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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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구에서 경   남 하동포구로   흘러가는 섬진   강을 따라 난   19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보   면 오미리에서   너른 들을 만   난다. 멀리 백   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의 한 가운데인 소백산맥이 지리산 왕시루봉을 빚고, 그 산줄기가 흘러와서 섬진강을 만나는 강가에 만들어놓은 '구만들'이다. 토지면의 토지(土旨)라는 이름은 원래 금가락지를 토해냈다는 뜻의 토지(吐指)였다고 한다. 옛날에 가락지는 여인들이 소중하게 간직하는 정표로서 가락지는 생산을 뜻했다. 그래서 토지면 오미리 일대는 금환락지, 곧 풍요와 부귀 영화가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명당이라 알려져 왔다. 운조루(雲鳥樓)는 토지면 오미리 명당에 자리잡고 있는 대표적인 가옥으로 1776년 무관 유이주(柳爾胄 1726 -1797)가 지은 가옥의 사랑채인데, 지금은 가옥전체를 운조루라 부르고 있다. 유이주는 어려서 문경새재를 넘다 호랑이를 만나자 채찍으로 호랑이의 얼굴을 내리쳐 쫓아버렸다는 일화가 전할 정도로 힘이 세고 기개가 뛰어났던 인물이다. 당시 마을사람들도 운조루의 집터가 길지인 줄은 알고 있었으나 바위가 험하여 집을 지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img54.gif그런데 유이주가   전라도 승주(지금의 순천)에서 낙안군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하늘이 이 땅을 아껴 나를 기다리신 것"이라고 하여 수백 명의 장정을 동원해 집터를 닦았다고 한다. 운조루가 명당터라 하여 손꼽히지만, 기실 눈여겨보아지는 곳은 운조루의 건축구성이다. 운조루의 옛모습은 그 집안에 대대로 전해오는 '전라구례오미동가도'(全羅求禮五美洞家圖)에서 살펴볼수 있다. 1,000여평의 대지에 건평이 100평이 넘는 보기 드문 이 집의 전체 건물구성은 - 자형 행   랑채(24칸) 사랑마당 ㅜ자형 사랑채 사랑 뒷마   당, ㅁ자형 안채(36칸) 안마당 부엌마당, 안사랑   채 안사랑 마당(현재 소실됨), 사당(2칸) 사랑마   당의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 한편 운조루는   지리산의 좋은 나무를 골라 가려서 지은 집답게   재목이 듬직하다. 사랑채 2칸은 가운데 기둥 없   이 지었는데, 이는 목재가 넉넉하지 않으면 감   히 생각할 수 없는 구조이다. 쪽마루도 통나무   이고 딛고 올라서는 포석(鋪石)조차 통나무로    되어있다. 마당에서 높은 사랑채를 거쳐 안채로   통하는 길목은 수레가 올라가거나 짐을 지고 다   닐 때 편리하도록 오르막길로 만들어져 있으며,   사랑채의 막돌 기단에 만든 계단과 비교되어 색다르다. 안채로 들어서면 네모 반듯한 마당 아래쪽에 장독대가 있고, 거북을 닮은 맷돌이 있다. 큰 부엌자리에서 나왔다는 돌거북은 집안의 가보로서 대물림을 하고 있었으나, 1987년 도둑맞아 이제 볼 수 없다. 건축구조와 이들 가문이 소장한 여러 문서, 서화, 문구 등을 통해 조선 후기 호남지방 양반가의 생활상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운조루는 중요민속자료 제 8호로 지정돼 있으나, 보수나 관리가 소홀해 해가 다르게 쓸쓸해지고 있다. 운조루 뒤편의 베틀봉에 자리잡은 거북 형상의 산자락 (왕시루봉에서 흘러내린 산줄기)에 집주인이었던 유이주의 무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