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법천사지

01학번 송유라

위  치: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산70외 59필지

문화재: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제59호), 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101호)

 

img56.gif법천사는 불교의 양대 교단이었던 법상종과 화엄종 가운데 법상종계의 절로, 통일신라시대에 세웠고 고려시대에 크게 융성하였다. 고려 문종(1019∼1083) 때에 지광국사(984∼1067)가 이곳에 머물면서 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없어진 뒤로 새로 짓지 못해서 현재는 폐사되었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태재(泰齋) 유방선이 여기에 머물면서 학문을 강의하였는데, 이 때 권람, 한명회, 강효문, 서거정 등이 배웠다 한다.

이 절터에는 사찰 등의 건물은 없지만, 석조물로 고려 선종 2년(1085)에 건립된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제59호)가 남아있다. 그 옆에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정원으로 옮겨진 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101호)이 있었다.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제59호)

법천사터에 세워져 있는 지광국사(984∼1067)의 탑비로, 국사가 고려 문종 21년(1067)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현묘탑과 함께 이 비를 세워놓았다. 현묘탑은 현재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탑비만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거북은 목을 곧게 세우고 입을 벌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얼굴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의 얼굴에 가까운 형상으로, 턱 밑에는 길다란 수염이 달려 있고 부릅뜬 눈은 험상궂다. 독특한 무늬가 돋보이는 등껍질은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면을 나눈 후 그 안에 왕(王)자를 새겨 장식하였다. 비몸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양 옆면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인데,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의 용이 정교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은 네 귀가 바짝 들려진 채로 귀꽃을 달고 있는데, 그 중심에 3단으로 이루어진 연꽃무늬 조각을 얹어 놓아 꾸밈을 더하고 있다.

비문에는 지광국사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安民厚)가 중국의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삼아 부드러운 필체로 썼다.

고려 선종 2년(1085)에 세워진 작품으로, 거북등의 조각수법과 머릿돌의 모양이 새로운 것이 특징이다. 비앞면 가장자리에 덩굴무늬를 새기고, 양 옆면에 정교한 조각을 한 치밀함이 돋보여 형태와 조각이 잘 어울리는 고려시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법천사당간지주(문화재자료20호)

img57.gif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이곳에 깃발을 달게 되는데, 이 깃발을 거는 길다란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양 쪽에서 지탱시켜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드물게 당간이 남아있는 예가 있으나, 대개는 두 지주만이 남아있다.

이 당간지주는 법천사 절터에 남아 있는 것으로,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제59호)와 함께 터를 지키고 있다. 기둥에는 별다른 조각이 없으며,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고 있다. 기둥사이에는 당간을 꽂아두기 위한 받침돌을 둥글게 다듬어 마련해 놓았다. 두 기둥의 윗부분은 모서리를 깍아 둥글게 다듬어 놓았고, 안쪽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을 파놓았다.

당간의 받침돌이 본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작품으로, 기둥 형태가 안정감이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