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둔사 -

                                                                20010330김진태

●위치와 창건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에 자리한 대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22교구 본사이다. 절 이름은 1900년대 초에 대흥사로 되었다가 근래 다시 본래의 이름인 대둔사로 바뀌었다. 절은 교구 본사 인 까닭에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며, 서산대사의 유품을 간직한 절로도 이름나 있다. 또한 절은 문화재가 다량 소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조선 후기에 연담 유일이라든가 초의 의순등 저명한 스님들이 머물렀던 절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오늘날 유행하는 다도의 고향으로도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다.

<죽미기> 등의 옛 기록에는 절이 신라 법흥와 1년(514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거나, 또는 백제 구이신왕 7년(426)에 신라의 정관존자가 창건하였다거나, 통일 신라 시대인 895년(헌강왕1) 도선국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귀국한 후 500개의 사찰을 짓는 게 좋겠다고 하여 지은 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둔사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옛 기록들은 자료를 수집한 아암 혜장 등이 이미 기록 그대로는 믿을 수 없으며 역사적 사실이라고 할 수 없음을 논증한바 있다. 현재 대둔사에 남아 있는 유물 가운데 시대가 가장 올라가는 것은 통일 신라 말기쯤에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는 응진전앞 삼층석탑이다. 이 석탑이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대둔사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면 대둔사의 건립은 늦어도 통일신라시대 말기쯤으로 볼 수 있다. 대둔사가 역사상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조선 후기에 와서이다. 곧 서산대사의 유품을 봉안하고 스님을 기리는 표충사를 세우면서 절은 크게 번창하게 된 것이다.

 

●성보 문화재

절은 그동한 낡은 건물에 대한 활발한 개수   보수가 있어 불과 아삼년전과 지금의 또 다르다. 현재 절에는 대웅보전, 대광면전, 천불전,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종각, 침계루, 백설당, 천왕문, 봉행각, 가허루, 용화당, 별당, 동다실, 객실, 대향각, 종무서, 일주문 등의 전각 외에 부속 건물인 펴충사, 선사대사 유물관, 보련각, 동국선원 등이 있다.

 

●대웅보전

팔작지붕에 앞면 5칸, 옆면 4칸 규모로서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최근에는 1969년 중수되었으며, 절 아래쪽인 북쪽에 있다. '대둔사지'권2와 <대둔사대웅전중건기>에 의하면 1667년에 대웅전이 서 있던 북원 전체가 불에 타자 1901년 법한 대사가 화주가 되어 새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안에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아미타, 약사여래가 좌우로 협시나 목조삼세불이 있고, 불화로는 삼세후불탱화를 비롯해서 감로탱화, 삼장탱화, 제석천룡탱화, 칠성탱화가 있다.

 

●응진전

대웅보전 동편에 있으며, 맞배지붕에 앞면 5칸, 옆면 3칸이다. 산신각을 겸하고 있어 왼쪽3칸은 응진전, 오른쪽 2칸은 산신각이다. 응진전 안에는 석가부처님을 중심으로 분수, 보현 보살의 석가삼존상을 비롯하여 나한상 14체 및 동자상, 시자상, 사자상, 이왕상이 각각 2체씩 있고, 불화로는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4폭, 사자도 2폭이 있다 또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명부전

img20.gif

명부전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2칸이며 아래쪽은 벽체로 되어 있다. 안에는 지장보살좌상을 비롯하여 시왕사 10체, 무독귀왕과 도명존자, 동자상11체, 승상 판관상 각1체, 또다른 판관상 10체, 녹사 사자 인왕상 각2체가 있다. 불화로는 1901년에 조성된 지장후불탱화가 있다. 그 밖에 1906년에 쓴 <두륜산대흥사명부전헌답기> 현판이걸려 있다.

 

●천불전과 천불상

남원의 중심 건물인 천불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이며 짜임새가 매우 우아하여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48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불전'이라는 편액은 당대의 명필 이광사가 썼다.

천불전은 1811년에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1813년에 완호 윤유대사가 화주가 되고 제성대사가 유나가되어 다시 지은 것이다. 중건에 주죈 역할을 했던 완호 윤우는 바로 초의 선사의 스승이었다. 천불전을 다시 지은 후 완호대사는 쌍봉사의 금어 스님인 풍계대사에게 천불을 조성을 의뢰하였다. 천불전의 정면 불단 중앙에는 나무로 만든 석가삼존불상이 모셔져 있고 그 뒤쪽에 옥돌로 된 천불이 가득 봉안되어 있는데, 천불은 그 모습이 각각 다를 뿐만 아니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마치 조선시대의 단아하면서도 정중한 선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 천불상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52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화로는 1986년에 봉안한 제석천룡탱화가 있고, 그 밖에 1902년에 조성한 반자가 있다. 반자는 몸체에 연호와 함께 황실의 안녕을 비는 글씨가 돋을새김과 잠각으로 표현도었다

천불전 북쪽 벽에는 최근까지만 해도 1794년에 만들어진 사천왕 탱화와 1819년에 조성된 신중탱화가 모셔셔 있었으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신중탱화에는 중사로 초의선사의 이름이 있다 이두 불화는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여 조선 후기 불화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표충사

표충사 대둔사의 사격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대표적 전각으로서 절과는 별도의 구역을 이루고 있다. 이 일대는 표충사 외에 조사전 의중다 요사 표충비각 강례재 호국문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표충사는 임진왜란 대 승군을 조직하여 왜병을 무찌르는데 많은 공로를 세운 선사대사의 훌륭한 업적을 기리고 그를 추모하기 위한 사당으로 건립되었다. 1788년에 조정으로부터 서산대사를 기리는 표충사라는 사액을 받은 대둔사는 이듬해 지금의 터에 표충사 건물을 지었다. 그러나 건물을 지은지 불과 48년만인 1836년에 당시의 주지 설순 승환스님등이 기둥이 부러지고 들보가 썩었다고 대웅보전 뒤로 옮겨지었다. 그러나 새로 지은 건물이 대웅전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 흠이 있어 1861년에 지봉대사가 다시 본래 자리로 옮겨지어서 현재에 이르렀다. 금물로 쓴 '표충사'라는 편액글씨는 정조대왕의 친필이라고 전해지며 함께 걸려 있는 '어서각'이라는 현판 글씨는 추사의 제자 신관호가 쓴 것이라고 한다.

 

●서산대사 유물관

 

서산대사의 유품을 비롯하여 표충사를 세울 때 조정으로부터 받은 유물 등 많은 성보 문화재들이 이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996년에 지어졌으며 안에는 서산대사의 친필 선시와 사면 대사 친필 선시, 그리고 서산대사에게 내린 교지를 비롯하여 승병대장 사령패와 부월, 서산대사가 신었다는 신발, 선조가 하사한 옥으로된 발우와 비단으로 만든 금란가사등 수 많은 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또한, 금물로 쓴 법화경과 금강경 은물로 쓴 부모은중경 법화경 대보적경 화엄경 등이 있으며, 신라와 고려때의 금동여래상 각1체 조선시대의 청동탄생불 1체 및 고려시대에 만든 탑선사 동종 등이 보관되어 있다.

 

●보련각

대광명천 왼쪽 뒤편에 있는 맞배지붕에 앞면 8칸, 옆면 3칸의 길다란 누각식 건물로서 `보련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안에는 서산대사 이후 선사들의 영정이 한 폭에 12명 또는 24명씩 모두 7폭으로 봉안 되어 있다. 이는 서산대사 문도들의 종통을 영원히 계승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선사영정 옆 맨 왼쪽에 태산 백운의 영정도 있어 전부 8폭의 영정이 있다.

 

●응진전앞 섬층석탑

응진전 바로 앞에는 보물 제320호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1기가 있다. 전체 높이 430cm로서, 탑의 조각 수법이 세련되고 정교한 편이지만 옥개석의 간략한 층급받침이라든가 낙수면의 끝을 위로 처들인 조각 수법으로 보아 신라 말기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서산대사 부도

일주문을 지나 절의 입구에는 30여기의 부도가 모여 있어서 하나의 부도숲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는 13대정사와 13대강사를 비롯한 역대 대둔사 고승 대덕들의 부도와 탑비가 포함되어있다 이는 대둔사가 수많은 고승 대덕들을 배풀한 굴지의 사찰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맨 앞쪽에 있는 서산대사의 부도는 전체 높이260cm로서 전라남도 유형문화개 제 57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둔산 산내암자

절의 산내 암자로는 북미륵암, 남미륵암, 일지암, 진불암, 관음암, 청신암이 있다.

 

●북미륵암, 남미륵암

두륜산 노승봉 아래에 마애미륵불이 조성되어 있는 북미륵암과 남미륵암이 있다. 하나는 북쪽에 잇다 하여 북미륵, 다른 하나는 남쪽에 있다 하여 남미륵이라 불려진다.

이 두 암자는 창건에 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는데 [대둔사지]에는 1754년에 온곡 영탁 대사가 중수 했다는 기록이 있다.

북미륵암은 용화전, 요사 등으로 이루어 졌다. 용화전은 마애여래좌상을 봉안하기 위한 것으로 그 밖에 신중탱화, 산신탱화와 1987년에 조성한 중종 및 위패가 있다.

남미륵암은 [대둔사지]에 이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곧 `두륜봉 아래 남미륵암이 있는 미륵불은 전실이 없어 이끼가 끼어 있다.`고 씌어 있다.

현재 남미륵에는 토굴을 지어 놓고 수행 했던 조그마한 전각이 남아 있는데 이곳에서 고려 시대 양식으로 보이는 납석여래좌상 1체가 발굴된바 있다.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노승봉 아래에 있는 북미륵암의 거대한 암벽에 양각된 고려시대 마애불이다. 높이가 420cm에 달하는 거대한 여래좌상으로 현재 보물 제48호로 지정되어 있다.

●북미륵암 삼층석탑 및 동탑

마애불이 있는 곳에서 약 30m 오른쪽에 고려 초기의 석탑인 북미륵암 삼층 석탑이 있다. 높이 400cm이며 현재 보물 제301호로 지정 되어 있다.

삼층석탑에서 건너다 보이는 동쪽 산등성이에 똑같은 형태의 석탑이 있다. 이 탑은 3층 옥개석이 결실된 채 남아 있었는데 1995년 북암, 요사 중수와 함께 원형대로 복원 되었다.

이 탑의 각 부분의 형식이 북미륵암 삼층석탑과 흡사하여 같은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산대사유물관에 전시된 3체의 금동불상이 1970년 바로 이 탑에서 발견 되었다.

이 두 탑은 동서로 대칭을 이루는 쌍탑으로 조성된 듯한데 이 쌍탑의 아름다운 조화가 대둔팔경의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만일암터 오층석탑

남미륵암과 북미륵암의 중간 지점인 만일암터에는 오층석탑을 비롯하여 석등부재들이 흩어져 있다.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측 되며 높이는 540cm이다.

 

●일지암

 대둔산 대웅전에는 700m가량 가파란 산갈을 따라 올라가면 조선 후기의 대표적 선승 가운데 한 사람이며 또한 우리나라 다성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가 그의 `다선일여` 사상을 생활화하기 위해 꾸민 다원인 일지암이 나온다.

초의선사는 일지암을 39세 때인 1824년에 중건하였는데 1866년 81세로 입적할 때까지 이곳에서 독처지관을 한 유서 깊은 암자이다.

`일지암` 편액이 붙어 있는 정자는 1980년 한국다인회 회원들이 다도의 중흥초 초의가 기거했던 일지암을 기념하기 위해 복원하여 놓은 것이다. 일지암은 우리나라 다도의 요람으로 불리고 있으며 매년 음력 8월 1일 초의의 열반일을 기해 추모 행사인 초의제를 거행하고 있다.

 

●진불암

진불암은 서산대사의 영정이 모셔진 표층사를 옆으로 끼고 계곡을 따라 약 1Km 가량 올라간 곳, 두륜산 산중턱에 자리잡은 대둔사의 산내암자다.

 

●청신암

청신암은 대둔사 산내 암자 가운데 본절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다. 위치는 두륜산의 가장 큰 지류의 계곡 옆에 있으며 비구니들의 수도처로 되어 있다.

청신암은 법당겸 요사를 겸하고 있다. 안에는 아미타불상과 관음, 대세지보살의 삼존상이 있고 아미타탱화, 칠성탱화, 신중탱화, 독성탱화, 산신탱화가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신중탱화로서 본래 1868년 에 도선암에서 조성한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무량수각을 비롯한 각종 현판들이 즐비

 

대둔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창건한 이래 13대종사와 13대강사를 배출한 도장이며, 수많은 학자와 시화묵객(詩畵墨客)이 청교(淸交)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사찰 경내에는 대웅보전, 천불전, 용화당, 봉향각, 진불암 등이 있으며 추사 김정희의 무량수각을 비롯한 각종 현판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마치 서예 전시를 방불케 하듯 곳곳에 걸려있어 대둔사가 불교의 도량임은 물론 조선후기 한문화의 장을 여는 역할까지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대둔사를 찾기 위해 대둔사 입구로부터 10리나 되는 울창한 무숲길과 계곡물을 따라 가면 피안교, 일주문을 지나 수많은 부도를 만나게 된다. 대둔사에는 56기의 많은 부도(浮屠)가 있으며 이것들은 조선시대의 불교조각사와 불교사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해탈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대둔사 가람이 펼쳐지는데 전체 영역이 넷으로 나뉘어졌으며 각 구역은 돌담으로 둘려 있다. 두륜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금당천)을 경계로 북원과 남원으로 나뉘고, 남원구역은 다시 서산대사 사당인 표충사 구역과 대광명전 구역으로 나뉜다. 대둔사 13대 종사로 대선사였던 초의선사가 말년에 40여 년 간 은거하며 지낸 일지암도 들러볼 만 하고, 현재 대둔사안에는 동다실이라는 차 마시는 곳을 운영하고 있으니 이곳에 들러 차 맛을 음미해보는 것도 좋다.

 

 

 

 

중창시의 불화들

 

img19.gif

대둔사는 선사 대사의 의발이 모셔진 이후 대가람으로 변호하게 되는데 표충사는 오늘날 대둔사의 사격을 단적으로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정조 임금의 표충사 진필을 내려지고 금병풍이 하사되는등 국가 서원 사찰로서의 무게를 갖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1789년 표충사가 건립된 이후 여러차례 대대적인 중창이 벌어졌는데 이러한 불사에 따라 각 전각의 불상 뒤에 거의 후불화를 비롯하여벽면에 장엄하게 장식하기 위한 불화가 다수 조성되었다. 당시 제작된 불화들은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인데 이후 19세기 중엽에 조성된 대과면전의 불화 3점과 선사대사 유물관에 전하는 관음도 2점, 대왕보전의 지장사왕도(1866년), 청신암의 신중도(1868년), 아미타극락회도(1870년) 등이 대표적인 불화로 남아있다.

대둔사는 전체적인 배피를 보면 댇웅전, 천불전, 대광면전등이 각각의 영역을 가지고 건립되어 있는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각자의 영역에 있는 전각에는 많은 불화가 봉인 되어 있는데 이중 대둔사에서 가장 특별한 불화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대웅전 내의 삼중불 뒤에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삼불회도이다.

대웅전은 대부분 사찰에서 중심전각으로 되어 있어 석가 여래좌상이 단독으로 봉인 되어 있거나 그 좌우에 보처 보설로 문수와 보현, 양대보살상이 대립하여 삼존불의 형태로 봉인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어서 불화도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보통 불상뒤에 1축이 자리 잡고 있지만 대둔사 대웅전내에 봉인 되어 있는 탱화는 3축으로 외어있다.

각기 다른 불화가 삼존불 뒤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의 석가여래 탱화, 중편의 약사여래 탱화, 서편의 아미타여래 탱화는 각기 다르면서도 전체적으로 결국 하나를 이루고 있어 다른 어느 사찰에서도 보기 힘든 특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탱화는 1899년 화재로 대웅전이 불타고 1901년 대웅전이 다시 건립(8번째 증건) 되었는데 탱화는 그때 조성되었다고 하며, 이때 대웅전 및 응진당, 산신각의 불화 17점이 함께 제작되었다고 한다.

대웅전의 삼불회를 통해 또 특별한 경우를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불화기에 씌어 있는 시주자 들의 이름이다. 이것은 이 불화를 조성 할 때에는 국가에서 주관한 대대적인 불사였음을 알 수 있으며 대둔사가 일반 사찰과 달리 표충사가 있는 국가의 서원 사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파악할 수 있다.

(탱화란⇒ 쉽게 말해 불교의 신앙내용을 그린 그림으로 내용은 신앙대상이 되는 여러 존상만을 그리는 존상화와 경전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변상도의 성격을 지닌 것이 있다. 탱화는 기능에 따라 본존의 후불탱화와 신중탱화로 나누어지고 신중탱화는 다시 팔부 신중탱화와 사천왕 탱화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후불탱화가 본존불의 신앙적 성격을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면 신중탱화는 수호신 적인 기능을 띤 것이다. 한국의 사찰은 어디든지 신앙 대상으로 불상을 봉안하고 그 뒤에 탱화가 걸려 있게 마련인데 일본이나 중국 등지의 사찰헤는 이와 같은 탱화가 없다. 물론 한국 탱화와 비슷한 불화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들 불화는 한국 탱화와 같이 직접적인 신앙 대상으로 봉안되거나 불상의 뒷벽에 거는 후불 탱화로서의 성격을 지니지 않는다.)

 

교화용 불화

 

대웅전을 들어가면 본존불 뒤에 봉안되어 있는 불화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부처의 뒤에 있다해서 후불탱화라 부르며 교화용 그림도 되지만 부처님을 예배하는데 사용하는 예배용 불화이기도 하다.

또한 불화에는 불교의 교리를 일반 대중에게 쉬게 전달해 주는 방법의 하나로 부터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시왕도와 감로왕도, 착한 일을 함으로써 서방정토에 갈 수 있다는 아미타여래영도 등의 교화용 불화가 있다. 대둔사에 있는 불화중 현재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것은 대광명전에 봉안되었던 불화들로 칠성탱화, 법신중위회도는 1844년 작이며, 지장탱화는 1854년에 제작되었다. 대광명전은 1844년 초의선사가 조성한 전각으로 그곳에 봉안되어 있는 불화들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초의 선사는 당시 선비들과도 밀접하게 교류했던 스님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대광명전의 불화들은 작품성에 있어서도 뛰어난 작품들로 보고 있다.

이중 칠성탱화는 화면의 중앙을 횡으로 가로지르는 수미단 위에 치성광여래를 배치하고 치성광여래의 주변에는 칠여래 칠원성군, 원 모습의 칠성과 좌우 보필성이 대칭으로 배열되어있다.

그리고 하단의 중앙에는 자미대제와 좌우 보필성, 수성, 칠원성군삼태육성을 수평으로 배열하고 상단과 하단의 중앙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자리하며 각각의 뒤 좌우에는 보필 성이 구름에 싸여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대광명전의 불화와 함께 서산대사 유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관음보살도는 지방 유형문화재 179호로 지정되어 있는 불화이기도 하다. 두 점이 함께 보관되어 있는 이 관음보살도는 초의 선사가 그렸다고 전해지는데 1850년 작이다. 두 작품은 견본 담채로 그려져 있으며 여러곳의 비단이 훼손되었지만 보존 상태는 양호한편이다.

섬세한 필치로 그려진 이 불화는 대광명전에 봉안된 불화들과 부처의 얼굴이나 장식 및 의습에 있어서 상당히 비슷하다. 그래서 이관음보살도는 대광명전의 불화들이 조성 되었던 1850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img18.gif

참고자료..

國譯大芚寺志     석천운     大芚寺志刊行委員會     1997      

大芚寺誌     한국학문헌연구소     아세아문화사     1977   

대흥사     목정배     대원사     1994     

(이세용과 함께하는)國土 文化 巡禮     이세용     동성프로덕션     1994     

韓國의寺刹     한국불교연구원     一志社     1974   

 

 

 대웅보전

천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