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해설 : 삼한·삼국유민의 일본열도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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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도 일본열도에서 삼한 삼국 계통의 문화는 낯설지가 않다. 그것은 일본열도 곳처의 지명에까지 투영되어 전해오고 있다. 먼저 도쿄의 신주쿠역에서 전철로 1시간 가량을 달리면 세이부선(西武線)의 고마역(高麗驛)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고마향(高麗鄕)이라는 곳이다. 고구려와 관련된 지역임을 금새 알 수 있다. 고마역 앞에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라 새긴 한쌍의 장승이 서 있어 한국 문화가 고마향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다음에 오사카의 이카이노 지역 일대는 옛날에            고마노사토의 고마역     구다라군(百濟郡), 구다라천(百濟川)이라는 지명으로 부른 적이 있었으며, 최근에는 이 지역에서 백제와 관련된 문물이 확인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또한 효고현(兵庫縣)의 아마가사키시(尼崎市) 근교에는 시라이(白井) 신사가 있는데, 이 '시라이'는 신라를 지칭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삼국의 국명이 오늘날까지도 일본열도의 여러 지명에 남아 있다는 것은 삼국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던 것인가를 짐작케 한다. 실제 일본 고대의 유물 유적에서 삼한 삼국 문화의 향취를 유감없이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스에키라는 고대 일본토기는 그 모양이나 만든 수법이 가야토기나 신라토기와 흡사하다. 일본 고분에서 나오는 각종 마구와 갑옷 투구 등도 역시 가야 고분의 것과 아주 비슷하다. 또한 다카마쓰 고분의 벽화에 나오는 사신도와 인물도는 고구려 고분벽화              사이타현 고마천        의 그것을 보는 듯하다. 이러한 사례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만큼 많은 삼한 삼국유민들이 일본열도로 건너가서 그들의 문화를 보급하고 발달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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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에 관한 문헌 기록은 결코 많은 편이 아니어서, 겨우 그 흔적만을 살펴볼 수 있을 정도이다. 그나마도 주로 일본 측에 의해서 조작 왜곡된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어서, 이에 접근하기에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예를 들어 삼한 삼국유민의 일본진출과 이들을 통한 문화 전파의 사실을, 삼한 삼국이 일본 천황의 명에 따라 물산을 진상한 것처럼 꾸며 놓고 있는 식이다. 일단 이러한 조작된 면을 솎아 낸다면, 문헌기록을 통해 삼한 삼국유민의 일본진출의 추세를 대체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다.

 일본열도와 한반도의 인적 물적 교류는 문헌 기록만으로 판단해 보아도 큰 흐름은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흘러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본열도에서 한반도로 들어와 크게 활약했던 인물로는 신라 초에 신라 왕실에서 최고위 벼슬을 했던 호공(瓠公)이란 인물 정도를 들 수 있을 뿐인데 [자료1], 그 반대의 경우는 우리측, 일본측 기록을 막론하고 그 수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몇가지 대표되는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삼한과 삼국 초기에 일본열도로 진출해간 사례를 들면, 우리측 기록으로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가 일본열도로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되었다는 설화가 있으며 [자료2], 일본측 기록으로는 가야왕자로 전하는 쓰누가아라사토(都怒我阿羅斯等)와 신라왕자인 천일창(天日槍)의 진출 기사를 들 수 있다 [자료3], [자료4]. 이중 쓰누가아라사토에 관한 이야기에는 황소 및 농기구와 신물(神物)인 흰 돌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 있어 일본의 소를 이용해 농사짓는 우경(牛耕) 기술과 신물 신앙이 가야에서 전하였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또한 천일창의 경우는 여러 가지의 옥(玉) 종류를 비롯하여 칼과 창, 동경, 그리고 신의 강림처를 꾸미는 신롱(神籠)을 가지고 갔다고 하는데, 이들은 신라 신물 신앙의 종합을 연상케 한다. 천일창이 가지고 간 이들 신물들은 고대 일본 왕실의 보물로 각별히 신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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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출의 큰 흐름으로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 5세기 초에 백제가 아직기와 왕인을 보내 일본 왕실에 유교 경전을 전하여 가르쳐 주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며 [자료5], 백제 성왕 때인 6세기 중반 경에는 노리사치계를 보내 불경을 전하고 그 신앙의 심오함을 가르쳐서 불교를 신앙할 것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자료6] 이후 일본열도로  건너가는 삼국의 승려들이 줄을 이었으니, 그들은 삼국의 선진 문화를 일본열도에 전수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으례 일본 왕실의 융숭한 대우를 받았다. 일본에서 활동했던 승려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로는 7세기 초에 건너간 고구려의 담징을 들 수 있다. 그는 일본에 불교 뿐 아니라, 유교 경전과 그림을 그리는 물감 종류, 그리고 종이와 먹 등 다양한 선진 문화를 전수해 주었다 [자료7]. 그가 그렸다는 호류사 금당벽화는, 1949년에 소실되어 버렸지만, 일본이 세계적 보물로 자랑하는 너무나 유명한 그림으로서, 현재 복원을 추진 중에 있다.

 이처럼 삼한 삼국유민이 진출하면서 일본열도에는 문화의 깊이를 더해 갔던 것이니, 6세기 후반에 꽃피운 이른바 아스카(飛鳥) 문화는 그 결과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7세기 삼국의 통일 과정에서 패배한 고구려 백제의 유민들이 대거 일본열도에 건너갔으니, 이들이 전수한 선진 문화에 힘입어 일본은 7세기 후반의 이른바 하쿠후(白鳳)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자료..

 三國史記

 三國遺事

 日本書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