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25.gif

  기림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창건된 절로 조선 시대 31본산의 하나이다. 처음에는 임정사라 불렀으나 원효대사가 확장하고 기림사라고 개칭하였다고 한다. 조선 정조 때 경주 부윤 김광묵이 사재를 들여 중수하였고 철종 14년(1863)에 다시 중수하였으며 그후 고종 15년(1878) 법당과 여러 건물을 중건 중수하였다. 경내에는 목탑지, 삼층석탑과 건칠보살좌상 (보물 제415호) 등이 있으며, 대적광전 등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경북 경주군 양북면 호암리 含月山 기슭에 있는 기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입니다. 643년(선덕여왕12) 천축국(天竺國)의 승려 광유(光有)가 창건하여 임정사(林井寺)라 부르던 것을, 뒤에 원효가 중창 하여 머물면서 기림사(祇林寺)라 개칭하였다. 기림사란 부처님 생존때에 세워 졌던 인도의 기원정사(祇園精舍)를 뜻한다고 합니다. 즉, 석가모니가 생전에 제자들과 함께 활동하던 승원 중에서 첫손에 꼽히는 것이 죽림정사와 기원정사라고 합니다. 특히 기원정사는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20년 넘게 머무른 곳이라고 합니다. 이와 더불어 불자들의 수행도 점차 유랑위주에서 정착 위주로 바뀌었고 정사도 점차 수를 널리게 되었고, 그러한 기원정사의 숲을 기림(祇林)이라고 하니 함월산의 기림사는 그러한 연유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은 대왕암(大王岩)에 다녀오던 길에 이 절의 서쪽 계곡에서 점심을 들었으며, 고려말의 각유(覺猷)는 이 절의 주지로 있었다고 합니다. 그 뒤 1578년(선조11)에 축선(竺禪)이 중건하였고, 정조때에는 경주부윤 김광묵(金光默)이 사재를 희사하여 크게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1862년(철종13)에는 대화재로 113칸의 당우가 회진되었으나, 아듬해 봄에 사찰의 승려들이 부윤(府尹) 송우화(宋迂和) 등의 시주를 받아 공사를 시작하여 가을에 복원하였으며, 그 뒤 1878년의 중수를 거쳐 1905년에는 혜훈이 다시 중수하였다. 31본산 시대에는 경주군 일대를 관장하였으나, 현재는 불국사에 그 자리를 물려주어 오히려 불국사의 말사로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대적광전(大寂光殿)을 중심으로 동쪽에 약사전, 서쪽에 오백나한 전과 정광여래사리각(正光如來舍利閣)인 삼층전(三層殿)이 있었으며, 남쪽에는 무량수각과 진남루(鎭南樓)가 있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전면 5칸, 측면 3칸 의 대적광전을 중심에 두고, 왼쪽에 약사전, 오른쪽에 응진전, 앞쪽에 진남루 (鎭南樓)가 사각의 성지를 이루고 있고, 뜰에는 삼층석탑과 새로 조성된 석등이 있습니다. 조금 떨어져 명부전. 삼성각. 관음전. 산신각. 주지실. 종무소. 요사 채. 산문. 창고 등이 있으며, 특히 대방(大房)은 2동이 모두 중후하다고 합니다. 그 밖에 김시습의 사당이 있습니다. 이들 당우 중에서 대적광전은 절의 본당으로 내부에는 전단토상( 檀土像)의 비로자나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 불상은 중원(中原)의 장인이 조성하였다고 하며, 불상 조성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1986년 9월 에 가운데 주존불의 복장에서 대반야경 등 금.은사경 14권과 조선시대에 만든 불경, 부처님 진신사리 4과 등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또 약사전에는 약사삼존상과 사천왕상, 사라수왕(沙羅樹王)의 탱화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탱화는 기림사창건의 연기설화를 보여주는 특이한 불화로서 근래 이를 모사하여 다시 그렸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응진전 안에는 오백나한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415호로 지정된 건칠보살좌상(乾漆菩薩坐像)과 목탑지 (木塔址) . 석조치미(石造 尾) . 문적(文籍) 등이 있습니다. 석조치미는 화강암으로 만든 것으로 꽃무늬(花紋)가 장식되어 있으며, 신라 때의 것으로 추정이 된다고 합니다. 문적중에는 [경상도영주제명기(慶尙道營主題名記)], [동도역세제자기(東都 歷世諸子記)], [부호장선생안(府戶長先生家)]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경상도와 경주의 행정에 관한 것과 행정관에 대한 인적 사항, 신라 이후의 지방 제도의 변혁 등을 기록한 중요한 문헌들이라고 합니다. 기림사에는 조선 역대 왕들의 어필(御筆)도 보관되어 있으며, 특이하게 석비(石碑) 모양의 나무에 사적을 기록한 목비(木碑)가 전해진다고 합니다.

  이 절에는 원래 오정수(五井水)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대적광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 옆의 장군수는 기개가 커지고 신체가 웅장해져 장군을 낸다는 물이고, 천왕문 안쪽의 오탁수는 물맛이 하도 좋아 까마귀도 쪼았다는 물이며, 천왕문 밖 절 초입의 명안수는 기골이 장대해지고 눈이 맑아지며, 후원의 화정수는 마실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북암의 감로수는 하늘에서 내리는 단 이슬과 같다는 물입니다. 그 중 장군수(將軍水)는 마시면 힘이 용솟음 친다하여 인근에 널리 알려졌는데, 조선시대에 어떤 사람이 이곳에서 역적모의를 하다가 발각된 뒤 나라에서 샘을 메워 버렸다고 하며, 나머지도 대부분 물이 말라 버렸다고 합니다.

  기림사에는 보리수 아래 창건 당시의 것으로 여겨지는 목탑지의 초석과 사리공이 있는 심초석이 있으며, 천년에 한번 핀다는 '우담바라'라는 한약초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일제시대의 대 서예가였던 해강 김규진의 현판이 진남루 안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 건칠보살좌상 유적 안내문

 

보물 제415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우리 나라에는 건칠불이 매우 희소하게 남아 있는데 이 보살불은 조각 수법이 훌륭하고 조성 연대도 명확한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타래머리를 한 위에 보관을 따라 만들어 얹었고, 목에는 삼도가 있으며 둥글고 풍만한 얼굴과 그 자세로 보아 관세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복부의 큼직한 띠매듭과 가슴에 걸려 있는 3가닥의 영락띠는 조선 시대 목불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불상의 조성 연대는 하대 상면에서 발견된 묵서명에 의해 조선 연산군 7년(1501)으로 판명되었다.

 

 * 건칠보살좌상(乾漆菩薩坐像) (보물 제415호)

img24.gif

  1501년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관세음보살상인데, 새김이 정교하며, 드물게 전하는 건칠불(乾漆佛 : 진흙으로 속을 만들어 삼베를 감고 그 위에 진흙 가루를 발라 묻힌 다음 속을 빼어 버린, 속이 빈 소상)이라고 합니다. 보살상의 머리에는 상투를 올리고 그 위에 따로 만들어진 2단 구조의 보관을 썼는데 관의 표면에는 아름다운 당초문이 돋을 새김 되어 있습니다. 얼굴이 둥글고 꽃 모양의 귀걸이를 달았으며 양어깨에 는 천의를 걸치고 세 가닥의 장식이 달린 목걸이를 하고 있습니다. 군의는 가슴 부근까지 올려 입고 띠를 묶었는데 독특한 형태로 처리하였다. 최근에 금칠을 다시 해서 유물 같은 느낌은 많이 들지 않습니다.  

  대좌에서 발견된 글귀에 따르면 연산군 7년(1501)의 작품이라고 하나 대좌의 기록이 반드시 제작 연대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의상과 인상이 조선시대나 원나라의 불상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양식을 따르고 있어서 조선시대의 유물로 추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 기림사 대적광전 유적 안내문

img23.gif

보물 제833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이 건물은 기림사의 본전으로 신라 선덕여왕 (632-647)때 창건되었다고 전해 오고 있으며, 그후 6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양식상으로 5차 중수 때인 조선 인조 7년 (1629)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의 다포식 건물로 외관은 본전 건물다운 웅건 함을 갖추었고 내부는 넓고 화려하여 장엄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장대석의 낮은 기단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전면은 모두 화려한 꽃살분합문을 달았다. 공포는 외3출목, 내5출목으로 살미 첨자 끝의 양서에 연봉이 초각되고, 첨차하부가 교두형을 이룬 전형적인 17세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내부는 4개의 고주 외에 따로 2개의 전면 고주를 세워 넓은 공간을 견실히 구축하였으며, 빗천장과 우물천장을 설치하였다. 견실한 구조와 장엄한 공간 구성이 돋보이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불전의 하나이다.

  기림사의 본전으로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어졌으며, 그 뒤 여섯 번 중수되었다고 합니다. 현재의 건물은 양식상으로 인조 7년 (1629) 다섯 번 째 지어진 건물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배흘림 기둥의 다포식 단층 맞배지붕 이라서 단한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겉모습은 본전 건물다운 웅장함을 갖추었으며, 내부는 넓고 화려하여 장엄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건물 앞면에는 모두 꽃 창살 문을 달았는데 색이 바래져서 꽃창살 조각 본래의 화려한 느낌이 다소 중화되어 포근하고 정취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합니다. 넓은 전각 안은 장엄한 맞배식 건물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며, 단청이 낡아서 더욱 고색창연한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 기림사 응진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4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이 건물은 아라한을 모신 전각으로, 창건 연대는 미상이며 조선 후기에 다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을 한 다포식 건물로 과장되지 않은 단정한 건물 형태를 갖추고 있다. 장대석을 한 단 쌓은 낮은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앞.뒷면에는 두리기둥, 측면에는 네모 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내.외출목으로, 각 주간에 1구씩 간포를 짜았다. 그 세부는 어칸과 협칸이 약간 달라서 어칸의 쇠서는 약간 위로 휘어 오른 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반하여, 귀포에는 연봉이 있는 전혀 다른 모양의 쇠서를 꾸몄다. 가구는 5량이며 대들보와 종보 위에 파련대공을 세우고, 천장은 전체를 빗반자로 하였다. 전체적으로  18세기 이후의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으나 부분적으로 조선 중기의 특징을 포함하고 있는 건물이다.

 

 * 기림사 삼층석탑 유적 안내문

img26.gif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5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이 탑은 통일 신라 시대의 일반형 석탑 양식을 따른 비교적 완전한 석탑이다. 현재 하층 기단 은 갑석부터 남아 있고, 상대 중석에는 모서리 기둥과 탱주 한 개씩을 모각하고 있으며, 그 위에 놓여 있는 상대 갑석의 밑면에는 부연이 있다. 또한 갑석의 상면에는 4단으로 된 층급 받침이 있다. 그리고 각 탑신석에는 상대 중석면에 모각한 모서리기둥과 같은 것이 있다. 초층의 옥개석은 장대하고 4단의 층급 받침을 갖추고 있다. 2.3층의 옥개석 역시 4단의 층급 받침을 갖추고 있으며, 체감률이 고르다. 탑 전체가 고준한 감이 엿보인다. 또한 옥개석의 추녀는 낙수면이 완만하며 전각이 약간 발전되어 있다. 현재 상륜부에는 노반과 복발, 앙화가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통일 신라 말기의 석탑이다.

 

* 진남루

img27.gif

  본래 정면 7칸의 사방이 터진 형태의 누각 건물이었는데, 근자에 벽을 메워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진남루는 글자 그대로 남방을 진압한다는 뜻으로 조선 시대에 승군들의 지휘소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 소조비로자나 삼존불

img21.gif

  대적광전에 봉안되어 있는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으로 가운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노사나불 그리고 오른쪽에 석가모니불을 모셔 삼신불(三神佛, 법신불, 응신불, 보신불)을 이룬다. 흙으로 빚은 세 불상은 손의 위치와 자세만 다를 뿐 표정과 자세가 거의 같고 옷 주름까지도 비슷하다. 다만 삼존불일 경우 좌우 부처들이 두 손을 서로 대칭 되게 한쪽씩 드는 것이 보통이나 이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은 둘 다 오른손을 들고 있는 것이 색다르다. 이 불상의 머리는 큼직한 육계를 갖춘 나발이고 얼굴은 사각형이며 상당히 세련미가 보인다. 코는 큼직하고 눈은 반만 뜨고 있으며 귀는 알맞게 처리되었는데 조선 초기 불상 얼굴의 근엄하면서도 정제된 표정이 잘 나타난다. 상체는 장대하고 당당하나 양감은 풍부하지 않은데 이 역시 조선 초기 양식이 반영된 것이다. 결가부좌한 하체는 무릎이 넓지만 폭에 비해 높이가 낮은 편이다. 통견의 법의는 두터운 편이며 웃자락들과 주름이 날카로운데 특히 옷 주름은 간략하다. 왼팔로 내린 팔꿈치 부근에서 'Ω'형을 이루고 있는데 고려말 조선 초기의 특징이 약간 변형된 것이다.1986년 이 비로자나불상에서 고려 시대의 사경(寫經)을 비롯한 수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보물 제959호로 지정되어 기림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