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괘릉
 
 

괘릉 전경 
  무덤덤하게 아무장식이 없거나 십이지신상을 둘러 장식을 하는 정도에 불과했던 통일신라 시대의 원형 봉분은 사실 볼거리를 풍성히 전해준다거나 아기자기하게 살펴보는 재미를 준다고는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괘릉만큼은 그런 선입감을 단박에 무색하게 만든다.괘릉은 현존하는 신라 왕릉가운데 가장 화려한 무덤이며 통일신라 시대의 가장 완벽한 능묘제도를 대표한다는 치사를 절대 배반하지 않는다. 묘역은 소나무 숲 속에 단정하게 단장돼 있다.
 

 


 

서역인을 닮은 십이지신상 

신라인을 닮은 십이지신상

  우선 괘릉을 구성하고 있는 석조물들을 살펴보자. 봉분의 밑 둘레에는 십이지신상을 새긴 호석을 둘렀고 그 주위로 수십 개의 돌기둥을 세워 난간을 둘렀으며, 봉분 앞에 안상을 새긴 석상을 놓았다. 봉분에서 멀찍이 떨어진 남쪽에는 돌사자 두 쌍과 문인석, 무인석 각 한 쌍을 좌우대칭으로 배치하였고, 그 앞에 화표석 두 개를 좌우에 세웠다. 호석에 배치한 활달한 십이지신상의 힘찬 조각수법은 당시 신라인의 문화적 독창성과 예술적 감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서역 사람의 얼굴모습을 조각한 무인석은 당시 신라가 당나라뿐만 아니라 먼 서역과도 활발한 문물교류를 하였음을 알려준다. 눈이 깊숙하고 코가 우뚝하며 곱슬머리인 서역인의 모습이 무인상에 생동감 있게 조각되었다. 또 무인상과 문인상이 입고 있는 옷의 조각도 매우 사실적이어서 당시 신라의 복장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괘릉 돌사자 
 괘릉을 지키고 있는 네 마리의 사자는 힘이 넘쳐 한 발은 땅을 짚고 한 발로는 땅을 파헤치고 있으며 얼굴에는 싱글벙글한 웃음이 가득하다. 각기 동서남북을 지키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두 마리씩 마주보고 있는 사자가 몸체는 그대로 둔 채 고개만 자기가 지키고 있는 방위를 향해 돌리고 있는 모습이다.사자를 돌로 만들어 성문이나 무덤이나 탑을 지키게 하는 풍속은 고대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지만 이렇게 유쾌한 사자의 모습은 어느나라에서도 볼 수가 없다.
 향토사학자 윤경렬 님은 이 밝은 표정을 화랑도의 수련으로 자신 있게 힘을 길러 나가던 신라 화랑들의 웃음이라 하였다. 신라의 우수한 문화수준에서 나오는 여유이겠다. 
 사적 제26호로 지정돼 있다.이는 신라 원성왕(785-798년)의 능으로 추정되지만 확실치는 않다. 이 능은 본래 이곳에 있던 작은 연못의 수면 위에 왕의 유해를 걸어 안장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