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은사터

  《삼국유사》에 따르면,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고자 감은사를 짓기 시작하였으나 끝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신문왕이 부왕의 유지를 이어받아 나라를 지키는 사찰로서 682년(신문왕 2)에 완공하였다. 《삼국사기》에 있는 바와 같이, 이 절의 금당(金堂)은 부왕이 죽은 뒤 그 화신인 용이 출입할 수 있도록 신문왕이 건립한 것 같다. 절터는 동해에 이르기 직전의 산기슭에 있는데, 거기에는 큰 3층석탑 2기가 동남으로 흐르는 대종천(大鐘川)을 앞에 두고 서 있다. 금당터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지표(地表)에는 원형 주좌(柱座)가 각출(刻出)된 1개의 초석이 있고, 곳곳에 사각형 초석(楚石)과 대석(臺石)이 있으며, 금당 마루를 이루었던 장대석 등이 있다. 중문터와 회랑터의 남쪽 절반 및 금당터의 대부분이 밭이 되었고, 회랑터 북쪽 절반과 강당터는 민가에 들어가 있다

 

* 감은사터 동서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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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중의 기단에 사각형으로 쌓아올린 3층 석탑으로, 동 ·서 두 탑이 같은 규모와 구조이다. 2중기단 중의 하층 기단은 지대석과 면석(面石)을 같은 돌로 만들었으며, 모두 12장의 석재로 이루어졌고, 상층 기단은 면석을 12장으로 만들었다. 갑석(甲石)은 하층이 12장, 상층이 8장이며, 탱주(撑柱)는 하층에 3개, 상층에 2개를 세웠다. 탑신은 초층이 우주(隅柱)와 면석을 따로 세웠고, 2층은 각 면을 1장씩, 3층은 전체를 1장의 돌로 앉혔다. 옥개는 옥개석과 받침들이 각각 4개씩이며 받침은 각 층이 5단의 층급을 이루고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과 3.3m의 철제 찰간(擦竿)이 남아 있다. 많은 석재를 이용한 수법은 백제의 석탑과 같으나, 그것이 목조 탑파를 충실히 모방한 것인데 반해 이 석탑의 조형 수법은 기하학적으로 계산된 비율에 따른 것이다.

  감은사는 682년(신라 신문왕 2)에 창건되었으므로 이 탑의 건립도 그 무렵으로 추정되어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석탑이다. 1960년에 서쪽 탑을 해체, 수리할 때 3층 탑신에서 창건 당시에 넣어 둔 사리 장치가 발견되었다.

 

     * 감은사지 청동사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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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의 청동제 사리기 및 4각감(四角龕).

지정번호 : 보물 제366호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세종로 국립중앙박물관

시대 : 통일신라시대

종류 : 청동제 사리기 및 4각감

                      

  1959년 12월, 감은사지 석탑을 해체 수리하다가 발견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로, 원래 감(龕)안에 장치하였으나 감은 이미 부식하였다.

청동제 사리기 높이는 20cm, 기단지대의 1변은 14.9cm 가량이며, 청동제 4각감 총 높이는 31cm, 감 높이는 25.2cm, 감 몸통의 1변은 각각 18.9cm이다.

⑴ 청동 4각감 : 감의 형태는 방추형(方錐形) 뚜껑을 덮은 직사각형의 깊은 상자에 4모서리마다 발을 달고 있다. 옆면에는 각각 사천왕상(四天王像) 1구와 그 좌우 8능형의 바탕에 새긴 수환(獸環)이 있고, 이 수환 상하인 옆면 4구석에는 풀꽃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이 장들은 다른 동판(銅板)에 새겨서 잔 못으로 고정시킨 것이다. 가장자리에는 두루 꽃과 잎을 교대로 배치하고, 그 사이의 바탕은 어자(魚子)무늬를 메운 가는 장식판으로 단을 돌렸으며, 밑의 4모서리에는 ‘ ’자형의 받침이 붙어 있다. 뚜껑의 가장자리에도 상자의 무늬와 같은 장식판의 단이 둘려 있고, 다시 풀꽃 무늬를 교대로 배치한 장식판이 대각선으로 ‘十’자형을 이루었다. 꼭대기는 여의두(如意頭)무늬의 사각형 장식판을 덮고 그 한가운데에 마름모형 고리를 달았다. 사천왕상은 1장의 동판으로 새겨낸 것으로, 만든 당시의 일부 손상 흔적이 있다. 모두 갑옷을 입었으나, 그 중 2구는 복부에 사자형이 있다. 두광(頭光:머리부분의 광배)은 원형이고, 한 손은 허리에 댔으나 다른 손은 탑 ·보주 ·창 ·방망이[金剛杵]를 들었고, 소나 난장이[侏儒]를 타고 섰다. 이 자세와 옷 무늬는 당나라 조상(彫像)에서 볼 수 있지만 얼굴은 중앙아시아의 이란계(系) 사람을 표현하여 매우 주목된다. 감 안에 사리기를 넣었는데, 고정시키기 위하여 몸통 윗면 상부에 소형 자물쇠를 닫고 비녀못을 꽂았다.

⑵ 청동제 사리기 : 기단(基壇) ·몸부분 ·뚜껑[寶蓋]의 3부분으로 이루어진 보좌형(寶座形:부처의 자리 형태) 사리기이다. 기단은 연꽃과 당초(唐草)무늬로 장식한 하대 위에 1면에 2좌씩의 고식(古式) 안상을 투각한 직사각형의 외벽을 세우고, 그 안에 중대를 깔고 또한 외벽과 중대 사이에는 각 면에 2구씩의 신장상을 따로 만들어 배치하였다. 연꽃을 돌린 상대 위에 2단의 직사각형 난간을 돌리고 그 중앙에 사리병을 안치하였다. 상단 4귀에 주악상(奏樂像)과 그 사이에 동자상(童子像) 1구씩을 배치하여 장엄을 더하였다. 사리병은 복발형(覆鉢型 : 바리때를 엎어놓은 모양)과 연꽃 ·보주(寶珠)로 장식한 청동 용기에 들어 있는데, 복발형의 4면에 고리가 달려 있고, 그 위에 배치한 연꽃이 크게 돋보인다. 수정으로 만든 보주는 이 중의 작은 연꽃 위에 얹어서 청동으로 오려 만든 화염(火焰)을 씌웠다. 이 안에 든 사리병도 수정제로 높이 3.8cm이고, 금선과 금싸라기로 뚜껑이 덮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