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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지에서 조금 더 남산 마을 쪽으로 가면 길가에 3층 석탑 2기가 동·서로 마주하고 있다. 탑이 있다는 것은 곧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논·밭과 집터로 변해 있다. 일제 시대 때에 동·서 탑을 해체·수리한 적이 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절터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이 절의 역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는 없는 실정이다.

  또한 이 절의 이름까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동네 이름을 따서 남산동 사지로 부르고 있다. 고려 중기에 일연스님이 쓴 책인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때에 양피사가 있다고 하였는데, 절터 동쪽에 작은 못(저수지)을 동네 사람들은 '양피못'이라고 부르고 있어 이곳이 바로 '양피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이 아니었을까하는 추측하기도 한다. 보통 신라 시대때의 탑은 동·서로 2기가 있을 경우 그 형태가 감은사탑과 같이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절터의 탑은 모두 돌로 3층 석탑을 만들었으나 동탑은 마치 전탑(벽돌탑)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서쪽의 탑은 일반적인 3층 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서로 다른 탑이 있는 절은 흔치 않다.  

 

 * 동삼층석탑

 

  동탑은 꿋꿋하고 힘있게 솟아 있어 남성다운 탑이다. 동탑은2.88m너비에 1.5m 높이의 사각형 단층기단 위에 삼층으로 쌓은 석탑으로 그 형태는 전탑(벽돌탑)을 본뜨고 있다. 기단 밑에는 이중으로 된 괴임돌이 놓여 있는데 넓은 간격으로 괴임돌이 놓여 있음으로 탑의 모습은 한없이 안정되고 무게감 있게 보인다.

  더욱 묘한 것은 기단을 쌓은 여덟 개의 돌이 높이(0.71m∼0.76m)와 길이(1.35m∼1.74m)가 서로 다른 점이다. 모든 돌 크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돌과 돌이 연결된 선이 亞자형으로 되어 균형미를 이루고 있다. 田자로 된 형태는 변화가 없고 분산되는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이 싫어하던 형태였던 것이다. 더욱이 이 탑 기단의 남쪽면은 田자모양으로 조립되었는데, 돌 이음 중앙에다 직사각형 쐐기를 박아 놓아 가지런하고 분산되는 맛을 깨뜨려 놓은 것이다. 돌 이음 하나에도 이렇게 정성을 기울인 것이다.

  기단 위에는 세 계단으로 된 옥신(몸돌)괴임돌이 놓이고 몸돌에는 우주(바깥기둥)와 탱주(안기둥)가 없다. 지붕돌도 계단식으로 기울어지게 만들고 2층옥신(몸돌)을 얹어 놓았다. 2층과 3층도 같은 모양으로 면적을 줄이면서 쌓아 올렸다. 2층과 3층옥신(몸돌)의 높이는 초층 옥신(몸돌) 높이의 반 이상이나 줄였는데 비해서 옥신(몸돌) 너비와 옥개(지붕돌) 추녀의 너비는 조용한 비례로 축소되면서 솟아있어 묘한 느낌을 준다. 지붕 위에는 노반까지만 있고 상륜부(탑 꼭대기 부분)는 없어졌다.

  이 탑의 특색은 기단이 단층으로 되어 있다는 점과 옥신(몸돌)에 우주나 탱주가 없다는 점과 지붕돌 윗면에도 계단이 새겨져 있다는 점인데, 이러한 점들은 분황사 탑을 충실하게 모방한 것으로 신라의 석탑에서만 볼 수 있는 특색이다.

 

 * 서삼층석탑

 

  동탑이 전탑(벽돌탑)을 본뜬데 비해 서탑은 목탑을 본떠서 나타낸 전형적인 신라 석탑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부드럽고 화려하여 여성스러운 탑이라 할 수 있다.

  상층 기단의 너비는 1층 옥신(몸돌) 너비의 약 2배가 되고, 아래층 기단의 너비는 1층 옥신(몸돌) 너비의 약 3배가 되는 비례다. 지극히 안정된 삼각형 구도의 기단 위에 층층의 옥신(몸돌)들은 면적을 줄이면서 수직으로 솟아올랐다.

  층층마다 옥개석(지붕돌)의 추녀는 곡선을 그리면서 날 듯이 양끝을 치켜들고 있다. 추녀 끝이 들린 부분을 전각이라 하는데 신라의 석탑은 9세기초를 전후한 시대에 이르러 전각이 예쁘게 경사를 지으며 날씬한 맵시로 나타난다 하는데 이 탑도 그 한 예라 하겠다.

  9세기초를 전후한 시대, 신라 석탑에서는 또 하나의 특색이 있으니, 탑 기단 면석에 12지신상이나 팔부신중(불법을 수호하는 8종류의 신으로 천, 용, 야차, 건달파,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가라 등을 가리킴)을 새기고, 1층 옥신(몸돌)에 사천왕상을 새겨 화려하게 장엄하는 예가 있다. 이러한 예는 탑을 화려하게 꾸미는 데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탑을 수미산으로 나타내어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 위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려는 신앙적인 바람에 의한 것이다. 황룡사나 분황사에서는 부처님을 화려한 누각 안에 모시려 하여 규모가 큰 누각을 지었는데, 8세기 중엽 불국사 석가탑 이후로는 탑의 규모는 작아졌으나 부처님을 하늘 나라에 모시려는 크나큰 정성으로 기단과 탑신에 조각을 새겨 장엄하게 된 것이다.

  이 탑에는 위층기단 면석에 둘러 가면서 팔부신중을 돋을 새김 하였는데, 지옥에서 하늘까지 대표하는 신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교화되어 하늘 위 부처님 나라를 동경하며 지키고 있는 넓은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

  남면 오른쪽은 건달바 상이다. 건달바는 악기를 타고 춤을 추면서 우리 인간들을 즐겁게 해주는 신인데 구름 위에 사자탈을 쓰고 앉아 장단을 맞추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왼쪽에 얼굴이 셋이고 손마다 무기를 들고 있는 상은 지옥의 왕인 아수라 상이다. 위로 올려든 손에는 해와 달이 들려 있다. 아수라가 화가 나서 여덟 개의 팔을 휘두르면 온 세상은 뒤죽박죽이 되니 그러한 상태를 아수라장이라 한다.

 

  동면 왼쪽상은 새나라의 왕인 가루라 상이다. 몸체와 얼굴은 사람의 모습이나 입만은 독수리부리처럼 날카롭게 튀어 나왔다. 모두 철갑으로 무장한 것은 부처님 나라를 지킨다는 뜻이고, 구름을 타고 천의자락이 나부끼는 것은 하늘과 땅으로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 오른쪽에 있는 상은 용왕으로서 머리에 용관을 쓰고 손에는 비바람을 마음대로 다스리는 여의주가 들려 있다.

  북면 왼쪽에는 인비인이라 하여 인간들과 짐승들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신으로서 긴나라이다. 형상은 얼굴 양옆에 소머리와 말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그 오른쪽 상은 뱀 나라의 왕인 마후라이다. 뱀 몸체를 오른손으로 쥐고 뱀 머리는 관 위에 붙어 있다.

  서면 왼쪽 상은 천이라 부른다. 이 천은 하늘 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 아래를 말하는 것이다. 무장한 장수가 금강저를 들고 아래 세상을 쳐부수려고 하는 모습인데, 언제나 땅을 깨끗이 하려는 하늘의 뜻을 사람으로 나타낸 상이다. 오른쪽 상은 귀신 나라의 야차로서 염주를 입에 물고 손으로 헤아리고 있는 모습이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모두 1개의 돌로 처리되었는데 각각 층급받침 5단과 탑신 2단을 마련하였고 추녀 끝에는 풍탁을 달기 위한 작은 구멍이 있다. 노반석은 외형상 동탑과 비슷하게 처리되었으며 각 옥개석(지붕돌)의 처마 밑에는 물끊기 홈이 마련되어 있다. 탑의 높이는 5.13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