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신륵사(神勒寺)

 

신륵사극락보전 (神勒寺極樂寶殿)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128호
분류  사찰건축  
소재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  

  기록(記錄)에 의하면 신륵사(神勒寺)는 고려(高麗) 우왕(禑王) 5년(1379) 나옹화상(懶翁和尙)의 입적(入寂)후 크게 중창(重創)하였고, 조선(朝鮮) 성종(成宗) 4년(1473)에는 영릉(英陵)의 원찰(願刹)이 되기도 하였다. 이 건물(建物)은 장대석(長臺石)의 3벌대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정면(正面) 3칸 측면(側面)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기단 위에는 추녀(春舌)를 받치고 있는 네 개의 활주(活柱)가 있다. 공포(공包)는 다포계(多包系) 양식(樣式)의 내4출목(內四出目) 외3출목(外三出目)으로 주간(柱間)에는 2개씩의 공간포(空間包)를 짰다. 내부(內部)바닥은 모두 우물마루이고, 중앙 후측에 불단(佛壇)을 놓아 목조(木造)의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을 봉안(奉安)하고 그 위에는 화려한 닫집을 짜고 천장은 우물반자를 하였다. 가구(架構)의 전체적인 수법(手法)으로 보아 조선(朝鮮) 후기(後期) 양식(樣式)에 속하는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신륵사조사당 (神勒寺組師堂)
종 목  보물 180호
분류  사찰건축  
소재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 신륵사  
시대  조선시대 초기  
재료,재질  목재  

  이 건물은 조선(朝鮮) 초기(初期) 예종(睿宗)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불단(佛壇) 후벽 중앙에 나옹(懶翁), 그 좌우에 지공(指空) 및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영정(影幀)을 모시고 있다. 건물은 낮은 석단(石壇) 위에 남향하여 세운 작은 규모의 당우(堂宇)로 정면 1칸의 건물로 내부는 모두 우물반자를 짜아 대들보가 보이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공포(공包)는 내·외를 모두 이출목(二出目)으로 한 다포계(多包系) 형식으로 그 조각 수법은 초기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신륵사다층석탑 (神勒寺多層石塔)
종 목  보물 225호
분류  모전탑  
소재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 신륵사  
시대  조선시대  
재료,재질  대리석  

  이 탑은 흰 대리석(大理石)으로 만든 방형(方形)의 일반형 석탑으로서 기단부(基壇部)는 2층을 이루고, 상하의 갑석(甲石)에는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또한 기단 면석(面石)에 장식되어 있는 용무늬(龍紋)와 구름무늬(雲紋)는 뛰어난 조각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대리석에서 오는 질감은 이 탑을 더욱 우아하게 돋보이게 한다. 탑신부(塔身部)는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기 1석씩으로 조성되어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모두 없어졌다. 이 석탑은 조선(朝鮮) 성종(成宗) 3년(1472)에 건립된 것으로 조선(朝鮮) 초기(初期)의 우수한 탑의 하나이다.


신륵사다층전탑 (神勒寺多層塼塔)
종 목  보물 226호
분류  전탑    
소재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 신륵사  
시대  고려시대  
재료,재질  화강석  

  이 전탑(塼塔)은 5단(五段)으로 된 화강암(花崗岩) 석단을 두고 그 위에 세운 것으로 제2층 이상의 감축도(減縮度)가 완만하여 안정감과 함께 경쾌한 느낌을 준다. 벽돌 일부에는 당초문(唐草紋)이 있어 주목된다. 이곳의 수리비(修理碑)에 의하면 조선(朝鮮) 영조(英祖) 2년(1726)에 중수(重修)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되었는데 본래의 모습은 아닐 것으로 추측된다.


신륵사보제존자석종 (神勒寺普濟尊者石鐘)
종 목  보물 228호
분류  석종    
소재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 신륵사  
시대  고려시대  
재료,재질  화강석  

  이 부도(浮屠)는 고려(高麗) 우왕(禑王) 5년(1379)에 건립된 나옹대사(懶翁大師)의 사리탑(舍利塔)이다. 종 모양의 탑신을 안치한 단층의 탑으로 정상은 보주형(寶珠形)을 이루고 있다. 넓직한 건축 기단은 전면과 양 측면에 계단을 마련하고 있다. 이와같은 석종형(石鐘形) 부도(浮屠)는 인도의 불탑형식(佛塔形式)을 가미한 것으로 고려(高麗) 말기(末期)의 석종형 부도의 한 예를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이 석종은 높이 160cm, 지름 110cm이다.

신륵사보제존자석종비 (神勒寺普濟尊者石鐘碑)
종 목  보물 229호
분류  석비   
소재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 신륵사  
시대  고려시대  
재료,재질  화강석 및 대리석  

  이 비석은 높직한 지대석(地臺石) 위에 괴임돌 1단(段)을 놓고 앙·복련(仰覆蓮)의 대석을 마련하여 장방형(長方形) 홈을 파서 대리석(大理石) 비신(碑身)을 꽂고 개석(蓋石)을 덮었는데 기왓골과 막새기와가 표시되어 있어 주목된다. 비신 좌우에 지주(支柱)를 세운 것은 같은 경내(境內)의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와 같은 것으로 고려말(高麗末)의 한 양식이라 하겠다. 이 비는 우왕(禑王) 5년(1379)에 보제존자 나옹(懶翁)을 추모하여 세운 탑비로 비문은 이색(李穡)이 지었다. 비의 전면(前面)은 석종기(石鐘記)와 진당시(眞堂詩)로 양분되어 있다. 글을 지은 사람과 쓴 사람의 직함과 성명(姓名)을 서두에 쓰지 않고 시의 끝머리로 돌린 것은 드문 예에 속하는 것이다. 비신의 높이는 120cm이며, 비신의 너비는 61cm이다.

신륵사대장각기비 (神勒寺大藏閣記碑)  
종 목  보물 230호
분류  석비
소재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 신륵사  
시대  고려 우왕 9년(1383)  
재료,재질  화강석 및 대리석  

  이 비석은 장방형(長方形)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대석(臺石)을 놓고 비좌(碑座)를 마련하여 장방형 홈을 파서 대리석 비신(碑身)을 꽂았으며 그 좌·우에 석주(石柱)를 세워 지주(支柱)를 삼고 개석(蓋石)을 덮은 것이다. 이렇듯 양지주를 시설한 형식은 고려말(高麗末)에 보이는 것으로 주목된다. 대석에는 복련(覆蓮)과 귀꽃문 등으로 장식하고 개석의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게 했다. 이곳 신륵사는 원래 대장각(大藏閣)이 있어서 고려말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승려 나옹(懶翁)의 문하생(門下生)들이 발원하여 경률론(經律論)을 만들어서 수장(收藏)하던 집이었는데, 이 비는 대장각의 조성에 따른 제반 기록을 새긴 석비로서 고려 우왕(禑王) 9년(1383)에 세워졌다. 비문은 이숭인(李崇仁)이 짓고 권주(權鑄)가 썼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명문(銘文)이 많이 마멸되어 판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신륵사보제존자석종앞석등 (神勒寺普濟尊者石鐘앞石燈)  
종 목  보물 231호
분류  석등   
시대  고려시대  
재료,재질  석재류  
소재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 신륵사

  나옹선사(懶翁禪師)의 묘탑(墓塔) 앞에 세워진 화려(華麗)한 장식등(裝飾燈)이다. 전형적(典型的)인 8각석등(八角石燈) 양식(樣式)을 갖춘 일종의 변형된 석등이다. 상(上)·하대(下臺)에는 16엽(葉)의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을 복엽(複葉)으로 각출(刻出)하였다. 전부재(全部材) 중 화사석(火舍石)은 납석재(蠟石材)이며 나머지는 화강석(花崗石)이다. 화사석 각면의 화창(火窓)은 사라센 계통의 완만한 곡선의 화두창(花頭窓) 양식(樣式)을 따르고 있으며 화두창 위의 넓은 공간(空間)에는 비천상(飛天像)을 조각하였다. 각 우주(隅柱)는 원주(圓柱)로 표면(表面)에는 반룡문(蟠龍紋)을 장식하였고 주두(柱頭)를 드러내고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둔후(鈍厚)한 화강암(花崗岩)으로 처마와 전각(轉角)의 반전(反轉)이 경쾌하여 둔중감(鈍重感)을 다소 감소하고 있다. 고려(高麗) 말기(末期)의 대표적(代表的) 양식(樣式)으로 조선시대(朝鮮時代) 장명등(長明燈)의 조형(祖型)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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