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암서원

 위 치 :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7

 규 모 : 대지 1,764평, 건물 18동

    관리 ­ 울산김씨 문중

 문화재 : 국가지정 보물 587호

    수량 : 14책 64매(장서각에 보존)

 국자사적지 제 242호

 봉안인물 : 2위

    하서 김인후(1510 ~ 1560년) ­ 1796 문묘 배향 (주향)

    고암 양자징(1523 ∼ 1594년) - 하서의 제자겸 사위(종향)

 연 혁

    1590 ­ 하서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호남유림의 공의로 장성읍 기산리에 창건

    1597 ­ 정유재란때 병화로 소실

    1624 ­ 황룡면 증산동에 복설

    1659 ­ 필암서원이라 사액

 

   하서 김인후 선생

 호남유림의 종장으로 추앙받았으며, 22세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31세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34세때 세자 시강원설서가 되었다. 정조대왕은 영의정을 증직하고 문정이란 시호를 하사하였다.

 

필암서원 고문서

 서책과 고문서들은 인조 2년(1624~1909년) 자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중기 이후 지방 교육제도 등 당시의 사회상과 경제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  

 

 묵죽도

 인종께서 세자로 계실 때 친히 그려서 하서선생께 하사하셨으며 그림 아래쪽에 하서선생의 시가 있음

 

장판각

 하서선생의 문집을 발간할 때 사용한 목판(645매)으로 지금도 원형 그대로 보존 구문집판 261장, 신문집판 315장, 하서선생 유묵초천자판 8장, 필법판 3장, 고백행판 12판, 무이구곡판 4장, 백련초해 13장, 상량문 등 소장  

 

유림의 고장, 장성

   전남 장성은 산지가 많은 만큼 봉우리와 고개, 골골마다 하천도 많지만, 그 가운데서서도 1,300년 역사를 지닌 백양사를 품고 있는 백암산은 일찍부터 조선팔경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장성을 장성답게 하는 것은 유서 깊은 서원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지방에서 선비의 고장을 말할 때면 흔히 '광나장창'이라고 하듯이 장성은 광주,나주,창평과 더불어 선비가 많고 학문이 성한 곳이었고, 경상도에서 안동 문장을 으뜸으로 치듯이 전라도에서는 장성 문장을 첫째로 쳤다.

  장성이 예로부터 문장의 고장이 된 것은 특히 이 곳에 하서 김인후(1510~1560)의 필암서원과 노사 기정진의 고산서원이 있기 때문이었다.  

img8.gif

호남 유일의 문묘제향인 김인후

  김인후 선생은 장성 황룡면 맥호리 출신으로  열살 때 김안국(金安國)에게서 《소학》을 배웠고, 1531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 이황(李滉) 등과 교우가 두터웠으며 세자 보도(輔導)의 중임을 맡았다.

 특히, 기묘사화 때 죽음을 당한 선비들의 원한을 신원하였고 인종이 죽고 곧이어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병을 이유로 고향 장성에 돌아갔다. 그 후 모든 벼슬을 사직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오직 성(誠)·경(敬)의 실천궁행을 학문의 목표로 삼았다. 논설과 의리가 명백했던 선생은 내실에 소홀하고 밖으로만 열심인 선비들을 호되게 꾸중했다고 하며 도의와 절개로 일관했던 선비의 표상이었다. 제자로는 정철(鄭澈) 등이 있으며, 1796년(정조 20)에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래서 선생은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에 세워지는 문묘에 모셔지는 우리 나라 18명의 현인 가운데 유일한 호남 출신으로 이 지방 유림들의 큰어른으로 추앙받아 왔다.

 

  연혁

 1590년(선조 23년) 하서 선생의 문인들과 호남유림의 발의에 의해 장성읍 기산리에 건립

 1597년 ­ 정유재란으로 소실

 1624년(인조 2년) 황룡면 증산에 복설

 1662년(현종 3년) 나라로부터 '필암'이라는 사액을 받음

 1786년 하서의 수제자이자 사위인 고암 양자징을 추가로 배향

 

구조

필암서원은 증산을 배경으로 하고 완전한 평지에 입지한 서원으로 남북자오선의 중심축을 설정해 놓고 그 선상에 주요건물을 배치한 서원 건축의 정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서원의 외부공간은 평지에 서원이 조영된 관계로 지대의 고저차로 인한 공간의 위계성은 찾아 볼 수 없으나 축선에 따라 공간의 깊이는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방형의 담장으로 명확히 구획되어 있는 매개·교육·제향공간 간에 절점역할을 해주고 있는 크고 작은 문들과 건물의 형태가 이들 공간을 유기적으로 잘 연결시켜 주고 있다.축선상의 전면에는 이 서원의 정문인 확연루(廓然樓)가  있고 그 앞에는 신성한 구역임을 알리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확연루는 정면3칸, 측면3칸의 이층 기와집으로 영조 연간에 중개수되었고 문루의 편액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이다. 문루를 들어서면 정면5칸, 측면3칸의 기와집인 청절당(淸節堂)이 있는데 이 건물에는 9칸 대청과 좌우의 3칸 협실이 있고 대청에는 송동춘의 글씨로 된 편액이 있으며 처마 밑에는 병계 윤봉구의 글씨로 된 필암서원이란 편액이 달려 있다. 청절당을 중심으로 서측의 숭의재(崇義齋)와 동측의 진덕재(進德齋)는 영조와 고종 때 개수된 것으로 서원의 동재와 서재를 이루고 있는데 그 편액은 모두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의 글씨이고 각기 6칸으로 대청과 좌우에 협실이 있다. 서재 옆으로 3칸의 경장각(經藏閣)이 있는데 인종이 세자일 때 하서 선생에게 하사한 어필묵죽(御筆墨竹)을 소장하였고 액호는 정조의 어필이다. 청절당 뒷편 중앙에는 제향 공간인 4칸반의 우동사(佑東祠)가 있다.

  고문서

 필암서원에는 보물 제 587 호로 지정된 서책과 고문서들이 있다. 고문서 중 가장 대표적인 문서는 노비 60여명의 족보를 기록한 <노비보>, 역대 원장에 관한 <원장선생안>, 서원 일을 주관했던 사람들의 명단을 적어놓은 <필암서원집강안> 등은 조선 시대 중기 지방 교육 제도 등 당시의 사회상과 경제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서원의 관리는 울산김씨 문중에서 하고 있는데  하서선생의 문집을 발간할 때 사용한 장판각의 목판(637매)은 지금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찾아가는 길

  장성읍 고속도로 톨게이트 교차로에서 함평 가는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입간판이 있다. 2.6Km      

소재지: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7, 378

편집 참고

http://chonnam.chonnam.ac.kr/~dycheon/honam.htm,

내고장 의미찾기, 우리 고장의 문화유적을 찾아(광주광역시광역연수원), 디지털 한국학

서원건축(김봉렬), 한국의 서원(최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