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기림사
 
 
 
 

기림사 전경
석가모니가 생전에 제자들과 함께 활동하던 승원 중에서 첫손에 꼽히는 것이 죽림정사와 기원정사이다. 특히 기원정사는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20년이 넘게 머무른 곳이다. 이와 더불어 불자들의 수행도 점차 유랑위주에서 정착으로 바뀌었고 정사도 점차 수를 늘리게 된다. 그 기원정사의 숲을 '기림'(祇林)이라 하니 경주 함월산의 기림사는 그런 연유에서 붙은 이름이다. 기림사는 광복 전만 하더라도 이 일대에서는 가장 큰절로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였으나 교통이 불편한데다 불국사가 대대적으로 개발됨에 따라 사세가 역전되어 지금은 거꾸로 불국사의 말사로 있다. 
 
 신라에 불교가 전해진 직후 천축국의 승려 광유가 오백명의 제자를 교화한 임정사였다는 설화도 있고 그 뒤 선덕여왕20년(643)에 원효대사가 도량을 확장하면서 기림사로 개명하였다는 설도 있지만 분명치가 않다.
「삼국유사」에 "신라31대 신문왕이 동해에서 용으로 화한 선왕으로부터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얻어 가지고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림사 서편 시냇가에서 잠시 쉬어갔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통일 신라 초기인 신문왕 이전부터 있던 고찰로 생각된다.
고려 말기에 각유 스님이 이 절의 주지로 있었고, 조선 시대에 와서는 철종14년 (1863)에 대 화재로 주요 건물이 불탔으나 경주 부윤 송우화가 크게 시주하여 다시 지었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
 

오백나한상
 
가람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약사전, 맞은편에 진남루, 서쪽으로 응진전, 동쪽으로는 수령 500년이 넘는다는 큰 보리수나무와 목탑자리가 남아 있는 구역이다. 대적광전은 기림사의 본전으로 보물 제833호로 지정된 조선 시대 목오 건물이며, 그 앞에 통일신라 말기에 만들어진 탑신의 체감률이 고른 단정한 삼층석탑( 유형문화재 제205호로 지정)과 근래 새로 만든 석등이 있다.
둘째는 최근 불사한 명부전, 삼성각 관음전, 산신각과 기타 요사채 등이 있는 곳이고 셋째가 박물관이다. 삼신각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매월당 김시습의 사당도 볼 수 있다. 김시습이 기림사에 머문 인연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세운 사당이다.
 기림사에는 다섯 가지의 맛을 내는 물이 유명하다. 대적광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 옆의 장군수는 기개가 커지고 신체가 웅장해져 장군을 낸다는 물이고, 천왕문 안쪽의 오탁수는 물맛이 하도 좋아 까마귀도 쪼았다는 물이다. 천왕문 밖 절 초입의 명안수는 기골이 장대해지고 눈이 맑아지며, 후원의 화정수는 마실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북암의 감로수는 하늘에서 내리는 단 이슬과 같다는 물이다. 장군의 출현을 두려워한 일본인들이 막아버린 장군수만 물이 끊겼을 뿐 다른 네 곳은 지금도 각기 다른 물맛을 내며 물을 뿜고있다.
  최근 개관한 박물관에는 기림사를 대표할만한 건칠보살좌상과 1986년 9월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에서 발견된 문적(文籍)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들 역시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보물 제959호) . 전적들은 모두54종 71책으로 정교한 판각 솜씨를 보이고 있다. 그 밖에도 지옥과 염라대왕을 묘사한 탱화, 부처님의 진신사리, 와당 각종서책 등이 즐비하다.
 이렇듯 많은 유물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기림사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 아닌가싶다. 기림사가 있는 함월산은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로 전쟁이나 기타 재화(災禍)를 면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건칠보살좌상
 
 
 건칠보살이라는 것은 건칠, 곧 옻칠을 입힌 종이 부처인데 이렇게 만들어진 불상은 아주 드물다.
높이는 91cm이며 최근에 금색을 다시 입혀 낡은 맛은 없다. 
 왼발은 대좌 위에 얹고 오른발은 대좌 밑으로 내렸으며, 오른손은 무릎 위에 얹고 왼손을 약간 뒤로하여 대좌를 짚고 앉았는데, 그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인다. 
머리에는 당초문을 섬세하게 새긴 보관을 썼으며 얼굴은 복스럽게 살졌으나 냉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 가닥의 목걸이에 매달린 화려한 장식이 특징적이며, 특별한 장식은 없으나 세련되고 아름다운옷자락이 인상적이다. 
 대좌에서 발견된 글귀에 따르면 연산군 7년(1501)의 작품이라 하나 대좌의 기록이 반드시 제작 연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의상과 인상이 조선이나 원나라의 불상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양식을 따르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조선 시대의것으로짐작할뿐이다. 
보물 제415호이다. 

 
 

  대적광전
 
 
  기림사의 본전으로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어졌으며, 그 뒤 여섯 차례나 다시 지어졌다.
현재의 건물은 양식상으로 인조7년(1629) 다섯 번째 지어진 건물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 뒤 1786년 경주 부윤 김광묵이 사재를 털어 다시 지었으며 그 건물이 오늘에 이른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3칸의 규모이며 배 흘림 기둥의 다포식 단층 맞배 지붕이 단정하다. 겉모습은 본전 건물다운 웅건 함을 갖추었으며, 내부는 넓고 화려하여 장엄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대적광전이라 쓴 현판은 글씨가 현판 밖으로 넘쳐날 듯 굵고 힘차며, 앞면에는 모두 꽃 창살 문을 달았는데 색이 바래 화려한 꽃 창살조각의 느낌이 포근히 전해진다. 넓은 전각 안은 장엄한 맞배식 건물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며, 단청이 퇴색하여 느낌이 더고색창연하다.
보물제833호이다. 

 
 

소조 비로자나 삼존불
 
 
 
 가운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노사나불 그리고 오른쪽에 석가모니불을 모셔 삼신불을 이루는데, 흙으로 빛은 이 세 불상은 손의 위치와 자세만 다를 뿐 표정과 자세가 거의 같고 옷 주름까지도 비슷하다. 노사나불 앞에 최근에 만들어놓은 앙증맞은 탄생불이 있어 그 규모가 대비된다. 상체는 장대하나 무릎이 빈약하게 느껴지며, 네모난 얼굴에는 강인한 표정이 엿보인다. 적절한 두께로 주름을 새겨 넣은 옷자락 표현이 장대한 몸체에 잘 어울리는데, 왼쪽 무릎위로 접어 올린 옷자락이 비로자나불만 살짝 한 겹 더 접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만 삼존불일 경우 좌우 부처들이 두 손을 서로 대칭 되게 한쪽씩 드는 것이 보통이나 이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은 둘 다오른손을 들고 있는 것이 색다르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볼 때 보물 제958호로 지정된 대적광전 내 소조 삼존불은 임진왜란 직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986년 이 비로자나나불상에서 고려 시대의 사경(寫經)을 비롯한 수많은 복장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보물 제959호로 지정되어 기림사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