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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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보림사는 지금부터  1천3백여년(759년) 전에 창건한 신라시대의 거찰이다. 이곳에 처음 절을 지은 것은 보조국사보다 100년 전쯤 사람인 원표대덕(元表大德)으로 원래의 이름은 가지산사였다. 그 뒤 보조국사 체징이 이곳에서 헌안왕의 뜻을 받아 신라 구산선문 중 최초로 가지산파를 열었다. 880년 체징이 입적할 때에 무려 800여명의 제자들이 여기에 머물렀다고 한다. 보조국사가 입적 후에 헌강왕이 절 이름을 내려주어 보림사가 되었다. 화엄종 사찰로 출발해 선종사찰로 바뀐 것이다. 미국하버드대학 연경도서관에 있는 "신라국 무주 가지산 보림사 사적기"는 조선 초 세조 3년(1457)에서 10년(1464)사이에 발간된 것으로 보림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여기에는 창건설화가 이렇게 적혀있다. "신라의 명승 원표대덕이 인도 보림사, 중국 보림사를 거쳐 참선중 한반도에 서기가 어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신라로 돌아와 전국의 산세를 살피며 절 지을 곳을 찾았다. 어느 날 유치면 가지산에서 참선을 하고 있는데 선녀가 나타나더니 자기가 살고 있는 못에 용 아홉 마리가 판을 치고 있으므로 살기 힘들다고 호소해왔다. 원표대덕이 부적을 못에 던졌더니 다른 용은 다 나가고 유독 백룡만이 끈질기게 버텼다. 원표대덕이 더욱 열심히 주문을 외었더니 마침내 백룡도 못에서 나와 남쪽으로 가다가 꼬리를 쳐서 산기슭을 잘라놓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 때 용꼬리에 맞아 파인 자리가 용소(용문소)가 되었으며 원래의 못자리를 메워 절을 지었다. 보림사 주위에는 용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청룡리, 청룡이 피를 흘리며 넘어간 피재, 용두산, 용문리, 용소, 녹룡리등인데 창건설화에서 토속신앙과 불교의 대립이 있었음을 유추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의 가지산 보림사는 인도의 가지산 보림사, 중국의 가지산 보림사와 더불어 세계 3보림의 하나라고 한다. 보림사는 통일신라 구산선문 가운데 가지산문의 종찰로서 고려 말까지 선맥이 이어져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도 가지산문에 속했다. 고려시대는 원응국사와 공민왕의 왕사인 태고 보우국사가 주석하여 선종을 진작시킨 큰절이었고, 그 후 여러 차례 중창과 중수를 거치며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던 보림사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외호문과 사천왕문을 빼고 20여 동의 건물이 모두 불타버렸다. 1950년 가을 전남 지역의 공산군 유격대가 보림사에서 한 겨울을 났는데 다음해 봄 군경토벌대는 '공비들의 본거지'라고 보림사에 불을 질러버렸다고 한다. 전쟁 이후 조금씩 복원되어 현재는 건물로 외호문과 사천왕문, 1998년에 복원된 대적광전, 대웅전, 새로 지은 방각과 요사조사전, 삼성각, 명부전, 주지실, 암자 등이 절터를 채우고 있다.

 

1. 보림사 동부도 img19.gif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소재 보림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조부도이다. 높이 3.6m. 보물 제155호. 이 부도는 보림사 동쪽 숲속에 있는 여러 부도 중의 하나로,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부도의 형식은 팔각원당형의 기본을 따랐으며 지대석도 8각으로 매우 넓다. 하대석은 반구형에 가까운데 매우 평판적이며 큼직한 8엽의 복련이 덮여 있고, 각 모서리마다의 연판에 귀꽃이 있다. 복련 밑에는 높직한 면을 돌리고 8각의 각 면마다 안상을 1구씩 조각하였다. 이 안상의 첨두 좌우에서 안으로 뻗은 두 개씩의 뿔은 매우 날카로워 일반적인 형태와는 다른 것이 특징이다. 중대석은 가늘고 납은 8각 돌기둥으로 표면에는 조식이 없다. 상대석은 하대석과  같이 반구형에 가까운데 귀꽃이 없을 뿐 큼직한 8엽의 앙련이 돌려져 있다. 밑에는 낮은 3단의 받침이 있고 윗면에는 높은 2단의 탑신 받침이 있다. 탑신 역시 8각의 석주형인데 우주의 표시는 없고 한 면에 문호형과 자물쇠형이 얕게 모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밑의 다른 부재들에 비하여 좁고 낮은 편으로 아랫면에는 탑신과 접하는 부분에 3단의 받침이 있고 추녀 밑으로 넓은 낙수홈이 파여져 있다. 추녀는 수평으로 평박하고 옥개석 윗면에는 여덟 줄의 굵고 높은 우동이 조식되었다. 상륜부의 옥개 꼭대기에는 간석이 놓였고, 그 위에 추녀의 우각이 약간 위를 향한 보개가 놓였는데 우동 끝에 귀꽃이 표현되었다. 보개 위에는 보륜이 있고 외반된 이중연판 위에 보주가 얹혀 있다. 이 부도는 조각기법이 세련되었으나 평판적이고 섬약하여 입체감이 결여되었고 조형에 있어서도 중대석이 작고 좁아 불안한 감을 준다. 또한 각 부재의 너비도 좁아져서 더욱 이러한 느낌이 드는데, 이것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부도형식을 이어받았으면서도 고려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고려시대 부도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2. 보림사 서부도 img20.gif

 보림사에 있는 고려 중기의 석조부도. 2기. 높이 3m, 보물 제156호, 보림사 경내로 들어가는 서쪽 입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다. 2기의 부도가 함께 나란히 서 있는데 모두 팔각원당형으로 기본형태는 같으나 장식수법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 중 서부도에는 방형의 지대석위에 변형된 이색적인 8엽복련석이 놓였는데, 그 형식은 고려시대에 많이 사용되던 여의두문과 비슷하다. 복련 밑에는 높은 3단의 받침이 있고 윗면에는 1단의 각형 몰딩이 있다. 중대석은 8각 모서리에 연주형의 우주가 모각되었고 각 면에는 원형의 안상이 조각되어 있다. 상대석에는 단판8엽의 앙련이 새겨져 있는데, 판내에는 타원형의 윤곽 속에 네 개의 꽃모양이 조각되었으며 윗면에는 1단의 탑신받침이 있다. 8각으로 된 탑신에는 우각의 표시가 없고 앞면 한 면에는 호형과 자물쇠, 그 밑에 두 개의 문고리가 각각 모각되었다. 옥개석은 좁으며 8각으로 되었고 아랫면에 1단의 받침이 있을 뿐 다른 조식은 없고 추녀 밑은 직선이다. 윗면은 경사가 급하며 우동을 따라 내려와 전각에서 반전이 있을 뿐 귀꽃은 없다. 상륜부에는 낮은 편구형의 복발과 연잎과 앙련에 쌓인 작은 보주가 포개져있다. 형태는 아름다우나 조각수법이 섬약하고 지나친 장식성이 눈에 뛴다. 동부도에서는 하대석 가장자리에 연판이 붙은 평판적인 귀꽃이 있고 밑에는 얕은 면을 돌려 8각 각면에 안상 2좌씩을 두었다. 또한 탑신 1면에는 문호형과 자물쇠를 모각하였다. 옥개석의 추녀에는 1단의 부연이 있는데 대부분 파손되어서 원상태를 알 수 없다. 상륜부 역시 일부 손상되었으나 대체로 완존한 편으로 반전이 심한 보개와 보륜·보주가 있다. 이 2기의 부도는 상륜부까지 완전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는데, 1941년 사리장치의 도굴로 인하여 파괴된 것을 1944년에 다시 건립하였으나 손상은 없다. 단정한 비례와 규칙성 있는 결구수법으로 보아 조성연대는 고려 중기로 추정된다.

 

3.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 img21.gif

  신라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보림사를 개창한 보조선사의 묘탑으로서 사찰 중심에서 동족의 가지산 기슭에 있으며 여기서 40m쯤 떨어진 곳에 탑비가 서 있다. 부도는 높은 팔각 지대석 상면에 가장자리를 따라 매우 얕은 각형 1단의 굄을 각출하고 그 위에 세웠는데, 기단부는 상대석·중대석·하대석으로 구성되었다. 하대석은 상하 2단으로 이루어졌으며 상하단 모두 8각인 것이 확실하나 현재는 파손이 심하여 그 윤곽이 분명하지 않으며, 하단은 각 면에 안상이 있고 상단에는 사자상을 조각한 흔적이 남아 있다. 하대석 위에는 중대를 받기 위한 원형의 굄돌을 따로 만들어 끼워 놓았는데, 측면에 권운문을 원각에 가깝게 사실적으로 조식하였다. 굄돌 상면에는 8각으로 낮은 1단의 각형과 높은 각형 2단의 굄단을 각출하여 중대석을 받고 있는데, 측면의 운문이 반전되듯 입체적으로 위까지 올려 덮고 있다. 중대석은 8각인데 배가 약간 부른 형태로서 배흘림을 표현하고 있다. 각 면에는 상·하단부에 대칭으로 두줄의 횡대를 돌리고 각 횡대 사이에는 모서리에 1좌씩, 그리고 그 중간에 1좌씩의 화문을 가늘게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각 면에는 상하에 괄호형이 있고 좌우에도 중앙에 1단의 굴곡을 둔 방형에 가까운 특이한 형식의 안상을 평행선으로 이중이 되게 음각하였다. 여기에서처럼 안상의 방형이라든가 삼중으로 안상을 조각한 중대석의 양식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식이다. 안상내에는 아무런 조식이 없어 간소한 듯하나 각 모서리의 중간에 좌우 측면의 앙련대와 상단의 8각 갑석형이 완전히 구분되어 있다. 하면에는 8각의 중대석 상면에 맞게 놓이도록 8각으로 2단의 각형 받침을 조각하였다. 앙련은 단엽1판씩을 각 모서리에 조각하였는데, 이 판내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또 하나의 연엽형을 음각하고 그 안을 고사리문과 곡선문으로 장식하고 있다. 탑신 굄대는 별석으로 높게 조성하여 끼웠으며 8각을 이루었는데, 각 측면에는 조각이 전혀 없으며 중간에 횡으로 한줄의 곡선을 양각하고 상하단은 낮게 갑석형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측면이 수직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중간의 횡선을 경계로 하여 각기 상하단에서 반전을 이루고 잇는 것으로 중대석의 배흘림의 의장과도 통하는 점이 있다. 그리고 굄대 상면에 굄단이 없이 탑신석을 안치한 것은 상대석 상면과 같은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탑신석은 유난히 넓고 크며, 8각의 각 면에는 양 우주가 모각되고 특히 상단부에는 주두가 모각되어서 목조가구를 재현한 듯한 느낌을 준다. 탑신 여덟면에는 전후면에 문비형을 모각하고 그 좌우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는데 갑주가 화려하다. 옥개석 역시 8각형으로 하면에 연목형을 목각하였는데 탑신석에 놓이는 부분에 8각으로 2단의 각형 받침을 조출하고 처마부분에는 굵은 권운문을 조각하였다. 상면에는 여덟면의 합각에 우동이 굵직하게 조각되었고, 그 사이의 낙수면에는 기왓골이 표현되었다. 추녀는 수평이나 매우 중후하고 막새기와의 표시도 전혀 없는데, 각 모서리에는 반전을 보이고 있으며 우동 끝에 삼산형의 귀꽃이 조식되었다. 옥개 전상에는 2단의 각형 굄을 조각하여 상륜을 받고 있다. 상륜부는 현재 완형이 아니지만 복발·보륜·보주 등이 차례로 놓여 있다. 복발은 원형이며 측면에는 여덟 귀퉁이를 표시하기 위한 화문을 조식하고 이들을 연결하는 횡대를 돌렸다. 그리고 이 위에 죽절형이 간주가 세워지고 그 중간마다 보륜이 놓였는데 각 측면에는 굵은 권운문을 조식하였다. 이 부도의 앞쪽에는 탑비가 남아 있어서 보조선사의 행적 및 당사의 사찰의 대외관계 등 모든 내용을 알 수 있는데, 비문에 의하여 볼 때 이 부도의 조성연대는 880년경으로 추정된다.

4. 보림사 사천왕문

 보림사 경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천왕문.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85호.

해탈문과 대적광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홑처마집으로 중앙칸은 통로로 되어 있고 좌우의 양칸에는 4구의 사천왕상을 안치하였다. 낮은 1단의 기단에 원형의 초석을 놓고 민흘림지붕을 세웠으며, 중앙칸 통로를 제외한 양칸 3면은 모두 흙벽으로 막았다. 두공은 초익공식으로 창방을 돌리고 평방은 생략한 채 주두 위에 장여와 도리를 얹었다. 내부에 봉안된 사천왕상은 입구 왼쪽에 동방지국천과 남방증장천이 안치되었고, 오른쪽에는 서방광목천과 북방다문천이 배치되었다. 이 상들은 목재라는 점이 주목되며 조각기법 또한 매우 사실적인데, 도상학적으로 볼 때는 증장천이 긴 창대신 악기를 들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상들의 형태가 같은 경내에 있는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보물 제157호)의 탑신에 양각된 사천왕상과 거의 비슷하다. 사천왕상의 조성시기는 조선 후기로 추정되며 건물 역시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