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탑

98'유충렬

 

1.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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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은 부처님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모신 곳으로 고대 인도에서 성인의 유해를 화장하고 그 유골을 봉안하던 스투파(stupa)에서 비롯하였다. 기원 1세기경 대승불교의 영향으로 불상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가장 중요한 예배대상이었고 불자들이 기도하는 사찰도 탑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밥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복발형의 인도 스투파는 동아시아에 전해지면서 누각형태로 변하고 복발형의 스투파는 탑 가장 윗부분의 상륜부로 남게되었다. 동아시아의 탑은 재료에 따라 목탑, 석탑, 전탑으로 구분되는데 자연적 여건과 관련되어 중국에서는 전탑, 일본에서는 목탑이 유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초기에는 목탑이 많이 건립되었지만 대부분 소실되었고, 삼국시대말 이후에는 석탑이 주로 건립되었다.

 탑에 봉안하는 사리는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인데, 후대에는 사리대신에 불경이나 소형탑을 봉안하기도 하였다. 시대에 따라 탑신과 기단에 불상과 여러 장엄 조식이 조각되기도 하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찰에서 탑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위축되어 고려 후기 이후에는 소규모의 탑이 조성되고 조선시대에는 탑을 두지 않는 사찰도 생겨나게 되었다.

 탑은 부처님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모신 곳으로 고대 인도에서 성인의 유해를 화장하고 그 유골을 봉안하던 스투파(stupa)에서 비롯하였다. 기원 1세기경 대승불교의 영향으로 불상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가장 중요한 예배대상이었고 불자들이 기도하는 사찰도 탑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2. 탑의 구성

 

  기 단 부

탑의 가장 아랫면에 있는 부분으로 지면으로부터 높게 만든 단이다. 단층기단과 2층기단의 두 종류가 있다

  탑신부

기단부 위에 놓인 부재로 석탑의 몸통에 해당하는 탑신석과 지붕에 해당하는 옥개석을 말한다.

  상륜부

탑의 가장 윗부분으로 옥개석 위에 놓인 부재들을 말한다. 각 부분마다 가진 뜻

  장엄조식

기단과 탑신에 조각된 부조로 탑안에 봉안된 사리의 수호와 공양이 근본 뜻이다. 사천왕, 인왕, 팔부신중, 사방불, 보살, 12지, 비천상, 감실 및 문비형, 안상 등이 있다

 

3. 탑의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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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석탑발생기는 삼국시대 말기인 600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불교를 받아들인 4세기 후반부터 약 200년간은 목탑의 건립시기로서, 목탑의 건조에서 오랫동안 축적된 기술과 전통의 연마가 석탑을 발생하게 하였다.

 백제에서 가장 먼저 석탑이 건조되었는데, 그 양식은 곧 당시 유행하던 목탑을 본뜬 것이었다. 백제는 삼국 중에서 가장 건축술이 발달하여 일본의 초기 사원 건립에 백제의 사공(寺工)이나 와박사 등이 건너가 공사를 하기도 하였으며, 이미 <사탑심다(寺塔甚多)>의 나라로 널리 알려져 신라의 황룡사구층탑을 건립할 때 백제의 아비지(阿非知)가 초빙되어 공사를 담당하기도 했다.

 7세기 초반 백제에서 건립된 석탑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과 부여 정림사지5층석탑(국보 제9호)인데, 미륵사지석탑은 그 양식이 목탑과 가장 흡사하다는 점에서 한국석탑의 시원으로 보고 있다. 정림사지5층석탑 역시 목탑적인 면이 있으나 세부수법은 맹목적인 모방에서 탈피, 정돈된 형태의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으로 발전된 면모를 보인다.

 그러나 이와 달리 신라의 석탑은 전탑의 모방에서 출발하였다. 가장 오래된 것은 634년(선덕여왕 3)에 건조된 분황사석탑(국보 제30호)으로, 탑의 양식은 전탑형식이나 재료는 벽돌이 아닌 석재이다. 이와 관련된 탑으로 의성탑리5층석탑(국보 제77호)을 들 수 있는데, 이 탑에서는 새로운 착상과 옛 수법의 간략화를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석탑은 전파된 지방에 따라 목탑계의 백제탑 형식과 전탑계의 신라탑 형식으로 그 특성을 나타냈으나, 양국의 초기 석탑이 그 기본 평면을 정사각형으로 하여 여러 층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4. 탑의 변천

 백제와 신라의 초기석탑들은 서로 그 양식을 달리하여 출발했지만, 삼국통일을 계기로 마침내 한국석탑의 전형이 성립되었다.

 새로운 계기를 맞아 집약, 정돈된 형식으로 건조된 석탑 가운데 가장 시원적인 양식의 표본을 보이는 것은 경주의 감은사지3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제38호)이며, 그 뒤 월성나원리5층석탑(국보 제39호)과 경주구황리3층석탑(국보 제37호)의 과도기적 양식을 거쳐, 8세기 중엽 불국사3층석탑(국보 제21호)·갈항사3층석탑(국보 제99호)에서 전형적인 양식의 정형을 보게 되었다.

 이와 같이 8세기 중엽에 완성된 신라 석탑의 정형은 그 뒤 오랫동안 지켜진 양식으로, 사각형 평면의 기본양식과 단일성의 중층형식은 한국석탑의 주류이며 특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신라의 석탑은 8세기 말엽 왕권쇠퇴기로 접어들면서 부분적인 변화가 생기고 규모면에서도 전체적으로 작아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9세기 후반에는 뚜렷한 변형을 보이게 된다. 당시 왕실에서의 치열한 왕위쟁탈전과 지방에서의 호족세력을 중심으로한 군웅할거로 사회가 혼란해지자, 조형미술은 예술성이 위축되고 섬약해졌다. 그리하여 각 조형물의 규모가 작아지고 각부의 양식이 약화, 생략된 변모를 보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870년 무렵 건립된 보림사3층석탑(국보 제44호)이며, 그와 같은 형식의 석탑에 속하는 것으로는 부석사3층석탑(보물 제249호)을 비롯하여 단속사지동3층석탑(보물 제72호)·청량사3층석탑(보물 제266호)·청송사지3층석탑(보물 제382호) 등을 들 수 있다.

 

5. 특수형 탑

 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 이후 석탑 양식은 전반적으로 탑 그 자체에 장식적인 조각 및 의장(意匠)이 강하게 나타남으로써, 종래의 전형적인 양식과 형태를 달리하는 비건축적이고 장식적인 석탑의 유행을 보게 되는데, 이러한 특수양식은 이후 각 시대의 특이한 형태의 석탑 건조의 바탕이 되었다.

 <이형적 석탑>이란 사각형에 여러층을 갖는 전형적인 석탑의 기본양식을 갖추고 있으면서, 외양상으로는 전형적 양식에서 탈피하여 특수한 가구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분류하면, 첫째 석탑의 건조양식이나 각 부재의 결구방법이 전형적인 양식의 정형에서 벗어나 외관상으로 특이한 형태를 보이는 석탑이다. 이 석탑류는 특수양식계열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서, 이 유형에 속하는 석탑으로는 8세기 중엽 이후 나타난 불국사다보탑(국보 제20호)·화엄사원통전전사자탑(보물 제300호)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장식적인 석탑으로 외형은 사각형중층의 전형적인 기본형을 갖추고 있으나, 기단 및 탑신부의 각면에 천인상(天人像)·팔부신중(八部神衆)·십이지신상·보살상 등 여러 상을 조각, 표면장식이 화려하며 장중한 탑이다. 화엄사 서오층석탑( 보물 제133호)·경주남산리삼층석탑(보물 제124호) 등 다수가 이에 속한다.

 셋째, 탑신부는 사각형 중층의 전형을 보이고 있으나, 기단부는 8각형 등 전혀 다른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제223호)·석굴암 삼층석탑이 있다.

 넷째, 모전석탑류로 재료는 석재이나 그 형태가 전탑(벽돌탑)을 모방한 것이다. 의성탑리오층석탑·선산죽장동오층석탑(국보 제130호) 등이 이에 속한다. 그 밖에 석재가 특수한 청석으로 만든 탑이 있는데, 석재가 점판암으로서 화강암을 주재료로 하는 일반 석탑과는 구별된다. 이 유형의 석탑은 고려시대에 본격적으로 유행하였으며 해인사원당암다층석탑(보물 518호)이 이에 속한다.

 

6. 고려시대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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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의 교세는 고려시대에 와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에 따라 불교적인 조영이 거의 전시대를 통해서 국가적 혹은 개인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석탑은 고려시대에도 전대와 같이 불교의 가장 중심적인 예배대상이었다.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은 우선 탑의 건립이 경주 부근에 밀집되어 있던 신라시대에 비해 전국적으로 확산, 분포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추세는 한마디로 왕실불교적 입장에서 출발한 한국불교가 후대로 오면서 보다 보편화·토착화한 결과라고 하겠다. 그리고 국가적인 조영이 전국적인 형태로 이루어진 데에는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에 반영되어 있는 도참사상의 영향도 컸다.

 고려석탑의 새로운 양상을 살펴보면, 일반형 석탑의 경우 신라시대의 전통성을 계승하면서도 세부적으로 변형된 지방적 특색을 잘 나타내어 다양한 조형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특히 11세기에 이르러 양식상으로 현저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 전대에 비해 부분적으로 간략화되고 둔중해진 것이 고려석탑 특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백제의 옛 땅인 충청남도·전라북도 지역에 세워진 석탑 가운데 백제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경우가 많은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러한 예로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을 들 수 있다.

 특수형 석탑의 경우, 신라시대에 볼 수 없었던 각양각색의 새로운 형식의 탑이 나타나 사각형에서 6각·8각·원형으로, 또 다층으로 변한 것이라든지 신라시대에 선을 보인 청석탑이 본격적으로 유행했던 것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이에 속한 것으로는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금산사 육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경천사십층석탑(국보 제86호) 등이 대표적이며, 그밖에 화순군 도암면의 다탑봉에는 양식이 서로 다른 고려시대 석탑이 산재해 있어 전대에 볼 수 없었던 조탑신앙의 면모를 엿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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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조선시대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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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들어와 불교가 쇠퇴함에 따라 불교와 관련된 조형미술 분야도 위축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시대의 여운이 남아 있어 불교미술의 조형양식이나 수법에서 고려적 색채를 간직한 작품이 다소 출현하였으나, 조선 후기에는 고려의 여세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리하여 이 시기에는 조형양식을 기존 유품에서 본받을 수밖에 없었고, 설사 양식수법을 그대로 본받았다 하더라도 조성상 기교의 감퇴와 조성을 위한 정신적인 내용의 결핍은 당시 여건상 불가피한 일이었다.

 조선 초기 사각형중층의 일반형 석탑 가운데 유명한 것으로 낙산사칠층석탑(보물 제499호)·신륵사 다층석탑(보물 제225호)·벽송사 삼층석탑(보물 제474호)을 들 수 있다.

 특수형 석탑의 대표적 작품인 원각사지십층석탑(국보 2호)은 형태와 평면이 특수하고 수법이 세련되었으며 의장이 풍부하여 조선시대 석탑으로는 가장 우수한 석탑이다. 전체 형태나 세부구조, 표면조각 등이 고려시대의 경천사십층석탑과 비슷하며 석재가 대리석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주목된다.

 

 

참고 싸이트

http://user.chollian.net/~kdhgadin/2-07.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