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굴불사지와 사면석불
 
 
백률사 입구에서 200m정도 떨어진 곳에 사면석불이 있는 널찍한 터가 있는 데, 이곳에 굴불사터이다. 굴불사에는 다음과 같은 창건설화가 있다. 신라 35대 경덕왕이 백률사에 나들이하는 도중에 이 근처룰 지나는데 땅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왕에겐 그것이 어느 스님의 경읽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상하게 생각한 왕은 대번에 신하에게 명하여 그곳을 파보게 했다. 그러자 거기서 각 면에 불상이 새겨진 바위가 나왔다. 이에 감동한 왕은 석불을 파내었다하여 굴불사라는 이름의 절을 지었다. 오늘날 굴불사의 자취는 찾아보기 어렵고 자연암석에 조성된 사방불만이 남아있다.그럼 이사방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원래 남북 사면에 불상을 조각하는 것은 사방정토를상징하는 
 것으로 대승불교의 발달과 더불어 성행한 사방불 신앙의 한 형태였다.사방불의 사면에 어떤 부처를 모시는 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남쪽에 석가모니불, 북쪽에 미륵불을 모신다. 이곳 사면석불도 이와 같은 배치를 따르고 있다. 정면의 서쪽에 아미타블과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상을 모셨으며, 동쪽에는 약사합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를 모셨다.
동서쪽에 모신 부처는 확실하지만 남북쪽의 부처는 마멸디 심해 분간이 어렵다. 서쪽의 아미타불은 높이 3.9m로 다른 불상들보다 크며 돋을 새김으로 표현되었다. 머리는 별개의 돌로 둥글게 조각하여 얹었으며 오른손은 떨어져 나갔다. 오른쪽 대세지보살의 머리 부분은 허물어 고 왼쪽 관세음보살은 한쪽 다리에 무게중심을 두고 균형을 잡은 삼굴 자세를 하였다. 삼굴자세는 삼국 시대 말기부터 나타나는데, 통일신라 시대에 와서 더욱 유행하였다. 이는 불상의 자연스러운 자세를 나타내고 균형된 신체 비례를 보여준다. 두 협시보살은 1.95m이다.
 동쪽의 약사여래상은 결가부좌를 하였으며 왼손에 약합을 들었고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한듯하나 파손되었다. 남쪽에 남아 있는 두 보살상과 불상은 몸체의 굴곡 표현이나 옷주름등을 볼 때 균형이 잘 잡혀있다. 모두 높은 돋을 새김으로 조각하였다. 돋을 새김으로 조각된 북쪽의 보살입상은 높이 틀어 올린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다. 손을 든 자세나 천의를 두른 모습이 남쪽의 보살과 비슷하나 보존상태는 매우 안 좋다. 왼쪽에 선각으로 된 보살상은 6개의 손에 11면의 얼굴을 가진 관음보살이다. 이는 관음의 변화된 형태로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다방면의 신통력을 보여 주는 주술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렇게 사면석불에 십일면육비의 관음보살상이 표현되어 있는 것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신앙된 불상 중에 밀교적 성격을 띠는 불상이 섞여 있음을 보여주고 매우 귀중한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