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답사 특집


전통적 지역명칭들의 유래

  "박형! 관북과 영남 사람들은 대체로 억세다면서?"  "글세…."  "올 여름 일기가 너무 차고 햇볕도 적게 나서 삼남(三南)에 혹시 풍년이 안 드는 거 아닐까."
"특히 호남에 풍년이 들어야 할 텐데…."
이런 흔히 쓰이는 말 중에서 우리는 관북, 영남, 삼남, 호남 등의 전통적 지명을 끌어낼 수 있다. 이들 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 그에 대해 여러 설이 있고 혼란도 따라다녀서 사학과 학우들을 위해 정리·소개코자 한다.

'호남'은 어느 호수의 남쪽인가

  호서(湖西)란 호수의 서쪽을 말하는 한자식, 특히 중국식 표현이다. '호'자라면 쉽게 흔히 전라도 땅덩어리를 연상한다. '호서'는 충청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요새식으로 말하면 충청북도와 청청남도를 합해 칭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호수는 어느 호수인가?  그것은 충북 북동쪽 제천에 있는 의림지 못(작은 호수)을 말한다. 충청 남·북도 즉 충청도가 대체로 '의림지 서쪽'에 있어서 호서라고 불려 온 것이다. 맨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중국식 지명표기이다. 호남, 산동, 산서, 호북 등 중국의 지명 표현을 딴 것들이다.
 그러면 호남은 어디인가? 의린지 남쪽인가? 아니다. 이 때의 '호'는 호강 즉 금강을 말한다. 그러므로 금강 남쪽이 되고 그것은 전라도이다.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합해서 부르는 전통적 명칭이다. 많은 사람들이 호남의 '호'자에 대해 혼란을 겪게 되는데 그 이유가 바로 '호'가 가리키는 것이 애매한 것으로 되어 왔기 때문이다.
 금강 명칭을 찾아보면 그것은 금강 외에 호강(湖江)으로도 쓰인 바 있다. 금강 하류가 폭이 넓어 호수로 연상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니 호강 남쪽 즉 호남은 전라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또 호중이란 무엇인가? 호수 가운데에 있다는 물이 호중(湖中)인데, 거긴 어디인가?호수 가운데에는 섬이 있을 뿐 여기서 논하는 정도의 큰 지역은 있을 수 없다. 위 호중이라고 하는 것은 충청도를 말하는 것이다.
 기호(畿湖)란 무엇인가? '호'자는 여기서는 충청도를 가리킨다. 이 호자에서는 호서·호중을 연상하면 좋다. 그러면 '기'자가 문제인데 그것은 경기(京畿)의 '기'자를 가리킨다. 기는 고려시대 이래 수도와 그 주위 지역을 합해서 말해 온 글자이다. 요새식으로 하면 수도권이 곧 기이다. 따라서 기호는 경기도와 충청도를 합해서 지칭하는 지명이 된다. 과거 한때 지식인 그룹 중에 기호학파라는 것이 있었다.

'영남'은 어느 고개의 남쪽인가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군 사이에는 소백산맥 중의 유명한 새재 즉 조령 큰 고개가 있다. 옛날 장정 1만 명도 넘어가기 힘든 천험의 협로로 알려져 거기에 조선정부는 관(關) 사솔, 즉 방어 및 통과 통제시설들을 갗우었으니 그것이 문경에서 괴산 사이에 있는 조령 제 1관문(주흘관), 제 2관문, 그리고 제 3관문이다.
 이들 관문이 선 조령길은 오늘날 사용되고 있지 않고 관광객이나 연구자들의 탐방로로나 쓰이고 있다. 대신 부근에 만들어진 이화령 길을 통해 산맥 남북이 연결되고 있다.
 그 험하고 높은 소백산맥의 일개의 안부(鞍部)인 새재 조령의 '령'자에 의지해서 그 남쪽 지역을 영남이라고 하였으니 도(道)로는 경상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한반도 중동부에서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을 여러 면에서 단절해 온 소백산맥, 그중에도 조령(새재) 남쪽을 '영남'이라고 불러 왔던 것이다. 조령 바로 남쪽에 있는 문경은 한성(서울)에서 충주를 거쳐 남행할 때 소백산맥 남쪽에서 맨처음 만나는 경상도 땅, 다시 말해서 초도읍(初到邑)으로서 지금 그 자리에 서있어 왔다.
 그러면 '영동'은 조령의 동쪽인가? 아니다. 이 때의 '영'은 대관령의 "령"에 연유한다. 태백산맥의 3줄기 산맥 중 맨 동쪽에 있는 대관령산맥(해안산맥) 중의 대관령 동쪽을 영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관령산맥의 동쪽을 차지한 곳이 영동이어서 그 지역은 동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다. '영서'는 대관령산맥의 서쪽인데, 그 서쪽 한계는 경기도-강원도 경계선이다. 그러니까 가원도 중 대관령산맥 서쪽 부분이 영서지방이 되는 것이다.

한서린 철령을 넘으면

 조선 광해군 때의 유명한 재상 이항복이 함 경도 땅으로 귀양을 갈 때 그는 강원도 땅을 지나고 그 북쪽 변경을 우뚝 선 천험의 큰 고개인 철령에 이르러 한서린 시를 아래와 같이 읊었다.

  「 철령 높은 봉에 쉬어가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외로운 신하의 한서린 눈물: 필역자)를 비삼아 띄어다가

     님계신 구중심처에 뿌려본들 어떠리 」

왜 그가 하필이면 철령고개에서 그 서러운, 임금을 그리는 애달픈 시를 읇었을까? 지리적으로보면 그 이유가 뚜렷이 선다. 철령은 조령 이상으로 천함의 요새지로서 1당 1만으로 외침을 막아 낼 수 있다고 평가된 높고 험한 애로(협로)이며 그 너머는 바로 실질적으로나 감정상 한양서 멀고 먼 함경도 땅이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귀양길이 되고 그 귀양지에서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는 눈물의 시를 읊은 것이다.
 조선 정부는 이 철령에 관을 설치하여 방어요충으로 적극 활용하였는데 그 점은 아주 합당한 것이었다. 그 철령관에서 '관'자를 따서 그 북쪽지방을 '관북'이라고 하여 왔다. 그러니 관북은 곧 함 경도 땅인 것이다.
 한편 철령관에 연유해서 그 동쪽을 '관동'이라 하고 곧 강원도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도 있으나 가끔 혼란을 불러 일으키는 면이 있다. 철령관 동쪽은 실질상 강원도의 동부여서 관동이라는 표현으로 강원도 전체를 대신하는 데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옛 문헌이나 시가(詩歌)에서 관동은 곧 강원도를 간주되는 경우를 자주 만날 수 있음은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