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생가(永郞生家)

 

 img25.gif

1906년에 건립된 영랑생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란 詩(시)로 널리 알려진 令郞(영랑) 金允植(김윤식)(1903∼1950)이 태어난 곳이다.

김윤식은 金鍾湖(김종호)와 김해김씨 사이에서 5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나 부유한 환경속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1909년 강진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영랑생가            1916년 서울 기독청년회관에서 영어를 수학하고 1919년기미독립운동이 발발하자 고향에 내려와 강진지역의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대구교도소에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루었다.

 출옥후 영랑은 고향집에서 문학에 뜻이 있는 인사들과 함께 『靑丘(청구)』라는 동인지를 내며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그 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청산학원 중학부에서 수학한 후 귀국하여 龍兒(용아) 朴龍喆(박용철)등과 교류하면서 최초로 동인지 『詩文學(시문학)』을 만들면서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문학적 세계는 일제치하에서 설움받는 민족의 恨(한)을 시로 표현하고 그의 젊은 정열과 민족의 기상을 은연중 문학을 통해서 불살랐던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巨星(거성)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그는 순수 서정시의 한국적 모범을 보여 한국 詩史(시사)에 값진 영향을 끼친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다.

1950년 6·25사변이 발발하자 함께 근무하던 공보처 직원들로부터 피신하라는 연락을 받았으나 피난길에 미쳐 오르지 못하다가 동년 9월 29일 포탄의 파편을 맞아 사망하였다.

1970년 광주 사직공원에 박용철과 함께 詩碑(시비)가 나란히 건립되었으며, 1975년 강진청년회의소가 건립한 시비가 강진읍 소재 어린이 공원(현 군립도서관)에, 1979년 11월 강진군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군민들이 건립한 영랑동상이 강진읍 동쪽 영랑로터리에 서 있다.또한 영랑생가에는 1988년 5월 10일 강진군 번영회가 주관하여 세운 영랑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생가의 본채는 1906년에 건립된 것으로 본래 정면 5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인하여 시멘트기와로 보수하였으며, 기단부와 벽채등은 시멘트로 발라 원형을 상실했다. 그후 1992년 강진군에 의해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여 현재의 본채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복원된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초가집이다.

본채에서 약 10m 떨어진 좌측으로 사랑채가 있는데 이 건물은 193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며 정면 4칸, 측면 2칸반의 팔작집이다. 대체로 원형이 잘 보존된 건물로 알려져 있다.

영랑의 대표적인 詩(시)로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동백잎이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한줌흙」, 「오-메 단풍 들것네」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