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

01학번 홍인희

위  치: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1

문화재: 월정사팔각구층석탑(국보48호), 월정사부도군(문화재자료42호)

▶종파 :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

▶창건시기 : 643년

▶창건자 : 자장

 

▷월정사는 전나무 숲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사찰이다. 사람이 가장 살기 좋다는 해발 700m의 고장을 자랑하는 평창에 있는 오대산 월정사. 월정사는 상원사와 함께 오대산을 지키는 대표적인 절 중의 하나이다.

월정계곡을 따라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1km 넘게 펼쳐진 전나무 숲은 계곡과 함께 많은 여행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월정사에서 오래된 고풍스러운 법당을 찾아 볼 수 없는 이유는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건물들은 모두 최근에 복원한 것이다. 그러나 부도밭과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되는 9층석탑(국보48호)이 남아 월정사의 맥을 잇고 있다

▷월정사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동쪽 계곡의 울창한 수림 속에 자리잡고 있다. 동대 만월산을 뒤로하고, 그 만월산의 정기가 모인 곳에 고요하게 들어앉은 월정사는 사철 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여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띤다. 그 앞으로는 맑고 시린 물에서 열목어가 헤엄치는 금강연이 또한 빼어난 경관을 그리며 흐르고 있다.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자연 조건이며 풍광이 빼어날뿐더러 예로부터 오만 보살이 상주하는 불교성지로서 신성시되어 왔다. 그 오대산의중심 사찰로서 신라 때부터 지금까지 일천사백여 년 동안, 개산조 자장율사에서부터 근대의 한암, 탄허스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름난 선지식들이 머물던 곳이려니와, 월정사는 오늘날에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이 곳 전나무 숲의 그 곧음과 푸름으로 승가의 얼을 오롯이 지키고 있는 한국 불교의 중요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월정사는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니 그 때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이었다. 자장율사는 636년에 중국 오대산으로 유학을 가고 그곳 문수사에서 기도하던 중에 문수보살을 친견한다. 자장율사는 “너희 나라 동북방에는 일만의 내가 상주하고 있으니 그곳에서 다시 나를 친견하라”는 게송을 문수로부터 듣고 신라에 돌아오자 마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오대산에 들어가 임시로 초가를 짓고 머물면서 다시 문수보살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정진하였다. 자장율사는 문수보살을 친견하지 못하고 태백 정암사에 들어가 입적하게 된다. 비록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는 뜻은 끝내 이루지 못했으나 이로부터 월정사는 오대산 깊은 계곡에 터를 잡게 되었다.

그 뒤로 유동보살(석가모니가 전생에 보살로서 수행할 때 연등불(燃燈佛)에게 공양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당시의 이름)의 화신이라고 전해지는 신효거사와 또 범일국사의 제자였던 두타승 신의 스님이 자장율사가 초가를 지었던 터에 다시 암자를 짓고 살았다. 신의스님 이후로 오랫동안 황폐한 채로 남아 있던 이 암자는 수다사(水多寺) ( 진부면 수항리에 있던 절로 지금은 절터만 남아 았다.)의 장로 유연스님이 새로 암자를 짓고 살면서 비로소 절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고 그 뒤로 차츰 규모가 커졌다.

그 무렵의 월정사는 금당 뒤쪽이 바로 산인 특수한 산지가람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금당 앞에 탑이 있고 그 옆에 강당 등의 건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는 남북자오선(南北子午線) 위에 일직선으로 중문, 탑 ,금당, 강당 등을 세운 신라시대의 일반적인 가람 배치와는 다르다.

그 뒤로 고려 충렬왕 33년(1377)에 화재로 모두 타버린 것을 이일스님이 중창하고 조선시대까지 계속 법등을 밝혀 왔는데 조선 순조 33년(1833)에 또다시 큰 화재를 입고 말았다. 그런 지 십일 년 뒤인 헌종 10년(1844)에 이르러 영담, 정암 스님 같은 분이 앞장서서 중건하여 큰 사찰로서의 모습을 다시 회복하였다. 이 절은 《조선왕조실록》 등 귀중한 사서(史書)를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史庫)가 있었고, 1464년(세조 10)에 말사인 상원사(上院寺)를 중수한다는 말을 듣고 이를 돕고자 시주물(施主物)과 함께 보내 온 《오대산 상원사 중창권선문(五臺山上院寺重祠勸善文)》이 보관되어 있다.

1911년에는 전국 31본산의 하나가 되어 강원도 남부의 사찰을 총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랜 역사를 간직해 오던 월정사는 1950년 6. 25 전쟁의 참화로 칠불보전七佛寶殿을 비롯하여 영산전, 광응전, 진영각 등 17동 건물이 모두 불타고 소장 문화재와 사료들도 모두 재가 되어버린 비운을 맞이하였다.

지금의 월정사는 1964년 탄허스님이 적광전을 중건하고 그 뒤로 만화스님과 현해스님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중건하여 이룩한 것이다. 그리하여 어엿한 대가람의 모습을 되찾게 된 월정사는 비록 몇 차례 화재와 전화로 많은 성물(聖物)과 문화재를 잃긴 하였으나 나름대로의 독특한 특징을 지닌 당우들이며 국보로 지정된 팔각구층석탑을 비롯하여 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 8각 9층석탑과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있다. 이 밖에 일명 약왕보살상(藥王菩薩像)이라고도 하는 보물 제139호인 석조 보살좌상(菩薩坐像)이 있다.

 월정사팔각구층석탑(국보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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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8각 모양의 2단 기단(基壇) 위에 9층 탑신(塔身)을 올린 뒤,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을 새겨 놓았고, 아래·위층 기단 윗부분에는 받침돌을 마련하여 윗돌을 괴어주도록 하였다. 탑신부는 일반적인 석탑이 위층으로 올라 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과 달리 2층 탑신부터 거의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으며, 1층 탑신의 4면에 작은 규모의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마련해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계단 모양의 받침을 두지 않고 간략하게 마무리하였고, 가볍게 들려있는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아 놓았다. 지붕돌 위로는 머리장식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데,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서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고려시대가 되면 4각형 평면에서 벗어난 다각형의 다층(多層)석탑이 우리나라 북쪽지방에서 주로 유행하게 되는데, 이 탑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 전기 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당시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적인 비례와 조각수법이 착실하여 다각다층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또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을 통해 금속공예의 수법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월정사부도군(문화재자료42호)

img45.gif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이 부도밭은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길의 전나무 숲속에 자리하고 있는데, 모두 22기에 이르는 부도들이 흩어져 있다.

운공성관(雲空性觀)·금성당(金聖堂) 등의 호를 가진 승려들의 사리를 모시고 있는 이 부도들은 낮은 받침위로 종모양의 탑몸돌을 올린 모습들이 대부분이나, 2층 기단(基壇)과 지붕돌을 갖춘 부도의 모습도 간혹 눈에 띈다.

크기는 1∼2m 내외의 그리 높지않은 체구로,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