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립 경주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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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가 신라천년의 고도였던 까닭에 문화재보호에 일찍 눈을 뜬 이 지역의 유지들이 신라고분을 보호하기 위한 모임으로 1910년 '신라회'를 만들었다. 그 뒤 이 모임은1913년 '고적보존회'로 발전하여 1915년 경주 객사인 현재 경주경찰서 화랑관 뒤 건물에 진열관을 두었다. 이것이 국립경주박물관의 전신이다. 뜻만 있으면 귀중한 문화재를 모으는 데는 그리 어려움이 없던 때인지라 진열품이 늘어나 장소도 현재의 동부동 동헌자리로 옮기고 규모도 확장하였다. 해방 뒤에는 서울의 총독부박물관이 국립박물관으로 정식 개관하자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이 되었다. 이후 별다른 발전을 이루지 못하다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지자 비로소 활기를 띠고, 1975년 현재의 자리인 반월성 동쪽 인왕동으로 이전하여 개관하게 되었다.    

 1985년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관전시하기 위한 제2별관이 개관돼 본관, 제1전시실과 더불어 모두 세 개의전시관을 두게 되었으며, 뜰에도 많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경주박물관은 2,500여 점의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으며 8만여 점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

다.  

  본관에는 경주와 주변지에서 수집한 선사시대부터 원삼국시대까지의 유물을 전시한 선사

원삼국실, 이양선 박사가 기증한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이양선 기증유물 전시실 신라와

통일신라시대의 불교조각과 금속공예품 등을 전시한 불교미술실로 이루어져 있다.    

  선사 원삼국실 입구에는 울주 대고리 반구대의 너비 8m, 높이 2m의 암벽에 새겨진 암각화

탁본이 전시되어 있다. 이 그림에는 고래, 호랑이, 개, 사슴, 돼지 같은 짐승과 생식기가 표

현된 남자, 배, 사냥하는 모습들도 보인다. 전시유물로는 경북지방에서 출토된 토기석기(신

석기문화), 구정동에서 출토된 무기와 의식용 도구, 경주 입실리에 출토된 무기와 장신구,

대구 평리동의 유물(초기 철기문화), 조양동38호 무덤에서 발굴된 유적(원삼국시대 문화) 들

이 대표적이다.    

 불교미술실에는 1976년부터 1983년까지 8년 동안 황룡사터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유물

과 황룡사 복원 모형(1/60 축소), 사리장치 등의 금속공예, 불상(심화령 애기부처, 백률사금

동약사여래입상), 십이지상(김유신 묘에서 출토된 납석제십이지상)등의 조각품과 이차돈 순

교비, 남산신성비비석 같은 금석문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이양선 기증유물 전시실에는 의사였던 이양선 씨가 30년간 개인적으로 모아온 수집품 666

점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기마형 인물토기, 오리형 토기가 있다.    

  제1별관은 고분관으로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있다. 일제 시대 발굴된 금관

총, 서봉총을 비롯하여 1970년대에 조사된 계림고분, 미추왕릉지구 고분, 천마총, 황남대총,

그리고 최근에 조사된 정래동 고분, 월성로 고분, 용강동 고분, 황성동 고분 등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일괄 전시되고 있다.   

 제2별관은 안압지 관으로 안압지에서 나온 3만여 점의 유물 가운데 대표적인 유물을 선정

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들 유물은 궁궐에서 쓰던 실생활용품들로 당시의 궁중생활을 짐작하

게 하는 귀중한 것들이다.  

 박물관 정문으로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오른쪽 뜰에 자리잡은 성덕대왕신종이다.  

그밖에도 고선사터 석탑을 비롯하여 장항 리에서 옮겨온 석조 여래 입상을 비롯한 많은 불

상과 석탑, 석조, 석등, 비석 받침을 비롯한 각종 석조유물들이 뜰에 늘어서 있어 또 하나의

박물관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