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에 대해서

                                               20010371 인문학부 유민섭

*불상의 전래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됨과 동시에 불상과 불경이 함께 들어왔던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불상의 역사는 불교 수용의 역사와 일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언제부터 불상이 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보면, 6세기 말 백제의 사신인 심신이 불상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는 한반도 내에서 자체적으로 불상이 제작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가장 오래된 불상은 1959년 뚝섬에서 출토된 것으로 5세기 초나 중엽 경의 중국 북위의 불상 양식과 유사하여 대체로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불교가 전래된 초기 우리나라의 불상 양식은 대체로 뚝섬의 불상처럼 중국식 불상 양식을 모방하거나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불상의 구분

불상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눌 수가 있지만 보통 존상의 위격에 따라 여래상(=불상), 보살상, 신중상, 나한 및 조사상으로 나뉘며, 여기서 다시 석가여래상, 아미타여래상 또는 문수보살, 관음보살, 보현보살, 미륵보살, 그리고 사천왕상, 팔부신장 등 매우 다양한 종류로 나누어진다. 그 외에 결합이나 구조에 따라 삼존상, 불병존상, 독존상 등으로 나누기도 하며, 53불, 천불, 삼천불, 4방불, 5방불 같은 방위불 등의 구별도 가능하다. 또한 불상은 금, 은, 동, 돌, 흙 등의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들어지는데, 그 재료에 따라 금불상(金佛像), 은불상(銀佛像), 금동불상(金銅佛像), 철불상(鐵佛像), 나무불상(木佛), 돌불상(石佛像), 소조불상(塑造佛像), 도자불상(陶磁佛像), 협저상(挾紵像) 등으로 부른다. 그리고 크기에 따라 장육상(丈六像), 반장육상(半丈六像), 등신상(等身像), 걸수반불상(傑手半佛像), 대불(大佛) 등이라 부르는데, 장육은 보통 사람의 키를 기준으로 16척 크기의 불상을 의미하며, 걸수반불이란 한뼘만한 길이의 불상을 의미한다. 

 *삼국시대

삼국시대의 불상은 대체로 중국 남북조시대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하였다. 고구려의 대표적인 연가 7년명 금동불입상(539년 또는 599년 추정)은 중국 북조(北朝)의 북위양식을 보여주면서도 예리하고 투박한 조각수법이 잘 나타나있다. 반면에 백제는 남조(南朝) 특히 양(梁)나라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 부여 군수리의 납석제불좌상이나 서산 마애삼존불상의 따뜻한 미소나 자연스러운 곡선에서 한국적인 인간미와 부드러운 조형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고구려, 백제의 불상양식은 뒤늦게 발달하는 신라불상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7세기에 들어서는 수대(隋代)의 새로운 불상양식이 반영되어 경주 배리삼체석불이나 삼화령 미륵삼존상과 같이 부드러움과 양감이 강조되는 불상양 식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반가사유형보살상은 미륵신앙과 결합되어 삼국에서 모두 유행하였으며 국보 제78, 83호와 같은 금동반가상은 그 대표가 되는 걸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삼국시대의 불상은 몸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며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있고 손과 다리의 조각표현에는 별로 입체감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삼국의 각기 특징있는 불교미술은 일본에도 영향을 주어 호오류지 (法隆寺)의 목조관음상이나 고오류지(廣隆寺)의 목조반가사유상과 같은 상에 그 영향이 나타난다.

● 신비성이 강함

● 중국모방으로 자주적인 성격은 약함

● 반가상이 많이 조성됨

←미륵신앙의 영향

←특수층이 자기 뜻대로 조상하려는 자력적 의미 강함

 

*통일신라

통일신라시대에는 백제와 고 신라의 불교조각 전통 위에 새로이 수용되는 중국 당나라 및 인도, 서역과의 문화교류로 불교미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가장 국제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불상조각도 신체비례에 균형이 잡히고 얼굴의 세부 표현이나 몸체의 양감 및 사실적인 옷주름 처리, 정교한 영락장식 등의 표현에서 뛰어난 조각솜씨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유물들은 대부분 경주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8세기의 감산사지 출토 석조아미타불 및 미륵보살입상이나 석굴암 불상군 등에서는 인도에서 서역을 거쳐 중국에서 발달한 불상양식의 신라적인 수용과 변형에 따른 한국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석굴암 불상군에 나타난 종교적인 숭고미와 완벽한 조각기술은 뛰어난 예술성의 극치이며 균형과 조화를 이룬 석굴 속에는 불, 보살, 천인, 나한들이 모여서 이상적인 불국토를 이루고 있다. 신라 후기에는 금동불이 적어지고 조각수법이 쇠퇴하는 대신 석굴암의 본존을 따르는 항마촉지인 불좌상 형식과 지권인(智卷印)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새로이 등장하여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까지 유행하였다.

● 이상세계를 향한 깊은 사색을 통한 사실적 조화미의 극치를 보임-불상에 대한 귀의의 감정과 자력적 불심이 조화를 이룸(자력적 의미와 타력적 의미의 조화)

● 반가상 대신 비로사나불상과 아미타불이 많이 조성됨

*고려

고려시대에는 불상의 중심지도 경주를 벗어나 지방 여러 곳에서 선종사찰이 세워짐과 동시에 지방호족들의 후원으로 불교미술도 지역적으로 발달하였다. 즉,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불상형식이 나타나며 연산 개태사 삼존불상이나 논산 관촉사 보살입상, 부여 대조사 보살입상 등 충청도 지역에서도 개성적이고 규모가 큰 대형불상들이 유행하였다. 고려 초기에도 역시 중국 오대(五代), 요(遼), 송대의 불상에 영향을 받았지만 고려 나름대로의 지역성과 토착적인 조형미를 살려서 인간적인 부처의 모습으로 발전해 나갔다. 고려 후기에 이르면 충청도 문수사, 장곡사의 금동불좌상과 같이 온화하고 정돈된 조형감을 보여주는 불상이 만들어지는 한편, 원나라 왕실과의 교류로 인하여 라마불상의 영향을 받은 장식적이고 새로운 불상형식이 일시적으로 유행하여 조선시대까지 계속되었다.

● 신라불상에 비하여 수준이 떨어짐

← 불상이 귀의 감정으로서의 대상임

← 선종의 파격적 시도

● 자력+타력의 조화를 못이루고 자력(선종) 또는 타력(불상)한 의미만의 종교로 변화

← 대중불교, 의식불교로서 각종 불교의식이 성행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탄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이른바 억불숭유(抑佛崇儒) 의 정책과 함께 국가적인 후원이 줄어들어 불상은 전반적으로 쇠퇴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초기에는 고려 불상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나 차츰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토착적인 성격이 강해지면서 주로 개인의 행복이나 내세를 위해 소규모의 불상 제작과 개인용의 불감(佛龕), 목각탱 등이 만들어졌다.

● 예술적인 아름다움 창조적 양식이 사라지고 형식은 있으나 내용이 없는 불상이 조각됨

← 억불정책으로 불교가 사회적인 의미를 잃음

← 세속화되고 형식화 됨

<참고문헌>

황수영 지음, 불탑과 불상,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진홍섭 지음, 불상, 대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