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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시 양북면 안동리에 있는 골굴암은 이곳 동해안 일대에 건립된 토함산 석굴암과 함께 통일신라시대를 대변하는 중요한 석굴 사원이다. 이는 우리 나라에선 석굴을 조성할 정도의 대규모 암벽이 없고 또 단단한 석질의 화강암이 대부분이라 석굴 조성이 용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불국사의 석굴암만 해도 자연 석굴이 아니라 인공으로 만든 석굴이기에 골굴암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골굴암의 연혁은 확실치 않으나 {기림사 사적기}에 따르면, 함월산의 반대편에 천연 석굴이 있으며 거기에는 굴이 12곳으로 구분되어 있어 각기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하였으니, 골굴암은 기림사의 암자였던 것이 확실하다. 또 {산중일기}의 기록으로 보아 17세기 무렵에도 이미 파괴된 석굴이 있었던 것 같고 5∼6개소는 굴석(窟石)을 지니고서 사용되었던 것 같다. 이 가운데 전실을 마련한 석굴은 층층을 형성하였고 또 전실에는 단청이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조사된 석굴은 모두 12굴로 확인되었다. 대부분의 석굴은 약 20m의 동향 한 암벽에 전개되었으나 몇몇 석굴은 남향 또는 동남향으로 되어 있다. 굴과 굴 사이는 대체로 작은 길을 만들어 연결이 되도록 하였는데 지금도 당시의 시설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다.

  현재 사용 중인 석굴은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승방굴(僧房窟)'로 짐작되고 있다. 이외의 석굴은 많이 파괴되어 일종의 감실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석굴의 앞면에는 대부분 목조전실이 있었다고 추정되며 석굴 상부에는 양수(兩水)를 돌린 물끊기가 각 굴마다 시설되어 있다. 그리고 입구 쪽에는 양 벽에 목조가구(木造架構)를 설치하였던 흔적이 확인되고 있다. 또 석굴이 벽면에는 후대에 새긴 것으로 보이는 '골굴(骨窟)'이란 대형 글씨가 보이고 굴과 굴을 연결하였던 작은 길에는 회랑을 설치한 흔적이 확인되고 있다. 이들 회랑은 때로는 S자 형태로 전개되기도 하고 또는 계단을 개설하기도 하였다. 이 외에 주로 기둥을 박았던 자취로서 원공이 지금도 남아 있다.

     

*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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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회 암벽에 정동에서 남향하여 위치한 여래 좌상은 전체 높이 4m이다. 이 좌상은 육계가 큼직하고 상호는 원만하고 미간에 큼직한 백호원공을 음각하였고 미소가 어려 자비스럽다. 수인은 항마인을 결한 듯 하며 오른손은 마손, 왼손은 모지와 인지를 잡고 있다. 운문과 연화좌위에 결가부좌했는데 대좌의 조식이 마멸되었고 광배는 암벽을 다듬고 조성했는데 머리와 광배 주변은 화염문이 장식되어 있다. 석질은 사질이 많은 화강암인데 풍우로 양어깨와 무릅쪽이 마멸되어 있다. 몇 년의 보호 작업 끝에 1988년 비를 맞지 않도록 둥근 돔형의 천장을 만들고 암면에 화학 처리를 하였다. 큼직한 육계와 원만한 상호 및 광배의 유려한 화염문으로 보아 8세기 중엽의 수작으로 추정된다. 일부 학계에서는 세련되지 못한 옷주름 때문에 이 마애불상을 삼국 시대의 작품으로 보기도 하며 또한 평면적인 신체와 수평적인 옷주름, 겨드랑이 사이의 V자형 옷 주름들은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철원의 도피안사와 장흥보림사의 불상과 비슷해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