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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골 입구에서 약 400미터 남으로 가면 갯마을이 있다. 옛날엔 나룻배가 닿던 곳이라 한다. 지금은 임업시험장이 있어 온 동네가 푸르다. 임업시험장 뒷산은 넓은 대밭인데, 그 대밭 북쪽 계곡이 미륵골이다.

대밭 옆길로 약 250미터쯤 산등성어리로 올라가면 정상 가까운 아늑한 곳에 비구니들이 수도하는 보리사가 있다. 근래에 새로 세운 대웅전과 산령각 및 종각 등이 있는데, 이 건물들은 지금 남산에 현존한 가람 중에서 제일 규모가 큰 것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49대 헌강왕의 능과 50대 정강왕의 능은 보리사의 동남쪽에 있다고 했는데, 이 절은 두 왕릉의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옛날 신라 시대부터 보리사라 불리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 절에는 통일 신라 후반의 석불을 대표하는 유명한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이 불상은 여래좌상이 지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불상을 처음 연구하는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기도 한다.

  법당 남쪽 언덕 위에 육중하고 웅장한 바위들을 배경으로 유명한 석조여래좌상이 높은 연화대 위에 동으로 앉아 계신다. 고목의 뿌리처럼 억세게 대지 위에 놓여 있는 팔각 복련(八角伏蓮) 대좌 위에 팔각기둥이 솟아 있고 그 기둥 위에 둥글고 부드러운 앙련(仰蓮)대좌가 얹혀 있으니 이 둥근 대좌는 하늘 위의 부처님 세계인 것이다.

  하얀 화강석으로 조성된 이 여래상은 거대한 둥근 연꽃 위에 결가부좌로 앉으셔서 항마촉지인()으로 수인을 표시한 채 긴 눈을 가늘게 뜨고 하계(下界)를 굽어 살피신다. 포물선으로 약간 치켜 올라간 긴 두 눈썹 사이엔 큰 광명을 비추시는 백호의 흔적이 패어져 있다.

  삼각을 이룬 사내다운 코, 그 밑에 조용히 다문 입술의 양가에 자비가 어려 있다. 한없는 자비는 부드럽고 풍만한 두 뺨에 어리어 우러러보는 사람의 두 손을 저절로 모여지게 할만큼 감동을 주는 거룩한 상이다. 나발(螺髮)로 표현된 육계는 높게 솟아 위엄스럽고 두 귀는 길게 어깨까지 드리워졌는데, 목에는 세 줄로 주름이 새겨져서 부드럽게 몸체와 연결되어 있다. 신광(身光)과 두광(頭光)으로 된 광배는 화려하고 찬란하다.

  불상은 사람의 형상으로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그 모습에는 종교적인 이상이 가미되어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서른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것을 32 길상(吉相)이라 하는데, 그 중 15번째가 장광상 (丈光相)이라 하여 부처님의 몸에서는 찬란한 빛이 사방으로 퍼진다고 하였다.

  불상 뒤에 세운는 넓은 광배는 바로 이 32 길상 중 장광상을 나타낸 것이다. 보리사 여래좌상의 광배는 여섯 송이의 연꽃으로 장식된 두 줄기의 주연선(周緣線)을 불상 몸체의 뒤에 타원형으로 돌려 신광을 나타내었고, 또 다섯 송이의 연꽃으로 장식된 두 줄기의 주연선을 잎사귀 사이의 간간이 핀 일곱 송이의 연꽃 위에 작은 여래불들이 새겨져 있다. 그 부처들을 화불(化佛)이라고 한다.

  주연선 마디마디에 연꽃을 장식한 것은 부처님의 빛이 비치는 그 곳은 연꽃처럼 깨끗한 정토가 된다는 뜻이고, 간간이 작은 화불들을 배치한 것은 부처님의 빛이 비치는 그 곳에 부처님이 계신다는 뜻이라 한다.

  주연선 가로는 타오르는 불길이 새겨져 있는데, 불길은 부처님의 빛과 위력을 나타낸 것이다. 이 석불좌상의 광배는 화려함과 정교함에 있어 우리 나라 석불 광배중 손꼽히는 것인데 아깝게도 윗 부분이 깨뜨려져 없어졌다. 후세에 다른 돌을 다듬이 보수하였으나 옛 모습은 되살리지 못하자고 흉한 상처로 남아 있다.

  가사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偏袒右肩)으로 입으셨는데 반대편 옷자락이 어깨 뒤로 넘어와서 오른쪽 어깨를 덮고 있다. 가슴에는 왼쪽 어깨에서 비스듬히 승기지(僧祇支)가 엿보인다. 잘게 잡은 옷주름은 부드럽고 자연스러워 부처님 몸체를 감돌며 잔잔히 물결친다. 이렇게 거룩한 상이 머리에 비해 몸체가 조금 약하게 보이는 것은 못내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잘고 섬세하게 표현된 가는 옷주름은 그 약점을 더하여 주는 것 같다.

  부처님의 앉으신 앙련대는 세 겹으로 핀 큰 연꽃송이로 되어 있는데, 꽃잎이 백제식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므로 화려한 광배와 부드러운 이 불상에 잘 어울린다. 지나치게 화려한 것은 약하기 마련이다. 이 불상에는 화려한 꿈속에 넘치는 무한한 자비를 느낄 수 있어도 강한 힘이나 박력 같은 것은 느낄 수 없다. 그러나 큰 시야로 볼 때 이 불상은 약하 거나 불안스럽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팔각 중대석(中臺石) 및에 놓인 복련(伏連) 하석의 힘이다.

  하대석은 밑으로 처진 열 여섯 잎 연꽃송이인데 그 윤곽선은 억센 팔각이다. 꽃잎마다 두 줄씩 돋을새김하여 부풀어오르게끔 변화를 주었으므로 연꽃송이는 보는 동안에 국화로 착각을 일으킨다. 국화 꽃잎처럼 방사선으로 힘차게 새겨진 돋을새김으로 인해 부드러운 불상 대좌로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굳세고 힘차게 보인다. 3단괴임 위에 여덟 개의 기둥으로 앙련 상대석을 떠받고 있는 팔각중대석은 생기와 힘을 보태어 불상 대좌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꽃이 만발한 벚꽃 나무가 뿌리와 그루의 힘으로 대지에 지탱되고 있듯이 부드러운 불상과 화려한 광배가 어울려 이루어진 맑은 정토의 세계가 억센 복련 하대석과 힘찬 팔각중대석의 힘에 의하여 무한한 안정감은 보여준 그 착상과 솜씨는 신라 예술의 위대한 장점이라 하겠다. 이 불상의 연대는 석굴암 시대가 지난 후인 8세기 후반으로 추정한다.

  이 석조여래좌상의 광배 뒷면에 여래 좌상이 새겨져 있다. 불상 높이가 1.27미터 되고 무릎 너비가 1미터 가량 되는데 얇은 돋을새김으로 표현되었다. 두 겹으로 핀 앙련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오른 손을 가슴 앞에 들고 왼손은 약 그릇을 들어 무릎 위에 얹고 설법하시는 모습이다. 얼굴은 둥근 편인데 마멸이 심하여 표정은 분간할 수 없다. 머리 뒤에는 둥글게 두광이 그려져 있고 몸체 뒤에는 타원형으로 신광이 새겨져 있다. 그 둘레에는 불길이 타오르고 연화 대좌 밑에는 피어오르는 구름이 새겨져 있다. 구름 위에 높게 앉으신 이 부처님은 동방 유리광 세계를 제도 하시는 약사여래(藥師如來)시다.

  왼손에 계인(契印)의 표시로 약 그릇을 들었으므로 누구나 쉽게 그것을 알 수 있다. 동방 유리광세계의 반대편은 서편 극락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석조여래좌상은 극락세계의 주존불이신 아미타여래로 신앙되어야 할 것이다.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으로 앉으셨기에 때까지는 석가여래로 불리어 왔다. 항마촉지인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도하실 순간의 수인(手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라 시대 불상에는 수인에 일정한 규정이 없이 자유롭게 표시되는 예가 많을 뿐 아니라 석굴암 이후로는 석굴암 부처님을 모방하여 항마촉지인으로 조성된 불상이 더욱 많았던 것이다. 금강상 굴불사의 사면석불이나 칠불암 사면석불의 예에 따라 이 석조여래상도 아미타여래로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