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趙光祖:1482∼1519) 적려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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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 전남기념물 제41호

지정연도 : 1979년 8월 3일

소재지 : 전남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 174

시대 : 조선시대

크기 : 총높이 295cm, 귀부 높이 164cm 너비 81cm 귀부 두께 29cm, 이수 높이 71cm

분류 : 석비

 

  1979년 8월 3일 전라남도기념물 제41호로 지정되었다. 총높이 295cm이며 귀부의 높이 164cm, 귀부 너비 81cm, 귀부의 두께 29cm, 이수의 높이는 71cm 이다. 1667년(현종 8) 4월 능주목사(綾州牧使) 민여로(閔汝老)가 건립하였다. 적려란 귀양 또는 유배를 뜻하며 1519년 기묘사화로 능성에 귀양왔던 조광조를 추모하고자 세웠다.

  당시 능성현 북문이 있었던 곳 부근 도로변에 있다. 귀부와 비신, 이수를 갖추었다. 귀부는 자연석에 가까운 암석으로 거북의 형태만 갖추었고 귀두도 형상만 다듬었다. 비신은 전면에 ‘정암조선생적려유허추모비’라고 해서체 종서 2행으로 썼다. 비신 뒷면 상단에 ‘정암조선생추모비’라 전액하고 밑으로는 정암의 유배 내력을 기록하였다.

  비문은 의정부우찬성 겸 성균관계주세자이사 송시열이 짓고 충청도관찰사 겸 수군절도사 순찰사 민유중이 전서하고, 의정부좌참찬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 이수는 반원형인데 전면에는 쌍룡이 엉키어 있으며 배면에는 한 마리의 용이 구름을 타고 오르는 모습이 있다.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이다. 창방과 평방을 두르고 우물천장을 하였으며 방풍판을 달았다. 1982년, 1983년, 1997년에 보수하였으며, 1986년 강당(정면 5칸 측면 2칸)과 영정각(정면 3칸 측면 1칸)을 건립하여 영정을 봉안하였다. 유배 생활을 하던 초가를 복원하여 적려유허비 주위를 정화하였다.

  조광조는 김굉필에게서 수학하였으며 뒷날 김종직의 대를 이어 사림의 영수가 되었다. 1510년 진사시에 장원하고 1515년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유교를 정치와 교화의 근본으로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시키려 노력하였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를 당해 능성현으로 유배되었으며 12월 20일에 사약을 받고 죽었다.

 

 

 

참고문헌

두산세계백과사전

 http://kr.encycl.yahoo.com/final.html?id=739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