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경주 남산 미륵 골

 
  사천왕사 맞은편 화랑교육원 가는 길로 들어서서 화랑교를 넘으면 탑골 입구 못미처 갯마을이 나선다. 갯마을 앞쪽으로는 남천이 흐르고 마을 뒤로는 임업시험장이 있어 동네가 온통 푸르다. 임업시험장의 뒷산은 넓은 대나무 숲인데, 그 대숲 북쪽 계곡이 미륵골이다. 대숲 옆길로 약 250m 가량 산등성이로 올라가면 정상 가까운 아늑한 곳에 비구니들이 수도하는 보리사가 자리잡고 있다. 근래에 지은 대웅전과 건물이 몇 채 있는데, 남산에 있는 절 가운데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편이다. 「삼국사기」에서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의 위치를 말할 때 '보리사의 동남쪽' 이라고 한 것을 보면 보리사가 유서 깊은 절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경내에 통일신라 후반의 석불상을 대표하는 훌륭한 석가여래좌상이 있으며, 보리사 앞에서 남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산비탈로 35m쯤 가면 경사가 급한 산허리에 마애불이 있다. 이 마애불 앞에서는 옛 서라벌의 중심지였던 배반평야 일대가 잘 내려다보인다.

 
    보리사 석불좌상
 
 
아름다운 연화대좌에 앉아있는 이 석불좌상은 자비가 넘치는 얼굴, 유려한 옷자락의 흐름, 화려한 광배 등이 뛰어난 조각으로 완숙한 통일신라 예술의 향기를 내뿜는 작품이다. 석불의 높이는 약 2.43m이다. 큼직한 육계가 표현된 곱슬 같은 나발의 머리에 장방형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양감이 풍부한 편은 아니지만 반듯한 이마, 가늘고 긴 눈썹과 귀, 오똑한 코, 조용한 미소를 머금은 듯한 입은 단아하고 자비스러운 모습이다. 석굴암 본존불이 접근하기 힘든 위엄이 있다면 이 불상은 어딘지 인간적인 느낌이 든다. 얼굴은 신체와 다른 돌로 이루어졌고. 목에는 삼도(三道)를 뚜렷이 나타내었다.
좁아진 어깨에 가슴은 건장한 편이지만 석굴암의 본존불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양감은 없다. 이러한 점은 다소 작게 표현된 항마촉지인의  손이라든가 좀 
 왜소해 보이는 하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높이 2.7m,폭이 1.9m인 광배는 다른 돌을 댄 것이다. 앞면에는 보상문과 당초문, 화불을 조각하였으며 뒷면에는 얇은 돋을 새김으로 약사여래좌상을 새겨놓았다. 약사여래가 동방세계의 부처인 까닭에 앞쪽의 석불좌상은 서방정토의 아미타여래로 추정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드문 형식이다. 높이 135m의 연화대좌는 겹으로 쌓은 복련의 밑받침에 팔각의 간석을 세우고 앙련을 조각하였다. 팔각의 중대에는 각 모서리에 기둥 형태가 조각되어있으며 비교적 단순하고 소박한 멋이 풍겨난다.
보물 제136호로 지정 돼있다.
 

 
    보리사 마애여래좌상
 
 
 보리사 남쪽 산허리로 난 오솔길로 약 35m 올라가면 고색이 짙은 마애불이 나온다.
높이 1.5m의 배형 감실에 약 90cm로 만들어진, 사람의 실물 크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작은 부처는 양쪽 뺨 가득히 자비에 넘치는 미소를 간직하고 다소곳이 앉아 있다.전체적인 조각수법이 거친데 특히 위쪽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더욱 심하다. 보리사의 석불좌상 보다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신라 하대의 작품이지만 기울어지지 않은 신라문화의 힘을 보여준다. 부처님이 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면 발 아래는 보이지 않고 하늘에 떠 있는 느낌이다. 멀리 선덕여왕이 잠들어 있는 낭산이 남북으로 길게 누워있고, 목조쌍탑이 솟아 있었을 사천왕사, 망덕사, 황룡사도 모두 한 시야에 보인다. 옛 서라벌에는 17만8,936호가 모두 기와집으로 줄지어 있었다는데, 이 부처는 그렇게 장하던 서라벌의 안전을 굽어살핀 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