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남산은 경주시의 남쪽을 둘러싸고 남북으로 솟은 산이다.금오산(金鰲山)이라고도하며불적지(佛蹟地)가 많기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는 북쪽의 금오산과 남쪽의 고위산(高位山)의 두 봉우리 사이를 잇는 산들과 계곡 전체를 통칭해서 남산이라고 한다. 정산의 높이는 468m이고, 남북의 길이는 약 8km, 동서의 너비는 약 4km이다. 
지형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내린 타원형이면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정상을 이룬 직삼각형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북으로 뻗어내린 산맥에는 상사암·해목령·도당산 등의 봉우리가 있고 남으로 뻗은 산맥에는 높이 494m의 고위산이 있다. 남산의 지세는 크게 동남산과 서남산으로 나누어진다. 동남산쪽은 가파르고 짧은 반면에, 서남산 쪽은 경사가 완만하고 긴 편이다. 서남산의 계곡은 2.5km 내외이고 동남산은 가장 긴 봉화골이 1.5km  정도 이다. 동남산과 서남산에는 각각 16개의 계곡이 있고 남쪽의 2개와 합하여 모두 34개의 계곡이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유물·유적의 숫자로 보면 서남산 쪽이 동남산보다 월등히많다.
이 계곡들에는 석탑·마애불·석불·절터 등이 산재해 있다.또한, 남산은 신라 사령지(四靈地) 가운데 한 곳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곳에서 모임을 가지고 나랏일을 의논하면  반드시 성공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남산에 얽힌 전설과 영험의 사례가 풍부하고 다양하다. 박혁거세(朴赫居世)가  태어난 곳이 남산 기슭의 나정(蘿井)이며, 불교가 공인된 528년 이후 남산은 부처님이 상주하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존숭되었다. 헌강왕 때에는 남산의 산신이 현신하여 나라가 멸망할 것을 경고했다는 전설이 있다. 헌강왕이 포석정에 행차한 어느날 남산의 신이 왕 앞에 나타나서 춤을 추었는데 좌우 사람들은 보지 못했으나 왕만이 홀로 이것을 보았다. 왕은 스스로 춤을 추면서 주위사람들에게 그 형상을 보였다. 산신은 나라가 장차 멸망할 줄 알았으므로 춤을 추어  그것을 경고했던 것이나,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상서(祥瑞)가 나타났다고 하여 방탕한 생활이 더욱 심해졌던 까닭에 나라는 마침내 멸망하였다고 한다.
 이와같은 전설은 신라인의 산악숭배에 있어서 남산이 특히 호국의 보루로서 존숭되었음을 알려주는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
 
 

5.남산 삼릉골

  삼릉골 마애관음보살상
 
 

 옷매듭이 아름다운 불상에서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40m쯤 오르면 높이 솟아오른 돌기둥 위에 관음보살이 새겨져 있다. 높이는 약 1.55m이다. 오른손은 가슴에 들고 설법인을 했으며 왼쪽 손은 정병을 들고 있다. 머리의 보관에는 화불인 아미타불이 조각되어 있다.
 이 관음보살의 자애롭고 화사한 웃음은 마치 등산객을 이하는 환영의 인사같이 생각되는데. 입술가에 도는 붉은 빛깔로 인해 이 미소가 더욱 인상적이다. 이는 인공으로 첨색한 것이 아니라 자연암석의 붉은색을그대로 이용한 것이어서 더 신비하다. 정확한 조각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지방 유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돼 있다.
 
 

 삼릉골 마애선각육존불상
 
 
마애관음보살을 보고 다시 삼릉골을 따라200m오르면 개울 건너 널찍한 곳에 암벽이 펼쳐진다. 앞뒤로 솟아 있는 큰 바위(앞의 바위는 높이와 폭이 약4m, 뒤의 것은 높이 4m에 폭 7m 정도이다)에 정으로 쪼아 새긴 것이 아니라 붓으로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이각각의 암벽에 삼존불을 그려놓았다. 자유로운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앞쪽 바위에 그려진 삼존불의 본촌은 입상. 좌우 협시보살은 좌상이다. 본존의 높이는2.65m, 협시보살의 높이는 1.8m 정도이다. 본존은 오른손을 올려들고 왼손을 배에 대고 있으며, 협시하는 보살은 무릎을 꿇고 본존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협시보살 두손에 모아쥔 것이 꽃인지 다기(茶器)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뒤쪽에 새겨진 삼존불 중 본존은 좌상으로 높이 2.4m 두 협시보살은 높이 2.6m 정도 되는 입상이다. 음각으로 두광과 신광을 나타냈으며, 아래쪽에 연화대좌를 조각하였다.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선 마무리, 바위에 이만한 소묘를 하려면 수천수만 장의 탱화를 그려본 솜씨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터이다. 이렇게 훌륭한 조각을 하면서도 바위면을 다듬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바위에 새긴 것이 신라인들의 자연존중사상으로 여겨짐은 억지일까. 이 자연암석 위로는 인공으로 길게 홈을 파놓았다.
이것은 아마도 빗물이 마애불위로 직접 흘러내리지 않게 하는 배수로의 역할을 한 듯싶다. 긴 돌흠 바로 앞에는 전실(前室)을 씌웠던 흔적으로 여겨지는 작은 홈도 양쪽에 나 있다. 지방 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돼 있다.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삼릉골 선각여래좌상
 
 
  선각여래좌상이 있는 곳에서 계곡 아래쪽으로 약 300m정도 내려가면 얼굴 아랫부분을 시멘트로 발라놓은 흉칙한 인상의 석불좌상이 있다. 향마촉지인을 취한 이 석불좌상은 상당히 우수한 작품이지만 코 밑에서 턱까지 완전히 파손되었고 광배도 반쯤 잘려나갔다. 보수를 하느라 턱부분을 시멘트로 발라 보수해놓은 부분을 가리고 보면 매우 우수한 불상임을 단박에 알 수가 있다.
 당당하고 풍부한 몸체에옷주름은가늘게표현되었다. 
원형의 신광과 보주형의 두광으로 된 큰 광배가 있으나 파손된 채 석불좌상 뒤쪽에 방치되어 있다. 연화대좌 위에는그 광배를 꽃았던 자리가 남아 있다. 통일신라 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물 
제666호로 지정돼 있다.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
 
 
 상선암은 남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암자이다. 삼릉골 석불좌상 뒤쪽으로 약 1km정도 걸어올라 상선암에 이르면 남산불상 중 가장 크고조각이우수한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을 볼 수 있다. 높이 5.2m 무릎 폭 3.5m 정도 되며, 연화대좌의 폭은 약 4.2m 이다.
 머리 부분은 돋을새김을 하였으며 몸 아래쪽으로 갈수록 선각에 가까운 조각으로 단순화 시켰다. 오른손은 앞으로 펴고 왼손은 무릎 위에 얹었다. 통견의 옷무늬는 부드럽게 나부끼며 좌대에는 연화를 음각하였다. 귀 뒷부분에는 진달래 한줄기가 있어 봄마다분홍빛진달래를피우는데,삼릉골최고높이에서 고요히 인간세계를 굽어살피는 불상의 위엄을 한결 부드럽게 녹여낸다.
동쪽으로는 남산의 주봉을 대하고 서쪽으로는 배리의 평야를 내다보고 있다. 
 거대함에서 뿜어나오는 위엄뿐만 아니라 자비에 넘치는 얼굴 모습은 믿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며, 신령스러운 이 암벽 아래에는 기도하기에 알맞은 터가 자연적으로 마련되어 있어 소원성취를 기도하는 부인들의 발걸음이 잦다. 
  사각에 가까운 머리는 풍만하며 가늘고 긴 눈은 정면을 보고 있다. 예리하게 다듬어진 코는 굳세며 굵은 눈썹은 단정하게 초생달을 그리고 있다. 입술은 굳게 다물고 있지만 살진 두뺨과 입 언저리에는 조용한 미소가 깃들여 있다. 삭발한 머리에 육계는 자그마하고 큰 귀가 어깨까지 닿아 있다. 지방 유형문화재 제158호이다.

 
 

배리 삼존석불입상
 
 
포석정을 지나 삼릉 쪽으로 약 400m 가다보면 삼불사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있고 거기서 약 150m쯤 올라가면 근래 지어진 삼불사가 있다. 움직이는 햇살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신비한 미소로 유명한 삼존불상은 삼불사 뒤쪽 얕은 담장과 보호각 속에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제 그 미소를 볼 수가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비바람으로 인한 마멸을 줄인다는 이유로 보호각을 입혔기 때문이다.
 보물 제63호로 지정된 이 삼존불상은 원래 이 자리에 흩어져 누워 있던 것을1923년 10월 한곳에 모아 세워놓은 것이다. 중앙 여래상은 높이 2.6m로 평면의 기단석 위에 서 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풍만하고 단아하며 입가의 미소가 뛰어나다.
 오른손은 다섯 손가락을 모두 펴 위로 향해 치켜든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왼손은 팔을 아래로 내려뜨리고 손바닥을 정면을 향하도록 편 시여원인(施與願印)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수인은 특히 고신라의 유물에서 많이 발견된다. 옷무늬는 아래로 내려올수록 크게 조각되었는데 발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광배는 불상과 한 돌로 세워져 있다.
왼쪽의 보살상은 약 2.3m의 높이로, 이중의 연화대좌 위에 서 있다.삼존 가운데 가장 조각이 섬세하며, 목에서 다리까지 드리운 구슬 목걸이를 오른손으로 감싸쥐고 있다. 
 얼굴 모습은 본존과 마찬가지로 부드럽고 자애로운 미소를 한껏 머금고 있으며, 왼손은 어깨까지 쳐들고 불경을 쥐고 있다. 불행히도 무릎 부위에서 불상이 잘렸는데도 위험한 대로 그냥두고 있다. 광배에는 작은부처 다섯을 새겨놓았는데, 그 부처들도 또한 작은 광배를 가지고 있어 특이하다.광배의 가장자리는 구름무늬로 둘렀다.
 오른쪽의 보살상은 삼존 가운데 가장 수법이 떨어지는 편에 속한다. 높이는 2.3m이며, 오른손은 펴서 가슴에 얹고 왼손은 굽혀서 허리 부분에 대고 있다. 왼쪽의 보살상이 다소 가냘픈 느낌을 주는 반면, 오른쪽의 보살상은 전체적으로 몸을 뒤로 젖혀 다소 우람한 느낌을준다.
 이 삼존불의 전체적인 특성은 동안(童顔)의 미소라든가 손의 모습, 몸의 체감비율. 옷무늬를 처리한 방식 들로 삼화령 애기부처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점에서 이곳 삼존불상과 삼화령 애기부처, 그리고 부처골 석불좌상(감실부처)은 남산에서 볼 수 있는 고신라 시대의 작품이다.
보물 제 63호로 지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