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20010420황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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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치

  운주사(雲住寺)는 전남 화순군 도암면(道岩面) 대초리(大草里) 천불산(千佛山)에 있는 절의 이름이다. 종파는 대한불교조계종 이다.  창건자는  도선(道詵)국사로 알려져 있으며 소재지는  전남 화순군 도암면(道岩面) 대초리(大草里) 천불산(千佛山)에 위치해 있다.

 

2. 유물 유적 및 창건시기

 

 ①운주사의 명칭 : 운주사는 여러 가지의 한문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1481년에 편찬된 『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雲住寺在千佛山 寺之左右山脊 石佛石塔 名一千 又有石室 二石佛 上背以坐(운주사재천불산 사지좌우산척 석불석탑 명일천 우유석실 이천불 상배이좌-->운주사는 천불산에 위치해 있으며 절 주위에는 불상과 석탑이 각각 천 개씩 있고, 또 두 개의 석불이 등을 대고 앉아있는 석실 <석조불감>이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 터에서 발굴된 기왓장에 '雲住寺丸恩天造'라는 구절 등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조 인조 10년(1632)에 발간된 능주읍지에는 ‘운주사 재현남이십오리천불산좌우산협석불석탑 일천우유 석실이석불상배이좌(雲住寺 在縣南二十五里千佛山左右山峽石佛石塔 一千又有 石室二石佛相背而座)’ 운주사는 현의 남쪽 이십오리에 있으며 천불산 좌우 산 협곡에 석불 석탑이 일 천씩 있고 석실에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서 일천씩의 석불 석탑이 있었던 게 분명하고 그 말미에 금폐(今廢) 라는 추기가 있어 정유재란으로 인해 소실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로 볼 때 원래 이름은 '雲住寺'가 정확한 것 같고 舟등의 글자들은 전설로 내려오는 풍수지리 상의 내용에 흡사하게 하기 위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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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운주사의 창건시기 : 운주사의 창건시기에 대하여는 신라 말기라는 설과 고려 초인 11세기초라는 등 여러 설이 있지만, 발굴 조사 결과로는 늦어도 11세기 초반에 건물들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 후 조선 연산군 때까지 네 번에 걸쳐 중수를 하였다가 정유재란 때인 1600년 경에 폐사되었다. 그러다가 1800년 초에 이르러 설담 자우에 의해 약사전이 복원되었으며 그 후 미세하게 사세를  이어 왔다고 할 수 있다.

 ③운주사의 창건목적 및 창건자 : 운주사의 창건 목적이나 창건자에 대해서는 이설이 분분하다.신라말에 도선국사에 의해 비보(풍수적인 입장으로 땅의 기가 허한 곳에 사찰을 세움으로써 땅의 기를 높인다는 주장)사찰로 건립되었다는 설, 나말여초 능주 지방의 호족 세력에 의해 개창되었다는 설, 혹은 도망친 노비와 천민들에 의해 지어졌다는 설(황석영이 쓴 <장길산>에서는 이 설을 따라 장길산 일행이 한을 품고 천불천탑을 조성한 것으로 설정하였으나 시기상으로 맞지 않는다)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모두 확증 할 수 없는 추측의 수준이다.    

 ④천불천탑 : 운주사는 탑의 건립과 사찰의 창건이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인데도 불구하고 워낙 신비스러운 사찰이라 석탑의 건립 배경이나 연대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절의 창건시기를 어느 한 시점으로 잡으면 그 짧은 기간에 어떻게 이처럼 많고 다양한 모습의 탑이  건립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옛 절터 발굴 조사에 의해 초창 시기를 11세기 가지 보아 석탑의 건립시기도 상한 연대를 11세기까지 올려서 볼 수 있는 근거는 마련되었다. 그러나 창건 때에 모든 탑이 동시에 건립된 것인지 아니면 중창 때마다 조금씩 새로이 건립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오히려 어느 특정한 시기에 대대적인 불사가 이루어지고 그 때 일시에 석탑을 건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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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불천탑의 현재 남아있는 석탑들은 대략 18기이며 탑 아랫부분만 간신히 남은 것이 3기 더 있다고 한다. 또한 모양이 완전한 부처가 57분, 불완전한 부처가 43분, 금동여래입상 1분, 금동보살입상 1분, 신재석불 1분, 기타 석조 불두, 소조 불두 등 전남대 박물관에 보관중인 것 가지 합하면 모두 100여 분이 넘는다.

천불천탑의 불상이나 석탑 등은 잔세공이 되어있지 않아 큰 예술미가 느껴지지 않고 소박하고도 파격적인 형태가 많다. 석탑 중 대표적인 9층 석탑, 7층 석탑 등 비교적 훌륭한 모습의 탑 외에도 원구형 석탑(일명 항아리 탑, 떡시루 모양의 원구로 쌓아 올렸다), 원반형 석탑처럼 다른 곳에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양의 탑, 납작한 자연석을 다듬지도 않고 세워 일면 거지탑 도는 실패탑이라고 불리우는 원형 석탑 등의 탑들까지 그 형태나 문양이 매우 특이하다.

 불상의 경우에도 석조불감에 모셔저서 등을 대고 있는 두 분의 부처의 예 등은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며, 그 외에 시위불상이나 마애불 등의 멋진 불상으로부터 앉은키가 13미터나 되는 좌상과 입상(일명 와불) 등의 거대한 불상, 그리고 거의 다듬어 지지도 않은 30센티미터 정도의 작고 그냥 돌인지 구별하기 힘든 작은 불상까지 불상의 경우에도 그 목적이나 용도, 만든 사람을 추측하기 어렵게 하는 것 등은 석탑과 마찬가지이다.

운주사 서쪽 산능선에는 거대한 두 분의 와불(미완성석불)님이 누워있다. 조상 대대로 사람들은 “이 천 번째 와불님이 일어나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말을 전해왔다. 아마도 운주사 천불천탑은 우주법계에 계시는 부처님이 강림하시어 하화중생의 대 설법을 통한 불국정토의 이상세계가 열리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으로 조성한 대불사가 아닐까한다.

§참 고 문 헌

   ①이태호·천득염·황호균, 「운주사」, 대원사, 1994

   ②이우혁, 「퇴마록」혼세편 1권 해설부, 들녘, 1995

   ③민족문화추진회·이행, 「신증동국여지승람」5권, 솔, 1996

   ④두산동아, 두산세게대백과사전19권, 1996

   ⑤www.unjus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