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오대록

 

序論

本論

 1.불상의 기원

 

 2.불상의 형식

  ①32吉相(길상), 80種好(종호)

  ②手印(수인)

  ③光背(광배)

  ④服裝(복장)

  ⑤臺座(대좌)

 

 

 3.한국 불상의 양식

 

 

結論

 

                

序 論

 

 불교는 비록 고구려시대 소수림왕때에 들어온 외래 종교지만, 그 이전부터 백성들을 중심으로 믿어져왔던 종교이다. 이 불교는 우리나라 고유의 토속신앙을 탄력적으로 받아들이고 수많은 고승들이 나와 우리나라에 맞게 우리의 종교로 더욱더 발전 시켰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현재 우리 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역사적 가치가 풍부한 불교 문화를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의 억불정책과, 일제 식민지시대의 문화재 수탈,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찬란했던 불교문화가 훼손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우리 나라에는 일년 365일 부지런히 보고 느껴도 볼 수 없을 만큼 많은 불교문화가 산재되어 있다. 우리가 이번에 가는 곳은 불교의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수많은 고찰들과 불교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이번에 불교에 있어서 부처의 상징적인 의미로 그 의미가 있는 불상에 대해서 준비하게 되었다. 그 동안 많은 사찰을 다녀봤지만 아마 쉽게 지나쳤을 부분이었을 불상, 준비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그저 그냥 아무 의미 없이 만들어지는 것이 없다고 느꼈다. 불상은 불상 자체가 예술, 불교의 교리, 상징 등이 혼합되어 있는 불교의 종합적 예술품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나는 우선 불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4가지 부분으로 나누었다. 우선 첫째로 불상의 기원 즉 불상의 개념과 전래과정, 재료에 대해서, 둘째는 불상에 있어서 대좌, 광배, 수인 등의 불상의 형식에 대해서 알아보겠고, 셋째로는 입상, 좌상, 여래상, 반가사유상 그리고 비로사나불상, 아미타여래상등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한 예배상의 종류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우리 나라의 불상 양식의 변화와 그 특징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겠다. 현재 불상 연구의 자료는 많이 나오고 있으며 황수영, 정병모등의 학자들의 저술서가 많이 나와 있다. 나는 이 두 사람의 저술서와 인터넷 매체를 이용하여 이 글을 준비했다. 이것은 나의 글이기보다는 내용을 모두가 보기 쉽게 정리한 것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本 論

 

1. 佛像의 기원

 

 불상은 부처의 형상을 회화·조각 등의 조형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불상의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면 불상의 출현이 있기 전에는 예배 대상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 이유는 부처의 열반 후에 사람들은 함부로 부처의 형상을 본뜨거나 그의 얼굴을 조형한다는 것에 대해서 모두들 불경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이것이 바로 부처 사후에 나타나는 무불상의 시대이다. 하지만 이들 불교도의 예배 대상은 따로 있었다. 무불상 시대의 예배 대상은 바로 탑, 금강보좌, 보리수가 그 대상이 되었다. 약 5세기 동안의 무불상 시대가 지나고 불상이 비로소 제작되기 시작한 시기는 인도의 쿠샨 왕조의 가니슈카왕 때인 서기 2세기 초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 무렵 두 곳에서 거의 동시에 불상을 제작하였으니 한곳은 인도의 서북부, 지금은 파키스탄이 된 간다라 지방이고 다른 한 곳은 인도 북부의 마투라 지방이다. 그러면 불상을 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하나는 외적인 자극이고 하나는 내적인 요구가 있었던 까닭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그들이 신봉하는 신을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하면서 그것이 조금도 신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석존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사람들은 바로 간다라 지방에서 그리스 문화에 접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불상 불표현의 원칙을 타파하고 인간의 형태로 불상을 제작한다는 중대한 전환이 간다라 지방에서와 같은 외적인 자극만으로 이루어 졌다고는 볼 수 없고 이에 더하여 내적인 요구가 있었음도 사실인데, 다만 간다라 지방에서는 외적인 자극이 좀더 강하게 작용하였을 뿐이고 이에 대하여 내적인 요구가 더 강하게 작용한 곳이 마투라 지방이었다. 부처를 볼 수 있는 삼매에 빨리 도달할 수 있는 여려가지 방법을 든 가운데 '부처의 형상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린다'는 말이 있음을 보면 부처를 보고 싶어하는 심정이 불상을 제작하는 데 큰 자극제가 되었음은 분명한 것이다. 이런 그리스 문화의 접촉의 외적 인 면과 그들의 부처에 대한 내적인 염원이 바로 불상의 기원이 될 것이다. 이런 기원을 바탕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불상의 양식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밑에서 설명되겠지만, 이 불상의 형식은 불상이 만들어지던 때부터 인도 그리고 중국, 한반도를 거치게되고, 또한 삼국, 고려, 조선 이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하나의 체계로 정착되게 된다. 다음으로 불상의 재료를 살펴보면 금, 철, 동, 금동, 돌, 나무, 흙 등의 다양한 재료가 불상을 만드는데 이용되고 있으며 이용되어져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교에서는 재료의 선택에 대해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 바로 재료의 귀천에 따라서 공덕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대목이라 볼 수 있다. 단지 금이나 비싼 재료로 불상을 만드는 것은 공경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수단일 뿐인 것이다. 하지만 이 재료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기준은 있다. 그것은 바로 깨끗함이다. 금속상을 만들 때 그 재료는 한번도 세속의 용기로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하여야 하며, 불상을 만들려하다 중간에 다른 종류의 불상으로 바꾸어 만든다 던 가 하는 것은 엄격히 금하고 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불상은 석조, 금제, 동제, 철제, 목제, 등이 있어나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불상은 석불이다. 그것은 석탑이 우리나라에 많은 이유하고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이 든다. 바로 생산적인 조건과 내구성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2.佛像의 형식

 

 불상 불표현의 원칙을 타파하고 인가의 형태로 불상을 제작한다는 중대한 전환이 있은 후에 이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어떠한 법칙을 정해서 부처의 정신을 계승하려 했다. 그것이 바로 이 불상 조성의 형식인데 그들의 부처에 대한 존경이 여기에 나타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인 부처의 모습에는 그 초월한 특징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불상을 보면 여러 가지 인간과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갖출 수 없는 불상으로서의 특징인 동시에 부처의 존엄성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표현의지 이기도 하다. 이러한 불상의 형식에는 기본적으로 32길상(吉相)이 있으며 이것에 따라서 대좌, 광배, 수인 등의 특징이 차례로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불상을 조성하는 데는 불상 자체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불상이 앉는 대좌(臺座)와 불상 뒤의 광배(光背), 즉 불상과 대좌와 광배가 모두 갖추어져 있어야 그 전체를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불상을 조성할 때 대좌와 광배를 갖추어야 불상의 전체적 상징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면 불상의 형식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 보기로 하겠다.

 

①32吉相(길상), 80種好(종호)

  32길상과 80종호를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너무 난해하고 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개괄적인 설명으로 대체를 하겠는데 흔히 불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32길상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불상이 갖추어야할 32가지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좀 더 자세히 표현한 것이 80종호, 63상이다. 5백번의 전생에서 6바라밀의 대행을 수행하며 선인(善因)을 맺어 최후로 인간의 상으로 태어날 때 특수한 상을 구비하게 되었다. 32길상은 이러한 선인(善因)이 결과이며 다시 말해 32길상을 얻기 위하여 그러한 선인을 심었다고도 볼 수 있다. 80종호는 부처의 묘상인데 32길상을 대상(大相)이라 하고 80종호는 소상(小相)이고 따라서 수상(隨相)이다. 경전에 따르면 불신은 반드시 32길상, 80종호를 구비해야 하고 이것이 곧 불신이 어떻게 생겼느냐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으로서 이것을 벗어나서는 불상을 만들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불상을 제작할 대는 이러한 것이 실제로 표현가능한가에 난맥이 있다. 실제로 표현할 수도 없는 것도 있고, 또 구태여 표현하면 우리들 눈에 이상하게 보이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②手印(수인)

  수인은 부처나 보살의 손 또는 손가락으로 이루는 특정한 동작을 말하는데, 두 손만으로 상징적인 모양을 나타내는 경우(手印)와 손에 연화(蓮華) ·검(劍) ·정병(淨甁) ·보주(寶珠) ·석장(錫丈) 등의 지물을 잡은 모습(契印)의 구별이 있다. 불교도상학(佛敎圖像學)에서 이들 인상은 교리 적인 의미나 특정한 일화를 상기시키므로 불의 신원(종류)을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주요 수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는 선정인(禪定印)으로 참선할 때 짓는 수인으로 결가부좌로 앉아 삼매(三昧)에 드는 경지를 말하므로 삼마지인(三摩地印)이라고도 하며, 석가가 수도할 때 지은 손가짐이다. 결가부좌한 다리 위로 왼손을, 그 위에 오른손을 포개어 놓고 양 엄지를 맞대는 모습이다. 다음 두 번째로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인데 정각(正覺)에 이르기 직전 악마의 유혹을 받음에 지신(地神)을 가리키며 깨달음을 증명하라고 했을 때 지은 동작이다.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향하게 하여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거나 손을 땅에 대는 모습에서 촉지인 또는 지지인(指地印)이라고도 한다. 세 번째로는 전법륜인(轉法輪印)이다. 이것은 불타가 설법할 때의 손가짐을 말한다. 양 엄지와 검지의 끝을 맞대어 2개의 원을 그리고 나머지 손가락을 펴는 동작인데, 이때의 2원이 불법의 수레바퀴, 즉 법륜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법륜은 마치 우주의 수레바퀴처럼 세계를 두루 돌며 모든 악을 분쇄하고 무한히 존재하는 불법을 모든 중생에게 영원히 전파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시대나 지역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는데, 경주 안압지(雁鴨池) 출토의 금동삼존상의 본존 수인이 전법륜인을 짓고 있다. 네 번째로는 시무외 ·여원인(施無畏 與願印)인데 시무외인은 오른손을 위로 들어 손바닥을 펴서 밖으로 향한(外掌) 모습으로 모든 중생에게 두려움을 없애 주고 평정을 주는 힘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원인은 시원인(施願印)이라고도 하는데, 왼손을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한 모습으로 중생의 어떠한 소원이라도 모두 들어주는, 자비를 베푼다는 것을 상징한다. 한국의 경우 흔히 시무외인과 여원인이 합쳐져 한 상에 두 동작을 함께 표현하곤 하여 시무외 ·여원인이라 부르는데, 연가칠년명(延嘉七年銘) 금동불입상 ·계미명(癸未銘)금동삼존불 ·경주배리(慶州拜里:禪房寺) 삼존불의 본존 등 삼국시대의 불상에서 가장 많이 조상된 수인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여원인을 지은 왼손의 약지와 소지(小指)를 굽히기도 한다. 다섯 번째가 바로 아미타 정인(定印)과 9품인(九品印)이다. 이것은 아미타불이 짓는 수인인데 아미타정인은 무릎 위에 놓고 양 엄지의 끝을 맞대고 다른 손가락들은 펴서 깍지낀 모습이다. 아미타 9품인은 설법의 이해 정도에 따라 중생을 3등급(三品)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3으로 세분하여 모두 9등급으로 나누어 각기 그에 알맞게 교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9품인은 상품상생(上品上生) ·상품중생 ·상품하생 ·중품상생 ·중품중생 ·중품하생 ·하품상생 ·하품중생 ·하품하생인(印)이다. 여섯번째로는 지권인(智拳印)이 있는데 밀교 태장계(胎藏界)의 주존불인 마하비로자나불(摩訶毘盧遮那佛:大日如來)이 짓는 수인이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서 각 엄지를 손바닥으로 감추고 주먹을 쥔다. 이런 주먹쥔 손을 아래위로 겹쳐놓고 왼손의 검지를 세워 오른손의 주먹 속으로 넣은 모습이다. 이것은 이(理)와 지(智), 중생과 불(佛), 미(迷)와 오(悟)가 원래는 하나라는 것을 상징하는데, 이 손 모양을 봄으로써 그런 진리를 깨우치게 하려는 것이다. 보림사(寶林寺)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동화사(桐華寺)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도피안사(到彼岸寺)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등 신라 말기에 유행한 비로자나불상들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③光背(광배)

  광배는 불상의 배후에 광명을 나타낸 의장(意匠)이다. 회화나 조각에서 일반적으로 표현하는 광배는 頭光(두광), 身光(신광), 擧身光(거신광)의 3종이 된다. 두광은 머리 전체에서 발하는 빛을 표현해야 한다. 그런데 머리 부분에서는 특히 육계, 白毫, 이마 눈 등에서 빛이 난다고 하지만 백호는 얼굴의 거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발하는 빛이 가장 강렬하다. 頭光(두광)을 표현하는 방법은 선, 태양과 같은 빛, 불꽃같은 빛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은 그림으로 그릴 때는 수레바퀴의 살과 같이 머리를 중심으로 사방을 향하는 빛을 나타내기도 하고 빛의 윤곽을 잡아 둥근 원을 그리기도 하고, 둥근 원 주위에 화염을 나타내기도 하여 빛이 비치고 있는 형상을 분명히 표현할 수 있으나 조각일 경우에는 많은 제약을 받기 때문에 머리를 중심으로 한 둥근 원을 후두부에 붙여서 표시하는 수밖에 없다. 이 때 원의 중심은 역시 가장 강렬한 빛을 발하는 백호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身光(신광)은 몸에서 발하는 빛을 말한다. 따라서 몸을 중심으로 표현하게 되는데 이것도 그림일 때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되지만 조각일 때에는 몸 뒤에 붙여서 불신의 윤곽을 따라 적당한 크기로 표현하게 된다. 두광과 신광을 따로 표현하는 경우, 혹은 두광만을 표현할 수도 있으나 신광만을 표현하는 일은 없다. 擧身光(거신광)은 두광, 신광의 구별 없이 불신 후면에 전신에서 발하는 빛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입상이건 좌상이건 간에 대좌 위에서 시작하여 머리 위까지 불신 전체를 싸게 된다. 이것들이 우리가 흔히 사찰에서 보게되는 광배의 종류인데 쉽게 생각하면 부처님 뒤에 둥그렇게 되어있는 것의 머리, 몸, 그리고 전체에 관한 이야기 인 것이다.  

 

 ④服裝(복장)

   복장은 바로 부처의 가사(袈裟)의 표현의 형식이다. 가사는 不正色(부정색), 濁色(탁색), 間色(간색)으로 의역하기도 하여 원색이 아닌 색으로 만든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다. 즉 上色(상색)을 제외한 색으로 염색한다는 뜻으로 상색이란 청, 황, 적, 백, 흑의 5정색과 비, 홍, 자, 녹, 유의 5간색을 말한다. 인도에서는 실지로 가사의 색을 낼 때에는 초목의 껍질이나 뿌리, 과실물, 적토, 또는 적색의 광물 용액을 사용한다고 한다. 가사에는 12가지 별명이 있으나 도복, 출세복, 법의 등은 가장 많이 쓰이는 용어이다. 불가에서 입는 가사에는 大衣(대의), 칠조의, 오조의로 대, 중, 소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대의는 왕국이나 마을을 갈 때 입는 것이고 칠조의는 조로 부처를 예배할 때, 좌선할 때, 청강할 때 입으며 오조의는 노동할 때, 여행할 때, 잘 때 착용한다. 한편 부처가 가사를 입는 형식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通肩(통견)과 右肩偏袒(우견편단)이다. 통견은 가사가 두 어깨를 모두 가린 형식이고 우견편단은 왼쪽 어깨에만 걸쳐서 오른쪽 어깨가 노출된 형식이다. 부처는 가사 밑에 두 가지 의복을 입는다. 하나는 裙(군)이고 하나는 抵支(저지)이다. 군은 下裙, 내의라고도 하여 아랫도리를 가리는 의복이고 저지는 僧脚崎(승각기), 掩腋依(엄액의)라고도 하여 윗도리에 걸치는 의복으로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 밑으로 내려간다. 부처는 아래의 군을 입고 위에 승각기를 입은 다음 위에 가사를 걸치는 것을 격식으로 삼는다. 이렇게 복장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색과 그리고 형식으로 나뉘는데 통견과 우견편단의 구분은 우리가 쉽게 할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가지는 옷의 성격과 복장의 성격을 우리는 잘 파악해야 할 것이다.

 

 ⑤臺座(대좌)

  대좌(臺座)는 불상을 안치하기 위한 대(臺)이다. 이 대좌는 보통 연꽃으로 많이 표현을 한다. 부처가 앉는 연꽃은 연꽃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다. 불좌로서의 연꽃의 모양은 색과 형태가 천차만별이다. 또 경전에는 연꽃에 인화, 천화, 보살화의 3종이 있다고 하였으나 천화, 보살화는 말할 것도 없이 상상의 꽃이고 보련, 칠보연화 등도 연꽃에 대한 수식어인 것이다. 실제로 불대좌에 조각된 연꽃을 보면 밑에 받침이 달리고 대좌의 크기에 따라 8엽에서 10엽으로 된 것이 보통이다. 연꽃의 표현방법은 꽃잎 끝이 밑을 향한 伏蓮(복련)과 위를 향한 仰蓮(앙련)의 두 가지가 있다. 어떠한 형식도 무방하나 부처가 연꽃 위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면 앙련으로 하는 것이 옳을 것이고 아래위에 표할 때에는 위는 앙련으로 밑은 복련으로 하는 것이 적격이다. 한편 하나의 줄기에서 세 개의 가지가 나고 그 끝에 각각 연꽃이 있어 그 위에 삼존이 앉은 형식도 있는데 이것을 일컬어 一莖三尊像(일경삼존상)이라고 한다. 부처가 앉는 자리로서 연꽃이 아닌 것이 있다. 방형의 須彌壇(수미단)이 그것이다. 곧 부처의 거처인 수미산을 뜻한다고 한다. 삼국시대 불상에는 수미단 형식의 대좌가 많으며 법의가 대좌를 덮고 늘어져 있다. 이러한 형식을 裳懸座(상현좌)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불상 외의 여러 불교 예배상의 대좌를 알아보면 연꽃 위에는 불부살만이 앉지 그 밖의 권속은 앉지 못한다. 그들 권속의 대좌로는 荷葉座(하엽좌), 암좌, 生靈座(생령좌) 등이 있다. 하엽은 연의 잎이므로 꽃과는 격이 다르다. 천부상이나 나한상의 대좌로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연꽃에 버금가는 격을 생각했던 모양이다. 암좌는 힘의 상징이다. 자비로서 구제할 수 없는 무리들을 힘으로 조복시키는 방법을 쓴다. 부처의 교령을 받아 그 임무를 수행하는 인왕 같은 존재는 부드러운 자리보다도 바위 같은 자리가 힘을 과시하여 위협을 느끼게 하는데 더 적당하였을 것이다. 생령좌는 악귀를 잡는 사천왕들을 구제하여 주는 것이다.

 

⑥자세

  불상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부처님의 자세는 바로 입상과 좌상, 그리고 반가사유상이다. 여기에 대해서 알아보면 우선 입상은 等足立(등족립)이라고 한다. 두 발을 가지런히 해서 직립하는 자세를 말한다. 하반신이 직립일 뿐 아니라 상반신도 직립하여 굴곡됨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협시보살은 몸을 굴곡시키는 수가 있는데 삼국시대 보살은 직립하고 통일신라시대 보살은 굴곡 자세를 취하는 수가 많다. 좌상은 結跏趺坐(결가부좌)이다. 결가부좌는 가장 안온한 자세이며 피로를 느끼지 않으며 마음이 산란되지 않아 삼매경에 들 수 있는 자세이다. 결가부의 형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길상좌이고 하나는 항마좌이다. 항마좌는 먼저 오른발을 왼쪽다리 위에 얹고 다음에 왼발을 밖에서 오른쪽 다리 위에 얹는 것이고 길상좌는 이와 반대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불상은 이 길상좌를 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반가상을 보면 반가상은 결가부의 자세에서 왼쪽 다리를 풀어서 늘어뜨리고 왼손으로는 오른쪽 발목을 잡으며 오른손은 팔을 오른쪽 무릎에 괸 다음 손은 볼에 대고 머리를 약간 숙여 사색에 잠긴 자세를 취한다. 이러한 불상은 인도에서 太子思惟(태자사유)의 상으로 제작되었다가 중국에 전해지면서 미륵보살의 사유상으로 뜻이 바뀌어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즉 미래불인 미륵보살이 도솔천에서 자기가 부처가 된 다음 중생 제도를 사념하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하고 있다. 미륵보살 사상은 중국에서는 북위에서 크게 유행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던 자취가 뚜렷한데 특히 신라에서는 화랑을 미륵보살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여 미륵보살이 현세에 나타나서 화랑이 되어 주기를 기원하였던 것이다.

 

3.우리나라 불상의 양식

 

 시대가 흐르고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로 불상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서 시대별로 불상의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불상의 양식변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① 高句麗

  고구려는 6세기에 전반적으로 불교가 극성기를 누렸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 동위양식계열의 고구려 불상들의 존재이다. 백제나 신라에는 동위양식에 계속되는 북제, 수양식의 영향을 받은 불상이 계속 만들어지나 고구려는 북위 내지 동위 양식의 영향이 압도적이고 북제, 수의 영향을 받은 것은 7세기부터의 불교 쇠퇴론은 그리 많지 않다. 고구려에의 불상의 특징을 나타내는 불상으로서는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과 신묘명금동삼존불등이 있다. 이것은 강한 볼륨의 연화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광배의 불꼿무늬는 상 전체에 강한 역동성을 주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고구려불상의 특징인 강한 힘을 느낄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② 百濟

  백제도 침류왕때에 불교가 전파되면서 불상이 같이 들어온 것으로 보여진다. 백제 불상의 특징에 대해서는 지금 남아있는 백제불상의 대표작인 군수리출토 석불좌상과 서산마애삼존불을 앞에 설명한 불상의 형식에 맞추어 설명을 해보고 백제불상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우선 군수리 출토석불좌상에 대해서 설명을 하겠다. 이것은 부여의 군수리에서 발견되었으며 지금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물 제329호로 지정되어있다. 특징을 보면 우선 육계와 나발이 있고 얼굴은 고졸미소로 대변되는 대표적인 백제의 미소이다. 즉 보조개가 살짝 들어가 있는 형태이며 가사는 삼국시대의 특징처럼 두껍게 표현되어있으며 수인은 선정인으로서 여래상 즉 석가를 나타낸다. 대좌는 가사가 대좌를 덮는 형식의 상현좌임을 알수 있으며 재질은 돌이다. 그리고 온화한 부처의 모습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다음으로 서산마애삼존불을 보면 마애불이란 절벽이나 거대한 바위에 선각 혹은 돋을 새김 기법 등으로 불상의 형태를 나타낸 것으로서 백제시대의 것으로는 서산마애삼존불 및 태안마애삼존불 등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백제 7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국보 제 84호로서 충남 서산시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는 대표작으로서 고졸미소는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을 정도이며 암석에 조각되어 있다. 우선 본존불인 석불을 보면 뒤에 광배가 있으며 얼굴은 고졸미소가 있으며 가사는 과거의 X형에서 U자형으로 바뀐 것이 보인다. 수인은 施無畏印(시무외인)과 與願印(여원인)이 나타나 있으며 입상의 자세이다. 左, 右측에는 협시보살이 보좌해주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보는 쪽의 좌측에는 관음보살이 나타나있으며 우측에는 미륵반가상이 위치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학자들간의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은 바로 협시 보살들은 모두 입상자세인데 반해 이 삼존불은 반가상이 출현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는 앞의 형식에 맞추어 백제 불상들을 설명했다. 백제불상의 특징은 바로 백제미소인 고졸미소와 함께 우아하게 화려한 것이 특징인 것이다.

 

③ 新 羅

  고구려와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 경위는 왕실을 상대로 전수가 이루어져서 마찰이 없었으나 신라의 경우는 사정이 달라서 장기간의 진통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수용하게 되었다. 그 동안의 사정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시각을 달리하면서 기록되어 있다. 불상의 경우는 눌지왕 때 양에서 불상이 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비판되었으며 대부분이 불교전래와 함께 불상이 전래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시기의 대표작으로서는 금동미륵보살반가상과 삼화령 삼존석불등이 있다. 즉 신라시대 불상의 특징은 바로 고구려와 백제를 통합하면서 신라의 소박한 미를 합쳐놓은 것이다.

 

④ 통일신라

 통일신라의 불교는 교종을 중심으로 크게 발전했다고 볼 수 있으며, 통일신라 말에의 선종의 발생은 다음 시대인 고려의 불교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를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기 위해서는 당시의 중국의 문화를 살펴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불교도 예외는 아니다. 당시의 중국은 당제국의 문화가 만발하던 시기로 그 영향이 통일 신라에 미쳤으며, 불상 조각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우선 육계는 작아지고 나발이 많아지며, 미소가 사라지고 단정 근엄한 모습으로 바뀌게 되며, 목에는 삼도가 나타나게 된다. 또한 상현좌의 형식이 사라지고 의단은 대좌 위로 올라가서 대좌가 완전히 노출되게 되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후 말기에는 선종의 발달로 인하여 이런 형식적인 면이 쇠퇴하게 된다. 금동 관음보살 입상과 한천사 철조 여래좌상등이 통일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불상으로 그 이전의 불상과 비교해서 많은 차이가 있음을 답사를 통해서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結 論

 불교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불교가 우리나라의 문화에 너무도 많은 영향을 미쳤음은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나라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불상은 한시대의 문화 전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불상은 시대별로 모양새와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그 시대의 문화 전반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 글을 통해서 그러한 부분들을 설명하려고 하였으나 많이 부족하였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답사를 통해서 이곳에서 알지 못한 부분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경주는 신라와 통일 신라의 수도였던 만큼  신라와 통일신라의 불상의 특징에 대해서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된다. 글을 통해서 아는 것보다는 직접 보고 그것에 대해 알았을 때  더 실질적으로 다가온다. 이번 답사가 우리들에게 그런 좋은 경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자료※

정병모, 「미술은 아름다운 생명체다.」, 다홀미디어, 2001

秦弘變, 「韓國의 佛像」, 일지사, 1976

진홍섭, 「불상」, 대원출판사, 1989

황수영, 「한국의 불상」, 문예출판사, 1998

최완수, 「한국 불상의 원류를 찾아서」, 대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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