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

 소쇄원(瀟灑園)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번지에 있는 조선시대 중기의 별서(別墅: 농장 가까이에 별장처럼 따로 지은 집정원)으로서 전라남도 사적 304호이다. 이 정원은 양산보(梁山甫)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趙光祖)가 기묘사화로 남곤(南袞)등의 훈구파에 몰리어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로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하향하여 향리인 지석마을에 은거처를 마련한 뒤, 계곡을 중심으로 조영한 원림(園林)이다. 이 곳은 무등산의 북쪽 기슭에 있는 광주호의 상류에 위치하여 무등산을 정남쪽에 대하고 있으며, 뒤편에는 까치봉과 장원봉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동서로 병풍처럼 둘려져 있다. 또, 뒷산과 까치봉 사이의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계류를 중심으로 하여 산기슭에 터를 잡은 소쇄원의 바로 앞에는 증암천이 동서 방향으로 흘러 광주호에 들어가고 있다. 소쇄원의 소새(瀟灑)란‘소리 소(瀟)’또는‘물 맑고 깊을 소(瀟)'에,‘물 뿌릴 쇄(灑)’또는 ‘깨끗할 쇄(灑)'로, 공덕장(孔德璋)의‘북산이문(北山移文) 중국 남조시대 제나라의 공덕장(孔德璋)이 어릴 때 친구인 주옹과 벼슬하지 않고 산속에 숨어살자고 약속하였는데, 뒷날 주옹이 이 약속을 어기고 임금의 부름을 받아 벼슬길에 나가서 지방 현령을 지내고 만기가 되어 돌아오자 공덕장이 북산의 산신령으로 가장하여 그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다가 지금 다시 돌아오면 안 된다는 내용의 글을 주옹에게 보내어 조롱하였다는 글)에 나오는 말로써 깨끗하고 시원함을 의미하고 있으며, 양산보는 평생을 이 곳에 은거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명칭을 붙인 정원의 주인이라는 뜻에서 자신의 호를 소쇄옹(瀟灑翁)이라 하였다. 이 정원의 평면적인 모습은 계류를 중심 축으로 하는 사다리꼴의 형태이며, 흙으로 새 메움을 한 기와지붕의 직선적인 흙돌담이 외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계곡의 굴곡진 경사면들을 계단상으로 처리한 노단식 정원의 일종이지만, 구성면에서는 비대칭적인 산수원림(山水園林)이다. 이 곳 소쇄원은 사람이 살았던 주거와의 관계에서 보면 집 뒤에 있는 후원(後園)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원의 구조는 크게 애양단(愛陽壇)을 중심으로 하여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광풍각 (光風閣)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약 1,800㎡의 면적을 갖는 애양단구역(愛陽壇區域)·오곡문구역(五曲門區域)·제월당구역(霽月堂區域)·광풍각구역(光風閣區域)으로 구분할수 있다.  

 

1. 애양단구역 img5.gif

 애양단구역은 이 원림의 입구임과 동시에 계류쪽의 자연과 첨경시설(添景施設)을 감상하면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애양단이란 김인후(金鱗厚)가 지은 소설<소새원사팔영 瀟灑園四八詠>가운데 있는 양단동오(陽壇冬午)라는 시제를 따서 송시열이 붙인 이름이다. 왕대나무숲속에 뚫린 오솔길을 따라서 올라오면, 입구 왼편 계류쪽에 약 8미터의 간격을 두고 두 개의 방지가 만들어져 있고, 과거에는 물레방아가 돌고 있었다. 이것은 장식용으로 오곡문 옆 계곡물이 도랑을 타고 내려와 위쪽 못을 채우고, 그 넘친 물이 도랑을 타고 내려와 물레방아를 돌리게 되어 있어, 이것이 돌 때 물방울을 튀기며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물의 약동을 건너편 '광풍각'에서 감상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위쪽 옆에서는 계류쪽으로 튀어나온 '대봉대(待鳳臺)'라는 조그마한 축대 위에 삿갓지붕의 작은 모정(茅亭)이 서 있는데, 이것은 근래에 와서 다시 복구 된 것이다.

 

2. 오곡문구역img6.gif

 오곡문구역은 오곡문 옆의 담 밑 구명으로 흘러 들어오는 계류와 그 주변의 넓은 암반이 있는 공간을 말한다. 계류의 물이 들어오는 수문 구실을 하는 담아래의 구멍은 돌을 괴어 만든 높이 1.5미터, 너비 1,8미터와 1,5미터의 크기를 갖는 두 개의 구멍으로 되어있는데, 그 낭만적인 멋은 계류공간의 생김새와 아주 잘 어울린다. 이와 비슷한 기법은 1100년대(숙종연간)의 이실충(李實忠)이 만든 경기도 부천의 척서정(滌署亭)에서도 볼 수 있다. '오곡문'의 '오곡'이란 주변의 암반 위에 계류가 之형 모양으로 다섯 번을 돌아 흘러내려간다는 뜻에서 얻어진 이름이다. 이 부근의 암반은 반반하고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물가에 앉아서 즐기기에 넉넉하다. 1755년(영조31)에 만들어진 <소쇄원도 瀟灑園圖>에, 한편에서는 바둑을 두고 다른 한편에서는 가야금을 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3. 제월당구역

 제월당구역은 오곡문에서 남서방향으로 놓여있는 직선도로의 위쪽부분을 말한다. 제월당은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으로 주인을 위한 사적 공간으로 정면 3 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제월당 앞의 마당은 보통의 농가처럼 비워져있으며, 오곡문과의 사이에 만들어진 매대(梅臺)에는 여러 가지 꽃과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4. 광풍곽구역img7.gif

 광풍곽구역은 제월당구역의 아래쪽에 있는 광풍각을 중심으로 하는 사랑방 기능의 공간이다. ''광풍각'은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으로 손님을 위한 사랑방으로써 1614년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역시 팔작지붕(지붕 위까지 박공이 달려 용마루 부분이 삼각형의 벽을 이루고 처마끝은 우진각지붕과 같으며, 맞배지붕과 함께 한식 가옥에 가장 많이 쓰는 지붕의 형태)인 한식 전각이다. 광풍각의 옆의 암반에는 석가산(石假山)이 있었는데, 이러한 조경방법은 고려시대 정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광풍각의 뒤쪽에 있는 동산을 복사동산이라 하여 도연명(陶淵明)의 무릉도원을 재연하려고 하였다. '제월당'의 제월과 '광풍각'의 광풍은 송나라의 황정견(黃庭堅)이 유학자 주돈이(周敦 )의 사람됨을 평하여 "흉회쇄락여광풍제월(胸懷灑落如光風霽月)"이라고 한데서 유래된 것이다. 소쇄원의 조경식물로는 소나무·단풍나무·버드나무·참등나무·대나무·매화나무·복사나무·살구나무·벽오동나무·배롱나무·회화나무·치자나무·사계화나무·국화·파초·연꽃·철쭉·동백·난·측백나무 등이 심어졌다. 이들 가운데 소나무·매화나무·대나무는 국화와 함께 사절우(四節友)라하여 선비들이 즐겨 심었던 것이며, 측백나무는 주나라 때 왕자의 기념식수로, 회화나무는 고관들의 기념식수로 쓰이던 나무들로 그 풍에 따라 자손이 성공하기를 비는 뜻으로 심어졌다. 현재는 당시에 심어졌던 나무들 가운데 소나무·측백나무·배롱나무 몇 그루가 남아 있을 뿐이다. 소쇄원은 계류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의 언덕에 복사나무·배롱나무 등을 심어 철따라 꽃을 피우게 하였으며, 광풍각 앞을 흘러내리는 계류와 자연폭포, 그리고 물레방아에서 쏟아지는 인공폭폭 등 자연과 인공이 오묘하게 조화되어 속세를 벗어난 신선의 경지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 시인·묵객·문사들의 방문이 그치지 않았던 곳이었으며, 그들이 남긴 시들이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 정원은 경사면의 적절한 노단식 처리라든지 기능적인 공간구획, 대숲속의 오솔길, 지형에 따라 변화 있는 담장 지붕의 선, 담 밑에 뚫린 수문 등 낭만적이고 장식적인 조경으로 원림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며, 보길도의 부용동원림과 더불어 조선시대의 별서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