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사

98학번 김광면

위  치: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

문화재: 상원사 목조 문수동자좌상  (國寶 : 제22호), 상원사동종(國寶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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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上院寺) 창건연대는 뚜렷하지 못하나 세조(世祖)가 이절에 거동하였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 기록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성찰(盛刹)로서 조선시대까지 존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398년에 조안화상(祖眼和商)이 중창(重創)하였으며 세조8년(1463)에는 왕이 직접 거동하였고 곧이어 중창불사(重創佛事)를 행(行)하였므며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원찰(願刹)이 되었다. 순종(純宗) 원년(1907) 왜병이 이지역에 집결해있던 의병(義兵)을 소탕하기 위해 불을 질러 법당(法堂)만 남겨놓고 모두 타 버렸는데 1918년에 주지(住持) 최화송화상(崔華松和尙)과 화주(化主) 차상원이 큰방을 복원하였다. 이어 1934년에 주지(住持) 최경언(崔璟彦)이 증수하였으나 1950년 6.25사변시 모두 불타버렸다. 1969년이 되어서야 주지(住持) 덕송(德松)이 초막(草幕)삼칸(三間)을 짓고 복원에 착수했으며 1970년에는 주지 경한니(鏡漢尼)가 취임하여 요사(寮舍)와 삼성각(三聖閣) 대웅전(大雄殿) 용화전(龍華殿)을 차례로 복원(復元)하였다.

 상원사동종(國寶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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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성덕왕은 선왕(先王)을 위하여 봉덕사를 창건하고 인왕도량(仁王道場)을 베풀어 민생을 구제하기에 애썼다. 성덕왕 24년(725)에 극히 아름답고 음향 또한 청량한 범종(梵鐘)을 조성하였으니 이 종이 이른바 상원사 동종이라 부르는 것이며, 현존하는 종 중에서 가장 오랜 것이다. 그 높이는 167㎝이며, 입지름은 91㎝가 된다.

종의 꼭대기 부분에는 정교하게 무늬를 조각한 용뉴(龍紐)와 음관(音管)이 있고, 몸체 위 아래에는 유려한 무늬를 새긴 띠가 돌려졌으며 윗 띠에 붙여서 4개처에 유곽(乳廓)을 두고 그 안에 각각 연꽃 봉오리를 새긴 유두(乳頭) 9개씩이 솟아있다. 또한 종신(鐘身)의 공간에는

양쪽면에 각각 공후와 생황을 연주하는 비천상(飛天像)이 무릎을 세우고 구름 위를 나는 모습을 두드러지게 새겨 넣었는데 천의(天衣)자락과 영락(瓔珞)이 경쾌하게 흩날린다. 이 비천상 사이의 양쪽 공간에는 둥근 당좌(撞座)가 있는데 그 모양은 여덟 잎 연화를 당초넝쿨이 감싼 모양이다. 이렇듯 독특하고 아름다운 의장을 갖추고 있는 범종 양식은 중국이나 일본의 종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한국 종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용뉴 우에는 명문(銘文)이 음각(陰刻)되어 이 종의 제작 연유(緣由).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開元十三年乙牙正月 八日鐘成記文部合鍮

개원십삼년을아정월 팔일종성기문부합유

三千三白餘兩重普衆 都唯乃□□歲道直 衆僧忠七沖安貞應

삼천삼백여양중보중 도유내□□세도직 중승충칠충안정응

旦越有休六舍宅夫人 休道里德香舍上安舍 南毛匠舍 □大舍

단월유휴육사택부인 휴도리덕향사상안사 남모장사 □대사

이 종이 처음 어느 절에 소속되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영가지(永嘉志)』에 의하면 경상도 안동 아문(衙門)에 걸려 있었다 하며 조선 예종 원년(1469)에 현재의 상원사로 옮겨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한편 안동에서 죽령을 넘어올 때 종이 움직이지 않아 유두 1개를 떼어 안동으로 보낸 연후에야 비로소 옮겨갈 수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오기도 한다.

이 종의 세부 의장(意匠)을 살펴보면

1. 상대·하대

이중의 연주문(蓮珠文) 띠에 둘려진 반원권을 상연(上緣)에 붙여서 6개소에 둘러 배치하고 그 여백에는 반원형의 연꽃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되게 당초넝쿨을 구성하여 채워넣은 매우 화려한 무늬를 보여준다. 그 반원 속에는 상·하에 다같이 4명의 주악비천상을 부조하였다.

2. 유곽

유곽 둘레에도 상·하대의 무늬와 비슷한 모양을 부조하였고 그 내부에는 9개의 유두 가 연꽃받침에 도들어지게 나타내었는데 그 꼭지는 연봉으로 표현하였다.

3. 당좌

중앙의 심방을 중심으로 8엽 연꽃을 돌리고 외원에 안팎으로 연주문을 돌려 그 안에 당초문을 유려하게 조식하였다.

4. 비천상

종신의 넓은 공간 상대하는 두 곳의 구름 위에서 무릎을 세워 하늘을 날으며 주악하는 비천상이 부조되었다.

<상원사와 세조에 얽힌 이야기>

 세조가 왕위에 오른 직후, 병명(病名)을 알 수 없는 괴병(怪病)에 걸렸다. 그것은 전신에 종기가 생기고 고름이 나는 등 견디기 어려운 증세를 보였다. 명의(名醫)와 비약(&#25644;藥)이 모두 효험이 없자, 왕은 오대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문수도장(文殊道場)에서 기도(祈禱)하여 법력을 빌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세조는 산간벽수(山間碧水)에 발을 담그고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였다. 주위 시종(侍從)들에게 자신의 추한 꼴을 보이기 싫어서 평소에도 늘 어의(御衣)를 풀지 않았던 세조였지만, 하도 경치가 좋아서 시종들을 멀리 보내고, 혼자 그곳에서 목욕을 하였다. 그때 한 자그마한 동승(童僧)하나가 숲 사이를 노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세조는 그 동승(童僧)을 불렀다. 그리고 자기의 등을 좀 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목욕을 마친 세조는 그 동승(童僧)에게 다시 부탁하였다. "그대는 어디 가든지 임금의 옥체(玉體)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 동자(童子)가 말했다. "대왕도 어디 가거나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親見)하였다고 발설하지 말라." 말을 마치자 동자는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왕은 놀라서 주위를 살폈다. 그때 왕은 자기 몸의 종기가 씻은 듯이 나은 것을 보았다. 왕은 크게 감격하여 주의의 화공(畵工)에게 명(命)하여 그림을 그리도록 하였다. 자신의 기억력을 더듬어 몇 번의 교정(校正)을 거친 끝에 드디어 실제와 근사한 동자상(童子像)을 완성(完成)하였다.

그것을 상원사(上院寺)에 봉안(奉安)토록 명(命)하고, 길이 자기가 겪은 일화(逸話)가 유포(流布)되도록 하였다. 지금 문수동자(文殊童子)의 화상(畵像)은 없어졌고, 본당(本堂)의 오른쪽에 모셔진 목각상(木刻像)이 바로 문수동자상(文殊童子像)이다. 세조가 문수동자(文殊童子)를 친견(親見)한 곳은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갈라지는 큰 길목 10㎞ 지점(地點)이며, 그때 세조가 그곳에서 의관(衣冠)을 벗어 나무에 걸었다고 하여, 그 길목을 <갓걸이> 이라 부른다.  

 

<상원사 주요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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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목조 문수동자좌상  (國寶 : 제22호)

 

상원사에 봉안된 조선 초기의 문수동자상. 1466년작. 크기 98㎝이다. 최근 이 동자상 안에서 발견된 복장유물(腹藏遺物: 寶物 제793호)에 의하면, 세조의 둘째딸인 의숙공주(懿淑公主)부부가 1466년(세조12)에 이 문수동자상을 문수사에 봉안한다고 적혀져 있어 왕실발원의 뛰어난 목조동자상임을 알 수 있다. 동자상임을 알려주는 양쪽으로 묶은 동자머리를 제외한다면 자세라든가 착의법(着衣法) 등에서 보살상 형식을 따르고 있는 독특한 동자상이다. 즉 왼쪽 다리는 안으로 접고, 오른쪽 다리는 밖으로 둔 우서상(右舒相)의 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손 모양은 오른손은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은 내려서 엄지와 약지를 거의 맞댈 듯이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또한 동자와 같이 앳된 미소를 띤 양감 있는 얼굴이라든가 부드럽게 굴곡진 허리, 균형 잡힌 안정된 신체,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비스듬히 묶은 천의(天衣), 신체의 윤곽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부드러운 옷주름선 등에서 앞 시대의 영향이 엿보인다. 그러나 얼굴을 약간 숙인 모습이나 가슴 아래에까지 올라오는 상의(裳衣)의 윗부분을 수평으로 처리한 점, 불룩한 가슴의 젖꼭지 표현 등에서 같은 시기에 조성된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출토 금동석가좌상(1459∼1493)과의 친연성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 왼쪽 어깨에 N자형으로 드리워진 천의자락이 한번 둥그렇게 말린 점이나 목걸이 이외에는 장식이 거의 없는 점은 1476년(성종7)경에 제작된 강진 무위사(無爲寺)의 목조아미타삼존상, 특히 협시보살상들과 비슷하다.

이 문수동자좌상은 연대와 발원자가 뚜렸하고 단독으로 봉안된 희귀한 예로서, 조선 초기 조각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세조 때의 흥불정책(興佛政策)에 힘입 어 왕실에서 조성한 수준높은 목조상으로 조선적인 불상미를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 대 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일괄 2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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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물들은 1984년 7월 상원사 목조 문수동자좌상에서 발견된 유물로 석탑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듯이 불상에도 사리를 장치하고 복장을 만들어 넣은 매우 보기 드문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