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탑(石塔)에 대해서

                                                         주미20010411

 석탑(石塔)은 석재로 건립한 불탑(佛塔)으로서 석조탑파(石造塔婆)를 줄여서 일컫는 말이다. 한국에는 목탑(木塔)·전탑(塼塔)·석탑·모전석탑(模塼石塔)·청동탑(靑銅塔)·금동탑(金銅塔)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1,300기가 넘는 대부분의 불탑이 석탑으로서, 한국 불탑의 중심을 이룬다. 이렇듯 석탑이 그 주류를 이루게 된 까닭은 질 좋은 화강암이 풍부한 자연적 조건과 일찍부터 돌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도나 중국을 '전탑의 나라', 일본을 '목탑의 나라'라고 한다면 한국은 '석탑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석탑의 발생

 한국 석탑의 발생은 삼국시대 말기인 600년경으로 추정 된다. 불교가 전래된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말엽까지 약 200년 간은 목탑의 건립시기였고, 오랜 목탑의 건조에서 쌓여진 기술과 전통의 연마가 석탑을 발생케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백제의 석탑

 석탑은 백제에 의해 7세기 초반에 석재로 목탑을 모방하여 처음으로 건립되었다. 백제시  대의 석탑으로 현재까지 보존된 것은 전북 익산군의 미륵사지(祉)의 석탑과 충남 부여읍   정림사지(定林寺祉)의 석탑뿐이다.

 

신라의 석탑

 신라의 석탑은 전탑(塼塔-벽돌로 쌓은 탑)을 모방하는데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받침 형식등이 전탑의 양식으로부터 발생했다는 것은 아니다. 신라의 석탑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경주의 분황사 석탑이다. 이 탑은 일견 전탑양식에 속하는 것 같으나, 그 재료는 벽돌이 아니고 석재이다. 이 석탑은 백제의 무왕대(武王代)와 같은 시기인 선덕여왕 3년(634   년)에 건조된 것으로  신라 석탑의 기원을 이루고 있다.   

 

통일신라의 석탑

 백제와 신라의 초기 석탑들은 서로 그 양식을 달리해서 출발했지만 얼마 후 하나의 양식으로 통일을 보게 된다. 여기에서 비로소 한국 석탑의 전형(典形)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삼국통일의 덕택이었다. 신라의 석탑은 삼국통일과 함께 백제와 신라의 각기 다른 양식을 종합하여 새로운 양식을 갖추게 된다. 새로운 계기를 맞아 집약 정돈된 형식으로 건조된 석탑 중 가장 시원적인 양식의 표본을 보이고 있는 것은 감은사지(感恩寺祉) 동서 삼층석탑과 고선사지(高仙寺祉) 삼층석탑이다. 이 두 탑은 모두 새로운 통일국가의 서울인 경주에 세워진 것이다.

8세기 중엽에 이르자, 신라식 일반형 석탑의 정형은 방형(方形) 평면의 기본양식과 괴체성(塊體性)의 중층(重層)형식으로 한국석탑의 주류를 이뤘으나, 차츰 시대가 내려올 수록 그 규모가 위축되고 단층 기단으로 생략되는 등 변화를 보이게 된다.

고려시대의 특징은 우선 석탑건립이 전대에 비하여 전국적으로 확산 분포된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며, 왕실불교적 입장에서 세월이 지남에 따라 대중화된 결과로 조탑의 국가적 경영도 각 지방의 토착세력이 건탑(建塔)에 관여하게 되어 일률적인 규범보다는 각기 제 나름대로의 특징이 반영되어 곧 다양성 있는 건탑양상을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대가  내려오면서 사원(寺院)의 규모가 좁아지면서 주위 환경과의 조화가

 

고려되어 석탑도 규모가 작아지는 감이 있으며, 세부적 장엄장식이 공예적 기교를 통해 화려하게 발전하는 감이 없지 않다.

그 양식상의 변화도 10세기 이후에는 현저한 변화를 보이게 되는데, 즉 지방적인 특색을 현저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고려시대에 나타난 석탑이 방형중층이라는 전대(前代)부터의 전형(典形)에서 전체적인 변형을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부분적인 면에서 새로운 변화를 보인 것이 있다. 즉 석탑 의 탑신부에 연화석(蓮華石) 등으로 괴임대를 마련하거나 기단(基壇) 갑석 그 자체가 연꽃대석으로 이뤄지고 각층에 괴임돌을 끼워 마치 공예탑(工藝塔)과도 같은 인상을 주는 예이다.

고려시대의 특색을 요약하자면 불교미술이 토착화되면서 보다 형형각색의 다양성 있는 조형을 보여준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전형적인 양식을 기본으로 하는 석탑이 건립되는 한편 이 시대에는 이들 기본 양식과 형태를 달리하는 이형적(異型的)인 석탑이 출현하였다. 이형적 석탑은 그 자체에 장식적인 의장이 강하게 나타남으로써 전대에 볼 수 없었던 비건축적인 장식적 석탑의 유행을 보인다.  

 

조선시대의 석탑

 유교를 새로운 국가통치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는 불교를 쇠퇴의 길로 이끌었으며 불교와 관련된 조형미술 분야도 이와 운명을 같이 하였다.

조선조 전기에는 고려시대의 여운이 엿보이는 시기로 불교미술의 분야에서도 조성양식이나, 수법에서 고려적인 모습이 묻어났다.

그러나 조선조의 후기에는 고려시대의 영향력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전란을 겪는 동안에 고려적인 전통은 대부분 단절되었거나, 부분적으로는 전통적인 면이 있다하더라도 다소 변형을 일으켰다.

이 시기에는 그 조성양식을 기존 유품에서 본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비록 그대로 양식과 수법을 따랐을 지라도 그 기교나 조형정신은 벌써 결여되었던 것이다. 이런 추세에서 석탑의 건립도 자연히 단절상태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고려말기의 여운이 남아있던 조선초기의 건조된 석탑으로는 방형중층(方形重層)의 일반형으로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 7층석탑(세조대에 건립)이나, 경기도 여주의 신륵사 다층석탑(성종대 건립), 경남함양의 지리산 벽송사 3층석탑 정도를 들 수 있다. 이들은 고려시대의 양식을 다소 계승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형태로는 더욱 무기력화된 느낌을 준다. 이것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기인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에는 새로운 사찰의 건립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조선조 후기에 이르면 석탑의 건립도 주춤해진다.  

 

 

맺은 말

 한국의 석탑은 삼국 말기인 600년경에 백제와 신라에서 발생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는 한국 석탑의 전형양식을 얻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전통의 여세는 고려로 계승되어 고려 석판으로서의 특징을 보이는 동시에 지방적 특색을 조선조 초기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전시대를 통하여 건립된 한국 석탑의 양식을 크게 나누면 전형 양식이라 일컫는 방형 중층형과 이를 벗어난 특이한 형태의 이형적 석탑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 두가지 양식에 있어서 방형 중층형 석탑에서는 표면장엄의 유무와 조식의 다양성 등에서 차이가 있으나 그 기본적인 형태에 있어서도 방형의 평면에 중층의 형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형 석탑에서는 형태 자체가 외양적으로 전혀 달라져서 방형평면을 완전히 벗어나고 중층의 형식에서도 탈피하여 각양각색의 조형을 보이고 있으니 우리 민족의 기발한 창의성과 우수한 예술성을 여기서 찾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정영호외, <석탑>, 대원사, 1993

황수영, <석탑>, 동화출판공사, 1974

김원용외, <한국의 미>, 중앙일보사, 1992

그 외 인터넷 검색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