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해인사(海印寺)
 
 
 
 

해인사 전경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伽倻山) 서남쪽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 불교 조계종 제 12교구 본사이다. 의상(義相)의 화엄 10찰(華嚴 10刹) 중 하나이고 팔만대장경판(八萬大藏經板)을 봉안한 법보사찰(法寶寺刹)이며, 대한 불교조게종의 종합 수도 도량이다.
이절은 신라 애장왕 때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창건하였다. 신림(神琳)의 제자 순응은 766년 (혜공왕 2) 중국으로 구도의 길을 떠났다가 수년 뒤 귀국 하여 가야산에서 정진하였으며, 802년(애장왕 3) 해인사 창건에 착수 하였다. 이소식을 전해들은 성목태후가 불사(佛事)를 도와 전지(田地) 2,500결(結)을 하사하였다. 갑자기 순응이 죽자 이정이 그의 뒤를 이어 절을 완성하였다. 
 해인사의 해인은〈화엄경〉중에 나오는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유래한 것이다. 따라서 해인사는 화엄의 철학, 화엄의 사상을 천명하고자 하는 뜻으로 이루어진 화엄의 도량이다.
창건주인 순응은 의상의 법손(法孫)으로서 해인삼매에서 근거를 두고 해인사라 명명하였던 사실에서 그의 절의 창건이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화엄의 철학, 화엄의 사상을 널리 펴고자 하였다. 이러한 창사의 정신은 뒷날에도 오래오래 받들여져, 고려 태조의 복전(福田)이었다. 희랑(希朗)이 이곳에서 화엄의 사상을 펼쳤다. 현재 해인사의 사간장경(寺刊臧經) 중에 화엄의 문헌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 등도 이를 입증하는 자료가 된다.
 

해인사 경내 배경

대장경 

특히 고려의 태조는 희랑이 후백제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國刹)로 삼고 해동 제일의 도량으로 만들었다. 즉 희랑이 후백제와의 전쟁에서 태조를 도와 승전하게 하였으므로, 태조는 전지 500결을 헌납하여 사우(寺宇)를 중건하게 하였다. 1398년 (태조 7)에는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팔만대장경판을 지천사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곳으로 옮겨옴으로 해인사는 호국신앙의 요람이 되었다.
 
 

해인사장경판고(海印寺藏經板庫)
 
 
 

해인사 정경판고
 해인사 내에 있는 고려대장경 판고. 2등(橙). 국보 제 52호. 1488(성종 19)에 건조되었으며 규모는 정면 15칸, 측면 2칸의 단층 우진각지붕 양식이다. 똑같은 규모와 양식을 가진 두 건물이 남북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으며 남쪽을 수다라장(修多羅藏), 북쪽을 법보전(法寶殿)이라고 부른다. 건물은 큼직한 부재(部材)를 간단한 방식으로 가구하였고, 세부 역시 간결하여 장식적인 의장이 가미되지 않았다. 평초석(平礎石) 위에 배흘림이 큰 원주(圓柱)를 세워 기둥 위에 주두(柱頭)를 올리고 대들보를 올려 직접 주심(柱心) 도리를 받게 하였으며 그 밑에 간단한 초공(草工)이 있을 뿐이다. 1995년 세계 문화유산목록에 등록되었다.

 

해인사대장경판(海印寺大藏經板)
 



해인사 대장경판

해인사 경내의 2동(棟)의 경판고(經板庫)에 보관되어 있는 대장경판으로 1237년 (고종 24)부터 16년간에 걸쳐 고려에 침입한 몽골군의 격퇴를 발원(發願)하여 대장도감(大藏都監)과 분사도감(分司都監)을 두어 만든 것이다. 경판고 안에 5층의 판가(板架)를 설치하여 보관하고 있는데, 판가는 천지현황(天地玄黃) 등의 천자문 (千字文)의 순서로 함(函)의 호수를 정하여 분류·배치하고, 권차(卷次)와 정수(丁數) 의 순서로 가장(架藏)하였다. 판목의 크기는 세로, 24㎝ 내외, 가로 69.6㎝ 내외 두께 2.6~3.9㎝로 양끝에 나무를 끼어 판목의 균제(均齊)를 지니게 하였고, 네모서리에는 구리판을 붙이고, 전면에는 얇게 칠을 하였다. 판목은 남해지방에서 나는 후박(厚朴) 을 썼고, 무게는 3~4㎏ 가량으로 현재도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천지(天地)의 계선 만 있고, 각 행의 계선은 없이 한쪽 길이 1.8㎜의 글자가 23행, 각 행에 14자씩 새겨 있는데, 그 글씨가 늠름하고 정교하여 고려시대 판각의 우수함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 강화 서문(江華西門) 밖 대장경판고에 두었고, 그 후 강화의 선원사(禪源寺) 로 옮겼다가, 1398년(태조 7)에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995년 12월 석굴암· 종묘와 함께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