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이천 중리 삼층석탑                 관고리 석탑

이천의 명물을 들라면 단연 살과 땅콩 다음에 도자기를 꼽는다. 도자기의 주재료인 흙의 50%가 이천에서 생산되고 현재 140여 개의 도자기 가마가 밀집되어 '도예촌'을 이루며 자기문화의 명소로 알려진 이천땅.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백옥(白屋) 이 호법리에서 나온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이천 도자기는 오래 전부터 토산품으로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웃마을 광주의 단절된 도자혼을 계승하려는 의지가 새삼스러울 까닭이 없다.
 전통 도자문화의 정신과 내력을 이으며 선조들이 간직해온 신비한 빛깔과 청순한 아름다움의 비법을 찾아 끈질긴 집념을 불태우는 사람들이 이 고을에 있다. 집념의 성미답게, 그 옛날의 도공들이 그러했듯 아직도 장작가마와 수작업(手作業)을 고집하며 혼을 사르는 장인들이 고장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고장 어딘가는 늘 학생과 일반인들의 도예실습장으로 활용되고 도자기 가게엔 국내외의 관광객들이 기웃거린다. 신비의 내력과 겨레의 자긍심을 만나보고 싶기 때문이리라.경기도의 동남단 끝에 마치 표주박에 무엇인가를 담을혀는 형국을 이루고 있는 이천은 본디 백제땅으로 시작되었다. '이천'이란 지명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치러갈 때 주민 서목이 도와  '남천'을 무사히 건너고 이섭대천(利涉大川, 강을 건너감이 이롭다)이라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하며 1914년 음죽군의 대부분을 합쳐 오늘에 이른다.
  
      이천시 애련정               영월암 석조광배

영토 확장의 주무대였던 고장이어 선지 이천에는 산성터가 많다. 삼국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짐작되는 설봉산 성터·원적산고성터·효양산성터· 증일리토성터· 마이산 망이산성터 등이 남아 있다.
 불교유적으로는 관고리 오층석탑, 설봉산 영월암과 법당 뒤편의 마애불(보물제 822호)을 친견할 만하고 고속도로변의 장암리 매애보살상, 어석리 석불입상, 소고리 매애불, 영원사 석조약사여래좌상, 마옥산 부처바위 마애 여래좌상 및 매애삼존불상 등 10여 기가 넘는 옥외 마애불이 이천 지역 곳곳에 모셔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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