있고, 해마다 손돌이 죽은 10월20일경에는 큰바람이 불어 손돌의 넋이 아직도 그곳에 있음을 암시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부른다.

용두돈대는 광성보에 소손된 돈대중 가장 아름다운 돈대이다. 해협을 따라 용머리처럼 쑥 내민 암반을 이용해 축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